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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A 증량만이 답 아니다"…신성빈혈 치료 선택지 세분화

  • 손형민 기자
  • 2026-09-07 06:00:46
  • 요약
  • 김동기 서울대병원 신장내과 교수
  • "기능적 철결핍·ESA 저반응 환자서 HIF-PHI 고려"
  • '바다넴' 시장 진입…"환자별 적합한 기전 선택 중요"

[데일리팜=손형민 기자] 만성신장질환에 따른 빈혈 치료가 적혈구생성촉진제(ESA) 용량을 조절하는 방식에서 환자의 철 대사와 염증 상태, 치료 반응 등을 고려해 적합한 기전을 선택하는 방향으로 세분화되고 있다.

수십 년간 투석 환자의 빈혈 치료를 이끌어온 ESA가 여전히 표준적인 치료 옵션으로 자리하고 있는 가운데 최근에는 체내 저산소 반응을 이용해 내인성 에리스로포이에틴(EPO) 생성을 유도하는 저산소유도인자 프롤린 수산화효소 저해제(HIF-PHI) 계열 경구제가 국내 진료현장에 들어오면서 선택지가 추가됐다.

특히 ESA 치료에도 목표 헤모글로빈(Hb)에 도달하기 어렵거나 저장철(Ferritin, 페리틴)은 충분하지만 실제 조혈 과정에서 철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는 환자 등에서 새로운 기전의 활용 가능성이 거론된다.

김동기 서울대병원 신장내과 교수는 최근 데일리팜과 만나 "지난 30년간 투석 환자의 빈혈 치료는 사실상 ESA 용량 설정과 철분 보충 기준의 문제였다"며 "HIF-PHI가 등장하면서 ESA 증량 외에 다른 선택지가 생겼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투석 환자 흔한 빈혈…심혈관 위험까지 연관

김동기 서울대병원 신장내과 교수

빈혈은 투석 환자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합병증이다. 콩팥 기능이 저하되면 적혈구 생성을 유도하는 EPO 생산이 감소하고, 요독 물질과 만성 염증, 철 이용 장애, 반복적인 채혈과 투석 과정에서의 혈액 손실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환자가 체감하는 부담도 크다. 빈혈이 심해지면 호흡곤란과 피로뿐 아니라 운동능력과 집중력, 수면, 사회활동 등 전반적인 삶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

김 교수는 빈혈 관리가 단순한 증상 개선을 넘어 투석 환자의 장기 예후와도 밀접하게 연결된다고 짚었다.

김 교수는 "투석 환자의 주요 사망 원인 가운데 하나가 심혈관계 질환"이라며 "빈혈이 발생하면 이를 보상하기 위해 심박수와 심박출량이 증가해 심장 부담이 커지고, 좌심실 비대 등 심혈관계 합병증 위험도 높아질 수 있다"고 전했다.

이어 "빈혈은 입원이나 사망 등 환자의 예후와 밀접하게 연관된 만큼, 단순히 증상을 개선하기 위한 보조적 치료의 문제로 봐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다만 헤모글로빈을 지나치게 높이거나 급격하게 교정하는 것 역시 경계해야 한다. 환자의 Hb와 철분 상태뿐 아니라 염증과 출혈 여부, 심혈관계 질환, ESA 반응성 등을 함께 살펴 적정 범위에서 관리하는 접근이 요구된다.

ESA 저반응·철 결핍 환자 존재…치료 공백 심화

ESA는 신성빈혈 치료에 변화를 가져온 대표적인 치료제다. 도입 이전 빈번했던 수혈을 줄이고 환자의 빈혈과 삶의 질을 개선하면서 오랜 기간 치료의 중심축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모든 환자가 ESA에 충분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특히 만성 염증이 있는 환자에서는 철 대사를 조절하는 헵시딘 수치가 올라가면서 체내에 철이 있어도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당뇨병과 감염, 혈관접근로 문제, 복막염, 만성 창상, 자가면역질환 등을 동반한 환자가 대표적이다.

혈중 페리틴은 충분한 반면 트랜스페린포화도(TSAT)가 낮은 '기능적 철결핍' 환자 역시 ESA와 철분제를 투여하더라도 원하는 수준의 반응을 얻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김 교수는 "이런 환자에서 ESA 용량을 계속 높이는 전략은 효과가 제한적인 동시에 부작용 위험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며 "ESA 외에 다른 기전으로 빈혈을 조절할 수 있는 치료 옵션에 대한 요구가 있었다"고 진단했다.

HIF-PHI는 이러한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새로운 치료 옵션이다. 저산소유도인자(HIF)를 분해하는 프롤릴수산화효소를 억제해 체내 저산소 반응 경로를 활성화하고 내인성 EPO 생성을 유도한다. 철 흡수와 운반, 이용에 관여하는 경로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기존 ESA와 구별된다.

김 교수는 "ESA가 외부에서 EPO를 공급해 적혈구 생성을 촉진한다면 HIF-PHI는 환자가 가진 저산소 적응 시스템을 이용한다"며 "특히 헵시딘을 포함한 철 대사에 영향을 미쳐 체내에 저장된 철을 조혈에 활용하도록 한다는 점이 중요한 차이"라고 평가했다.

"누구에게 쓸 것인가"…HIF-PHI 적용 환자 구체화

국내에서는 HIF-PHI 계열의 경구 신성빈혈 치료제 '바다넴(바다두스타트)'이 투석 중인 만성신장질환 성인 환자에서 사용되고 있다. 바다넴은 150mg과 300mg 용량으로 공급되며 1일 1회 경구 복용이 가능하다.

바다넴은 투석 환자를 대상으로 한 글로벌 INNO2VATE 1·2 연구에서 기존 ESA인 다베포에틴 알파와 비교해 헤모글로빈 개선 효과의 비열등성을 입증한 바 있다.

김 교수는 실제 진료 경험을 토대로 HIF-PHI를 고려할 수 있는 환자로 신규 투석 환자와 기능적 철결핍 또는 염증을 동반한 ESA 저반응 환자, 주사제 투여 부담이 있는 복막투석 환자 등을 꼽았다.

김 교수는 "투석을 처음 시작하는 환자는 상대적으로 잔여 신기능이 남아 있고 염증 상태가 심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며 "이런 환자에서는 내인성 EPO 생성을 유도하는 HIF-PHI도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다"고 봤다.

또 "페리틴은 충분하지만 TSAT가 낮아 철이 제대로 동원되지 않는 기능적 철결핍 환자나 염증으로 ESA 반응이 떨어지는 환자에서도 HIF-PIH 사용을 고려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다만 고용량 ESA를 사용하던 저반응 환자가 HIF-PHI로 전환할 때는 보다 면밀한 관리가 필요하다. 기존 ESA 요구량과 Hb 변화를 확인하면서 적정 용량에 도달하기까지 경과를 관찰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실제 HIF-PHI 전환 환자에서 "초기 4~8주 동안 Hb가 급격하게 변하기보다는 목표 범위 안에서 유지되거나 완만하게 상승하는 양상을 경험하고 있다"며 "치료 중에는 헤모글로빈과 함께 철 관련 지표를 주기적으로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경구제라는 투여 방식도 실제 진료에서 HIF-PHI를 고려하는 요인 중 하나다.

그는 "환자들이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것은 주사를 맞지 않아 좋다는 점"이라며 "의료진 입장에서도 주사 일정과 투여량을 관리하던 부분이 하루 한 번 복용으로 단순해지면서 환자의 Hb를 어떻게 안정적으로 유지할 것인지에 보다 집중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급여 범위는 과제…"환자에 맞는 기전 선택해야"

제도 개선 필요성도 제시됐다. 현재 급여 환경에서는 HIF-PHI와 ESA를 병용하는 방식에 제약이 있어 치료제 전환 과정에서 유연한 치료 전략을 적용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신약이 급여권에 진입하면서 환자 접근성이 확보됐다는 것은 긍정적"이라면서도 "전환 시점에서 조금 더 유연하게 치료할 수 있는 환경과 환자 상태에 따른 Hb 관리 범위에 대해서는 검토할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또 유지 치료 과정에서 인정되는 Hb 범위와 적용 환자가 투석 환자에 한정돼 있다는 점도 향후 임상 근거에 따라 논의할 부분으로 꼽았다.

김 교수는 "유지 투여 시 급여로 인정되는 헤모글로빈 범위가 좁다는 점이 아쉽다. 국제 가이드라인의 목표 범위와 비교할 때 조정 여지가 있다"라고 첨언했다. 

이어 "향후 국내 실제 진료 데이터가 축적되면 한국인 투석 환자의 특성을 반영한 HIF-PHI 활용 기준도 보다 구체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앞으로의 치료 선택지는 환자에게 현재 어떤 기전이 더 적합하고, 어느 치료가 안정적으로 Hb를 유지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방향으로 가게 될 것이다. 선택지가 늘어난 만큼 빈혈 치료도 더 정교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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