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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독사가 인류에게 준 선물

  • 데일리팜
  • 2013-08-29 06:30:20
  • 한용해재미한인제약인협회장

미겔 온데티(Miguel Ondetti)는 아르헨티나의 한 대학에서 박사과정으로 화학을 전공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운좋게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스퀴브 (Squibb)사의 아르헨티나 지사에서 연수할 기회를 갖는다. 연수 기간동안 수행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게 되자 스퀴브사는 그를 정식 연구원으로 채용하였다. 그는 식물에서 약리활성이 있는 알칼로이드를 추출하는 일을 하게 된다. 3년후 그에게 행운이 찾아왔다. 스퀴브사 본사의 연구소장이 아르헨티나 지사를 방문하였을 때 그를 만나보더니 미국 본사에서 일할 수 있도록 초청하겠다고 제안한 것이었다. 당혹스러운 제안이었다. 왜냐하면 당시 치과의사였던 부인이 치과의원을 열기 직전이었기 때문이었다. 이틀동안 고민하던 젊은 미겔 부부는 우연히 찾아온 기회를 일단 잡기로 했다. 치과는 훗날에 다시 돌아와 언제든 열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1960년, 미국 뉴저지의 스퀴브사 연구소에 합류한 미겔은 소화기관에서 작용하는 펩타이드를 합성하는 일을 맡게 된다. 당시에는 업계전반에서 펩타이드가 유력한 신약 타깃으로 각광 받을 때였다. 1968년 새로 부임한 연구소장은 새 과제로 심혈관계 치료제 개발을 주창하였고 미겔도 그 일에 투입되었다. 당시 스퀴브사는 고혈압 치료제로서 ACE(angiotensin converting enzyme) 저해제를 찾고 있었다. 그러던 중, 브라질에 서식하는 독사의 독에angiotensin I이 angiotensin II로 전환하는 것을 차단하는 펩타이드가 들어있다는 논문이 발표되었다. 브라질의 원시 종족들이 사냥할 때 화살촉에 발라 사용하던 뱀독은 혈압을 떨어뜨리는 작용이 있었던 것이다. 미겔은 브라질 사웅파올로에서 보내온 뱀독에서 ACE 효소를 차단하는 펩타이드를 추출하기 시작했다. 뱀독에는 다양한 펩타이드가 가득 들어 있었다. 각고의 노력끝에 그는 아미노산 9개 짜리 펩타이드에서 활성이 있음을 발견하였다. 그는 그 구조를 분석하고 화학적으로 다량 합성해 낸다. 스퀴브사는 곧바로 이 펩타이드를 가지고 임상실험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이 사실이 주변에 퍼지기 시작했다. 순환기 질환을 다루는 모든 임상의사들은 물론 업계의 많은 연구자들이 이 임상실험에 주목했다. 왜냐하면 고혈압 치료제로서 renin-angiotensin계의 역할을 처음으로 검증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펩타이드가 경구제가 아닌 주사제라는 것이 문제였다. 분자량이 커서 위장관에서 흡수가 되지 않다보니 어쩔 수 없었다. 곧 미겔은 구조를 조금씩 바꾸어 위장관에서 흡수가 될 수 있는 펩타이드를 찾아 나섰으나 성과가 없었다. 일단 분자량이 작아야 할 것 같았으나 그가 만든 저분자 물질들은 모두 활성을 보이지 않았다. 결국 스퀴브사는 주사제로는 상업적으로 성공 가능성이 낮다고 보고 임상시험을 취소하였다. 그리고 후속 약물의 개발까지 포기하기에 이른다. 미겔은 실망했다. 아직 뚜렷한 성과가 없었을 뿐이지 연구의 방향은 제대로 잡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곧 미겔에게 새로운 임무가 주어졌다. 항생제 개발 연구를 이끄는 일이었다. 펩타이드 분야에서 꽤 명성을 얻은 그로서는 자존심이 상하는 조치였다. 회사를 떠날까도 고민했다. 그렇지만 항생제 연구도 험난하지만 꽤 도전해 볼 만한 가치가 있어 보였기에 그냥 회사에 남기로 했다.

항생제 개발 연구에 집중하고 있었지만 미겔의 머릿속에는 ACE 저해제에 대한 생각이 머물러 있었다. 이미 스퀴브사가 보유하고 있던 2000 여개의 화합물을 모두 테스트해 보았으나 약효가 있는 것은 발견되지 않았다. 1년쯤후 그는 다른 부서에서 일하는 동료 데이브 쿠시먼(Dave Cushman)이 건네는 논문을 받아 들었다. 데이브는 미겔이 합성하는 펩타이드마다 그 활성을 평가해주던 파트너였다. 그 논문에서는 carboxypeptidase라는 효소의 저해제로 benzyl succinate를 언급하고 있었다. 데이브는 자신의 경험에 근거하여 ACE효소 역시 carboxypeptidase 효소처럼 그 중심에는 아연 금속이 박혀 있을 것 같다는 말을 덧붙였다. 미겔은 그 견해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ACE 효소를 저해하기 위해서는 아연 금속에 제대로 결합하는 물질을 만들어 내는 것이 핵심이라는 생각에 이른다. 지금까지 매달렸던 전략을 바꾸었다. 우선 논문에 나온carboxypeptidase 저해제를 구해서 ACE 효소의 활성을 억제하는지 평가해 보기로 했다. 물론 회사의 지휘라인과는 상의하지 않았다. 그러나 암묵적으로 지지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오랫동안 품고 있던 호기심을 실현해 보고자 하는 열망이 다시 불타 올랐다. 다행히도 각 연구원들에게 다소의 융통성이 부여되었기에 그런 결심이 가능하였다.

미겔은 뱀독의 펩타이드 연구를 통해 ACE 효소에 친화성을 갖기 위해서는 화합물의 한쪽 끝에는 아미노산인 proline 이 붙어 있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첫 화합물로 benzyl proline을 만들었다.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데 데이브에게서 활성이 있다고 연락이 왔다. 그 활성은 매우 약했지만 특이적으로 ACE에 결합하는 것 같다고 했다. 첫 실험이 비교적 좋게 나온 셈이었다. 이제부터는 구조의 기본 틀은 유지한 채 잔가지를 조금씩 바꾸어 가면서 활성을 테스트 하기로 했다. 그런 노력으로 100 여개의 화합물을 만들었다. 그 정도 개수면 충분했다. 왜냐하면 그는 어떤 구조의 화합물을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해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ACE 효소에 함유된 아연 금속을 겨냥해 티올 (-C-SH)을 도입한 화합물에서 강력한 활성이 나왔다. 분자량(217)이 작은데다가 마침 경구 흡수도 잘 되었다. 고혈압 치료제의 새로운 시대를 연 captopril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1975년의 일이었으니 그가 ACE 분야에 전념한 지 8년만에, 새로운 아이디어로 다시 매달린 지 1년 반만에 얻은 성과였다. 결과를 정식으로 회사에 보고했을 때 경영진이 흥분하며 열광했음은 물론이다. 스퀴브사는 전속력으로 임상시험을 추진했다. 이윽고 1981년에 FDA로부터 신약으로서 승인을 받게 되었다.

Captopril의 탄생은 신약개발의 역사에서 몇 가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먼저, renin-angiotensin 계를 차단하면 혈압을 정상혈압으로 떨어뜨릴 수 있음을 최초로 입증한 사례이다. 이뇨제 외에는 변변한 치료제가 없어서 고생하던 당시의 고혈압 환자들에게 새로운 해결책을 안겨 준 셈이다. 요즘 고혈압 치료제의 대세가 된 sartan 시리즈가 탄생한 것도 captopril의 성공에서 유래한 것이다. 또, captopril은 분자 구조와 약효간의 상관관계를 조사하여 신약개발을 이룬 최초의 사례이다. 논리적인 접근으로 약물 분자를 이루는 각 치환기의 역할을 이해한 후 최적의 약효를 갖는 분자구조를 찾아낸 것이다. 이제 분자구조-약효 상관관계를 살피는 일은 오늘날의 신약개발 현장에선 보편적인 접근법이 되었다. 끝으로, best in class 전략의 성공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즉, captopril은 피부발진과 쇳가루 맛이 나는 단점을 지니고 있었는데 분자내에 티올 그룹을 함유하기 때문이었다. 이런 이유로 티올 그룹을 함유하지 않은 enalapril이 Merck사에 의해 탄생하였고 captopril보다 상업적으로 더 큰 성공을 거두었다. First in class 로 탄생한 신약이라도 약점이 노출되면 언제든 best in class 전략으로 개발된 약에 의해 주도권을 뺏길 수 있음을 보여준다.

미겔이 연구자로서의 과학적 호기심을 포기하지 않고 마침내 captopril을 발견해 낸 것은 한국의 신약연구환경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그가 창의력과 집중된 노력을 펼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자율성과 유연성을 보장하는 연구문화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국의 제약기업들의 파이프라인을 살펴보면 연구원 규모에 비해 과제수가 지나치게 많다는 생각이 든다. 방대한 과제들을 운영하다 보면 소속 연구원들은 목전에 있는 업무에만 급급하게 되어 깊이 있는 연구를 하기 어렵고 창의력을 발휘할 여지가 줄어든다. 경쟁력 있는 과제에만 집중하고 이를 바탕으로 각 연구원들이 전문성을 더 쌓을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주면 좋겠다. 또한, 지위에 관계없이 누구나 연구 아이디어를 내고 존중받으며 그 아이디어를 실현해 볼 수 있도록 어느 정도의 자율성을 부여하면 어떨까 한다. 이런 시도를 하다보면 first in class이든 best in class이든 혁신신약이 나올 수 있는 연구환경이 더 빨리 만들어지지 않을까? 브라질 독사의 독이 인류에게 큰 선물이 된 것은 창의적인 아이디어, 자발적인 연구, 그리고 이를 가능케 한 유연한 연구문화에서 비롯되었음을 기억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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