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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듯한 정장입고 병원가도 괜찮은 날은…"

  • 이상훈
  • 2011-01-03 08:30:14
  • 요약
  • 회사와 현장 사이서 고민하는 영업사원

나는 반듯한 정장을 입고 출근한다. 한손에는 서류 가방을 들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제약회사 영업사원이다.

오늘도 담배연기 자욱한 PC방이나 당구장에 출근도장을 찍는다. 알만한 영업사원들이 삼삼오오 모여있다. 이게 요즘 일명 제약 영맨들의 일상이다.

최근 한 의원에서 있었던 일이다. '저 사람 리베이트 주러왔나봐.' 원장을 기다리는데 쑥덕거림이 들렸다. 내 귀를 의심했다. 멍했다. 나와 상관없는 일인데…. 뉴스를 들을 때도, 선후배들이 이런 저런 말 할 때도 남의 일로만 생각했었다. 맥이 빠지고 허탈했다. '나 그런 사람 아니라니까요'라고 항변하고 싶었다. 솔직히 멱살이라도 잡고 흔들어주고 싶을 만큼 화가났다. 그래도 참아야 한다. 영업사원은 그래야 하니까.

쌍벌제 탓일까? 사람들은 나를 잠재적인 범죄자로 본다. 부도덕한 사람으로 재단한다. 한숨이 나왔다.

동료와 지인들에게 하소연했다. 그랬더니 정장 입고 병원에 가지 말란다. 영업사원인지 다 알기 때문에 점심이라도 같이 먹으려면 편한 복장으로 위장하라고 친절히 조언해 줬다.

의사에게 뒤통수도 맞았다. 형, 동생할 정도로 친분 깊던 원장. 하지만 시간이 흐를 수록 의심이 갔다. 처방내역과 약국 흡수율에 차이가 났다. 회사에서는 '알'이 안나와 내 주머니를 털어 갖다주고, 흡수율을 맞추기 위해 약국에 오시우리까지 쳤는데 말이다. 잠깐, '알'은 우리끼리 쓰는 말인데 총알의 약자다. 남들이 말하면 리베이트다. 오시우리는 밀어넣기. 그래서 어쩔수 없이 거래를 끊었는데 그 원장 날 사기꾼으로 몰아간다. 돈 떼먹고 도망갔다나 뭐래나.

이건 그래도 참을 수 있다. 제약사 영업사원으로 충분히 겪을 수있는 일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게 배웠다. 뭐든 참으라고. 또 선후배 동료들과 많이 하는 얘기니까.

참기 힘든 건 리베이트 쌍벌제 이후에도 의사와 영업사원 관계는 변함이 없다는 점이다. 나를 잠재적 범죄자로 내몰았던 쌍벌제에 은근히 기대도 했었는데 정작 영업현장은 달라진게 없다. 영업사원은 의사에게 여전히 '귀찮은 존재'고 의사는 우러러 '접대할 상전'이다. 영원한 갑과 을이다.

회사는 연일 실적 압박을 줄여준다면서 돌출행동을 하지말라고 강조한다. 솔직히 믿음이 가지는 않는다. 과거처럼 공공연히 실적 압박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실적이 숫자로 나오면 그들은 달라질지 모른다. 아마 육두문자성 윽박지름보다 더 교묘한 형태로 바뀔 것이다. 어차피 돈 벌어오라고 볶는게 그들의 일이니까.

이런 고민을 말단인 나만 하고 있는 건 아니다. 팀장도 끙끙대면서 어떻게 하면 실적을 올릴 수 있는지 눈이 마추칠때마다 아이디어 내라고 재촉한다. 아이디어가 없기는 저나, 나나 마찬가진데 쪼기만 하니 죽을 맛이다.

지금 현장은 고요하다. 당분간 그럴 것이다. 쌍벌제 때문인지, 이 바닥에서 말하는 선지급 때문인지 구분은 안되지만 말이다. 하지만 내 필드 감각으로 보면 검은 거래는 어느 순간 고개를 들거다. 그리고 나는 접대를 사명으로 받아들이고 현금지급기가 될 것이다.

마음 한편에서는 쌍벌제가 지속되고, 처벌받는 사람들이 나오다보면 지금보다는 더 좋아지지 않을까하는 기대감도 생긴다. 양복입고 병원가도 아무렇지도 않은 날을 꿈꿔본다. 적어도 대놓고 리베이트를 받치는 어제와는 다른 내일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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