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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얼굴이 꼭짠 수건? 주문을 걸어보자, 스마일"

  • 이현주
  • 2011-01-03 08:00:17
  • 요약
  • 층약국에 처방전 다 빼앗겼다는 어느 약사의 다짐

'102동 지은이 엄마잖아. 누가 반가워한다고 인사야...'

요즘 문 밖을 내다보는 버릇이 생겼다. 지나가는 사람이 누군지 확인해야 직성이 풀린다. 얼굴 아는 단골이면 나도 모르게 가자미 눈이 떠진다. 이게 다 2층에 약국이 들어서고 나서 생긴 증상이다. 이러는 내가 정말 싫다.

기온이 영하권에 머물며 감기환자가 늘어났다. 2층 소아과에는 아이들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그러면 뭣 한담. 하루 종일 기다려도 우리 약국에 오는 환자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돈데.

임대아파트 단지, 10평 남짓한 상가에 약국 문을 연지 벌써 10년이 넘는다. 의약분업이 시작됐을 때 동네약국 몇 곳이 문을 닫았지만 나는 2층 소아과 덕분에 별 불만없이 그럭 저럭 꾸려왔다.

작년 2층 미장원 자리에 그 약국만 들어오지 않았다면 난 지금도 행복했을 것이다.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 아침 약국으로 출근했더니만, 맙소사, 2층에 약국이 생겼다. 막 따지러 다녔는데 세탁소와 옷가게가 있어 문제가 없단다. 소아과에서 다섯발자국도 안되는 자리의 약국. 내 악몽의 시작이었다.

2층에는 환자들이 줄을 서서 약을 타는데 일없는 나는 여유롭다. 시험에 들지 말자고 그렇게 다짐했건만 2층에 사람이 많아서 내려왔다는 어느 눈치없는 환자의 말은 나를 분노하게 만든다. 조제하던 손이 부르르 떨린다.

단골이라 믿었던 사람들도 약국에 오지 않는다. 약 봉투를 손에 든채 지나며 태연히 인사를 한다. 참 얄밉다. 뒤통수를 한 대 때려주고 싶은 심정이다. 속으론 미워죽겠다가도 눈이 마주치면 나도 모르게 미소를 보낸다. 가식적인 내 모습에 토가 나오려한다.

소아과와 층약국이 작당을 했는지 처방약이 변경돼도 도통 말을 안해준다. 모처럼 찾아온 환자가 내민 처방전에 헛웃음이 난다. 어쩔수 없이 그 환자를 2층으로 올려보낸다. 이건 뭔가 단단히 잘못된 거야.

재고약은 쌓여가고 유통기한이 임박해질수록 나의 분노는 천장을 찌른다. 갑갑한 마음에 약사회 문을 두드려 보지만, 마치 그곳에 가면 다 해결될 듯이 서둘러 다른 곳으로 보내려 한다. 내가 귀찮은 존재란 말이지.

희망적인 뉴스가 없다. 세상은 온통 잿빛이다. 암흑이다. 일반약 슈퍼판매가 머지 않은 것 같고 법인약국 설립도 불가피해 보인다. 재고약 반품, 팜파라치, 1.8% 금융비용...다 듣기 싫다.

어느 날 몇 달전 이사 가셨던 할머니 한분이 찾아오셨다. 알약도 삼키지 못해 일일이 갈아줘야 했었다. 눈도 침침하셔서 약 봉투에 색색깔 싸인펜으로 아침·점심·저녁 약을 표시해줘야 했다. 귀찮았던 그 할머니 “여기가 만만하고 편해”라고 말한다. 눈물이 핑돈다. 이렇게 소중한 분이셨나? 망치로 머리를 얻어 맞은 듯 멍해진다. 그동안 환자를 빼앗겼다는 원망과 미움 때문에 내가 딴사람으로 변해 있었나보다. 막막했던 터널에 한 줄기 빛이 들고 막힌 가슴이 조금 뚫리는 기분이다.

거울 앞에 서니 내 얼굴이 꼭짠 수건이다. 툴툴거리는 종업원 때문에 발길을 끊었던 빵집이 내 약국이었구나 반성도 든다. 틀림없이 단골들도 내가 꼴보기 싫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별로 해준것도 없으면서 그들을 단골이라며 내가 착각하고 있었던 것같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내 눈에 먼저 띤게 처방전 아니었나 의심이든다. 처방조제로 먹고 살다보니 일반약에 눈 길 한번 제대로 준적도 없다. 아, 단골이라고 따뜻하게 말 한번 걸어준적도 없잖아.

너, 어쩔건데?

여긴 아파트 상가다. 아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렇다면 살길이 있지 않을까? 긍정의 힘을 믿어보자. 층약국 배아파해 봤자 바뀌는 건 없잖아. 죽을 만큼 애쓰면 한명 두명 2층에서 내려 오지 않을까? 환경을 바꿀 수 없다면, 내가 바뀌어 보는 거다. 주문을 걸어보자, 스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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