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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무슨 색깔의 약을 드셨나요?"

  • 정혜진
  • 2015-06-12 06:15:00
  • 색이 사람의 심리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한 의약품들

[Color in Drug]

#'그 사람 참 색깔 없는 사람이군.'

색깔이 없다는 건 특징이 없다는 말과 동의어다. 어떤 사물이나 사람을 말할 때 '색'이 가지는 의미는 특별하다. 색은 이미지다. 모양, 촉감, 질감, 향기. 사물을 바라볼 때 첫인상을 결정짓는 요소는 많지만 분위기를 결정짓는 가장 큰 요인은 '색'이다. 보는 색깔만 달라져도 불안, 편안함, 기쁨, 상쾌, 안정 등 감정이 변화한다.

몸 안에서 질병을 치료하는 의약품에도 약사와 의사, 환자가 알게 모르게 색깔에 영향을 받고 있을지 모른다. 정제 색 뿐만이 아니다. 포장부터 용기는 어떤 것이든 색을 가지고 있다. 회사 이미지를 결정짓는 로고와 의약품 포장에 어떤 색을 쓰느냐는 약을 접하는 이에게 큰 영향을 준다.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결정할 때 색은 중요한 요소다. '컬러 마케팅'이란 말도 그래서 나왔다.

인간이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먹는 약. 약물과 색깔의 무관한 듯 유관한 상관관계를 정리했다.

◆WHITE=청결·치유·순수

생산과정에서 특별히 인공착색료를 넣지 않는다면 정제는 흰색을 띈다. 부형제 색이 대부분 흰색 또는 미색이기 때문. 흰색이라는 범주에 티타늄 화이트부터 아이보리까지 무수한 그라데이션이 존재하듯, 우리가 보는 '흰색 정제'도 각기 다른 흰색을 띈다. 이 색을 결정하는 것은 어떤 부형제를 쓰느냐에 달렸다.

제조할 때 색소를 쓰지 않는 이유는 흰색이 의약품에 가장 잘 어울리는 색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흰색은 전통적으로 청결, 순수, 순결을 상징한다. 결혼식에서 신부가 반드시 흰색 드레스를 입는 것은 그래서다.

미술에서는 중세시대부터 르네상스까지 그려진 수많은 종교화들이 흰색을 모티프로 했다. 청결과 순결, 고결의 이미지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종교적이고 경건한 색깔로 여겨진다. 절대적인 존재를 단지 하얗고 밝은 빛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선과 악을 대비시키는 가장 극명한 색깔로 흰색과 검정색을 사용하는데, 많은 작품에서 '절대 선'을 의미하는 천사는 흰 살결에 밝은 금발, 흰 날개와 흰 옷을 입고 있다.

한편 흰색은 고요하고 안락한 인상을 준다. 치유의 공간인 의료기관들이 흰색을 통해 이미지를 구축해왔다. 예로부터 병원은 흰색 건물로 꾸며졌고, 흰색 가운은 보건의료인의 상징이 됐다. 지금도 병원과 약국 외관이나 간판에 가장 많이 쓰이는 색이 흰색이기도 하다.

국내제약사 의약품 생산공정을 담당하는 관계자는 "정제 한 알에 약물 주성분은 비율이 크지 않아 정제 색을 결정짓기에 미약하다"며 "흰색이 약물로 거부감이 없고 깨끗한 느낌을 주어 80% 이상의 정제가 흰색으로 만들어진다"고 설명했다.

◆PINK=사랑·여성·키치

사랑 관련 제품 중 분홍색이지 않은 색을 찾기란 힘들다. 핑크는 사랑을 상징한다. 그리고 여성을 상징한다. 서양화에서도 분홍색은 숙녀와 여인네들의 장신구나 우아한 드레스를 치장하는 색이었으며 현대미술에 들어서서 '여성'을 상징하는 색깔로 많이 쓰이고 있다.

'여자=분홍색'이라는 편견은 태어나서부터 주입된다. 산부인과에서 성별을 이야기할 때에는 '남·녀' 대신 '파랑색·분홍색'으로 빗대 말하고, 여자아이 장난감 점에는 온통 분홍색으로 도배질이 되어있다. 여자로 태어난 아이는 분홍색을 싫어할 수 없는 환경에 일찌감치 노출되는 것이다. 이러한 고정관념은 의약품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여성을 겨냥한 제품은 환자의 연령과 상관 없이 분홍색이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한다. 피임약, 갱년기 치료제는 물론 같은 영양제라 해도 여성을 타깃으로 한 제품은 정제도 패키지도 분홍색으로 출시되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남성 타깃 제품은 검정과 파랑, 진한 초록색이 자주 사용된다.

장난감 회사 마텔사가 출시한 바비인형만 봐도 그렇다. 바비인형은 핑크색 화장을 하고 핑크색 드레스를 입는데, 이것이 여자아이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지금까지 '여자아이들'의 상징물이 되었다.

팝아트를 창시한 미국의 앤디 워홀은 많은 판화 작품 중 유독 마릴린 먼로에는 핑크색을 많이 사용했다. '키치'라고 일컬어지기도 하는 팝아트는 싸구려, 대량생산, 짖궂음, 천박함을 표방하는데, '유치하다'고 느낄 법한 핑크색이 팝아트에서, 특히 '여성'을 상징하는 색채로 쓰이면서 페미니스트들은 '여성=분홍'이라는 공식을 거부하기도 했다.

◆YELLOW=태양·에너지·경고

노랑은 황금, 태양 등 고귀한 존재를 상징해왔다. 이집트가 태양신 파라오를 황금색으로 치장하고 신전을 노랗게 꾸민 것은 파라오를 태양과 동일시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전해내려온 노란색의 시그널은 '에너지', '고귀함', '활력'이었다.

노란색은 또 다른 이유에서 '경고'를 상징한다. 에너지가 느껴지는 만큼, 가독성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눈에 잘 띄도록 검정색과 교차 배치해 차도, 표지판, 경고판과 같은 위험·주의 표시에 이용된다. 노란색은 모든 색깔 중 명시성이 가장 높으며, 확산성(색이 확장되는 듯한 느낌) 또한 가장 높아 사람들의 주목도를 높인다. 눈에 잘 띄어야 하는 어린이 시설, 어린이 용품, 통학 차량, 교통 표지에 많이 사용한다.

동양철학에서 노란색은 담즙, 간 비장 쓸개 활동을 자극해 내장 운동을 활성화한다고 알려져있다. 통증 완화 효과가 있어 관절염 패치나 파스가 이러한 효과를 노리고 노란색으로 출시되기도 한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작가 반고흐는 노랑색을 잘 사용했다. 불타는 듯한 태양과 밤하늘을 장악하는 별빛 모두 샛노란 색으로 소용돌이 친다. 노란꽃의 대명사 해바라기는 같은 이유로 반고흐의 대표작 중 하나가 되었다. 사람들은 반고흐 그림의 '해바라기'와 '태양', '별빛'에 서린 노란색에서 역동성과 열정을 느낀다.

에너지와 활력을 주는 제제는 그래서 노란색을 자주 이용한다. 자양강장제 '박카스'는 갈색 병과 달리 액제 는 노란색이다. 노란색은 리보플라빈 성분으로 인한 것으로, '레모나', '삐콤씨' '임팩타민' 등 에너지 공급 효과를 강조하는 비타민 제제는 제제 뿐 아니라 포장에서도 어김없이 노란색을 강조한다.

빨강, 파랑, 노랑 삼원색 중 명도가 가장 높은 노란색은 어린이 제제에도 흔히 쓰인다. 어린이 비타민이나 영양제에는 활기, 밝음, 귀여움을 연상하는 어린이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경쾌하고 맑은 노랑이 만화 캐릭터와 함께 단골로 등장한다.

◆GREEN=자연·치유·공감

녹색은 자연의 색이다. 인간이 태초에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 안에서 살아왔기에 녹색을 보면 안정을 느낀다. 먹을 것과 안락함을 제공하는 자연을 의미하는 녹색. 녹색의 뜻은 자연, 조화, 공감이다. 녹색을 보면 감정이 진정되고 스트레스가 해소된다고 알려져있다.

역대 작가들 중 녹색물감을 가장 많이 쓴 작가를 꼽으라면 모르긴 몰라도 앙리 루소일 것이다. 앙리 루소는 원시주의 작가라고 할 만큼 밀림과 숲, 자연을 주제로 많은 작품을 남겼다. 사실과 환상을 적절히 조합한 인물화와 풍경화가 대표작인데, 모두 화폭의 90% 이상이 녹색이다. 앙리 루소는 '자연 밖에 다른 스승은 없다'고 말할 정도로 자연에 천착했다.

일찍이 초록색에 주목한 제약사는 정신과 계열 치료제 개발사였다. 심리적으로 자극을 주지 않아 감정 균형을 찾는 데에도 효과가 있는 녹색은 우울증과 같은 심리 관련 질환 치료제에 많이 쓰인다.

특히 항우울제는 초록색과 연관이 깊다. 약물의 기전이나 효능효과 외에도 초록색이 환자 스스로 감정을 콘트롤하고 마음을 안정시키도록 돕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제제가 릴리의 '푸로작'이다. 초창기 우울증 치료제의 고유명사로까지 일컬어졌던 '푸로작'은 캡슐과 포장 모두에 초록색을 사용한다. 치료제에 컬러마케팅이 적절히 조화된 사례로 손꼽힌다.

◆BLUE=우울·감성·신뢰

서양에서 파란색은 전통적으로 우울함을 상징한다. 미국 흑인들이 노예생활과 빈민으로서의 고단함을 애절하게 노래한 장르의 이름은 '블루스'(Blues)이며, '우울하다'는 표현에 색을 나타내는 단어가 'Blue'인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푸른색은 죽음을 상징하며, 예술가들이 오랫동안 죽음의 색 파랑을 탐미해왔다. 우울함을 동력삼아 작품에 몰입하는 예술가들에게 푸른색은 애증의 색이었다. 여기에서 파란색은 감성과 감각으로 의미가 확장됐는데, 감성적이며 상상력을 자극하는 색깔로 자리매김됐다.

'절규'로 유명한 에드바르트 뭉크의 초기작은 파란색 일색이다. 불우한 어린시절, 어머니와 누이의 병사, 연이은 가족들의 자살로 뭉크는 불안하고 우울한 정신세계를 가졌다. 그의 초창기 작품은 '죽음'과 '파랑' 두가지 단어로 설명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우울한 감정을 온통 파랑 색채로 표현했는데, 초창기 작품의 주요 색은 파랑색이 이끌어간다.

화이자는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에 눈길을 끄는 컬러 마케팅을 투입한다. 남녀 관계의 감성을 자극하기 위해 보기 드문 푸른색 정제를 만들어내는데, 파랗다기 보다는 청색에 가까운 이 색은 이후 색깔 만으로 '비아그라'를 연상시킬 만큼 유명해진다.

제약 마케팅 리서치 전문가 럿커스 대학 최승찬 교수에 따르면 비아그라의 푸른색은 루틴한 성생활보다 일상적이지 않고 감성적인 성생활을 타깃으로 한다. 경쟁품목으로 거론되는 '시알리스' 정제는 노란색을 띄는데, 부부 간의 일상적이고 평온하며 안정적인 성생활에 어울리는 것과 대조적이다.

죽음에서 출발해 우울함과 감성으로 나아가, 이제 감성을 자극하는 대표색 '파랑'이 비아그라 콘셉트와 잘 어울리는 이유다.

반면 짙은 푸른색은 '신뢰'의 메시지도 담고 있다. '비아그라'를 생산하는 화이자는 모든 제품에 흰색과 파란색을 황금비율로 배치한 패키지로 통일했는데, 이는 보는 이로 하려금 '신뢰감'을 느끼게 한다. 짙은 감색 정장 신사는 신뢰감을 높여주며, 젊고 신선해보인다.

◆RED=사랑·열정·피

뜨거움을 가장 잘 나타낸 색은 단연 빨강이다. 붉은색은 피와 심장의 색이며 여기에서 열정, 열의, 사랑이 파생됐다. 열정과 단결을 강조하는 많은 조직들은 붉은색을 차용해 깃발과 상징에 사용했다.

빨강은 미술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열정을 나타내는 데 아낌없이 등장했지만, 이러한 관계로 크게 강조되기 힘들었다. '피'를 연상시키는 붉은색이 과도한 화면은 보는 이에게 불안과 공포감을 줄 수 있다. 붉은색을 전면에 내세운 그림은 현대에 들어서면서 나타나는데, 색깔을 사용하는 데 막힘이 없었던 앙리 마티스는 대표작 '붉은 방', '붉은 화실'에서 빨강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현대에 들어서면서 '붉은 작품'들이 쏟아져 나온 곳은 동양이다. 중국과 일본에서 붉은색이 기묘한 아이콘으로 작용한 작품들이 세계의 이목을 끌기 시작한 것이다.

'피', '혁명'을 주창한 중화인민공화국은 국기 전체를 피를 상징하는 빨강으로 채우고 혁명의 색으로 빨강을 꼽았다. 문화혁명 등의 근대사를 지나 중국 공산주의를 문화적으로 이용할 줄 알게 된 쟝 샤오강과 같은 중국 젊은 작가는 작품에서 붉은 색을 '공산주의' 상징으로 사용한다.

반면 일본에서 붉은색은 욕망과 정욕이다. 여인의 붉은 입술과 빨간 기모노를 대상화한 사진작가 아라키 노부요시는 외설적이고 충격적인 사진으로 세계에 이름을 떨쳤다. 그의 작품에서 붉은색은 본능과 성적 충동을 자극한다.

잇몸약 '인사돌'은 하얀색과 붉은색을 조합한 패키지로 눈길을 끈다. 잇몸과 치아가 연상된다. 건강한 잇몸은 붉은색을 띄고 충치가 없는 치아는 하얀색이다. 붉은색의 건강함을 반영해 잇몸약의 효능을 눈으로 느끼게 해준다.

◆BLACK=어둠·악·젊음

검정은 오랫동안 어둠을 기반으로 한 악의 심볼이었다. 검정은 모든 색을 뒤덮고 동시에 모든 것을 감춘다.

빛을 통해 무한한 어둠의 깊이를 표현한 작가로는 렘브란트가 거론된다. 몇백년 이어져내려온 유화기법의 정점을 찍은 작가로 평가받는 렘브란트는 빛과 어둠의 대조를 통해 인물의 성격과 심경을 깊이있게 표현했다.

그가 그린 인물은 전체 어둠 가운데 얼굴 주요 부위만 쨍하도록 밝다. 보는 이가 밝은 얼굴에 집중하다 보면 성격과 심리상태까지 짐작이 간다. 얼굴을 제외한 모든 부분은 언뜻 보기에 하나의 어둠 덩어리로 뭉쳐있지만, 켜켜이 쌓인 어둠 속에 깊이와 단계가 숨어있어 2차원 화폭 속 어둠에는 깊은 공간이 느껴진다.

'치료'라는 측면에서 의약품과 가장 거리가 먼 색깔이 검정색 아닐까 한다. 검은 머리카락은 젊음의 상징이기에, 늙음을 위장해 젊음을 덮어쓰려는 이들이 사용하는 염모제를 제외하고는 검정색을 내세운 경구제는 흔치 않다. '팔팔정'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한미약품은 팔팔정 개발부터 패키지까지 많은 공을 들였다. 한미약품이 생산하는 모든 제품이 같은 디자인을 가지고 있지만 팔팔정만은 유독 다른 색과 디자인을 가진다. 한미약품 커뮤니케이션팀 서성교 디자인파트장은 검정의 강렬한 이미지를 의약품에 적용하기 쉽지 않지만 팔팔정에는 적합했다고 말한다.

그는 "검은색이 주는 남성, 권위, 공포, 어두움 이미지가 발기부전제를 사용하는 대상과 밤에 주로 사용된다는 점, 힘과 권위 등에 잘 맞았다"며 "많은 제네릭 속에서 분명한 차별점을 주기 위해 흔치 않은 색을 채택할 필요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는 의약품에 쓸 수 있는 색을 식약처가 '의약품용 색소'로 정해놓고 있다. 환자가 복용하는 만큼 일반 식품보다 엄격한 기준이 적용된다. 정제 색깔을 전문으로 만들어주는 의약품 조색업체도 성업 중이다.

현재 국내제약사가 정제 색깔을 결정할 때 고려하는 점은 ▲오리지널과의 비교 ▲색깔 안전성 ▲시각적 효과 순으로, 아직까지 색깔 자체에 의미를 두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 국내제약사 관계자는 "의약품 색깔을 선정할 때에, 쉽게 변하지 않는 색인지를 따지는 안정성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다. 그 다음 기준이 거부감 없는 색인지, 환자가 선호하는 색인지 등"이라며 "아직까지 안정성을 가장 많이 생각하며 그 다음은 큰 고려사항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 정제는 대부분 오리지널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아 정제 모양과 색깔이 오리지널과 유사한 경우가 많다"며 "우리나라도 신약 개발에 큰 의미를 두고 있는 만큼, 의약품 색깔에도 약의 효능과 콘셉트에 맞는 색채를 대입하도록 조금씩 인식이 바뀌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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