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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의료 AI가 '빈칸'을 읽어야 하는 이유[데일리팜=황병우 기자]의료 AI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더 많은 데이터, 더 촘촘한 기록, 더 정교한 숫자를 떠올린다. 빠짐없이 채워진 전자의무기록, 결측(Missingness) 없는 데이터셋이 곧 성능 향상의 지름길이라는 인식도 여전하다. 하지만 현장은 다르다. 의료 데이터에서 빈칸(Null)은 단순한 전산 누락이 아니다. 의료진이 환자의 상태를 살핀 후 '현재 이 검사는 필요하지 않다'라고 내린 고도의 임상적 판단의 결과다. 환자가 안정적일 때 굳이 잦은 채혈이나 영상 검사를 하지 않는 것이 의료 현장의 상식이기 때문이다. 즉, 기록되지 않은 침묵 그 자체가 환자가 안정적임을 증명하는 강력한 데이터인 셈이다. 이는 데이터의 본질은 기록된 값만이 아니라, 기록되지 않은 맥락까지 포함한다는 의미다. 이를 데이터 과학에서는 정보적 결측(Informative Missingness)이라 부른다. 문제는 이 의미 있는 빈칸을 기계적인 잣대로 채우려 할 때 발생한다. 데이터 분석 효율을 높이겠다는 이유로 빈칸을 인위적인 숫자로 보정하는 순간, AI는 현장의 맥락을 잃어버린다. 학습 환경과 실제 임상 현장의 분포가 어긋나는 도메인 시프트(Domain Shift) 현상의 늪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깔끔한 테이블을 만들기 위한 기술적 선택이지만, 이 순간 의료 데이터가 가진 맥락은 훼손된다. 실제로 임상 현장의 처방 패턴을 무시하고 데이터를 강제로 보정했을 때, AI의 예측 정확도가 10% 가까이 하락한다는 연구 결과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AI 모델이 비어 있어야 할 곳에 억지로 주입된 숫자를 마주하며 일종의 '인지 부조화'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결국 환자를 살리기 위해 보내는 의료진의 미세한 신호를 지워버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 지점에서 의료 AI를 바라보는 관점도 달라져야 한다. 좋은 의료 AI란 복잡한 알고리즘을 쓰는 모델이 아니라, 현장의 의사결정 구조를 얼마나 왜곡 없이 반영하느냐다. 숫자를 맞추는 기술보다, 의료 시스템의 흐름을 이해하는 감각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정부가 의료 AI의 조기 도입과 확산을 이야기하는 지금, '데이터를 얼마나 많이 모았는가' 만큼 '그 데이터를 어떤 철학으로 다루는가'도 중요한 질문이 될 수 있다. 빈칸을 채우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때로는 비어 있음 자체를 존중하는 것이, 의료 AI의 성능을 지키는 길이다. 의료진이 환자를 살리기 위해 남긴 침묵을, 우리가 데이터 정제라는 이름으로 지워버리고 있지는 않은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의료 AI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숫자를 채워 넣는 기술이 아니라, 그 빈칸 속에 담긴 의료진의 목소리를 듣는 혜안이다.2026-02-04 12:04:03황병우 기자 -
[기자의 눈] 새내기들에 던져 진 화두, AI와 약사[데일리팜=김지은 기자] 인공지능(AI)이 일상 깊숙이 파고들면서 약사 직능의 미래를 둘러싼 논쟁도 한층 거세지고 있다. 지난 주말 진행된 데일리팜·바로팜·휴베이스 공동주최 새내기 약사 대상 세미나에서도 강연자들이 제기한 공통 핵심 의제 중에는 AI가 약사 직능에 미칠 영향이 포함돼 있었다. 강연자들은 새내기 약사, 미래의 약사인 약대생들에게 AI가 약사 개인, 나아가 직능에 미칠 여파를 화두로 던지는 한편, 지금의 변화를 위협이 아닌 기회로 삼기 위한 대비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AI와 약사 직능 간 논쟁에 본격적으로 불을 붙인건 지난해 의사단체 주최 행사에서이 이준석 개혁신당 국회의원의 발언이었다. 그는 “약사 업무 중 과연 AI로 대체되지 않는 것이 있겠냐”면서 논란에 불을 붙였다. 기술 발전에 대한 전망을 넘어 약사 직능의 존립 자체를 겨냥한 듯한 이 발언은 약사사회에 적잖은 파장을 남겼다. 그는 "젊은 세대에선 약사 자격증을 취득했다는 이유만으로 고소득을 정당화할 수 있겠냐는 질문을 던질 것“이라며 ”그때 약계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상당히 다른 국면이 펼쳐질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약사사회 내부에서는 즉각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복약지도, 처방 검토, 환자 상담 등 약사의 핵심 업무가 단순 정보 전달이나 알고리즘으로 환원될 수 있느냐는 근본적인 문제 제기다. 특히 환자의 상태를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말 한마디·표정 하나까지 읽어내는 대면 상담의 영역은 여전히 인간 약사의 몫이라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다만 논의가 ‘AI는 위협인가 아닌가’라는 이분법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미 AI는 처방 오류 감지, 약물 상호작용 분석, 환자 복약 순응도 관리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의료 현장에 스며들고 있다. 문제는 AI의 등장 자체가 아니라 그 흐름 속에서 약사가 어떤 위치를 점할 것인가다. 일각에서는 “AI에 약사 직능이 종속되는 것이 아닌 약사가 AI를 도구로 삼아 서비스를 확장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제기한다. 반복적이고 행정적인 업무는 AI에 맡기고, 약사는 보다 고도화된 상담과 환자 맞춤형 관리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생존 전략이 아닌 약사 직능의 전문성을 한 단계 끌어올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평가다. 결국 핵심은 주도권이다. 기술 발전을 외면하거나 배척하는 순간 논의의 주도권은 약사사회 밖으로 넘어간다. AI가 약사를 대체할 수 있는지를 따지기보다 AI 시대에 ‘대체 불가능한 약사 서비스란 무엇인가’를 스스로 정의하고 준비해야 할 시점이 됐다.2026-02-03 06:00:40김지은 기자 -
[데스크 시선] 패전보가 국룰? 항암 보조요법 수난시대[데일리팜=어윤호 기자] 보조요법 보험급여를 노리는 항암제들의 패전보가 즐비하다. 분명 필요해 보이는데, 합의점을 찾기가 쉽지 않은 모양새다. 정확히 일치하는 개념은 아니지만 일종의 '예방'을 위한 지속적 약물의 투여, 원래 없었던 개념은 아니다. 만성질환에서는 이미 치료가 아닌 '관리' 개념으로 약을 복용해 왔으며, 항응고제처럼 존재 이유가 예방인 약물도 있다. 문제는 그 영역이 고가의 첨단 항암제로 확대되면서 발생했다. 다양한 항암 신약들은 이제 조기 단계에서 수술 전후 보조요법 적응증을 확보하고 추가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중이다. 면역항암제, 표적항암제, 항체약물접합체 등 수많은 첨단 신약들은 다수 적응증 확대 속에 보조요법을 포함시키고 있다. 그야말로 적응증의 홍수다. 보조요법의 대두는 우려가 동반된다. 버거운 이유는 단연 가격이다.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암은 완치됐다 하더라도 재발이 무섭다. 암종에 따라 다르지만 재발률이 80%에 육박하는 질환도 있다. 그러나 항암제를 보조요법으로 처방하고 여기에 보험급여를 적용하는 것이 보건당국 입장에선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실제 보조요법의 급여 확대 사례는 우리나라에서 손에 꼽히는 상황이다. CDK4/6억제제의 예를 들어 보자. 릴리의 '버제니오(아베마시클립)'와 노바티스의 '키스칼리(리보시클립)'는 모두 우리나라에서 조기 유방암 보조요법 적응증을 획득했다. 급여 도전 선봉장은 버제니오, 결과는 세번의 암질환심의위원회 탈락이다. 버제니오는 첫번째 도전부터 암질심 상정에 애를 먹었다. 급여 신청 제출 후 6개월의 긴 기다림 끝에 2023년 5월 상정됐지만 결과는 '급여기준 미설정'이었다. 이후 5개월 뒤 릴리는 10월 심평원에 급여 신청을 다시 제출했고, 지난해 3월과 7월 암질심에 상정됐지만 결과는 같았다. 그리고, 최근 키스칼리가 도전장을 내밀었다. 암질심 상정을 기다리고 있는데, 다른 결과를 낼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분명한 사실은 보종요법의 혜택 역시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세계 유수 학회의 가이드라인에는 보조요법이 이름을 올리기 시작했으며 높은 권고 등급을 차지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생각해 볼 때가 됐다. 항암제 보조요법의 필요성을 약제마다 꼼꼼히 따져보고, 막연한 '부담' 보다는 실리를 따져볼 시간이다. 재발 환자에 대한 투약이 더 비용효과성이 떨어질 수도 있다. 재발과 전이는 암의 사망률을 높이는 치명적인 요소다. 정답이 없기에 장단의 무게를 재야 한다. 쌓여가는 보조요법 약물들을 마냥 방치할 순 없는 노릇이다.2026-02-02 06:00:41어윤호 기자 -
[기자의 눈] 대형마트 내 창고형 약국을 보는 시선[데일리팜=강혜경 기자] 일반약을 주력으로 할 수 있는 마트 내 약국에 한약사 비율이 늘어나면서 약사사회 내 우려가 제기됐던 게 불과 10여년 전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창고형 매장 형태 대형마트 내 창고형 약국이 복병이다. 대량구매를 전제 하에 운영되는 창고형 매장에서는 일반마트나 편의점, 슈퍼마켓과 달리 '벌크'단위 판매가 보편적이다. 한번에 구입해야 하는 양은 많지만 소량으로 구입하는 것보다 개당 단가가 낮다 보니 선뜻 지갑을 열게 되는 것이다. 그럼, 창고형 매장 안에 창고형 약국이 생긴다면 소비자들은 어떨까? 창고형 매장 내 창고형 약국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창고형 약국이 본격적으로 영업에 나선다. 서울 금천 홈플러스 3층 메가팩토리약국이 2월 2일 영업을 시작하는 데 이어, 경남 창원에서는 롯데마트 맥스 내 창고형약국이 보건소로부터 개설 허가를 받았다. '한번에! 편하게! 넉넉하게!' 2월 초 오픈을 앞두고 막바지 공사가 진행 중인 경남 창원 롯데마트 내 창고형 약국에 부착된 대형 현수막 내용이다. '창고형 매장' 안에 있는 '창고형 약국'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문구 자체가 이질적이거나 동떨어졌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하지만 앞에 '약을'이라는 주어를 붙여보면 아찔하기까지 하다. 약을 한번에 많이 내지 다양하게 살 수 있고, 편리하게 살 수 있다는 함의적 표현은 약사사회가 경계하는 약의 소비재화로 볼 수밖에 없다. '필요한 경우, 본인에게 맞는 약을, 정해진 용법·용량에 맞춰 복용하라'는 약국의 복약지도는 공염불이 돼버리는 셈이다. 경남 창원 뿐만 아니라 광주 상무에서도 창고형 매장 내 창고형 약국 입점 움직임은 계속되고 있다. 이에 대해 롯데마트 측은 여전히 어떠한 입장도 내놓지 않고 있다. 약을 공공재가 아닌 소비재처럼 대하는 약사의 태도, 그리고 약사의 니즈를 단순 임대차 계약이라는 이름으로 치부해 버리는 대형마트 모두 윤리의식이 부재한 게 아닌가 싶다. 창고형 약국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며 득세한다고 하지만 유행처럼 확산되는 창고형 매장 내 창고형 약국은 재고돼야 할 부분이다.2026-01-30 12:14:02강혜경 기자 -
[기자의 눈] 펜터민 규제 늪에 빠진 청소년 비만치료[데일리팜=이정환 기자] GLP-1 유사체를 필두로 한 비만치료제 열풍이 수 년째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GLP-1 유사체 세마글루타이드(제품명 위고비)와 리라글루타이드(제품명 삭센다)는 18세 이상 성인에 이어 12세 이상 소아청소년 투여 적응증을 획득하면서 치료제 선택권을 넓힌 상태다. 그런데도 소아청소년과, 가정의학과, 내분비대사내과 등 의료현장에서는 "소아청소년 중증 비만 환자에게 쓸 약이 마땅치 않다"는 호소가 나온다. 왜 일까. 현장 의료진 목소리를 들어보면 여전히 경직된 '저용량 펜터민+토피라메이트' 복합제(제품명 큐시미아)에 대한 처방 기준이 걸림돌 중 하나였다. 저용량 펜터민과 토피라메이트 복합제는 향정신성 의약품으로 지정된 비만치료제로, 투여 적응증이 18세 이상부터다. 처방 의료진들은 소아청소년 치료제 옵션을 늘리기 위해 복합제 투여 연령대를 12세 이상 등으로 낮출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지만, 마약류 규제당국인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펜터민 성분이 포함됐다는 이유로 난색을 표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다소 모순적인 부분은 복합제보다 향정신성 성분 용량이 높은 펜터민 단일제의 투여 허가 연령대가 16세 이상으로 저용량 펜터민 복합제보다 더 넓다는 점이다. 펜터민 단일제 용량은 37.5mg, 펜터민·토피라메이트 복합제의 1단계(최저용량) 펜터민 용량은 3.75mg으로 단일제의 10분의 1 수준이다.(참고로 복합제 2단계 펜터민 용량은 7.5mg, 3단계 11.25mg, 4단계 15mg이다.) 이를 이유로 의료진들은 "제한적인 조건을 걸어서라도 고도 비만이나 성인병 위험군 소아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펜터민 복합제를 쓸 수 있게 처방 트랙을 마련해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식약처도 의료진들의 요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펜터민이 자칫 중독 위험을 높일 수 있는 향정 성분이라는 사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입장에서 반 발자국도 못 물러서는 실정이다. 더욱이 식약처는 12세 이상 소아청소년에게 펜터민 복합제 등 향정 비만치료제를 처방하더라도, 사후 충분한 의학적 소명 절차를 완수한다면 처방 의료진의 불이익은 없다는 견해를 내비치고 있다. 그게 아니라면 소아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펜터민 복합제 임상시험 데이터를 제출하라는 요구인데, 이는 임상 환자를 모집하기 어려운데다 일부 윤리적 문제까지 있다는 점에서 비현실적이다. 향정 마약류 규제당국의 단단한 입장에 공감할 수 없는 건 아니지만, 미국 FDA가 펜터민 복합제에 대한 투약 연령을 12세 이상으로 유연하게 운영중인 점 등을 살펴 '제한적 처방 허용'에 대한 허가 트랙을 만들 필요성이 있다. 더욱이 현장 의료진들은 식약처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지 말고 처방 의사들도 소아청소년 저용량 펜터민 복합제에 대한 까다로운 처방 제한이나 모니터링 행정을 얼마든지 감수하겠다는 태도다. 소아청소년 마약류 처방 옵션을 한 꺼풀 더 벗겨보면, GLP-1 유사체의 경우 제형이 주사제인데다 투약 비용이 백 만원 수준에 달한다는 장벽이 있다는 점이다. 반면 펜터민 복합제는 한 달 투약 비용이 15~20만원으로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우리나라의 소아청소년 비만율은 수 년째 일본과 중국, 대만을 상회하는 수준으로 성인병으로 이어지는 비율도 상당한 수준이라는 게 치료제 옵션 확대를 주장하는 의사들의 견해다. 규제당국이 '처방 후 의사 소명서 제출' 또는 '소아청소년 환자 직접 임상시험 실시' 등 딱딱한 행정에 머물러있을 게 아니라 우울감과 사회 부적응, 고혈압·당뇨·고지혈 등 성인병 위험에 노출된 소아청소년들을 위해 최소한의 처방 트랙을 만들기 위한 적극행정에 나설 필요가 있다. 4단계 처방 용량 중 최저 용량에 대한 연령 금기 조정을 위한 데이터를 제약사에 요구하거나, 처방 의료진에 대한 추가적인 모니터링 기전을 마련하는 등의 행정을 위해 의료진과 머리를 맞대야 한다는 얘기다. 이와 함께 처방 의료진과 제약사도 소아청소년에 대한 저용량 펜터민 복합제의 비의존성과 함께 고도 비만 치료 효과에 대한 과학적인 데이터, 증례 확보를 토대로 규제당국의 합리적인 행정을 지원해야 한다. 향정약이란 이유로 늪에 빠진 저용량 펜터민 복합제가 소아청소년 중증 비만 환자들의 정상 체중을 위해 국소적으로나마 처방될 수 있는 민관 협의를 기대한다.2026-01-29 06:00:41이정환 기자 -
[데스크 시선] '제약사 체질개선' 명분이 위험한 이유[데일리팜=천승현 기자] 제약업계가 연일 약가제도 개편에 강하게 저항하고 있지만 정부는 전혀 흔들리지 않는 눈치다. 제네릭 약가가 내려가면 제약사들이 수익 악화로 고용 축소와 투자 위축이 우려된다는 아우성을 내놓지만 정부는 줄곧 체질개선만을 내세우는 모습이다. 국내제약사들을 중심으로 반대하는 정책은 제네릭 약가제도 개편이다. 보건복지부는 오는 7월부터 제네릭과 특허만료 의약품의 약가산정률을 53.55%에서 40%대로 낮추는 내용이 담긴 약가제도 개편을 추진 중이다. 산술적으로 제네릭 최고가가 특허만료 전 신약의 53.55%에서 40%로 낮아지면 수익성이 25% 악화한다는 의미다. 복지부는 약가제도 개편을 발표하는 보도자료에서 ‘제네릭 중심 산업 생태계’를 문제삼았다. R&D 활성화를 통한 선순환 혁신 생태계 조성을 위해서는 가치에 대한 적정 보상이 균형을 이루는 약가제도로 개편이 시급하다는 명분이다. 제약사들이 제네릭 중심의 사업에서 벗어나 신약 개발에 집중해야 우리나라도 제약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는 견해다. 복지부는 체질 개선이라는 명분을 반복적으로 제시한다. 정경실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실장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약가제도 개편안 취지에 대해 “다른 나라보다 고평가 된 제네릭 약가를 손질해 국내 제약산업 체질을 신약 중심으로 개선하는 게 행정 방향성"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14일 김연숙 복지부 보험약제과장은 한 토론회에서 “이번 개편안을 계기로 혁신형 제약사를 축으로 체질개선과 산업 도약 골든타임으로 생각하고 기회의 창이 열렸다고 생각한다”라고 했다. 말 그대로 국내 제약사들이 제네릭이라는 나쁜 체질을 갖고 있어 신약이라는 좋은 체질로 바꿀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겠다는 인식이다. 높은 제네릭 약가로 인해 국내 제약산업계가 신약개발보다 제네릭에 집중하고 있다는 게 정부의 견해다. 정부의 이러한 인식은 제약산업 종사자들의 견해와 괴리가 크다. 제네릭 의약품도 정부의 정식 허가를 받고 건강보험 등재 절차를 거쳐야 판매되는 정부 공인 의약품인데도 정부는 제네릭은 나쁜 약, 신약은 좋은 약이라는 편견이 깊숙이 작동하는 모습이다. 제약산업 현장에서는 분통의 목소리마저 나오는 실정이다. 약가제도 개편 비상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조용준 한국제약협동조합 이사장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정부가 제네릭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강하고 제네릭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것으로 보인다. 제네릭을 너무 폄하하는 게 아닌가 싶다”면서도 “제네릭은 분명한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제약사들이 정부가 정한 틀 안에서 제네릭을 만들어 낸 수익으로 일자리를 창출하고, 신약 개발 재원으로 활용하는데 제네릭이 비싸다는 인식만으로 가격을 후려치면 산업의 기틀이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확산하는 모습이다. 윤재춘 대웅제약 부회장은 지난 26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약가를 53%대에서 40%대로 낮추는 것은 체감상 20% 안팎의 가격 인하"라며 "어느 산업도 이런 충격을 한 번에 견딜 수 없다"라고 토로했다. 김영주 종근당 대표는 ”환율 상승, 원료의약품 가격 인상, 인건비·에너지 비용 증가, GMP·규제 강화 등으로 제조 비용은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반면 의약품 가격은 정부 주도의 반복적 약가 인하로 계속 하향 조정되고 있다“라면서 정부가 외면하는 산업 현실을 지적했다. 기업의 대표들이 정부 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흔치 않은 풍경이다. 그만큼 제약사들이 절박한 위기감을 체감하고 있다는 의미다. 지난 22일 경기 화성시 향남제약공단에서 열린 간담회에서는 노동자들이 체감하는 위기감이 더욱 극명하게 표출됐다. 오상준 화학본부 경기남부 의장은 “정부 약가인하로 노동자들은 고용 불안에 떨 수 있다. 고용이 불안하면 좋은 약을 생산할 수 없다”라고 꼬집었다. 이날 마이크를 잡은 이덕희 일동제약 노조위원장의 하소연은 많은 것을 시사했다. 이 위원장은 “과거 미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매출의 20%에 달하는 과감한 투자를 지속적으로 단행하면서 유동성 한계로 구조조정을 실시한 안타까운 경험이 있다“라면서 ”약가인하로 결국 정규직이 비정규직으로, 간접고용은 해고로 이어지면서 제약산업 전체 고용 안정성이 크게 흔들리고 산업 존립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실제로 일동제약그룹은 지난 2023년 고강도 구조조정을 실시한 바 있다. 당시 과감한 연구비 투자로 적자가 지속되자 일동홀딩스와 일동제약의 임원 20% 이상을 감원하고, 남은 임원들은 급여 20%를 반납했다. 당시 일동제약은 차장 이상 간부급 직원들을 대상으로 희망퇴직(ERP)을 실시했고 수많은 직원들이 회사를 떠났다. 제약사는 신약개발 체질개선을 위해 연구개발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했지만 결실을 맺기도 전에 회사는 어려워졌고 결국 수많은 동료들이 떠났고 그들의 가족들도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었다. 정부가 외치는 신약개발 제약사로의 체질개선이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를 제시하는 대목이다. 한 명의 고용이 줄어들면 그 가족들의 삶도 위협을 받을 수 있는데 단지 체질개선이라는 이유만으로 제네릭 가격을 깎고 신약개발에 몰두하라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라는 지적이다. 이 위원장은 ”산업 현장 노동자 입장에선 각자 한 사람의 노동자의 감원은 살인과도 같다. 고용의 절실함, 삶의 절실함 때문에 얘기하는 것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장에서는 먹고 사는 문제의 얘기를 단순히 체질개선이라는 그럴 듯한 명분으로 쉽게 판단하고 정책을 펼치면 위험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다. 공무원의 임금이 높다고 체질개선을 위해 임금 20%를 깎겠다고 하면 누가 가만 있겠는가. 급기야 제약업계 노동자들은 정부 상대로 투쟁을 펼칠 태세다. 이동인 한국노총 전국화학노동조합연맹 의약품·화장품 분과 사무국장은 “약가제도 개편으로 인한 고용불안과 구조조정에 맞서 강력하게 대응하겠다”라고 경고했다. 현장의 목소리를 더 듣고 산업을 이해하는 행정이 필요한 때다.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들을 마치 계몽의 대상으로 대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접근 방식이다. 국민들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공무원들이라면 더욱 큰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2026-01-28 06:00:40천승현 기자 -
[기자의 눈] 혁신의료기기, 80일 트랙의 시험대[데일리팜=황병우 기자]'최단 80일'. 정부가 혁신의료기기의 의료현장 진입속도를 단축하는 '시장 즉시진입 의료기술 제도' 시행과 함께 내건 숫자다. 업계는 현장 진입을 당기겠다는 제도의 방향성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기존에는 허가 이후 기존기술 여부 확인과 신의료기술평가, 보험 등재로 이어지며 최장 490일까지 걸릴 수 있었던 시장 진입 기간이 80일까지 줄어들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이번 제도를 '시장 확대 신호'로 받아들이는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 시장이 커져야 데이터가 쌓이고, 데이터가 쌓여야 기술이 고도화되는 AI 의료기기 특성상, 진입 속도는 곧 성장 리듬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다만 시장 즉시진입 의료기술 제도는 조건을 전제로 한다. 국제 수준의 임상평가다. 속도를 앞당겨주는 만큼, 제도 신청 시점에 상당한 임상근거를 확보한 상태가 요구될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질문이 갈린다. '정말로 속도가 빨라지는가'와 '누구에게 속도가 빨라지는가'다. 임상역량과 자원을 갖춘 기업에는 트랙이 될 수 있지만, 작은 규모의 회사나 첫 제품을 준비하는 업체에겐 체감이 제한적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빠른 제도가 쉬운 제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글로벌 기업이 중심이 된 외산 변수도 함께 따라온다. 해외에서 이미 근거를 확보한 기술은, 이 제도를 통해 국내 시장에 상대적으로 손쉽게 들어올 여지가 있다. 반대로 국산 기업은 기존 제도권에서 긴 시간과 비용을 들여 근거를 만들어 왔다. 속도가 '경쟁 촉진'으로만 작동할 경우, 국산 기술이 보호받지 못한다는 인식이 커질 수 있고 혁신 동기도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미 과거 여러 의료기기기업이 국내 규제·평가 구조를 고려해 해외 레퍼런스 먼저를 선택해 다시 역으로 한국에서 허가를 받는 사례까지 존재했던 만큼 국내기업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시선 역시 일반화하긴 어렵다. 현장에서는 '국제 수준의 강화된 임상평가'를 두고도 해석이 엇갈린다. 임상 비용의 증가 등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기업이 많은 의료기기 업계에 비용 압박이 늘어날 것이란 우려와 'ICH 가이드라인 하에 수행된 연구'로 판단해 국내 임상 만으로도 허가된 경우도 포함되는 만큼 기업의 압박보단 시장의 길을 열어줬다는 시각이 교차한다. 하지만 정부의 취지가 허가 속도를 올리되 일정 수준 기술에만 허가 트랙을 열어주는 국제화(globalization)에 보다 초점을 맞췄을 것이라는 부분에는 공감대도 존재한다. 이와 함께 정부는 새로운 기술을 가진 기업에 문을 열어주되 후속 보고 등을 통해 평가하는 뒷문을 조이는 형태의 제도를 손봤다. 의료기기 기업들은 제도의 혜택에 대한 책임을 가지는 구조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기존 제도로 진입을 노렸던 기업과 새로운 트랙을 통한 현장 혼선, 그리고 제도가 제시한 단축 효과가 실제로 현장에서 체감될지에 대해서는 운영의 실행력과 형평성 측면에서 여전히 물음표가 붙어 있다. 이미 해당 제도를 통해 혜택을 받는 기기들이 존재한다고 발표된 만큼, 더욱 '누가, 어떤 조건에서, 어떤 방식으로' 혜택을 받는지가 투명하게 설명돼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이제 제도가 출발선에 선 만큼, 비판보다는 업계가 요구해 왔던 목소리가 반영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속도와 안전, 외산 유입과 국산 혁신, 기존 트랙과 신규 트랙 사이에서 균형점을 잡는 후속 설계가 필요하다. 숫자가 시장을 바꾸는 건 빠르지만, 시장이 신뢰를 쌓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80일'이 산업의 성장 촉매가 되려면, 균형점을 어떻게 만들지가 후속 과제다.2026-01-28 06:00:39황병우 기자 -
[전문가 칼럼] 부실 임상시험을 부르는 이해 충돌부실 아파트 공사는 두말할 것 없이 커다란 사회 문제다. 최근 두 사례를 보겠다. 2023년 인천 검단 신축 아파트 지하 주차장이 붕괴되었다. 철근 누락 및 배근 불량 구조 검토, 시공, 감리(監理) 모두 실패하였고 핵심 공정에서 감리의 실질적 검측 미이행 등이 원인으로 규명되었고 “감리가 제대로만 됐었다면 막을 수 있었던 사고”로 공식 발표되었다. 2022년에는 광주 화정 아이파크가 공사 중 붕괴되었다. 콘크리트 강도 미달, 동바리 조기 철거, 공정 압박으로 감리 형식화, 현장 관리 부재 등이 원인으로 지적되었다. 결론은 “서류감리+공정무리”의 전형적 참사였다. 이 두 사건에서 공통적으로 지적되는 원인은 부실 내지는 형식적 감리(監理)다. 감리가 제 역할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감리사(監理使)는 관련 국가기술자격, 실무경력, 법령상 요건을 충족시켜야 하고 시공사와는 독립적이어야 한다. 감리사가 시공사와 유착되어 있다든지 감리 업무를 규정대로 하지 않는다면 2023년 검단 ‘순살’ 아파트 주차장 붕괴, 2022년 광주 아이파크 붕괴 같은 대참사는 언제든 또다시 발생할 수 있다. 건설 시공에서 감리가 치명적(critical)으로 중요하며 건설 시공사를 감독하기 때문에 반드시 독립적이어야 한다. 1962년 미국에서 Kefauver-Harris 약사법 개정안이 미 의회에서 통과되면서 현대적 신약개발 과정인 IND와 NDA 제도가 도입되었고 임상시험 시대가 열렸다. 1962년 이전에 승인된 의약품 가운데 1000개 이상이 유효성 부족 등의 이유로 퇴출되었다. 임상시험의 법적∙제도적 장치가 완성되기까지 상당 시간이 걸리면서 1970년대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비로서 신약 개발과 임상시험이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필자가 1977년 미국 National Cancer Institute에서 신약 개발과 임상시험에 참여하기 시작했는데 지금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크게 느껴진다. 프로토콜(protocol)조차 제대로 작성할 수 있는 스폰서가 별로 없었고 임상시험과 관련된 제대로 된 책 하나 없는 시절이었다. 당시 임상시험 데이터 부정행위와 위조(data fraud and falsification)는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두 사례를 보자. 1980년대 초, Harvard 의대의 John Darsee 교수는 cardiology 임상시험에서 환자 데이터를 조작하고 랩 분석결과를 인위적으로 만들어 내고 follow-up 기록을 변경한 것이 밝혀지면서 100편 이상의 심장 질환 논문이 취하되었다. Veterans Affairs 병원의 Dr. Robert A. Poisson은 심장질환 임상시험에서 부적격(ineligible) 환자를 등록하고 CRF(Case Report Form)를 조작하고 endpoint를 위조하였다. 이런 행각이 발각되면서 Dr. Poisson이 참여한 수십개의 multicenter 임상시험 결과를 무효화(無效化)시켰다. 위의 아파트 부실공사들과 유사한 부실 임상시험들이다. 1980년 당시 임상시험 사기 형태를 보면 data fabrication(모든 환자와 병원 방문 조작), data falsification(lab value 또는 결과 변경), protocol violations(가장 흔하게 inclusion/exclusion criteria위반), backdated entries(병원 방문일자 조작), ghost patients(유령환자), selective reporting(음성적결과 의도적 누락) 등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사기형태는 대부분 우연히 발견된 것이고 감사(audit)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 한다. 임상시험 사기의 직접 피해자는 임삼시험 참가자다. 안전성 데이터를 위조함으로써 참가자는 임상시험 중인 의약품으로 인한 피해가 발생해도 제대로 보호를 받지 못할 수 있다. 위조된 임상시험 결과로 승인된 의약품으로 인해 결국 소비자가 피해자가 된다. 스폰서인 제약사도 커다란 경제적 손실을 입게 된다. 한국의 감사원에 해당하는 미국 Government Accounting Office는 FDA 감사(audit)의 취약함을 지적했고, 미의회는 임상시험 시스템의 결함을 지적했다. 결국 FDA는 “honor system” science (의사 과학자가 정직할 것이라고 믿다)에 의존한 것이 잘못이라고 인정했다고 한다. 임상시험이 제대로 감리 감독되었다면 그런 일은 예방될 수 있었다는 의미로 읽힌다. 1988년 US FDA는 모니터링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당시 임상시험 스폰서는 모니터링 의무가 있었으나 병원에서 시행하는 임상시험의 병원기록 접근권이 없기 때문에 병원에서 제출한 데이터만 모니터링 할 수 있었다. 병원에서 제출하는 데이터의 조작(操作) 또는 진위(眞僞) 여부를 가릴 수 있는 방법도 권한도 없었다. 1988 US FDA 모니터링 가이드라인의 핵심 포인트는 아래와 같다: FDA에 제출되는 자료의 정확성을 보장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개별 피험자 기록(subject records)과 기타 지원 문서를 검토하고, 해당 기록들을 연구자가 스폰서에게 제출하기 위해 작성한 보고서와 대조·비교하는 것이다. 동 가이드라인에서 정기적 사이트 방문을 통해 모든 기록을 대조·비교하기 보다는 표본으로 선정된 적정 수의 피험자 기록 및 기타 관련 근거 문서를 연구자가 작성한 보고서와 비교·검증해야 하는 것을 추천한다. 모니터링 요원의 자격에 대한 내용도 있다. 모니터링 가이드라인이 발표되면서 제약회사들은 자체적으로 모니터링을 하기도 했지만 CRO에 임상시험 모니터링을 위탁하면서, CRO 업계가 기존에 담당하던 데이터관리(Data Management), 통계분석, 컨설팅 업무에 모니터링 업무까지 추가되면서 급성장하게 되었다. 임상시험 실무에서 스폰서, 병원/연구자, CRO가 있다. 스폰서는 병원/연구자에게 임상시험을 위탁하고 CRO에게는 연구자가 시행하는 임상시험 모니터링 업무를 위탁하고, CRO는 자격을 갖춘 모니터링 요원(CRA: Clinical Research Associate)을 채용하고 교육해 임상시험을 모니터링한다. CRA는 연구자(investigator)가 제출한 임상시험 데이터를 병원기록과 비교하고, 연구자가 규정과 SOP와 프로토콜(protocol)을 준수하고 동의서를 규정과 절차에 따라 진행하는지 등을 모니터링한다. 따라서 아파트 건설시공에서 시공사와 감리사가 독립적이듯 임상시험에서는 연구자와 CRA의 독립성이 보장되어야 무결성 모니터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병원/연구자와 스폰서가 이해충돌이 있어서도 안 되고, 연구자와 CRA가 유착되어도 안 되고, 스폰서가 CRO/CRA에게 모니터링에 대하여 부당한 압력을 가하면 “무결성 모니터링”이 어려워질 수 있을 것이다. 국내 CRO 가운데 연구자들에게 주식을 나눠 준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주식을 증여 받은 연구자들은 스폰서에게 해당 CRO에게 위탁할 것을 압박하였다 한다. CRO와 연구자들의 유착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 이런 유착은 모니터링의 독립성과 무결성에 유해할 수 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연구자가 스폰서에게 특정 CRO를 지정하며 그 CRO와 하고 싶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연구자의 지원을 받아서 스폰서로부터 모니터링 업무를 위탁 받는 경우 CRO가 모니터링을 원래 가이드라인대로 공정하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게 된다. 1999년 이후 US FDA는 임상연구자(clinical investigator)의 재산공개(financial disclosure)를 통해 재정적 이해충돌(financial conflict of interest)을 사전 예방하고 있다. 한국에는 미국처럼 독립된 재정적 이해충돌 법령체계는 없지만 식약처(MFDS)는 GCP 실태조사(inspection)를 통해 이해충돌 미신고, 이해충돌로 인해 자료 왜곡 보고 누락, 스폰서의 경제적 이익에 유리하게 판단해 편향이 발생하면 중대한 위반 사유로 간주될 수 있다고 한다. 1980~90년대에 미국에서는 제약회사가 의사 학회를 후원하여 호화 유람선(cruise ship)에서 학회를 갖고 가족들까지 초청하여 학회를 빙자한 접대용 호화판 유람이 횡행하였다. 최근 모 CRO가 주선해 연구자들을 단체로 중국으로 초청하여 골프접대를 하였다는 소문이 업계에 떠돈다. 사실이라면 대단히 심각한 이해 충돌이 될 수 있다. 해당 CRO가 스폰서의 요청으로 연구자들에게 골프 접대를 하였다면 이는 스폰서의 리베이트 행위를 CRO가 대행하는 행위가 되는 것이고 만약 해당 CRO가 연구자들과 친목을 위하여 그런 행위를 하였다면 연구자와 CRO 유착의 한 단계가 되는 것이다. 부실한 임상시험을 방지하기 위하여 US FDA는 1988년 모니터링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국내에서도 2002년 12월부터 본격적인 임상시험을 시작하면서 미국의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데 CRO와 연구자와의 부적절한 관계가 용납 혹은 묵인되기 시작하면 우리 임상시험도 1980년대 미국의 임상시험과 같이 될 수도 있고 임상시험판 광주 아이파크 내지는 인천 검단 순살 아파트 주차장 사건이 발생하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끝으로 1988년 US FDA 모니터링 가이드라인은 EDC가 발전하고 널리 사용되면서 2013년 폐기되었고 RBM(Risk-based Monitoring)으로 대체되었다.2026-01-27 12:10:21데일리팜 -
[기자의 눈] 글로벌제약 영업조직 축소에 대한 고찰[데일리팜=손형민 기자] 최근 글로벌 제약업계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잇따른 영업조직의 구조조정(ERP)이다. 이미 주요 글로벌제약사들이 세일즈 직군을 중심으로 ERP를 대거 단행했고 만성질환처럼 전통적으로 영업력이 중요했던 영역에서도 축소 기조가 이어지고 있다. 이는 다국적사 한국법인에도 마찬가지로 영향이 미치고 있다. 표면적인 가장 큰 이유는 비용 효율화지만 실제 내부에서는 역할 재편(Role Redesign)이라는 표현이 더 자주 등장한다. 단순히 인력을 줄이기 위한 조정이 아니라 인공지능(AI) 기반 영업 모델이 본격화되면서 직무 자체가 새롭게 정의되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본사들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영업조직의 축소와 동시에 AI 기반 방문 최적화 시스템, 디지털 채널 자동화, 처방 예측 모델을 구축해 왔다. 과거 현장 중심의 영업 활동을 통해 모았던 정보를 이제는 시스템이 먼저 제시하고 행동 전략까지 추천하는 방식이다. 다국적제약사 한국법인과 국내 제약사들도 최근 몇 년간 ERP를 검토하거나 일부 단행하면서 유사한 갈림길에 서 있다. 문제는 제약업계에서 ERP가 아직도 영업 생산성 제고를 위한 단기 효율화 조치 정도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글로벌 흐름을 보면 ERP는 항상 조직 재설계, 직무 재정의, AI·디지털 전환의 본격화와 연결돼 있다. 단순히 사람을 줄이면 효율이 생기는 시대는 이미 끝났고 어떤 역할을 남길 것인가가 더 중요한 질문이 된 상황이다. 특히 영업조직의 기능은 AI가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로 나뉘기 시작했다. 첫째는 AI·데이터가 대체할 수 있는 반복적이고 표준화된 업무다. 방문 우선순위, 채널 믹스, 기본 메시지 등은 시스템이 더 빠르고 정확하게 제공한다. 둘째는 AI가 대체할 수 없는 고난도 역할이다. 병원 의사결정 구조의 이해, 지역 특성과 환자 분포의 차이, 경쟁약 도입 시점에 따른 미세한 시장 변동, 의료진의 실제 니즈 파악처럼 정성적 판단이 필요한 영역이다. ERP 이후 글로벌사들이 Key Account Management(KAM), Hospital Access, 메디컬 협업 조직을 확대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줄어드는 것은 전통적 영업이지, 전략적 영업이 아니다. ERP가 본격화되는 상황에서 가장 큰 과제는 성과지표(KPI)와 직무 기준을 함께 바꾸는 일이다. AI 기반 전략이 제시되는데 여전히 방문 수, 단순 실적, 지역 분배 같은 지표를 중심으로 평가한다면 ERP는 조직을 더 비효율적으로 만들 뿐이다. ERP는 인력 수 조정이 아니라 조직이 무엇을 성과로 정의할 것인가를 다시 묻는 과정이어야 한다. 주요 글로벌 기업들은 축소 이후 곧바로 KPI를 전략 실행력, 타깃팅 적정성, 멀티채널 활용도 등으로 전환했다. 반면 일부 기업들은 여전히 과거 지표에 묶여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결국 ERP는 변화의 시작점이다. 그 변화는 새로운 경쟁력의 기반이 되느냐, 단기적 비용 절감에 머무르느냐는 조직이 얼마나 빠르게 역할과 기준을 재정의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AI 시대의 영업은 누가 데이터를 많이 축적했느냐가 아니라 누가 데이터를 제대로 해석하느냐가 위상을 결정한다. 글로벌 구조조정이 가속화되는 지금, 여러 제약사들은 영업조직의 미래를 다시 설계해야 하는 시점이다. 줄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남길 것인가다.2026-01-27 06:00:40손형민 기자 -
[데스크 시선] 알부민 성분 식품, 이대로 놔둘 것인가[데일리팜=이탁순 기자] 알부민 영양제가 갈수록 판을 치고 있다. 알부민 영양제는 달걀이나 우유에서 나온 알부민 성분의 식품으로, 마치 혈장 알부민과 같은 양 소비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알부민 영장제를 섭취하면 위장에서 아미노산으로 분해돼 혈장 알부민으로 전환될 가능성은 거의 희박하다고 전한다. 그럼에도 알부민 영양제들은 혈장 알부민 보충 용도인양 피로 회복, 체력 증진 효과를 거짓 광고하면서 다양한 채널에서 판매되고 있다. 특히, 최근 홈쇼핑에서는 전문 의료인을 내세운 알부민 브랜드를 매일 송출하다 시피 하고 있다. 그럴수록 가짜 상술에 속아 고가의 제품을 산 소비자 피해만 가중되고 있다. 데일리팜은 더 이상의 소비자 피해를 막기 위해 알부민 영양제의 실체를 알려주는 특집기획을 보도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과대광고를 통해 소비자를 현혹하는 알부민 영양제 판매는 줄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물 들어올 때 노 젓듯이 판매 열기는 더 뜨거워지고 있다. 그럼에도 식약처와 공정위 등 관계 당국의 빠른 대처가 보이지 않는다. 식약처는 작년 인터넷 점검을 통해 일부 알부민 영양제 제품의 과대광고 실태를 파악했으면서도 시장 수요가 높아진 지금 오히려 손을 놓고 있는 분위기다. 소비자 권익을 위해 존재하는 한국소비자원도 문제점을 인지하고서도 빠른 실태조사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 소비자단체들은 의약품과 건강기능식품을 표방한 식품 구매에 주의하도록 식약처가 설 명절 전에 '소비자 주의보'를 내려야 한다고 긴급 경고하고 있다. 설 명절까지 이제 한 달도 남지 않았다. 정부는 사기가 다 끝날 때 까지 가만히 있을 셈인가. 조사하는 시늉이라도 보여야 불법이 멈출 텐데, 단속이 미흡하니 과대광고는 더 대범해 지고 있다. 지금이라도 식약처는 알부민 영양제의 실체를 알리고, 과대광고에 속지 않도록 당장 소비자 주의보를 내려야 한다. 보도자료 한 장 배포하는 게 그리 어려운지 모르겠다. 제도개선도 함께 병행돼야 한다. 의약품·건강기능식품 표방 일반 식품에 소비자가 혼동되지 않도록 표시·광고 제도개선은 물론 생산 제한까지 다각적인 대책이 필요하다.2026-01-26 06:00:40이탁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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