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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차회진을 아시나요?"…내과 전공의 한숨

  • 이혜경
  • 2014-11-21 12:24:59
  • 요약
  • [내러티브] 내과 전공의 파업 후폭풍...고단한 전공의들의 삶

누군가 말했다. 전공의는 아파도 쓰러질 때까지 병원에서 일해야 한다고. 그렇다. 나는 피교육자이면서도, 근로자 신분을 가진 내과 1년차 전공의.

어제는 오랜만에 쉬었다. 운 좋으면 한 달에 한 번 월차를 쓸 수 있다. 잘 쉬었냐고? 우리한테 월차는 주 3~4회가 넘는 당직근무 때문에 병원에서 먹고, 자고를 반복하다 겨우 집으로 돌아와 쉴 수 있는 한 줄기 빛이다.

그 빛 마저도 24시간 업무대기 모드다. 언제든 병원에서 콜이 오면 총알처럼 뛰쳐나가야 한다. 공부, 운동, 독서, 영화감상과 같은 여가활동은 꿈도 못꾼다.

"운동을 하고, 열심히 일하고, 주말엔 영화도 챙겨보곤 해, 서점에 들러, 책속에서 빠져서, 낯선 세상에 가슴 설레지. 이런 인생 정말 괜찮아 보여, 나 정말 잘살고 있어~." '사랑에 빠지고 싶다'는 유행가의 가사는 딴나라 이야기다.

그래도 2년차, 3년차, 4년차가 될 수록 나아진다고 해서 버티고 있다. 선배들도 버텼으니까, 나도 할 수 있다고 믿을 뿐이다. 그렇게 3월부터 출근해서 9개월을 버텼다.

지난 9개월 동안 오전 7시부터 근무를 시작했다. 오전 브리핑이 끝나면 회진이 시작되는데, 교수들마다 회진 시간이 달라 항상 대기를 해야 한다. 우리끼리는 풍차회진이라 부른다.

다양한 회진을 따라다니다가 짬짬이 오더를 내린다. 저녁 시간이 되면 신환(새로운 환자)을 보고, 마지막 추가 오더를 내면 2년차 선배가 오더를 검토해준다. 그렇게 새벽 2~3시를 맞는다. 당직이 없으면 수면실로 달려간다.

수면실도 편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윗 년차 선배들이 들어오면 불편하다. 누울 침대가 부족하면 눈치 껏 일어나야 한다. 각자 콜이 오는 시간과 알람이 달라 '꿀잠' 꿈도 못꾼다.

당직하면 상황은 더 어렵다.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다음 날 쉬는 시간 없이 바로 업무를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오더를 내는 경우도 열에 한 번쯤 발생한다. 누구를 탓 하리오.

조금만 버티면 되는데, 점점 지친다. 선배들 보고 참았는데, 9개월이 지난 지금 2년차 선배들을 보고 있으면 한숨부터 나온다. 1년차 때와 달라진게 없어보인다. 나도 그렇겠지?

오늘은 우리병원 내과 전공의 지원이 미달될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100% 정원을 채워도 일손이 모자라는게 내과다. 촉탁의도 없어서 전공의들이 환자 오더를 내면서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결국엔 업무에 수련교육 일부가 포함돼 있다고 생각하라는 말까지 들었다. 이렇게 4년을 버릴 수는 없다. 근로자이기도 하지만, 피교육자인 신분을 찾고 싶다.

이는 의협 의료정책연구소가 올해 초 발간한 전공의 수련 및 근로환경 실태조사 포커스 그룹 인터뷰 내용과 일부 전공의 인터뷰 등을 근거로 기자가 재구성한 내용이다.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내과 1년차 전공의들이 촉탁의 고용을 요구하면서 지난 2일부터 6일까지 파업을 진행한데 이어, 순천향대부속천안병원 내과 전공의들도 수련환경 개선 목소리를 내면서 열악한 전공의 수련환경이 또 다시 수면위로 떠올랐다.

소위 메이저과로 불리는 내과 전공의들의 파업 카드 여파는 컸다.

당장 다음날 2일부터 2015년도 전공의 모집을 앞둔 만큼, 전공의 업무투쟁이 전개된 병원들은 한 목소리로 수련환경 개선을 약속했다.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은 주중 야간 응급실 당직(저녁 8시~오전 6시)을 스탭 콜로 전환했다. 오프 횟수도 늘렸다. 거의 매주 설 수 밖에 없었던 당직을 3일에 한 번으로 바꿔주기로 했다.

순천향대부속천안병원은 경영진과 내과 교수진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수련환경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가 최근 전공의를 대상으로 수련환경 관련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 1617명 가운데 76.8%가 주당 80시간 이상 근무를 진행했다.

올해 7월부터 '전공의 수련규칙 표준안' 개정에 따라 주당 80시간 근무 상한제가 시행됐지만, 10명 중 8명은 그대로 근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응답자의 8.9%는 근무시간이 늘어났다고 답했다.

일선 대학병원 내과 전공의들이 수련환경과 근로여건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면서 내과 위기라는 화두가 떠올랐지만, 대전협은 내과 인기 추락 정도로 문제를 축소시켜 해석하면 안된다는 입장이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16일 기자회견을 열고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및 입원전담의제 도입을 촉구했다.
전공의 수련 환경의 가장 큰 문제는 주당 평균 80시간 이상으로 근로기준법이 제한하는 근로시간을 상회한다.

송명제 대전협 회장은 "입원 전담 전문의를 뽑아 전공의 수련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며 "병원에 항의하는 전공의들에게 추가 인력을 뽑아주겠다고 약속한 다음 추가 인력확보에 소극적으로 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공의들은 지난 3월 10일 전국의사총파업에 동참하면서 정부와 병원 측에 전공의 수련환경 정상화와 3차병원 추가 의사 인력 도입을 요구했다.

당시 정부는 의·정 협의문을 통해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을 약속했다. 제2차 의·정협의서에 따르면 전공의 수련환경을 감시할 독립적 수련환경평가기구 개설 초안은 올해 5월에 나와야 했다.

하지만 대한병원협회 참여 거부와 정부의 수동적 태도로 답보 상태에 빠져 있다는게 대전협의 입장이다.

송 회장은 "정부는 의협, 병협, 전공의협의회가 합의된 수련환경 개선안을 가지고 오면 받아주겠다는 입장"이라며 "병협에서 거부한 이후 정부는 수수방관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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