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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9년차 다제약물관리, 시범사업 꼬리표 떼야[데일리팜=정흥준 기자]지난 2018년 ‘올바른 약물이용 지원사업’으로 시작한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다제약물관리사업이 올해로 9년차를 맞이했다. 여전히 시범사업 꼬리표를 달고 있는 다제약물관리사업의 본사업 전환을 위해 정부 결단이 필요한 때다. 올해 돌봄통합지원법 시행에 따라 정부는 거주지 중심의 의료, 돌봄서비스를 활성화해야 하는 시점이다. 제도권 밖을 서성이고 있는 다제약물관리사업을 품어야 할 골든타임이라는 얘기다. 정부가 돌봄통합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고령의 국민들은 입원 또는 잦은 외래로 다제약물을 복용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재가 완결형 통합지원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그보다 앞선 단계에서부터 제대로된 관리가 이뤄져야 한다. 즉, 의료기관을 이용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고령 환자에게 발생한(또는 발생할) 문제를 최소화해야 재가 서비스의 완성도도 올라간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제약물관리 병원모형에 대한 우선적인 본사업 전환이 필요하다. 지난 2020년부터 참여 기관과 대상 환자를 지속적으로 늘리며, 의사·약사·간호사 등의 다학제 협업을 안착시켜 왔다. 입퇴원과 외래모형으로 나눠 다제약물관리가 이뤄지기 때문에 의료 서비스 이용 후 거주지로 돌아가는 환자들의 관리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일차적으로 관리가 이뤄진 고령환자들에 대한 돌봄통합 지원이라면 각 지자체는 상대적으로 수월한 서비스 제공이 가능해진다. 병원모형과 지역사회모형이 자연스럽게 연계되는 구조를 안착시킬 수도 있다. 다제약물관리사업의 효과는 지난 9년 동안 충분히 증명해왔다. 부작용 발생 위험 감소뿐만 아니라 비용절감에 대한 연구 결과들도 나와있다. 환자의 재입원이나 추가 외래 등의 발생을 줄였을 때의 재정적 이익을 고려하면 본사업화에 들어가는 예산은 크지 않을 것이다. 특히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가능성이 중요해지는 상황에서 다제약물관리 강화는 불필요한 지출을 막는 안전 장치가 될 수 있다. 지금처럼 참여기관을 꾸준히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본사업화를 통해 전국 단위 서비스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시범사업은 말 그대로 필요한 사업의 효과를 검증하고, 시행착오를 줄이는 데 목적이 있다. 지난 9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검증 절차를 거쳐왔기 때문에 이제는 병원모형부터 시작해 차례대로 보험재정을 투입하는 본사업 전환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2026-03-04 06:00:42정흥준 기자 -
[데스크 시선] 실적은 웃는데 조직은 흔들린다[데일리팜=이석준 기자] A사는 업계의 부러움을 산다. 매년 최대 실적을 갈아치운다. 올해도 신기록이 유력하다. 약가인하를 앞두고 보수적 가이던스를 제시한 제약사들과 대비된다. 겉으로 보면 흔들림 없는 질주다. 그러나 이 회사의 불안은 성장률이 아니다. 성장의 방식이다. 지난 몇 년간 이 회사는 경력직을 대거 영입했다. 당장 실적을 낼 수 있는 인력 위주였다. 전략은 명확했다. 시간보다 속도였다. 성과는 빠르게 나타났다. 신제품은 안착했고 점유율은 확대됐다. 수익성도 개선됐다. 자본시장은 환호했다. 그러나 내부의 시간은 달랐다. 조직은 커졌지만 ‘우리 방식’은 형성되지 않았다. 보고 체계와 의사결정 구조는 엇갈렸고 성과 기준도 제각각이었다. 목표는 같았지만 과정은 충돌했다. 갈등은 쌓였다. 내부 민원과 책임 공방이 이어졌다. 회사는 기본 업무와 협업에 인센티브를 걸며 봉합에 나섰다. 단기 처방은 가능했다. 근본 해법은 아니었다. 숫자는 전략으로 만들 수 있다. 사람은 채용으로 채울 수 있다. 그러나 문화는 시간으로만 축적된다. 공유된 경험과 공통의 기준이 있어야 조직은 뿌리를 내린다. 이 회사는 신입 채용을 늘려 내부에서 기준을 세우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방향은 분명하다. 다만 단기 실적에는 부담이다. 신입은 시간이 필요하다. 시장은 분기 실적으로 반응한다. 결국 질문은 하나다. 숫자를 지킬 것인가, 조직을 지킬 것인가. 속도에 기댄 성장은 빠를 수 있다. 그러나 기반 없는 성장은 오래가지 못한다. 위기의 순간 회사를 지탱하는 것은 그래프가 아니라 사람과 문화다.2026-03-03 06:00:44이석준 기자 -
[기자의 눈] 창고형 약국 대책 공론화가 필요하다[데일리팜=이정환 기자] 창고형 약국이 전국 각지에서 개설되며 전 사회적 관심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반면 관련 규제가 담긴 입법·행정은 수면 밑바닥으로 가라앉은 상태다. 보건복지부는 창고형 약국이 지금처럼 별다른 규제나 관리·감독 없이 우후죽순 문을 열면 국민의 일반의약품 오남용에 따른 부작용 문제가 증가할 수 있다며 표시·광고·홍보 규제를 약속했지만, 입법예고가 종료된 약사법 시행규칙은 진척없이 머물러 있다. 국회 역시 창고형 약국 규제 법안을 다수 발의했지만, 여야 정쟁으로 소관 상임위인 보건복지위원회가 제대로 된 법안심사 기능을 하지 못한 채 멈춰 섰다. 광고·홍보 규제를 비롯해 개설 규모 사전 심의제 도입, 영업시간 제한, 의무(강제) 휴업일 지정, 지역협력 계획서 제출 등이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창고형 약국 관련 입법이다. 행정·입법이 동시에 지연되면서 창고형 약국을 놓고 정부 부처와 국회, 약사 등 유관직능, 의약품 소비자들의 규제 방향성, 공존 가능성에 대한 의견이 한 자리에 모여 갑론을박 할 기회도 박탈당하게 됐다. 창고형 약국을 국민 의약품 건강을 위협하는 기형적 약국으로 지명해 비판해야 할지, 약국이 진화하게 될 미래 모습 중 하나로 정립해야 할지 머리를 맞댈 공론의 장이 마련되지 않고 있는 셈이다. 복지부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약사법이 규정하는 약사 역할·의무와 환자·소비자의 안전한 의약품 복약 환경 구축, 국민 건강을 보장한 소비자 의약품 편익 보전, 새로운 약국 산업 모델에 대한 미래 청사진 마련이란 의제 논의를 위해 각계 의견이 부딪히며 협의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약국 홍보와 의약품 판매고 향상을 위해 객관적인 근거 없이 절대적인 표현을 쓰게 허용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함께 고민하고, 창고형 약국에서 자칫 기계적으로 소비되면서 늘어날 수 있는 약물 부작용·오남용 위험을 합리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얘기다. 단순히 표시·광고에 대한 억지력 강화나 평수 등 규모를 제한하는 방식을 탈피하고 소비자들이 무지성으로 약국·의약품 과장 광고에 휩쓸릴 수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편으로 약사 1인당 복약지도 가능 인원을 산출하는 등 부작용 최소화에 애써야 한다. 필연적으로 이상반응과 부작용이 뒤따르는 의약품이 일반 공산품과 동등한 수준으로 아무 장벽없이 소비자 노출되는 문제를 어떻게 핸들링할 것인지를 공론화하고 함께 고민하는 자리가 국회 토론회 등을 통해 마련되길 기대한다. 이를 통해 규제당국이 창고형 약국 운영 가이드라인 제정 등 적극 행정에 나설 기반이 마련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직접 이해당사자인 약사 직능 역시 창고형 약국 관리 기준, 약사 복약지도 인원 확보 필요성 등에 대한 전문가 견해를 정립해 행정당국에 선제적으로 제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멈춰 선 정부 행정과 국회 입법에만 책임을 물을 순 없는 일이다.2026-03-03 06:00:40이정환 기자 -
[기자의 눈] 약가 인하발 일자리 충격, 정부는 계산했나[데일리팜=김진구 기자] 약가인하를 둘러싼 논의가 막바지 조율 국면에 들어섰다. 정은경 장관은 지난 26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제약업계와의 협의를 통해 개편안을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정 장관은 약가 조정 기준 재검토 가능성을 언급하며, 신약개발 기업 우대와 필수의약품 생산 역량 유지라는 목표도 함께 제시했다. 정부가 ‘균형점’을 찾겠다고 한 지금, 정작 그 균형의 한 축인 고용 문제는 충분히 계산되고 있는지 되묻게 된다. 약가 정책은 단순한 가격 조정이 아니라 산업 구조와 고용 기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변수이기 때문이다. 제약바이오산업은 일반 제조업과는 다른 특성을 지닌다. 연구개발 인력, 임상·허가 인력, 품질관리 인력, 생산 인력, 영업·마케팅 인력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하나의 품목이 시장에 안착하기까지 장기간 투자와 전문 인력이 필요하다. 이런 구조는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산업연구원(KIET)의 2025년 상반기 통계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제약산업의 고용유발계수는 4.11명이다. 의약품 10억원을 생산하는 데 직·간접적으로 필요한 피고용인 수가 4.11명이라는 의미다. 제조업 평균 3.69명을 상회한다. 고위기술 산업으로 묶여 있는 반도체(1.56명), 디스플레이(3.24명), 컴퓨터(2.35명), 통신기기(2.55명), 전지(2.28명), 항공(2.79명)보다 높고, 가전(4.20명), 정밀기기(4.43명)과 유사한 고용 파급력을 보인다. 제조업 내 고위기술 산업군 가운데서도 의약품 산업의 고용 창출 효과가 적지 않다는 의미다. 취업유발계수 역시 비슷한 흐름이다. 제약산업의 취업유발계수는 5.35명으로 제조업 평균 4.85명보다 높다. 마찬가지로 반도체(1.86명), 디스플레이(3.89명), 컴퓨터(2.96명), 통신기기(3.29명), 전지(2.82명), 항공(3.08명)과 비교해 높은 수준이다. 제약산업의 고용·취업 파급력이 평균 이상이라는 점을 통계가 보여준다. 이런 산업에서 가격은 곧 투자와 고용 여력으로 연결된다. 그러나 반복적·일괄적 약가인하가 이뤄질 경우 매출 단가 하락은 곧바로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수익성 악화는 곧 고용 조정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생산과 투자가 위축되면 신규 채용 축소, 연구개발 인력 확충 지연, 간접고용 조정으로 연결될 여지도 적지 않다. 실제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이 같은 의약품 산업의 고용유발계수를 토대로, 정부가 약가인하를 개편안대로 강행할 경우 최대 1만4143명의 인력 감축이 예상된다는 계산 결과를 내놓으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약가 인하가 단순한 수익성 문제를 넘어, 상당한 규모의 고용 감소로 이어질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정부가 약가인하를 강행한다면 단기적인 재정 절감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고용유발 효과가 평균 이상인 산업에서 생산과 투자가 위축될 경우 노동시장에 미치는 파급은 결코 가볍지 않다. 단기 재정 절감 효과만을 기준으로 정책을 평가한다면, 산업 고용 기반 약화라는 또 다른 부담을 간과할 가능성이 있다. 약가 정책은 필요하다. 그러나 ‘얼마를 인하할 것인가’라는 단기 계산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정책은 나무를 보는 데 그칠 수 있다. 고용과 투자, 산업 경쟁력이라는 숲까지 함께 바라보는 균형이 전제돼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절감된 재정 이상의 사회적 비용을 떠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2026-02-27 06:00:36김진구 기자 -
[기자의 눈] 한미약품, 신약 명가의 시험대[데일리팜=최다은 기자] ‘신약 명가’로 불렸던 한미약품의 이름 앞에 최근 더 자주 붙는 단어는 연구개발이 아니다. 경영권 분쟁이다. 3년째 이어진 갈등은 일시적 잡음의 범주를 넘어섰다. 이사회 구성과 지분 구도, 대주주와 전문경영인 간 이견이 반복적으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연구 성과가 기업가치를 설명하던 구조에서 지배구조가 변수가 되는 국면으로 이동했다. 최근에는 내부 성 비위 사건을 둘러싼 회사의 대응을 두고 논란이 확산됐다. ‘성비위 임원 비호’ 의혹에서 출발한 갈등은 대주주의 경영 간섭 논란으로 번지며 조직 전반의 혼란으로 이어졌다. 한미사이언스 최대주주인 신동국 회장은 박재현 한미약품 대표와의 갈등 및 경영 간섭 의혹을 전면 부인했지만,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본부장 및 임원들이 본사 로비에서 피켓 시위를 벌이며 공개 성명을 낸 상황 자체가 이례적이다. 조직 내부의 신뢰와 리더십에 균열이 생겼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안은 지난해 12월 팔탄공장 소속 임원의 성추행 제보에서 비롯됐다. 이후 해당 임원에 대한 중징계를 둘러싸고 대주주와 전문경영인 간 이견이 불거지면서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사안의 본질이 무엇이든, 대응 과정에서의 혼선은 기업 이미지에 적지 않은 상처를 남겼다. 지분 구도 역시 또 다른 변수다. 신 회장은 최근 한미사이언스 지분을 추가 매입해 지분율을 30%에 가까운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경영권 분쟁과 무관하다는 해명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그 배경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과거 ‘4자 연합’으로 묶였던 주주 간 관계에 균열이 생긴 상황에서 지분 확대는 다양한 해석을 낳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런 갈등이 장기화되면서 회사의 중심이 연구 현장이 아닌 이사회와 지배구조 이슈로 옮겨갔다는 점이다. 신약 개발은 속도와 일관성이 핵심이다. 경영 안정성에 대한 의구심이 커질수록 글로벌 파트너와 투자자들의 시선은 보수적으로 변한다. 한미약품은 고(故) 임성기 회장이 강조해온 ‘인간존중’과 ‘가치창조’를 기업 정신으로 내세워왔다. 그러나 최근 논란은 그 가치가 조직 전반에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되묻게 한다. 제약·바이오 산업은 임상 데이터의 신뢰, 경영의 투명성, 윤리적 조직 문화가 함께 구축돼야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 내부 갈등이 반복될수록 기업가치는 할인되고, 신약 명가라는 타이틀의 무게도 가벼워질 수밖에 없다. 결국 관건은 분쟁의 종결이 아니라 이후의 변화다. 최대주주와 오너 일가, 전문경영인 간 갈등을 봉합하고 명확한 거버넌스 체계를 확립해야 한다. 한미약품그룹이 다시 연구개발 중심 기업으로 평가받기 위해서는 지분율이 아닌 성과와 경영 안정성으로 답해야 할 시점이다.2026-02-26 06:00:38최다은 기자 -
[기자의 눈] 좀비 바이오 퇴출, 기업·투자자도 변해야 한다[데일리팜=차지현 기자] 금융당국이 오는 7월부터 주가 1000원 미만 '동전주'를 시장에서 퇴출하겠다는 초강수를 뒀다. 시가총액 기준 상향, 기술특례상장 기업의 상장 후 업종 변경에 대한 심사 강화에 이은 연속 조치다. 당국은 상장 문턱은 낮추되 퇴출은 쉽게 이뤄지는 다산다사(多産多死) 구조를 제도화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고 투자자가 신뢰할 수 있는 시장 환경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그동안 코스닥 시장 특히 바이오 섹터는 상장은 많고 퇴출은 드문 기형적 구조를 유지해왔다. 신약개발은 원래 오래 걸린다는 논리, 임상 하나만 성공하면 대박이라는 기대감이 부실 기업의 생명 연장 장치가 됐다. 성과 없이 유상증자와 전환사채(CB) 발행으로 연명하며 주주들에게 희망 고문을 일삼는 이른바 좀비 바이오텍이 시장의 신뢰를 갉아먹었다. 주가가 1000원 미만으로 내려갔다는 것은 단순히 숫자가 낮다는 의미를 넘어선다. 장기간 실적 부진과 자금조달 부담, 파이프라인 지연 등이 누적되며 시장의 신뢰가 사실상 붕괴됐다는 신호에 가깝다. 물론 일시적 급락이나 수급 요인도 존재하지만 상당수 종목의 경우 수년간 구조적 하락을 반복해온 결과라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런 점에서 당국의 구조전환 의지는 늦었지만 매우 시의적절하다. 이번 사태를 두고 소액주주들의 피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워낙 개인투자자 비중이 높은 바이오 종목이 많다 보니 불안이 커지는 것도 사실이다. 임상 지연이나 기술수출 협상 차질 등으로 일시적 자금난을 겪는 기업이 동전주라는 낙인과 함께 구조적으로 밀려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실제 임상 일정이 한 차례만 어긋나도 주가가 급락하고 자금조달 부담이 겹치며 악순환에 빠지는 사례는 적지 않다. 그러나 냉정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점이 있다. 상장은 면허가 아니라 자격이다. 한 번 시장에 입성했다고 해서 영구적으로 머물 권리를 부여받는 구조가 아니라는 얘기다. 일시적 충격과 구조적 부실은 구분돼야 하지만 수년간 실질 성과 없이 자금조달에 의존해온 기업까지 동일선상에서 보호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임상은 시간이 걸리지만 그 과정에서도 재무 관리와 공시 투명성, 경영 책임은 기본 요건이다. '유망하지만 잠시 어려운 기업'과 '지속가능성이 의심되는 기업'을 구분하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으면 시장은 오히려 더 큰 불확실성에 빠진다. 퇴출이 작동하지 않는 구조는 단기적으로는 안도감을 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더 많은 투자자를 위험에 노출시킬 가능성이 크다. 결국 핵심은 퇴출 여부 자체가 아니라 어떤 기업이 시장에 남을 자격을 갖췄는가에 대한 냉정한 판단이다. 이번 조치는 아프지만 필요한 일이다. 구조 전환에는 통증이 따른다. 일부 종목은 급격한 조정을 겪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손실을 확정해야 하는 투자자도 나올 것이다. 그러나 퇴출이 작동하지 않는 시장이 더 큰 왜곡을 낳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수차례 경험해왔다. 성과 없는 기업이 자본을 계속 흡수하면 결국 업종 전체가 저평가되고 그 피해는 결국 성실하게 성과를 내는 기업까지 떠안게 된다. 지금의 조치는 충격을 동반하겠지만 시장의 기준을 명확히 세우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피할 수 없는 선택에 가깝다. 물론 퇴출 이후에도 재진입의 통로는 열려 있어야 한다. 일정 요건을 충족하고 재무 구조를 개선하며 사업 지속 가능성을 입증한 기업이라면 다시 시장의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 시장에서 한 차례 탈락했다고 해서 기술력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엄격한 퇴출과 동시에 명확한 복귀 기준을 제시한다면 제도는 단순한 처벌이 아니라 시장 규율을 세우는 장치로 기능할 수 있다. 또 하나 분명한 사실은 투자자 역시 변해야 한다는 점이다. 바이오 투자는 고위험·고변동성 영역이다. 임상 단계, 자금 소진 속도, 전환사채 조건, 최대주주 지분 구조 등을 읽어내지 못한 채 가격 흐름만 보고 접근하는 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상장 유지가 보장되지 않는 구조가 된 만큼 기업의 본질을 따져보는 '공부'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됐다. 시장이 성숙하려면 기업의 책임과 함께 투자자의 학습도 병행돼야 한다.2026-02-25 06:00:38차지현 기자 -
[기자의 눈] 상수가 된 디지털헬스–제약 협업[데일리팜=황병우 기자]디지털헬스와 제약사의 협업은 이제 새로운 시도라기보다 상수로 자리 잡는 모습이다. 지난 23일 열린 대웅제약의 디지털 헬스케어 비전 간담회 현장을 보면 협업 자체는 더 이상 질문의 대상이 아니었다. 어떤 파트너와 어디까지 확장할 것인가가 주요 화두로 자리했다. 협업이 늘었다기보다 협업이 산업의 기본 전제가 된 분위기다. 이 같은 변화는 디지털헬스 산업이 개념 검증(PoC) 즉 가능성을 타진하는 단계를 지나 사업과 구조의 단계로 넘어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제약사 입장에서는 기존 사업에 시너지가 날 수 있는 비즈니스 영역을 넓히고 디지털헬스 기업 역시 병원과 의료진을 설득하는 데 제약사의 역할이 필요해졌다. 서로의 필요가 맞물리며 협업은 선택이 아닌 기본 전략으로 자리 잡았다. 결국 '기술이 정말 작동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표준 인프라로 안착시킬 것인가'라는 본질적인 고민으로 옮겨가는 모양새다. 산업 전반에서도 비슷한 신호가 감지된다. 단일 솔루션보다는 플랫폼 그리고 개별 기술보다는 연동과 통합이 강조되고 있다. 심전도나 활력징후에 머물던 모니터링은 혈당·혈압·기록 관리로 확장되고 병원 안에서 축적된 데이터는 병원 밖 관리까지 염두에 두기 시작했다. 디지털헬스가 더 이상 보조 기술이 아니라 진료 흐름의 일부로 편입되는 과정이다. 이 같은 배경 속에서 대웅제약은 간담회 자리에서 개별적으로 흩어져 있던 '점'을 '선'으로 연결해 결국 병원과 가정을 잇는 24시간 모니터링이라는 '면'으로 완성시키는 비전을 제시했다. 업계가 주목하는 지점은 이 협업이 단순한 기술 전시를 넘어 실질적인 실적으로 증명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실제로 지난해 파트너사인 씨어스테크놀로지의 매출은 큰 폭으로 성장했다. 제약사의 강력한 영업·마케팅 네트워크가 스타트업의 혁신 기술과 만났을 때 발생하는 시너지가 더 이상 가설이 아님을 숫자로 입증한 것이다. 대웅제약이 제시한 10만 병상 공급과 연 매출 3000억 원이라는 목표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 이유다. 하지만 협업이 '공식'으로 자리 잡을수록 해결해야 할 과제의 무게도 무거워진다.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의료 현장에서의 책임 경계는 더욱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기술이 많아질수록 의료 현장에서 체감해야 할 변화도 커진다. 여러 솔루션이 하나의 플랫폼으로 묶일 때 편의성은 높아지지만 문제 발생 시 책임의 경계는 더 복잡해진다. 데이터를 둘러싼 인식 차이도 산업 차원의 숙제다. 이미 의료 데이터 활용에 대해서는 꾸준한 논의가 이뤄져 왔지만 여전히 지속적인 허들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향후 어떻게 활용 범위를 넓힐 것인지에 대한 논의 역시 과제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지털헬스–제약 협업이 공식으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은 산업이 한 단계 성숙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 디지털 헬스케어와 제약사의 동행은 선택이 아닌 필수처럼 자리 잡아 가고 있다. 물음표가 가득했던 디지털헬스 분야는 현장에 녹아들며 느낌표로 변모 중이다. 이제 산업은 단순한 협업을 넘어 골든 스탠다드를 만들 수 있을지 시험대에 올랐다.2026-02-24 06:00:42황병우 기자 -
[데스크 시선] 정부, 약가개편 투명한 소통 필요하다[데일리팜=천승현 기자] 보건복지부가 약가제도 개편 안건의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상정을 유예했다고 한다. 복지부는 지난해 11월 건정심에 제네릭과 특허만료 의약품의 약가산정률을 53.55%에서 40%대로 낮추는 내용이 담긴 약가제도 개선방안을 보고하면서 올해 2월 건정심 의결, 7월 시행을 예고했다. 지난 20일 건정심 소위원회를 열어 약가제도 개편안을 최종 확정하고 제도 개편 행보를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최소 한달은 미뤄졌다. 업계에서는 복지부의 건정심 의결 유예 움직임에 안도하는 분위기다. 제약업계의 강력한 반발에 제도 개편 강행에 부담을 가졌을 것이란 기대감도 나온다. 제약바이오협회는 지난 10일 열린 이사회에서 약가제도 개편의 의결과 시행 유예를 촉구하는 촉구하는 결의문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이사회는 결의문을 통해 ▲대규모 약가 인하 방안의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의결 및 시행 유예 ▲약가인하가 초래할 국민건강과 고용 등 영향평가 실시 ▲시장연동형 실거래가 시행안 폐기 ▲중소 제약기업의 사업 구조 고도화 지원책 마련 ▲약가 정책과 산업 육성을 정례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정부–산업계 간 거버넌스 구축 등을 촉구했다. 노동단체들도 정부의 약가제도 개편에 강하게 압박했다. 한국노총은 29일 정부 약가제도 개편에 대한 입장문을 통해 “정부는 약가 제도 개편의 근거와 재정 효과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이해당사자의 의견이 실질적으로 반영되는 사회적 논의 구조를 즉각 마련해야 한다”라면서 “이번 정책을 빌미로 노동조건 후퇴와 고용 불안을 초래하는 어떠한 시도에 대해서도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다국적제약사들의 노조가 주축으로 구성된 한국민주제약노동조합도 지난달 29일 서울 서초동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앞에서 피켓 시위를 열고 정부의 약가제도 개편안에 반대하는 입장을 공식화했다. 정부가 개편 약가제도를 발표한 이후 단 한번도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 않고 있어 제약사들의 불안감을 더욱 부추긴다는 지적이다. 복지부는 제약업계의 약가제도 개편 시행 유예와 백지화 등의 요구에 구체적인 입장을 내놓은 적이 없다.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복지부는 작년 11월 약가제도 개편을 보고한 이후 단 한번도 구체적인 제네릭 약가인하 수치를 제시하지 않았다”라고 했다. 제네릭 약가기준이 53.55%에서 45%로 설정되면 산술적으로 제네릭 최고가격이 16.0% 인하되는 것으로 계산된다. 개편 기준이 40%로 결정되면 53.55원이 40원으로 내려가기 때문에 종전 보다 제네릭 최고가는 인하율은 25.3%로 커진다. 제네릭 1개 제품의 수익률이 20% 이상 내려간다는 점에서 제약사들이 체감하는 손실은 매우 클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구체적인 인하율이 제시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제약사들은 약가제도 개편에 따른 손실 시나리오를 추정할 수 없는 상황이다. 기등재 의약품의 약가인하 여부도 세부적인 로드맵이 공개된 적이 없다. 개편 약가제도를 기등재 의약품에 적용되면 제약사들의 손실은 더욱 커진다. 예를 들어 연 매출 100억원 규모의 제품이 53.55%의 약가가 40%로 내려가면 산술적으로 연간 25억원의 매출이 증발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복지부는 2012년 일괄 약가인하 이후 13년 이상 50% 이상 산정기준을 유지한 기등재 제네릭부터 순차적으로 개편 약가제도를 적용하는 방안을 계획 중이다. 내년 하반기부터 3년에 걸쳐 약 3000개 품목을 조정하고 2027년 하반기부터는 45% 이상 유지된 1500개 품목을 순차적으로 인하하겠다는 구상이다. 이 시나리오대로라면 동일 성분 제네릭 제품에서도 시장 진입 시기에 따라 약가 인하 대상이 엇갈리는 기현상이 초래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항혈전제 클로피도그렐 성분 단일제는 총 156개 품목이 허가됐는데 허가연도는 2005년부터 2021년부터 다양하게 분포됐다. 지난 2025년 19개 품목이 허가됐고 2006년 29개 품목이 허가받으면서 클로피도그렐 제네릭 시장이 본격적으로 형성됐다. 지난 2024년부터 2018년까지 매년 5~9개의 제네릭이 진입했고 2019년에는 신규 허가가 17개 품목으로 늘었다. 당시 정부가 계단형 약가제도와 기준요건 등을 포함한 약가제도 개편 움직임에 착수하자 신규 허가가 봇물을 이뤘다. 만약 정부가 2012년 이전에 등재된 제네릭의 약가인하를 추진한다면 2005년부터 2011년까지 허가받은 64개 품목에 대해 약가인하가 추진되고 2012년부터 허가받은 92개 품목은 약가인하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추산이 나온다. 이 경우 동일 제품인데도 서로 다른 약가제도가 적용되는 매우 이상한 현상이 연출된다. 특정 제품과 기업에만 불리한 제도를 적용한다는 형평성 문제도 노출될 수 밖에 없다. 업계에서는 제네릭 시장이 열린 시기별로 성분별로 약가인하 대상을 분류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한다. 2012년 이전에 제네릭이 1개라도 등재됐다면 해당 성분 의약품 전체가 약가인하 대상으로 분류되는 시나리오다. 이 경우에는 제약사들의 약가인하로 감수하는 손실은 더욱 커진다. 생물학적동등성시험 등 기준요건도 적용하면 손실 규모는 기하급수로 확대될 수 있다. 복지부는 약가제도 개편을 발표하는 보도자료에서 ‘제네릭 중심 산업 생태계’를 문제삼았다. R&D 활성화를 통한 선순환 혁신 생태계 조성을 위해서는 가치에 대한 적정 보상이 균형을 이루는 약가제도로 개편이 시급하다는 명분이다. 제약사들이 제네릭 중심의 사업에서 벗어나 신약 개발에 집중해야 우리나라도 제약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는 견해다. 하지만 제약사들의 생존 위협 불안에 대해서는 어떠한 대책을 제시한 적이 없다. 소통이 필요하다. 업계의 분위기를 살피려고 한 두달 약가제도 개편 의결 절차를 미룬다고 소통 노력을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정부의 정책 목표와 내용을 구체적으로 공개하고 업계와의 실질적인 소통을 해야한다. 정부 정책의 명분과 정당성이 있다면 이해 당사자들을 설득하려는 노력이라도 해야 한다. 소통의 과정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국무회의와 업무보고를 중계하는 현 정부에서 투명한 정책 결정의 중요성을 복지부가 외면하지는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2026-02-23 06:00:38천승현 기자 -
[기자의 눈] 난치암 신약의 무진행생존기간에 대한 접근[데일리팜=손형민 기자] 난치암은 종류가 다양하지만 그 안에는 서로 다른 질환과 다른 예후가 공존한다. 백금저항성 난소암, 소세포폐암, 담도암 등 공통점은 명확하다. 치료 옵션이 제한적이고 평균 생존기간이 짧으며 다음 선택지가 빠르게 줄어든다는 점이다. 이 영역에서 신약 개발은 본질적으로 어렵다. 환자 수는 제한적이고 질환의 생물학적 이질성(Heterogeneous)은 크며 진단 시 전신 상태가 악화된 환자가 많아 임상시험 설계 자체가 까다롭다. 대조군 설정도 쉽지 않고 교차투여(crossover)나 후속치료로 인해 전체생존기간(OS) 차이를 명확히 입증하기도 어렵다. 그 결과 임상 성과는 주로 무진행생존기간(PFS)이나 위험비(HR) 개선으로 제시된다. 대조군 대비 PFS 차이가 1개월 남짓에 불과한 연구도 있다. HR 0.73, 질병 진행 또는 사망 위험 27% 감소. 위험비가 1 미만이면 치료 효과가 있다는 뜻이고 통계적으로도 유의하다. 그러나 환자가 체감하는 것은 상대위험 감소율이 아니라 실제로 확보된 시간이다. 중앙값 PFS가 3.8개월에서 5.2개월로 늘어난 연구라면 HR 0.73라는 수치와 함께 1.4개월 연장이라는 현실이 존재한다. 통계적으로는 분명 진전이지만 임상적 의미는 그보다 복잡하다. 그렇다고 짧은 PFS 개선을 가볍게 여길 수는 없다. 치료 옵션이 거의 남지 않은 환자에게 6주, 8주의 질병 통제는 다음 치료로 이어질 기회이자 삶의 질을 지키는 시간이 될 수 있다. 객관적반응률(ORR)이나 PFS2가 의미 있게 나타나고, 반응 지속기간(DoR)이 긴 환자군이 존재한다면 중앙값 뒤의 ‘롱테일’은 결코 작지 않다. HR 0.72라는 숫자 속에는 서로 다른 환자의 시간이 섞여 있다. 문제는 이 수치가 모든 환자에게 동일한 기대를 전제할 때 발생한다. PFS 1~2개월 개선이라는 결과는 독성 부담, 치료 중단율, 환자보고결과(PRO)와 함께 해석돼야 한다. 특히 OS 데이터가 충분히 성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PFS 중심 평가가 반복될수록 ‘의미 있는 시간’의 기준은 더 복잡해진다. 이 고민은 임상 현장을 넘어 제도 판단으로 이어진다. 한정된 재정 안에서 어떤 약을, 어떤 환자군에, 어느 시점에 허용할 것인가. 사망 위험을 20% 낮췄다는 사실이 곧 모든 환자에게 동일한 가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반응 가능성이 높은 환자를 얼마나 정교하게 선별할 수 있는지, 실제 진료 현장에서의 효과를 어떻게 확인하고 보완할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 난치암 영역일수록 접근은 더 정교해야 한다. 모든 환자에게 일괄적으로 문을 여는 방식이 아니라 근거가 확인된 환자군부터 단계적으로 적용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초기에는 제한적으로 허용하되 실제 사용 데이터(Real-World Data)를 축적하고, 일정 기간 후 OS, PFS2, 치료 지속성, 삶의 질 개선 여부를 재점검하는 체계가 병행돼야 한다. 결국 문제는 숫자의 크기가 아니라 그 숫자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다. 난치암이라는 절박함과 통계적 유의성 사이에서 판단은 더 섬세하고 더 투명해야 한다. 다만 난치암의 질환적 특성과 개발의 어려움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은 채 오로지 OS 개선만을 절대 기준으로 삼는다면 환자들의 신약 접근성은 여전히 낮을 수밖에 없다. 특정 암에 걸렸다는 이유만으로 치료 기회가 더 좁아지는 구조는 정당화되기 어렵다.2026-02-20 12:03:52손형민 기자 -
[기자의 눈] 장기·다상병 처방 관행화, 이대로 둘건가[데일리팜=김지은 기자] 코로나19라는 특수 상황 속에서 확대된 장기처방은 당시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의료기관 방문을 최소화하고 감염 위험을 낮추기 위한 조치였다는 점에서 사회적 공감대도 분명했다. 문제는 그 ‘한시적 확대’가 별다른 점검 없이 관행으로 굳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역 약사들은 의료대란 국면을 거치며 장기처방이 더욱 확산됐고, 이후 조정 없이 유지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최근에는 한 처방전에 여러 질환 약이 함께 기재되거나, 종합병원에서 여러 진료과 처방이 동시에 발행되는 이른바 다상병 처방도 늘어나는 추세다. 겉으로 보면 환자 편의가 높아진 듯 보인다. 그러나 현장에서 제기되는 문제의식은 단순하지 않다. 환자는 고정된 존재가 아니다. 혈압과 혈당, 신장 기능은 시간에 따라 변하고, 그에 맞춰 약물도 조정돼야 한다. 6개월, 9개월, 1년 단위로 처방이 고정될 경우 그 사이의 상태 변화가 적절히 반영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은 남는다. 의약품 역시 유효기간과 보관 환경의 영향을 받는 만큼, 장기간 보유 과정에서의 안전성 문제도 간과하기 어렵다. 복약 순응도 측면에서도 마냥 긍정적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중간에 부작용이 발생하거나 병증이 달라질 경우 이미 조제된 약은 폐기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환자 안전 문제이자, 보험 재정 문제로도 이어진다. 장기처방과 다상병 처방이 오히려 약제비 증가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이 때문이다. 처방 변경, 잔여 의약품 폐기, 특정 품목 수급 불안정 등 파생 문제는 단순히 ‘방문 횟수 감소’라는 명분만으로 설명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방 행태 전반에 대한 제도적 점검은 충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국회 차원의 문제 제기에도 정부는 명확한 기준이나 관리 방향을 제시하지 못한 상황이다. 약국 현장에서는 또 다른 불균형도 제기된다. 현행 조제 수가는 91일을 기준으로 묶여 있어 처방일수가 늘어나도 보상 구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장기처방이 늘어난 약국일수록 업무 부담과 비용은 증가하지만 조제료는 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구조다. 다상병 처방의 경우에도 조제 난이도와 약물 상호작용 검토 범위는 확대되지만 수가 산정 방식은 이를 세밀하게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균형이다. 환자 편의, 의료 접근성, 재정 효율성, 약물 안전성이라는 요소가 조화를 이뤄야 하지만 현재의 처방 구조가 그 균형 위에 서 있는 지에 대한 점검은 부족하다. 장기처방은 필요할 때 유용한 제도다. 그러나 예외적 상황에서 확대된 조치가 관행으로 굳어질 경우 그에 상응하는 관리 기준과 보상 체계, 안전장치 역시 함께 논의돼야 한다. 처방의 길이가 늘어난 만큼, 책임의 범위도 함께 넓어져야 한다. 이제는 편의의 논리를 넘어 환자 안전과 제도 지속 가능성이라는 본질적 질문을 던질 시점이다.2026-02-19 06:00:42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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