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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일에 가슴이 뜁니다"

  • 안경진
  • 2017-10-23 06:14:54
  • 인터뷰 | 노바티스 의학부 김진용 전무

김진용 전무
지난주 페친들 사이에선 연주회 직후 심정지를 일으킨 피아니스트에게 신속한 응급처치를 취해 한 생명을 살려낸 '미담'이 회자됐다.

오랜만에 들려온 훈훈한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한국#노바티스 의학부를 이끌고 있는 #김진용 전무. 게시물 댓글이나 주변에서 들려오는 평판도 훌륭하기 그지 없다. "자랑스러운 KOICA 협력의사"라거나 "평소에도 이런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인물"이란 동료의사들의 평가부터 "워낙 남의 일에 발벗고 나서길 좋아하는 오지라퍼"란 전(前) 직장동료의 제보도 확인된다. 머나먼 타국에서 "제 생명을 살려주신 은인"이란 감사인사를 전하는 이도 있었다.

아무리 내과 전문의라지만 병원 밖에서 예기치 않은 사고가 벌어졌을 때 즉각 상황파악을 마치고, 응급처치를 시행하는 순발력을 발휘하리란 쉽지 않았을 터. 재빨리 약속을 청해 만나본 김진용 전무는 과연 범상치 않은 매력을 뿜어냈다.

KOICA 3년 파견경험…"가슴이 뛰었다" 김 전무가 한국노바티스에 합류한 건 올해 3월부터다. 이제 막 입사 7개월차가 됐다는 김 전무는 회사의 배려 덕분에 일주일에 반나절가량은 고대안암병원 국제진료센터에서 보낸다고 했다.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KOFIH)과 한국국제협력단(KOICA) 멤버로서 1년에 7~10일 정도는 파키스탄이나 캄보디아, 몽골, 팔레스타인 등 개발도상국을 찾고 있다. 한달에 한번은 노숙자 진료도 나간다. 병원설립부터 운영에 관한 컨설팅 업무와 의료인 교육, 환자진료까지 전부 김 전무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분야다.

고려의대를 졸업하고 내과 레지던트로 수련받았던 김 전무가 이토록 활동반경을 넓힐 수 있었던 데는 KOICA를 통해 3년간 몽골에 파견됐던 경험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나중에서야 전해들은 이야기지만, 살아생전 장학금 지원으로 15명의 박사를 키워내고 7년 전 돌아가시는 순간에도 장기이식을 통해 나눔을 실천했다는 선친(故 김성규님)의 영향도 무시할 순 없으리라 생각된다.

고대구로병원 내과전문의 시절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 자원봉사의사로 외국인 노동자들을 진료했던 김 전무는 1998년부터 2000년까지 몽골 환자들을 돌보면서 바깥 세상(?)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후 존스홉킨스대학에서 보건학 MPH(Master of Public Health)를 준비하는 동안 "진료실에서 환자를 기다리는 일이 내가 제일 잘하고 좋아하는 일인가"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됐다고.

몽골에서의 경험을 떠올릴 때마다 "폐렴 환자를 치료한들 집에 가서 계속 석탄을 때고 담배를 피우면 무슨 소용인가"와 같이 사회적 시스템 변화가 수반돼야 하는 문제들이 끊임없이 그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가슴이 뛰는 일'을 찾아다닌 건 아마 그 때부터였을 것이다. 몽골 환자가 많다는 고대안암병원과의 인연을 계속 이어가고 있는 것도 그런 연유다.

"제약사에서도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더라"

그런 김 전무와 제약회사는 얼핏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고대구로병원과 삼성서울병원 소화기내과에서 11년가량 대학교수 생활을 하며 WHO(세계보건기구) 등 국제기구 지원을 준비하고 있었던 김 전무가 제약업계에 발을 들여놓게 된 건 2012년이었다.

존슨앤존슨(J&J) 아시아태평양지역 헤드로부터 "인도, 말레이시아, 필리핀, 홍콩, 인도네시아, 호주, 뉴질랜드 등 아태지역 11개국을 총괄하면서 해당 지역의 의사들을 교육하고 적절한 치료가 이뤄질 수 있도록 돕는 자리가 있는데 함께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처음엔 의아했지만 "WHO가 아니라 제약사에서도 얼마든지 사회의 긍정적인 변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스승의 조언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고.

5년간 여러 나라를 다니며 새로운 깨달음을 얻어갔던 김 전무에겐 지난해 연말 한국노바티스의 제안이 새로운 도전의 계기가 됐다. 전공분야인 소화기내과를 초월하는 영역인 데다, '60명에 달하는 큰 조직을 잘 이끌 수 있을까'란 의구심을 떨쳐버리고 스스로에 대한 도전을 감행한지가 어느덧 7개월차다. 현재는 팀원들의 마음을 읽고 조직에 필요한 인재를 영입하거나 다양한 부서들과 소통하는 일에 열성을 다하고 있다.

10분이 1시간 같았던 긴박한 순간…"하늘이 도왔다"

얘기를 듣다보니 이런 김 전무가 참석했던 연주회에서 사고가 난 건 어찌보면 천운인듯 하다. 평소에도 교통사고가 나면 차를 세우고 달려가볼 만큼 주위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던 김 전무는 17일 저녁 교회 장로님의 초대를 받아 서울챔버오케스트라의 공연을 찾았다고 했다.

그런데 앙코르 연주를 마쳤을 때쯤 피아노 연주자였던 김용배 추계예술대 교수가 일어서던 중 왼쪽으로 쓰러졌다. 고목나무처럼 뻣뻣하게 넘어지는 모양새가 단순한 어지러움증 때문만은 아닌 듯 했다. 돌이켜보니 연주 중간에도 안색이 좋지 않은 게 호흡이 가빠보였던 것도 같고, 말로 설명하기 힘든 쎄한 느낌이 있었단다. 본능적으로 위기상황을 직감한 김 전무는 무대 위로 뛰어올라갔다. 계단이 있는 것도 모른 채 한걸음에 무대를 오른 걸 보니 "나도 모르게 괴력이 생겼던 모양"이라며 웃었다. 다행히 복도에서 두 번째 자리라 무대에서 가까운 편이어서 상황도 따라줬단다.

"눈떠 보세요!"라고 외쳤지만 반응은 커녕 호흡, 맥박도 잡히지 않았다. 김 전무는 김 교수를 똑바로 눕힌 뒤 상의를 벗기고 즉각 흉부압박을 시작했다. 미끄러운 무대 위에서 흉부압박을 지속하자니 어깨가 아파오는데 반응이 없자 조바심이 났다. 3분이 넘으면 뇌 손상 위험이 커진다. 불안감이 커질 때쯤 외과 전문의와 간호사 1명이 객석에서 올라왔고, 교대로 흉부압박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 사이 누군가는 "119에 연락해 달라"고 외쳤고, 예술의 전당 직원들 중 하나가 재빨리 입구에 있는 자동심장충격기(AED)를 가져다줬다. 도착한 AED로 2번가량 전기충격을 가하고 나니 심장이 뛰기 시작했고, 서서히 호흡이 회복되면서 김 교수는 의식을 찾았다. 계산해보면 상황발생 후 구급대원들이 도착해 차량에 동승하기까지 10~15분 남짓인데, 10시간처럼 느껴질 만큼 긴박했던 순간이다.

김 전무는 "아쉬움도 남지만 예술의 전당 관계자를 비롯해 여러 분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 덕분에 한 생명을 살릴 수 있었던 듯 하다. 불행한 상황이지만 천운을 타고 나셨다"고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이전에는 의료인이면서도 공공장소에 설치된 AED의 효용성을 의심했었는데, AED가 한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걸 경험하고 나니 AED 보급과 일반인 대상 교육이 더 활성화 돼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단다. 회사 차원에서도 직원들 대상으로 심폐소생술 교육을 시행하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사회의 긍정적인 변화를 위한 일 하고 싶다"

김 전무는 한국노바티스 의학부로 합류하게 된 배경을 "희귀난치성질환 등 신약개발에 집중하고 의료혁신을 추구한다"는 데서 찾는다. 스위스계 회사라 의사결정이 빠르고 극소수 환자들이 앓고 있는 질환에 관한 연구개발, 약품공급에 소홀히 하지 않는다는 점도 이직을 결심하게 된 이유 중 하나였다.

지금도 회사 차원에서 말라리아, 결핵 등 동남아 지역의 소외된 환자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에 관한 고민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이다. 우수한 인재들과 함께 팀을 성공적으로 이끌어가는 경험을 쌓은 뒤에는 재난의료지원이나 공중보건 분야에 종사하고픈 생각도 갖고 있단다.

임상현장 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후배들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는다는 김 전무는 "의사로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들이 생각보다 많다"며, "언제가 될지 모르나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되는 일이 생기면 도전해볼 생각이다. 진로를 고민하고 있는 후배들에게도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의 경계선상에서 고민하다보면 새로운 길이 보일 것이라 조언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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