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일동과 운명적 만남…"46년 영업외길 행복했다"
- 김진구
- 2020-03-09 11: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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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임 앞둔 정연진 일동홀딩스 부회장
- 평사원으로 입사해 최고경영인까지 입지전적 인물 귀감
- 불모지 병원영업 자원해 큰 폭 성장ㆍIMF 부도위기 극복 등 도전 연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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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 병원영업의 달인. 그렇다. 그에게 따라다니는 수식어다. 병원 매출이 회사 전체 실적의 1%였던 1975년, 황무지 같은 척박한 환경에서 병원영업을 시작한 그는 보란 듯이 회사를 큰 나무로 키워냈다.
반세기 동안 한 직장에서 한 직종으로 인생을 달려왔다면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존경의 대상이다. 바로 정연진 일동홀딩스 부회장(72)이다. 그야말로 청춘을 바쳤다. 46년을 한 곳에서 일했다.
정 부회장은 이번 임기를 끝으로 오랜 직장생활을 마무리하고 아름다운 퇴임을 준비하고 있다. 평사원으로 시작해 대표이사 사장ㆍ부회장까지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직위를 거쳤다. 많은 일이 있었고, 많은 일을 이뤄냈다.
서울 양재동 일동제약 본사에서 그를 만났다. 최고경영자 시절 ‘fun 경영’을 앞세웠던 그였다. 여전히 인터뷰 내내 유쾌했다. "가슴으로 영업해야 고객이 감동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그는 반세기 일동생활을 돌아보며 “정말 행복했다”고 말했다.
◆서울약대 엘리트는 왜 영업에 뛰어 들었나
1975년 한국나이로 스물여섯 사회초년병의 손에 영업용 가방이 쥐어졌다. 서울약대 출신에 ROTC로 복무하며 통역장교를 지낸 당시 엘리트에게 다소 자존심이 상할 법도 했다.
그러나 ‘발로 뛴’ 이 시기는 그가 일동맨으로 지내는 46년간 큰 영향을 끼쳤다.
“군 복무를 마치고 제약사에 입사원서를 냈다. 일동제약을 포함해 여러 곳에 합격했다. 더 큰 회사에 다닐 기회도 있었다. 당시 일동제약은 업계 10위권이었다. 일동을 선택한 계기는 특별할 게 없었다. 대학선배들이 좋다며 추천했고, 당시 살던 집에서 가까웠다.”
“입사하자마자 영업부에 배치됐다. 교육을 받는데 자존심이 팍 상했다. 완전히 외판원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지도교수를 찾아갔다. ‘자네는 영업을 하게, 앞으로는 영업이 꽃이 될 거야’라고 말해주셨다. 지금 생각하면 은인이다. 결혼식 때 주례도 서주셨다.”
◆불모지 종합병원영업 자원해 1년 만에 10배 실적
병원영업을 자원했다. 당시 불모지나 다름없던 곳이었다. 일동제약 매출의 99%가 약국에서 창출되던 시기였다. 입사동기들도 모두 약국영업을 원했다.
그러나 청년 정연진에게 1%의 조그만 틈은 기회로 보였다. ‘도전을 좋아하는 성격’이 영향을 끼쳤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리고 1년 만에 담당 매출이 10배 뛰었다.
“당시 일동은 사실상 (종합)병원영업이 없었다. 매출 99%가 약국에서 나왔다. 회의를 하면 병원 얘기가 나오는 법이 없었다. 일부러 병원을 택했다. 도전을 좋아하는 성격이다. 열심히 키워보고 싶었다.”
“종로구 일대가 담당지역이었다. 출장을 나가면 적선동에서 시작해 거래처들을 돌며 신설동 사무실까지 걸어서 복귀했다. 한여름에도 긴 와이셔츠와 양복 상의를 입고 정말 열심히 뛰어다녔다. 1년 만에 매출을 10배로 성장시켰다.”

그러나 그에게 쥐어진 무기는 많지 않았다. 후루마린, 큐란, 사미온 정도가 전부였다. 지금의 일동제약을 있게 한 품목이지만, 당시엔 존재감이 미약했다.
“모 대학병원을 예로 들면 당시 잘나가는 제약회사에서 매달 300만원씩 수금할 때, 우리는 겨우 1만4000원을 하던 시절이었다. 가지고 있는 자원만으로 어떻게든 매출을 늘려야 했다. 몸이 부셔져라 일을 했다. 매년 100%씩 매출이 늘었다.”
병원 문을 뚫기 위해 융통성을 발휘하기도 했다. 항생제 후루마린의 예가 그랬다. 후루마린 주사는 1g 용량으로 출시됐지만, 케이스에 따라 1g 미만의 저용량으로 나눠 써야 하는 경우가 많았고 단가도 상대적으로 높아 병원에서 잘 받아주지 않았다.
이 점을 극복하고자 후루마린 0.5g짜리를 만들자고 회사에 건의했다. 제조 작업이나 허가사항 변경 등이 필요한 만만치 않은 일임에도 현장의 요구에 맞추기 위해 밀어붙였다. 재빨리 0.5g을 내놓고부터 병원에서 주문이 늘기 시작해 매년 크게 성장했다. 후루마린은 지금도 세파계열 항생제 시장에서 1위를 지키고 있다. 현재 일동제약은 병의원사업부의 전문의약품 매출이 회사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1%였던 매출 비중이 가장 큰 사업부문이 된 것이다.
◆“오늘 부도난다” IMF 때의 아찔한 기억
1991년 부장, 1996년 이사로 초고속 승진했다. 처음 임원이 되고 이내 큰 사건이 터졌다. IMF 외환위기였다.
일동제약은 형제 회사였던 맥슨전자의 지급보증을 선 상태였는데 맥슨의 사정이 어려워지자 그 영향이 바로 일동제약으로 닥친 것이었다. 당시 맥슨전자는 국내 기술로는 처음으로 무선전화기 개발에 성공해 국내는 물론, 해외 진출 가도를 달리던 큰 기업이었지만 외환위기의 파고를 넘지 못했다.
지급보증을 섰던 일동제약 역시 경영이 극도로 어려워졌다. 정 부회장은 회사가 문을 닫을 뻔 했던 날을 정확히 기억해냈다.
“아침에 이금기 회장에게 전화가 왔다. 부도가 난다는 이야기였다. 오늘 돌아오는 어음 12억원을 막기 어렵다. 최종 부도가 날 것이라고 하더라.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추풍낙엽으로 쓰러지던 시기였다. 어떻게든 막고 싶었다. 알고 지내던 모 유통업체 회장에게 당장 전화를 걸어 도와달라고 했다.”
현 시세로 20억원 상당인 대치동 은마아파트(31평형)가 2억원 남짓하던 때로, 당시 12억원이면 작지 않은 돈이었다. 더구나 전에 없던 경제위기로 모두의 불안감이 극심했다. 흔쾌히 내줄 리가 없었다.
“처음에는 어림도 없다는 반응이 돌아왔지만, 내가 살던 아파트라도 잡힐 테니 도와달라고 사정했다. 긴 사정 끝에 결국 우리회사 약품 대금을 선결제하는 방식으로 융통해줬다. 그날 회사에 도착한 12억짜리 외환은행 수표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지금도 그 유통업체 회장을 만나면 ‘내가 당신을 살렸다’는 얘길 가끔 듣는다. 이후로도 몇 차례 더 어음 결제로 어려움이 있었는데, 가족과 가까이 지내던 병원장의 도움을 받아 위기를 넘겼다. 지금도 이들은 내가 각별히 모신다.”
“일동제약이 없어질 뻔한 사건이었지만 손 놓고 있을 수 없었다. 간절함이 있었다.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나를 믿어줬고, 일동을 믿었기에 가능했다. 당시 윤 회장님은 회사를 위해 사재를 내놓았고, 임직원들도 급여를 반납하면서 고통을 분담하고 허리띠를 졸라맸다. 나중에 결국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가긴 했지만 다함께 똘똘 뭉친 덕분에 우리는 공적자금 한 푼 받지 않고 3년 만에 워크아웃을 조기 졸업할 수 있었다.”
◆“46년 다닌 이유? 일동이 좋은 회사이기 때문”

46년간을 한 직장에서만 지낸 이유 혹은 비결이 궁금했다. 일동제약에 무슨 매력이 있는지 물었다. 우문을 던지자 현답이 돌아왔다.
“헤드헌터로부터 연락을 많이 받았다. 전무이사 시절엔 한 번 만난 적도 있다. 아니다 싶었다. 일동이 좋은 이유는 ‘좋은 회사’이기 때문이다. 좋은 회사란 것은, 좋은 문화가 있다는 것이다. 가족적이고, 복지도 좋다. 열심히 한 만큼 승진하고 대접받는다.”
입사 초기엔 윤용구 창업주와의 인연이 강력한 동기가 됐다.
“입사 초기, 윤 회장님과 3~4년간 같이 일한 적이 있다. 건강 문제로 병원을 모시고 다닌 적이 있는데, 그 분 인품에 큰 감동을 받았다. 이런 분이 또 있을까 하는 정도였다. 일동에서 끝까지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한 길만 팠다.”
◆“갑질 하지 말라, 주눅 들지 말라” 후배에 남긴 메시지
그는 일동제약을 ‘친정’이라고 표현했다. 고문으로 한 발 물러서지만, 친정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늘 응원하겠다는 것이다. 그에게 친정에 남기고 갈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우선 간부들에게는 ‘권위적인 상사가 되지 말고 리더십을 발휘하라’고 말하고 싶다. 직원들이 열정을 갖게끔 도와야 한다. 말로만 열정을 강조하면 안 된다. 배경을 마련해줘야 한다. 간절함과 절실함은 분위기가 만든다. 한 마디라도 힘을 주도록 하라.”
“요즘 트렌드에 맞춰라. 갑질하지 말라. 난 평생 을로 살았다. 일방적이어선 안 된다. 내 뜻에 무조건 따르도록 강요해선 안 된다. 무슨 얘길 하고 싶은지 끊임없이 귀 기울여야 한다. 쓴 소리를 더 새겨들어야 한다. 쓴 소리는 골든타임이 있다. 좋은 소리는 나중에 들어도 된다.”
일반 직원들에게도 당부의 말을 남겼다. ‘주눅 들지 말고 책임감을 가지라’는 말이었다.
“굳은 일에 먼저 나섰으면 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찾아서 일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의 긴 영업생활 동안 칠판에 적어뒀던 두 문장이 있다. ‘찾아서 일하자, 당장 시행하자’이다. 나는 누가 시켜서 일하지 않았다. 내가 먼저 병원영업을 키우고 싶었고, 큐란과 후루마린을 1등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주눅 들지 않았으면 한다. 자기정체성을 잃지 말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 어디 숨어있지도, 묻혀있지도 말길 바란다. 대신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는 책임을 가졌으면 한다. 월급을 받으면 그만큼 사명감을 갖고 일하길 소망한다. 마지막으로 건강관리를 잘 했으면, 부모님에게 효도했으면 한다.”
◆퇴임 후에도 일동맨 자처 “다른 기업 대신 봉사활동”

대신 그는 퇴임을 새로운 시작으로 생각하겠다고 답했다. 이제 일은 잠시 내려두고 봉사활동ㆍ무료강의ㆍ저술활동 등을 계획 중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기업에 갈 생각은 없다. 누군가로부터 자기 회사에 와 있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다른 누군가로부턴 기다린다는 얘길 들었다. 그럴 생각은 없다. 내가 일동의 귀신인데 어딜 가겠나.”
“그 대신 봉사활동이나 무료강의를 해보려고 한다. 아내가 알코올중독환자를 대상으로 한 봉사활동으로 '서예치료'를 하고 있다. 그걸 도울 생각이다. 무료강의도 생각하고 있다. 약업계 경영인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고 싶다. 시간이 난다면, 책도 써보려고 한다. 제약영업 담당자를 대상으로 내 경험과 노하우를 전해주고 싶다.”
◆퇴임 앞두고 그가 보내는 메일 “행복했다, 그리고 감사하다”
영업맨 출신답게 그는 ‘사람’의 중요성을 안다. 그래서 ‘소통’은 최고경영인 시절 그의 제1경영 키워드였다.
이른바 ‘fun경영’의 일환으로 진행한 젊은 직원과의 ‘햄버거 미팅’은 아직도 일동제약 내에서 회자된다. 실무자와 직접 소통하기 위해 그가 직접 고안한 이벤트였다. 조찬회ㆍ간담회는 딱딱해 보일 수 있어 이름을 붙였다. 업무나 회사와 관련된 이야기는 물론 사적인 고민, 심지어 농담까지 모두 허용되는 허물없는 자리다.
햄버거 미팅과 함께 그가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했던 일 중에 하나는 이메일이었다. 2011년 대표이사에 취임한 이래 매달 전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냈는데, 내용 중에 딱딱하고 권위적인 지시나 충고는 찾기 어렵다. 직원들에게 보내는 격려와 응원, 그리고 열정과 애사심을 고취하는 내용으로 가득하다는 평판을 받았다. 좋은 시구나 글귀도 덧붙인다.
그리고 그는 퇴임을 앞두고 주변에 메일을 보낼 계획이다. 그의 생각을 아내가 쓴 붓글씨로 담은 편지다. 아내는 서예가로 유명한 이정민씨다.

학군으로 군 생활을 마치고 제약영업이 뭔지도 모르고 운명적으로 입사했던 일동제약입니다. 자존심이 상한 적도 많았고 음주로 죽을 고비를 넘기며 불모지 병원영업을 개척, 지점장ㆍ사장ㆍ부회장이 되었습니다. 좋은 회사 일동제약을 명품회사로 만들기 위해 달려왔습니다.
일동제약 성장에 기여했다는 성취감ㆍ자부심으로 행복했습니다. 물론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습니다. 늘 버팀목이 되어준 친구들, 까다롭지만 결국은 내 편이 되어준 고객들, 선후배ㆍ동료들 평생 잊지 못할 행운이고 은혜입니다.
새봄이 왔습니다. 자연을 만끽하고 스스로를 돌아보며 소중한 것들을 찾아 일상을 열심히 살아볼 생각입니다. 제게는 마무리가 아닌 시작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이천이십년 삼월 정연진 배상.”
※이력 1968. 광주제일고등학교 졸업 1973.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졸업 1973. 육군소위 임관(ROTC 11기) 1975. 육군중위 예편 1975. 일동제약(주) 입사 1991. 일동제약(주) 부장 1996. 일동제약(주) 이사 2002. 일동제약(주) 상무이사 2003. 일동제약(주) 영업본부장 2005. 일동제약(주) 전무이사 2008. 일동제약(주) 부사장 2011. 일동제약(주) 대표이사 사장 2014. 일동제약(주) 대표이사 부회장 2016. 現 일동홀딩스(주) 부회장
◆대담=가인호 본부장 ◆정리=김진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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