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봉사활동에서 희망을 본 38세 약대생
- 김민건
- 2020-04-30 09:5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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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튜버·블로거·작가·탐험가 권세나 씨(동덕약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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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생(5학년) 실습 마지막날 만난 권세나(38·동덕약대) 씨가 자신을 소개하는 첫 말을 내뱉자 그 속에는 알 수 없는 단단함이 느껴졌다.
그는 26살에 직장을 퇴사해 자전거 전국일주를 떠났다. 28살에는 2년간 떠난 아프리카 봉사활동을 갔다. 나이 30에 결혼 후 다시 서른세살 학생(약대생)이 된 두 아이의 엄마는 내년 2월 졸업 후 약사의 길을 걷게 된다.
그는 모험연구소라는 블로그를 운영한다. 유튜브와 브런치까지 다양한 온라인 소통채널로 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만들고 있다. 이번 인터뷰도 그가 브런치에 쓴 약대생 실습기를 통해 이어졌다.
인터뷰 요청에 적극적으로 응해준 그에게 약사가 되려는 이유를 물었다. 연구원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방황하다 왜 아프리카까지 갔는지 말이다. 그는 현대인의 삶은 물질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전했다. 사람과 세상을 겪은 진솔한 그의 얘기에 마음 속 허한 공간이 채워지는 따스함이 느껴졌다.
데일리팜은 최근 분당의 한 커피숍에서 권 씨를 만나 약대생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었다. 권 씨는 일상과 감정, 경험을 기록하고 전함으로써 자신이 겪은 다양한 경험이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고 했다.

권 씨는 호기심이 많다. 직장 생활에 지친 그는 세상을 경험하고 싶어 퇴사했다. 그리고 아프리카 짐바브웨에서 봉사활동을 위해 한국을 떠났다. 그녀 나이 28살이었다. 한국에는 오래 만난 남자친구(지금은 남편)도 있었다. 도전과 경험, 배움을 하고 싶은 그의 결정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처음 아프리카에 도착한 그는 좌절을 느꼈다. 그는 "누굴 돕는다는 건 마음과 열정만으로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며 "실질적으로 도울 수 있는 기술과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걸 배웠다"고 했다.
그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삶을 바꿀 줄만 알았다. 열악한 환경에서 에이즈(AIDS)가 일상화 된 정말 불쌍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만의 삶의 방식에 따라 너무나 잘 살고 있었다. 오히려 물질적으로 풍족하지만 마음은 불행하거나 아픈 사람이 많은 우리보다 행복하게 사는 모습에서 자신의 편견과 오만을 알게 됐다.
권 씨는 "내가 이분들한테 도움을 주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며 "오히려 배워야 하는 게 많다고 생각할 정도로 밝게 살았다. 함부로 누굴 돕겠다는 동정심은 우월 의식을 가진 오만한 생각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잘 산다는 판단 기준은 제각각이다"고 했다.
다만 현지 의료시설은 열악했다. 상처가 곪아도 바를 연고조차 없었다. 근처 타운(마을)에 갈 차비나 병원비조차 없는 경우도 있었다. 봉사활동을 위해 가져간 비상약을 발라주며 그는 "내가 가진 작은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약사가 되서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겠다"고 느꼈다.
그에게 "아프리카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권 씨는 "아프리카는 내가 갈때까지 가 본 곳"이라고 말했다. 회사에서 일할 땐 바깥 세상에 무언가 있을 것 같고 궁금했다. 그렇게 간 아프리카에서 전혀 도움이 안 됐다.
그는 "세상 밖에 답이 있는 게 아니었다. 지금 내가 당장 도움을 줄 수 있는 능력을 만들거나, 지금 있는 자리를 단단하게 만들어야한다는 생각을 '끝까지 가본 아프리카'덕에 하게 됐다"고 말했다.
아프리카가 그가 약사의 길로 들어서게 만든 씨앗이 된 셈이다.

◆퇴사, 결혼, 경력 단절녀의 막막한 재취업...약대 도전
30살. 아프리카 봉사활동에 돌아온 그는 국제협력 분야에서 자신의 업을 찾으려고 했지만 경력 단절녀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취업 전선에서 계속 낙방했다. 여전히 특출난 기술이나 전공지식, 언어 능력 없이 열정만 가득했다. 그는 "실력은 안 키우고 열정만으로 취업하려 했다"며 "스펙보다 경력이 훨씬 중요한 나이에 내가 이룬 게 없다는 걸 느끼면서 더욱 초라해졌고, 회사에 가더라도 성격상 곧 관둘 것 같았다"고 말했다.
대학교 동아리 후배가 PEET(약대입문자격시험)를 알려주며 그의 삶이 변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기술을 가져야 한다는 걸 아프리카에서 느꼈기에 전문직이면서도 직장에 얽매이지 않는 약사를 택하게 된다.
2015년 PEET를 치르고 동덕약대에 들어간 그는 "오랜 만에 학교에 다니면서 느낀 건 누구에게나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오는 건 아니었다"며 남편과 가족들의 헌신적 노력에 감사해 했다. 방학에는 엄마로, 학기에는 약대생의 삶을 시작했다.
◆15주 실습, 코로나19 현장에서 본 약사..."화장실도 못 갈 줄이야"
독하게 마음 먹고 합격한 약대. 학기 중 방학을 보내며 두 아이도 낳았다. 이제 내년이면 국시를 치르고 약사가 된다.
그러나 약사 되는 과정이 쉽지는 않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마스크 대란과 사태를 경험했다. 약국 실습을 통해 밖에서 바라만 보던 약사의 일을 배우게 됐다. 매일 다양한 환자가 올 것을 대비해 미리 재고를 파악하고 약을 준비해야 했다. 공적 마스크도 팔았다.
여기에 실수도 터졌다. 헷갈리는 약이 너무 많았다. 고혈압제만 해도 비슷한 이름이 5~10개나 됐다. 권 씨는 "환자 건강과 직결되다 보니 실수할까 너무 긴장됐다"고 했다. 조제실 밖에선 환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빨리 조제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실수를 불렀다.
그러나 권 씨는 "약사님들이 검수해줘서 안전하게 전할 수 있었다"며 "한 번 실수하면 그 다음에는 안 하게 됐고 15주 실습을 통해 점점 실수를 줄여갈 수 있었다"고 했다.
권 씨는 "조제실에서 약도 지어보며 현실적인 약사의 모습을 많이 알게 됐다. 환자가 언제 올지 모르니 화장실 가기도 쉽지 않았다"며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하는 약사님도 있는데 쉬운 직업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자신의 삶을 기록하지 않으면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을 것 같아 쓰기 시작한 글쓰기는 새로운 인연을 만들며 그를 빛내고 있다.
예전처럼 누군가 돕겠다고 아프리카에 가지 않아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그를 찾아온다.
권 씨는 "돈과 직업에 상관없이 새롭게 도전하는 것에서 삶의 활력을 얻는다"며 "약사로서 약물, 약학적 지식은 갖춰야 하지만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정말 도울 수 있게 됐다"고 했다.
그는 계속 도전하는 약사가 되겠다는 꿈을 쫓고 있다. 약대에 가면 목표가 없어질 줄 알았는데 삶이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권 씨는 "자신을 아는데 제일 중요한 것은 다양한 경험"이라며 "그래야 몰랐던 나를 알게 된다"며 계속 도전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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