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치솟는 신약 가격, 경증질환 역시 큰 장벽
- 손형민 기자
- 2026-09-23 06: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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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팜=손형민 기자] '고가 신약' 하면 우리는 단연 항암제나 중증질환 치료제를 떠올린다. 실제 환자 접근성 논의도 그동안 중증·희귀질환을 중심으로 이뤄져 왔다.
하지만 최근 글로벌 약가 환경의 변화는 이러한 논의가 필요한 환자군을 넓히고 있다. 생명을 직접 위협하지는 않더라도 장기간 치료가 필요한 질환에서도 기존 치료보다 더 나은 효과나 투여 편의성을 갖춘 신약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최혜국대우(MFN) 약가 정책은 이런 변화를 촉발할 수 있는 변수 중 하나다. 미국이 다른 국가의 낮은 약가를 기준으로 자국 가격을 낮추는 방향으로 움직이면 글로벌 제약사 입장에서는 특정 국가에서 낮은 가격을 받아들이는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낮은 약가를 수용할 경우 그 영향이 국내 시장에 그치지 않고, 미국을 포함한 다른 국가의 약가 결정에도 반영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제약사가 해외 출시가격을 높게 설정하거나, 낮은 약가를 요구하는 국가에서는 출시를 늦추는 전략을 택할 가능성도 있다.
최근 국내에 도입되는 일부 신약의 비급여 가격도 환자가 장기간 감당하기 쉽지 않은 수준까지 높아지고 있다. 중증·희귀질환 치료제가 아닌데도 1회 투여나 일정 기간 치료에 필요한 비용이 상당해 실제 사용 여부가 치료 필요성보다 환자의 경제적 여건에 좌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 같은 가격이 일시적인 비급여 부담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초기 가격이 지나치게 높으면 향후 건강보험 급여를 추진할 때 필요한 가격 조정 폭도 커진다. 기존 치료제가 많고 환자 수까지 많은 질환에서는 제약사와 보험자 모두 급여 조건을 맞추기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
항암제는 전체생존기간(OS) 개선처럼 환자 편익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지표가 확보되면 고가이더라도 급여 논의를 이어갈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상대적으로 잘 갖춰져 있다. 희귀·중증질환 역시 산정특례, 위험분담제, 경제성평가 면제 등 환자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별도의 장치가 마련돼 있다.
반면 생명 위협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경증질환은 사정이 다르다.
질환의 중증도가 상대적으로 낮다고 해서 치료 필요성이나 새로운 치료에 대한 요구까지 낮은 것은 아니다. 생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더라도 증상이 장기간 지속되거나 일상생활에 반복적으로 불편을 주는 질환에서는 치료 선택지가 넓어지는 것 자체가 환자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기존 치료제가 다수 존재하고 환자 수도 많다면 신약이 기존 치료보다 효과를 높였더라도 높은 가격을 인정받기 쉽지 않다. 투여 횟수를 크게 줄이거나 치료 간격을 수개월까지 늘리는 등 환자의 치료 부담을 낮춘 경우도 마찬가지다.
급여 대상자를 제한하는 방식으로 해결하기도 쉽지 않다.
일부 암에서는 특정 유전자 변이나 바이오마커, 치료 단계 등에 따라 신약의 투여 대상자를 비교적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다. 반면 피부질환이나 알레르기질환을 비롯한 상당수 만성질환은 치료 효과를 얻을 환자를 사전에 명확하게 선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증상의 정도나 기존 치료 실패 여부를 기준으로 환자군을 나눌 수는 있지만 가격에 맞춰 급여 대상을 지나치게 좁히는 데는 한계가 있다. 같은 질환에서도 증상의 정도와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환자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결국 높은 가격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도 어렵고, 환자군을 정교하게 선별해 제한적으로 급여를 적용하기도 쉽지 않은 구조가 만들어진다.
이때 가장 현실적인 선택은 기존 치료제를 계속 사용하는 쪽으로 기울 수 있다.
신약이 더 좋은 효과를 보이거나 투여편의성을 개선해도 이미 사용할 수 있는 치료제가 있다는 이유로 실제 진료현장에서는 선택지가 제한될 수 있다. 허가된 신약이 존재하더라도 높은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일부 환자만 이를 사용할 가능성도 있다.
국내 출시가격과 건강보험 급여 과정에서 인정되는 가격 사이의 간극이 지나치게 커지면 제약사 역시 큰 폭의 가격 인하를 감수하면서 급여를 추진할 유인이 줄어들 수 있다. 특히 해당 가격이 미국 등 다른 시장의 가격 전략과 연결된다면 국내에서만 별도로 낮은 가격을 수용하기는 더 어려워진다.
고가 신약의 접근성 문제를 중증질환의 문제로만 볼 수는 없다. 중증도가 상대적으로 낮더라도 기존 치료로 충분한 효과를 보지 못하거나, 더 나은 치료 선택지가 있음에도 가격 때문에 이를 이용하기 어려운 환자들이 생길 수 있다.
환자 접근성의 사각지대는 반드시 생명을 위협하는 중증질환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치료 필요성이 분명한데도 높은 가격과 제도적 한계 때문에 새로운 치료의 혜택에서 벗어난 환자군 역시 살펴봐야 한다.
글로벌 약가 환경이 빠르게 바뀌는 만큼 국내 약가·급여정책도 중증·희귀질환 중심의 접근을 넘어, 신약의 임상적 가치와 환자의 치료 접근성을 어떻게 균형 있게 반영할 것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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