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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가협상 부속합의 이행안해도 '속수무책'

  • 최은택
  • 2010-01-05 06:28:25
  • 다국적 J사, 신약 급여 유지…정부 "전문가 의견들어 판단"

건강보험공단과 제약사간에 체결된 약가협상 부속합의가 유명무실한 것으로 드러났다.

부속합의를 안지켜도 건강보험공단이 독단으로 제재조치를 가할 수 없는데다, 이미 급여 의약품으로 공급된 제품을 목록에서 삭제하는 것이 수월치 않기 때문이다.

다국적사인 J사는 자사 혈액암치료제와 에이즈치료제의 급여등재를 위한 약가협상을 2008년 5월 건강보험공단과 체결했다.

이 신약들은 같은 회사의 제품을 동시에 테이블에 올려 협상을 타결한 성공적인 ‘패키지’ 협상사례로 주목받기도 했다.

J사는 당시 두 약물 모두에 대해 ‘보험급여 대상으로 안정적인 공급이 가능토록 노력한다’고 부속합의 했고, 혈액암치료제에 대해서는 ‘약가협상 완료 14개월 이내에 급여기준 상의 용법.용량으로 식약청 허가사항을 변경 완료하기로 하고, 불이행시 급여제외하기로 한다’는 합의를 덧붙였다.

이는 급여기준과 식약청 허가사항이 달랐기 때문인데, 건강보험공단은 보다 비용효과적인 급여기준에 맞춰 허가사항을 변경할 것을 이 합의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했었다.

문제는 부속합의 이후 14개월이 경과한 지난해 7월까지도 J사가 허가사항을 변경시키지 못하면서 불거졌다. 원개발사를 합병하는 과정에서 진행중이던 임상시험이 일시 중단됐고, 그만큼 FDA 승인절차가 늦어져 손을 쓰지 못했던 것이다.

건강보험공단은 이에 곧바로 합의이행을 촉구했고, J사는 ‘FDA 허가변경 이후 6개월 이내’로 부속합의를 변경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건강보험공단이 독단으로 제재를 가할 근거가 없어 이 합의위반 사건은 복지부로 넘겨졌다.

물론 복지부도 고민에 빠졌다. J사가 부속합의를 이행하지 않은 것은 맞지만 약물의 임상적 가치가 의심되거나 부작용이 발생하는 등 다른 문제가 발생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미 상당수의 환자들이 이 신약을 사용하고 있어서 비급여 전환할 경우 막대한 본인부담금을 감당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된다.

이에 따라 복지부는 일단 심평원 급평위에 공을 넘겨 이 신약이 진료상 반드시 필요한 약제(필수약제)인지를 검토해 달라고 요청했고, 이 약물은 비급여 전환이라는 제재없이 현재까지도 급여 의약품으로 판매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급평위는 지난달 “필수약제는 아니지만 이미 환자들이 많이 사용하고 있는 점을 고려해야 하고 진료상으로도 필요한 약물”이라는 심사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복지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급평위 검토결과와 전문가들의 의견 등을 토대로 급여유지 여부를 최종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합의를 지키지 않았다고 해서 반드시 급여에서 삭제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으로, 부속합의 위반자체만을 판단기준으로 삼지 않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이 회사는 이 혈액암치료제 뿐 아니라 에이즈치료제에 대한 급여 공급을 중단함으로써 부속합의를 어겼다.

회사 측이 “환자들을 위해 무상공급하고 있다”고 해명했듯이 합의를 이행하지 않은 것이 진료현장에서 당장 어려움이나 혼란을 초래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부속합의에 이 조항이 들어간 것이 에이즈치료제 ‘푸제온’의 사례에서처럼 필수약제의 안정적인 공급이 위협받지 않도록 '안전판'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상기하면 J사의 '선의'가 타당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환자단체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정부와 공단의 무능함의 극치를 보여준 사례”라면서 “J사는 약가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당국을 농락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합의내용을 지키지 않은 제약사에 제제조치를 취할 수조차 없다면, 부속합의는 무용지물이고 합의서는 쓸모없는 종이쪼가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지금이라도 문제의 혈액암치료제를 급여에서 신속히 제외시키고, J사는 패널티 차원에서 임상이 종료돼 합의를 이행할 수 있을 때까지 환자들에게 제품을 무상 공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민단체 한 관계자는 “에이즈치료제에 대한 급여공급 위반은 심각한 문제”라면서 “글로벌 프라이스 정책을 유지하기 위한 다국적사의 꼼수에 다름 아니다”고 비판했다.

J사 측은 그러나 "논란이 된 혈액암치료제의 효과와 가치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만 당초 일정보다 허가변경이 지연되고 있을 뿐이고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것"이라고 해명했다.

FDA 승인심사도 현재 진행 중이어서 머지 않은 시점에서 문제없이 허가변경이 이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회사 측은 또 "비급여 조정됐을 경우 환자들이 받을 피해와 부담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면서 "정부도 이런 점을 고려해 숙고 중인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한편 건강보험공단은 현재 논란이 된 혈액암치료제에 대한 '사용량-약가연동제' 가격조정 협상을 앞두고 있다. 이 제품이 당초 예상 판매량보다 사용량이 30% 이상 초과됐기 때문.

건강보험공단 관계자는 이에 대해 "사용량-약가연동제에 의한 가격 재협상만 테이블에서 논의할 뿐 급여여부에 대한 판단은 복지부의 몫"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급평위 등을 통해 급여유지 여부를 판단하는 동안에도 건강보험공단은 황당하게도 문제의 의약품에 대한 약가협상을 별개로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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