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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사람, 실패한 사람 차이는…"

  • 조광연
  • 2011-04-13 06:50:00
  • 제약업계 45년 은퇴한 최현식 GSK 고문

그를 9일 오전 세종문회회관 근처 스타벅스에서 만났다. 아메리카노 커피 두 잔을 샀다. "조용한데로 올라 갑시다. 젊은 사람들 따라 몇 번 와 봤는데 4층이 조용합디다."

봄 햇살은 눈부셨고, 싸늘하게 느껴지는 봄기운은 아릿했다. "그래 뭔 할 얘기가 있다는 거유. 내가 뭔 한일이 있다구."

말쑥한 양복과 단정한 셔츠, 반짝이는 커프스 버튼은 기자가 업계에 몸 담은 후 대략 20년간 보아온 모습이었지만, 이날 따라 더 근사했다. 45년 동안 약업계 현장을 누비며 새긴 주름에 햇살이 내려 앉았다. 연륜과 신뢰감과 안정감이 흩어졌다.

그는 은유적이다. 화두를 던지고, 먼 외곽으로부터 서서히 좁혀오며 스스로 풀어나가는 스타일이다. 지루한듯 시작돼 나중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고나 할까.

최현식 고문은 그런 인물이다. 그는 지난 3월 말로 GSK 상임고문직을 물러났다. 대한중외제약(현 JW중외제약)을 통해 약업계에 입문한지 45년만이다. 평사원으로 시작해 중외제약 사장과 부회장을 거친 후 글로벌 기업인 GSK에서 8년정도 몸담았다가 은퇴했다. 직장인으로서 1모작과 2모작을 성공적으로 해냈다.

제약업계의 영원한 멘토 "기본에 충실하고 싶었어요"

"어떻게 지내십니까"라는 평범한 안부인사는 "실업자가 과로사 한다고…정신없이 바쁩니다"라는 농으로 되돌아 왔다. "담배 피우슈?" "아예, 피긴 하지만 어르신 앞에서 어찌…"라고 하자 "그럼 같이 합시다"며 담배를 건넨다. "어쩐 담." 마음이 반반으로 갈라진다.

풍상의 45년을 압축하고 싶었다. "45년간 직장 생활을 지탱한 힘은 무엇일까요"라고 물었다.

최 고문은 "기본"이라고 했고 그 '기본'은 바를 정(正)으로 귀결됐다. "난 기본을 알고, 기본에 충실하려고 했어요. 인생철학이라고 해 둡시다." 그러면서 약사로 중외제약에 입사해 영업부를 지원했을 때 기본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 경험담을 소개했다.

필연처럼, 우연처럼 약업계에 입문한 최현식 GSK 상임고문이 최근 은퇴했다. 약업계 인생 45년이었다. 그의 이야기는 아메리카노 커피 한잔으로는 부족했다.
"당시 중외는 5% 포도당 정맥 주사제를 판매했는데 종종 부작용 문제가 있었죠. 약 만드는 것은 정확했는데 문제는 두께가 다른 병과 재생해서쓰는 수액 주사 키트에 있었던 겁니다. 유통과정에서 병끼리 부딪쳐 약한 부분에 미세하게 금이갔고, 재생 과정에서 남아있던 오염이 문제를 일으킨 겁니다. 약이라는게 뭡니까. 정확해야죠. 바로 바를 정(正)이에요. 유리병이나 키트가 다 정(正)해야죠. 이 때 큰 깨달음을 얻었어요. 내 직장 생활도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이렇게 말이죠."

그러면서 그는 "이 시대의 뉘앙스로 정은 정직이에요, 조직으로 끌어들이면 CEO에게는 정도일 겁니다. 그런데 말이요, 기본에 충실하다보면 주변에 신뢰(trust)가 쌓입디다"라고 말했다.

그는 보이지 않는 가치에 헌신하다보니 45년간 약업계에서 활동할 수 있었다고도 했다.

"우리가 살아온 과거는 다시 말해 절대빈곤의 시대에는 가치판단 기준이 하드웨어였어요. 요즘에는 소프트웨어, 다른 말로 보이지 않는 가치도 주요한 판단기준이잖아요. 그 왜 검은 티셔츠에 청바지 입고 나와 프리젠테이션하는 스티브 잡스가 보이지 않는 가치의 상징 아닐까요? 나도 기본에 충실하려 했으니 보이지 않는 가치를 추구했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니 GSK 이동까지 45년을 현업에 남아있을 수 있었겠죠. 하지만 늘 일관됐던 것은 아닌가봐요. 중외에 있을 때 이종호 회장님에게 '좋은 차 타시는게 남보기도 좋습니다'고 했으니 말이죠. 허허."

그의 말투는 느리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솜씨로는 달변이다. 달변의 창고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책 100권 읽은 사람 만나서 해결하는 스타일"

"난 책은 안봅니다." 의외다.

'세상에서 책 한권 읽은 사람이 제일 무섭다'거나 '저축하는 사람과 책 읽는 사람은 당해내지 못한다'는 식으로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들이 지천인데 책 읽기를 싫어한다고? 대표이사 사장도하고, 부회장도 역임했는데?

"지식가치의 시대라지만 책을 안 읽어요. 내가 원체 활동적인 성격이라 책 못봐요. 대신 책 100권 읽은 전문가를 만나 술대접하고 차대접하면서 듣고 배웁니다. 이야기 안에 키 메시지가 다 들어있어요. 풀어야할 문제나, 난관에 부딪히면 전문가 몇 사람을 만납니다. 여기서 최대공약수를 뽑아내고, 벤치 마킹합니다. 그렇다고 책 읽는 것을 무가치하다고 하는 건 아니니 오해는 마세요. 내 방식이 그렇다는 겁니다."

중외제약 대표이사 사장으로 재직 당시 모습.
그래서 일까. 그는 약업계 후배들에게 "일터가 뭐라고 생각하시우?"라고 즐겨 묻는다. 그리고는 예의 '현장론'을 설파한다. 그래서 그에게는 약업계의 '멘토'라는 칭호가 따라 붙는다.

"일터는 말이요, 문제가 있는 곳이에요. 사무실이 아니란 말이죠. 모든 문제가 그 현장에 있는거고, 그 현장에 해결책도 있어요."

그가 강조하는 것 중에는 기브앤 테이크(Give&take)도 있다. "인간은 세상에 나면서부터 사회 생활을 하는 존재잖아요. 사회 생활의 근간은 뭔가 주고 받는 행위에요. 심지어 갓난 아이도 엄마 젖을 먹고, 쌩긋 웃어주는 것으로 엄마에게 기쁨을 주잖아요. 그래서 더 잘 키우도록 엄마의 마음을 자극하잖아요. 이건 내가 신입사원들에게 아주 강조하는 겁니다."

그는 이 같은 논리의 연장선에서 성공한 사람들과 실패한 사람들을 구분한다.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남에게 주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실패한 사람들은 극구 받기만을 원하는 사람인 거죠. 누구든 주변에 줄 생각을 스스로 각인시키면 성공할 수 있다고 봅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알았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말이죠, 바라는 성공이 무엇이든 명예와 권력과 금전은 결코 다 가질 수 없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다가지려 할 때 문제가 생기니까요."

"일은 내게 있어 유일한 취미였다"고 말하는 그는 "이제와서 살펴보니 앞만 보고 달리지 않아도 쓰러지지 않는다는 사실도 깨닫게 됐다"고 말한다.

국내 기업과 외자 기업을 모두 경험한 그의 눈에 비친 두 기업집단의 차이는 무엇일까.

"외자로 옮긴 뒤 제품력 하나 믿고 너무 일방통행하지 마라, 고객 무시하지 마라, 당신들이 잘났다고 생각말고 겸손하라고 떠들고 다녔죠. 그렇지만 국내 제약회사들이 가격기반의 마케팅을 하는데 비해 외자사들은 확실히 과학기반의 마케팅에 강점이 있더라구요. 물론 제품력 등 태생적 자산의 차이가 있다쳐도 이 점은 국내 제약회사도 배워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부, 국내 제약산업 앞날도 생각해 줘야죠"

1970년대 초반 과장 최현식. 그의 날카로운 눈매가 범상치 않다.
제약산업 초창기, 그러니까 그 역시 젊은 시절 당시 이종근 제약협회장(작고)을 독대해 덤핑가격을 방지하도록 건의했고, 예상대로 좋은 결과도 이끌어 냈던 그는 앞으로 국내 제약산업을 걱정했다. "당시 가격 카르텔을 형성한 거니까, 제약업계 담합의 원조겠지. 공소시효 끝났으니 안 잡혀 갑니다. 당시엔 회사들이 스스로 기반을 깎아 먹었다면 이젠 시장을 축소하려는, 그래서 건보재정을 줄이려는 정부의 각종 정책으로 제약산업이 위기를 맞았거든요.

제네릭이 국내 제약산업에 큰 보탬이 됐지만 이젠 다국적 제약회사들도 제네릭 회사를 합병해서 뛰어들고 있잖아요. 혁신신약이 고갈되니까 말이죠. 앞으로는 제네릭도 쥐어짜는 시대가 도래할 거에요. 하지만 정부도 건강보험 재정의 중요성 못지 않게 산업의 앞날도 함께 고려했으면 합니다."

"군인 아버지의 피를 받았다"고 철저히 믿고있는 그는 ROTC를 통해 군생활을 했고, 지금도 한국전쟁에서 순직한 아버지의 공로로 받은 국가유공자 자격증을 지갑에 소중하게 넣고 다닌다. 그는 친가외가 모두 만석꾼으로 불렸지만 수업료 면제를 바라보고 국립 서울대에 진학했고, 공대를 가려했으나 고등학교(경복고) 담임선생님이 '합격률 높이자'며 약대를 보냈으며, 기갑장교를 하려했으나 보병 직분을 받았고, 제대해 먹고 살일을 찾다보니 대한중외제약에 몸담게 됐다.

우연처럼, 필연처럼 그의 인생은 제 갈길을 잡아 평사원에서 전문경영인으로, 외자 기업의 코치(고문)로 45년을 수놓았다. "한국엔 아내와 저 밖에 없어요. 한달 정도 자식들과 친척들이 있는 미국에서 마음을 추스리고 싶어요." 아직도 80대 중반을 치는 그의 골프실력을 보면 생물학적 나이에 0.7을 곱해야 실제 나이라는 그의 말이 허언만은 아닌 듯하다. 그래서 '40대 후반' 그의 인생은 어떻게 펼쳐질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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