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 저를 기억해 제주에 오신다면…"
- 조광연
- 2011-06-29 06:4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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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희연서 인생 3막을 시작하는 임선민 전 한미약품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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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조천읍 6만평 부지에 조성된 유기농 녹차밭 '다희연'이 인생 3막의 무대. 7월 다희연(www.daheeyeon.com) 대표에 취임하는 그는 녹차밭을 테마가 있는 공원으로 가꿔 지친 영혼의 쉼터로 만들겠다는 그림을 하루에도 수 차례씩 머릿 속에, 스케치 북에 그렸다 지웠다 반복하고 있다. 그는 "상상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고 말했다.
24일 오후 시내 이탈리안 식당에서 만났을 때 그는 300CC짜리 맥주 한잔을 시켜놓고 말문을 열었다. "회사 그만두고 성지 순례하고 문인들과도 만나면서 아, 드디어 내게도 선택의 자유와 권리가 생겼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테마공원에다 내 생각과 꿈을 마음껏 표현하고, 사람들과 그것을 나누는 일로 제3의 인생을 채우고 싶습니다." 이 삶이 메인 잡(Main job)이라고도 했다.
"그동안 많은 분들에게 진 신세와 사랑을 갚으며 살겠다"는 그는 "누구든지 (저를) 기억해 제주로 찾아오시면 다희연 동굴카페에서 유기농 녹차와 맛있는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말했다. 이제부터 받게될 월급은 좋은 분들과 정을 나누며 살아가는데 모두 쓰고 싶다고 강조했다.
37년간 의약계 사람들과 맺은 인연, 영업현장의 소중한 경험과 성공 사례는 꼭 글로 남길 생각이다. "쉬는 동안 제약관련 강의를 몇 번 해봤는데 반응도 좋았고 저 자신도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제약영업부 교육이나 전략 입안 자문에는 응할 겁니다."

-어쩌다 제약업계에 발을 들여 놓으셨나요.
"약을 잘 알아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영어를 못해서 였겠지요."
-영문과 출신이신데요.
"그게 아이러니지요. 사실 그 때 2차 오일 쇼크로 취직이 어려웠어요. 거기다 5년 사귄 여자 친구와 결혼도 해야 했구요. 제약사 영업직은 전공 불문, 실력 불문으로 다른 분야보다 조금 더 문이 넓은 편이었어요. 사회 생활의 첫 출발치고는 너무 싱거운가요?"
-그러면 첫 회사는 어디였나요.
"1974년에 시험에 합격해 들어간 곳이 동광약품이었죠. 당시 매출 기준으로 따져보면 랭킹 2위 회사였어요. 외국계 산도스와 제휴를 하는 등 대단했죠."
-한미약품과는 어떻게 연이 닿으셨나요.
"1979년 당시 매출 2위였던 영진약품에 경력직으로 들어가 한 13년 일했죠. 알고 지낸 친구가 내 의사와 관계없이 추천을 했었죠. 어쨌든 제가 영진약품 최초의 영업분야 경력사원이 됐는데 저를 위해 주임대리라는 직위를 새로 만들어 줬어요. 월급은 1만원 더 받았죠. 그러다 1992년 한미약품에 스카웃됐어요. 2008년 한미가 매출 2위에 올랐으니 유독 2위와 인연이 깊은가 봅니다."
-가는 곳마다 좋은 성과를 거두셨는데요.
"그 때마다 위·아래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지요. 특히 후배들을 잘 만나 빛을 봤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위로 갈수록 하는 일이 제한적이 잖아요. 요사이 후배들을 더욱 사랑하며 살겠다고 다짐하는 것도 이 때문 입니다."
-제약 영업의 레전드라는 칭호를 갖고 계신데요.
"(제가) 레전드일까요? 어쨌든 1974년 동광약품 병원영업부 창설 멤버로 들어가 전국 의원급 시장을 매달 수백개씩 신규로 개척했어요. 서울 세검정에서 동대문까지 걸어다녔죠. 한번은 한의원 간판을 잘못 보고 들어갔다가 직원들에게 무좀약을 팔았던 적도 있습니다. 요령 모르고 참 미련하게 구석 구석을 누볐죠."
-이게 소위 말씀하셨던 코스 콜(Course call)의 시작인가 봅니다.
"맞습니다. 시간을 아까워 하다보니까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더군요. 출근해 아무일 안해도 저녁 때면 5건 정도 주문이 들어오던 시기라 회사에서 나오면 영업사원들끼리 몰려다니며 놀고는 했는데 전 그게 싫더라구요. 체질에 안맞았던 거죠. 같이 놀지 않는다는 이유로 선배들에게 비아냥도 꽤 들었어요. '왜 그렇게 직장생활 빡빡하게 하느냐, 오늘 하루 같이 놀자'던 한 선배와 길거리에서 실랑이를 벌이다 서류가 땅바닥에 쏟아지기도 했습니다. 그건 사실 선배와의 투쟁이 아니라 제안에서 꿈틀대던 나태와의 전쟁이었던 셈이죠."
-의원과 종합병원 영업은 다르다는 게 통설인데 공히 모두 성공 사례를 쌓으셨습니다.
"영업의 근본은 같은 겁니다. 성격은 다소 달라 보이겠지만 전 종합병원 거래처에 상주하면서 현장을 지켰어요. 그러다보면 병원이 돌아가는 모양새가 보이고, 부담없는 인적관계를 형성하다보니 그들과 공감대가 넓어져 자연스레 실적으로 연결이 되더라구요."

"저는 사장 이전에 선배로서 직원들과 함께 하려했어요. 영맨을 자처했습니다. 영업이 힘들어지는 곳에는 영업본부장, 영업부장으로 전진배치돼 여러번 백의종군했습니다. 우연을 기대하는 것이 영업의 최대 걸림돌이에요. 어떻게 되겠지 하는 근거없는 낙관은 결국 나쁜 결과를 초래합니다. 제가 나름 아이디어가 많은 편이기는 했지만 요령을 피우지는 않았죠. 섬김의 자세로 다가서서 고객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나 짐작을 해 볼 따름입니다."
-한미약품 퇴임후 성지 순례를 다녀오시고 문학인들과 자주 어울리셨는데 무엇을 비우고 채우셨나요.
"조형, 거참 거창합니다. 제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미묘한 변화를 매일 감지했지요. 일하는 것보다 쉬는게 더 힘들더군요. 무보수로라도 일 좀 했으면 좋겠다 싶을 즈음 이스라엘과 요르단 성지로 떠났어요. 인간의 한계를 절감했죠. 항상 준비하는 삶의 소중함도 느끼고 새로운 다짐도 했어요. 결론적으로 앞만 보고 달리는 생활은 누구에게도 권하고 싶지 않고요, 뒤도 보고, 옆도 보고, 자신도 보고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사람들에게 하고 싶어요. 스님도 절을 떠날 수 있어야 한다는 깨달음도 있었죠."
-떠나서 바라보니 일은 어떤 거 였나요.
"직장은 그리고 일은 스스로 참여할 때 에너지가 생기고 여기에 아이디어, 경험, 인맥 등이 합쳐치고 어우러져 시너지로 커지더군요. 떠나서 나의 길을 걷다보니 인간관계의 허실도 좀 보이데요. 그래서 또다른 시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저는 언어를 다루는 문학인을 좋아해요. 그들에게서 경제활동 이외의 내면적인 인간미를 본 것은 큰 소득이었어요."
-한발짝 물러서 제약산업을 바라봤을 때 어떤가요, 모양새가.
"제약산업이 고군분투합니다. 국민들의 인식이 썩좋지 않은 가운데 정부조차 부정적 측면만 부각시켜 다스리려 합니다. 사면초가죠. 제약회사 책임도 많습니다. 장사 이전에 기업다운 비전과 이미지 관리가 약하니 경쟁의 틀에서 이전투구가 벌어지는 겁니다. 큰 대중언론들은 전문성이나 속사정도 모르면서 단편적 흥미기사로 일관합니다. 제약협회 책임도 있습니다. 의사협회, 병원협회, 약사회, 도매협회 등 유관단체와 비교해도 핵심역량이 매우 부족하죠. 정부도 규제 단속만 강조하지 말고 분야별 담당부서를 정해 멘토링 시스템을 가동해 제약산업을 이끌어 가야 한다고 봅니다. 정부의 비전이 명료해야죠. 칠흑같은 밤, 항해하는 배를 견인해 주는 등대처럼."
-그런데 업무를 영문 이니셜로 요약하는 이유는 뭔가요. 영문과 출신이라 그럴까요.
"영진약품에서 일할때 전략수립 워크숍에서 타이틀을 '패션(Passion)'으로 내걸고 모든 영업사원들을 열정으로 뭉치려 고민했던 적이 있습니다. 사실 현장과 본부의 거리감을 줄이는데는 메시지 전달이 아주 단순해야 합니다. 이 때 압축 이니셜이 효과적입니다. 재미도 있고, 대외비적 관리에도 한몫 합니다. 다 옛날 이야기가 됐습니다만."
-야구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주 좋아합니다. 감독들의 작전을 읽을 수가 있거든요. 선수 역량이나 두뇌 플레이, 시원한 안타, 베이스 러닝이 어우러져 있잖아요. 가끔 감독의 실수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선수 교체시기의 실수가 눈에 도드라지죠. 회사도 선수교체를 적기에 해야하고, 또한 공정하고 전문성 높게 심판을 봐야 합니다."
-최근 읽은 책이 궁금한데요.
"잘 안봅니다. 요즘 정신과 이홍식 교수님의 '나는 나를 위로한다'는 책을 보는데 머슴생활을 한 저같은 직장인들이라면 한번 읽어보시면 좋을 거에요. 덧붙여 '남이 너희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주어라'라는 성서 말씀을 후배 영맨들에게 보내고 싶습니다."
-약업계의 이름난 수집가세요.
"콜렉션은 정리, 정돈, 참을성이란 말과 엮여있어요. 골프티 2500개를 비롯해 88올림픽 복권 1회부터 마지막 291회까지 2037일 동안 2질을 모았죠. 돈만 못 모았지 여러가지를 많이 모았어요."
-퇴임후 일상, 어떻게 보내셨나요.
"BMW(버스, 지하철, 도보)했어요. 다니면서 사람 구경도 하고, 동창회 운동회와 등산 모임에도 나갔죠. 고향 충남 광천에 내려가 몇 년후를 구상도 하고, 찾아오는 후배들과 대취하기도 하고 그랬어요. 직장 다니며 보았던 세상과 마음이 가벼워진 요즘 바라보는 세상의 풍경은 다르더라구요. 당장은 아니겠지만 고향 광천에서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과 어울려 막걸리를 마시며 정담을 나누는 그림을 상상합니다."
-전 한미약품 사장이라고 불리는 것이 서운하지 않으신가요.
"그렇지는 않아요. 제가 알고보면 좀 바쁩니다. 하하하. 송파문화원 부원장, 대한고혈압관리협회 부회장, 한국AIDS예방협회 부회장, 경희대총동창회 부회장, 서울성모병원건진센터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거든요."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은 뭘까요.
"담배를 끊은 거죠. 한미약품에서 상무로 진급될 줄 알았는데 안됐어요. 운동마치고 우울하게 차를 몰고 오면서 대체 부족한 게 뭘까를 생각하며 담배를 꺼냈죠. 하루 3갑은 필때죠. 헌데 불쑥 끊어보자는 생각이 스쳤어요. 제가 떡본김에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차 문을 열고 담배와 라이터를 밖으로 던졌는데 하필 젊은 남자의 차속으로 들어갔어요. 그 친구, 얼마나 내게 욕을 해대던지...참 무참한 날이었죠."
-원래 술체질도 아니었다며 지금은 대취를 말씀하십니다.
"영업 현장 술자리서 소주 한잔에 정신이 혼미한 겁니다. 이거 안되겠다 싶었죠. 그래서 매일 저녁 소주 한병 집에 사들고가 거울 앞에서 마셨어요. 술잔이 늘어날 수록 어떻게 변해가는지 살피면서 한잔 마시고 흐트러지면 그만...두잔 마시고 흐트러지면 그만하다 보니 늘더군요. 필요성 때문에 술을 배웠어요. 결국 잘 마시게 돼 필요성도 충족했지만...이젠 좋은 분들과 대화를 나누며 여유롭게 그리고 훈훈하게 마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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