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상의 후예, 제약에 신뢰를 입히다"
- 이탁순
- 2014-05-02 06: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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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약 선진화 이끌고 영면한 고 김신권 한독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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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제약사 훽스트사와 합작을 토대로 1970년대 일찍이 해열진통제 등 의약품 원료의 독자적 생산을 시작, 국내 제약업계의 자체 생산 능력을 끌어올렸고, 선진적인 노사문화와 사회공헌활동을 정착하며 현대 제약기업의 초석을 다진 1세대였다.
고인은 열아홉살 때 만주 단둥시에서 약방을 개업하고 한독 명예회장으로 타계하기 전까지 70년이 넘는 일생을 약업계에 몸담았다.
조선 후기 대청 무역활동을 펼쳤던 만상의 본거지인 의주 출신인 고인은 실제로도 상도(최인호 장편소설)의 주인공인 거상 임상옥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고인의 친외조부가 소설 상도에 등장하는 만상 백홍준이라는 점도 임상옥의 상업논리를 따랐던 이유일지도 모른다.
고 김 회장은 '사람을 남기는 장사'라는 임상옥의 말처럼 신뢰를 바탕으로 한 경영철학으로 기업을 가꿔왔다.
*1922년 평안북도 의주 출생 *1941년 중국 만주 단둥시에 약방 개업 *1954녀 연합약품 창설 *1957년 독일 훽스트사와 기술제휴 *1964년 독일 훼스트사와 합작제휴 *1985년 업계 최초로 주5일 근부제 도입 *2006년 한독제석재단 설립 *수상 : 석탑산업훈장, 동탑산업훈장, 독일연방공화국 십자대훈장, 국민훈장 모란장, 문화훈장 보관장 등 다수 *경력 : 한국경영자협회 이사, 대한약품공업협회(현 한국제약협회) 회장, 한 -독 상공회의소 부회장 역임
고 김신권 회장 일대기
◆만주에서 시작한 약방, 국내 최초의 합작회사까지=고인은 어려운 형편으로 열다섯살 때 이미 생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친척이 운영하던 병원에서 허드렛일을 하던 고인은 약의 성상과 용도를 기술한 '약종상전서'를 접하면서 '의약품'과 운명적으로 조우한다.
이를 토대로 약종상(약재를 파는 장사) 시험에 합격해 만주 단둥시에서 약방을 시작했다.
6.25 전쟁이 반발하고 1.4 후퇴 때 부산 국제시장으로 내려와 약품상 '동서화재'를 차린 고인은 1953년 대형 화재로 상심했으나 당시 신용을 바탕으로 거래하던 상인들의 힘으로 재기에 성공한다.
이를 바탕으로 1954년 서울에서 한독약품의 전신인 연합약품을 창설했고, 독일 훽스트사의 제품을 판매하면서 의약품 수입업체로 성공가도를 달렸다.
하지만 고인의 꿈은 중간 판매가 아닌 의약품 직접 제조를 향하고 있었다.
그래서 독일로 직접 건너가 훽스트사와 기술제휴를 이끌어냈고, 1964년에는 합작제휴를 통해 수입에 의존했던 의약품 원료까지 직접 생산하는데 이르렀다.

훽스트사가 후에 아벤티스파마가 돼 2005년 사노피-신데라보에 인수된 후에도 한독약품과 파트너십은 흔들리지 않았다.
◆고미술품 수집과 60년대부터 시작한 골프인생=고 김 전 회장은 2006년 장남인 김영진 회장이 대표이사 회장으로 오르면서 명예회장으로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일주일에 두세번 회사로 출근하며 경영을 챙겼다.
또한 그때부터는 제약업계 최초의 박물관인 한독의약박물관과 사재를 털어 후학양성 장학사업을 챙기는데 집중했다. 고인 자신도 생활이 어려워 학업을 중단한 탓에 무엇보다도 장학사업에 열의를 보였다. 그래서 설립된 것이 그의 아호를 딴 한독제석재단이다.
고인은 한독제석재단 생전 언론 인터뷰에서 "한독제석재단에서 여생을 보내며 사회에 공헌활동할 수 있다는 마지막 기쁨이 있다"고 말했다.
고인은 이조백자 등 고미술품 수집과 대단한 골프광으로 알려졌다. 2003년과 2007년에는 인연을 맺은 미술 애호가들과 고미술품 전시회를 열어 일반에 공개되기도 했다.
한독의약박물관에는 허준의 동의보감 초간본 등 의약 관련 고서뿐만 아니라 고인이 발품을 팔아 수집한 도자기들도 전시돼 있다.
골프는 살아 생전 건강비결이기도 했다. 팔순이 넘은 나이에도 4~5시간 동안 18홀을 돌아 피로하지 않아 팔순의 청년골퍼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였다.
사업이 번창하던 1960년대 초 당시 김중배 화이자 사장의 권유로 골프를 시작한 그는 장춘회 등의 골프모임을 통해 재계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골프와 소식으로 건강을 지키던 고인은 갑작스런 폐렴 증세로 입원해 7월 1일 창립 60주년 두달을 앞두고 눈을 감아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생전 그가 외쳤던 신뢰 경영은 이제 장남인 김영진 회장의 경영철학으로 남아 한독 제2 도약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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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01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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