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기사를 찾으시나요?
닫기
2025-12-19 10:58:59 기준
  • #제품
  • #의약품
  • #회장
  • 의약품
  • 비만
  • 비대면
  • #제약
  • #평가
  • #염
  • 제약
네이처위드

[칼럼] 백신개발 : 프레임 파괴하는 상상력 필요

  • 데일리팜
  • 2017-07-20 06:14:54
  • 김경호 SK케미칼 상무

김경호 상무
백신업계 당사자들은 부정할 지 모른다. 그러나 외자사들의 시각에 국내제조 백신에 대한 오리엔탈리즘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1980년대중반. 백신회사간에 경쟁이 치열하던 시절 매우 황당한 광고카피가 등장했다. 당시 외국산 백신을 수입하던 한 제약사가 다음과 같이 주요 일간지에 8단광고에서 미다시로 뽑은 카피이다. '항체를 확인하셨습니까?'

국산백신이 수입백신을 사정없이 잠식하던 때였다. 대세였던 국산백신을 향한 전형적인 그리고 노골적인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이었다. (후에 이 무책임한 한 줄의 카피로 인해 업계는 지금은 상상도 못할 정도의 혹독한 대가를 치른다.)

기억이 정확하다면 보통 백신임상시험 연구결과 항체형성이 80%대수준으로 동백신의 항체양전율은 만족할만한 수준이라는 논문이 발표될 때였다.

숫자에 민감한 우리나라의 정서에서 소위 백신의 항체양전율 인플레경쟁이 일어났다. 이후로는 나오는 논문마다 항체양전율이 높아졌다.

80%대는 아예 자취를 감추고 90%를 훌쩍 넘더니 같은 종류의 백신들이 어느새 95%, 96%, 98%의 항체양전율을 보였다.

과거보다 높아진 이유로 민감도(sensitivity)가 높은 검사방법을 썼기 때문에 과거의 검사방법과 차이가 나는 것이라는 설명이 있었다. 백신이 달라진 건 전혀 아니었다.

1990년대중반. 국내에서 개발된 백신의 효능에 대한 공방이 학자들간에 심하게 갈린 적이 있었다. 저명한 모학회에서 벌어졌던 일이다.

당대 한 분야를 석권했던 대학교수A가 역시 세계적으로 한 시절을 풍미했던 대학교수이자 개발자인 B에게 질문을 던졌다.

A: 선생님은 백신을 왜 맞는다고 생각하십니까? B: 몸에 항체를 만들어 면역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A: 그렇지 않습니다. 백신을 맞는 목적은 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 입니다.

참석자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졌다. 이모나 고모나 식의 Q&A였다. 그런데 플로어에서 터져나온 이 웃음소리로 인해 순간 A는 의기양양했고 훗날 B는 청중들 앞에서 심한 모욕을 느꼈다고 기억을 했다.

명쾌한 이분법의 프레임앞에서는 대학교수도 세계적인 석학도 무력했다. 진검승부에서 먼저 찔린 사람은 본인의 순발력을 탓할 뿐이었다.

찌르거나 찔리거나. 생기거나 안생기거나. 걸리거나 안걸리거나.

당대의 시절이 요구했던 한계였다. 세상이 요구하는 것은 모 아니면 도였다.

우리나라에서 늘 백신은 원리주의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 원리주의는 외자사의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국내업계의 반동이었을 것이다. 합리성을 추구해야할 과학자까지를 포함해서 누구도 이 프레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런데 당시 세계적인 백신개발은 어땠을까? 오래전부터 백신개발의 방향은 바뀌고 있었다. 엄숙하고 권위있는 학회에서 이런 논쟁이 오고가던 당시에도 이미 세상은 변화되고 있었다. 백신개발의 트렌드는 100% 항체율에 도달하는 게 목표가 아니었다. 백신개발의 목표가 백신을 맞으면 100% 병에 안걸리도록 하는 것도 아니었다. 백신개발의 목표는 100%의 항체와 100%의 방어가 아니라 증상완화와 합병증예방, 입원률감소, 사망률감소까지를 고려해서 방향을 튼 지가 제법 되었던 것이다.

1970년대에 개발되어 국내로는 80년대초 백신이 소개된 인플루엔자백신의 경우 백신접종의 목적은 인플루엔자 발병의 예방뿐 아니라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감염과 관련된 이차 합병증을 막고 그로 인한 입원과 사망을 감소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개발된 백신이었다. 당연히 초기에 우리나라에서 이 독감백신은 소비자들에게 크게 매력이 없었다. 백신을 접종했는데도 걸릴 수가 있다니 그런걸 뭐하러 맞느냐는 식으로 반응은 시큰둥했다. 물론 감기와 독감을 크게 구분하지 않던 시대의 분위기도 한 몫을 하긴 했지만.

게다가 백신은 항체양전율이 높아야 한다는 인식이 형성된 소비자들에게 독감백신은 다른 백신에 비해서 항체형성이 좀 떨어져 접종을 해도 걸릴수도 있는 본전생각을 안할 수 없는 백신이었다.

한편 수두백신의 경우 접종후 돌파감염으로 발생하는 수두는 미접종자에서 발생하는 자연감염으로 인한 수두에 비해 임상증상이 경미하여 열이 없거나 미열이고 발진 개수가 적은 것을 특장점으로 내세우기도 했다. 여기서 더 나가 이후 동일한 수두바이러스를 이용하여 개발된 대상포진 백신은 효능효과에 아예 대상포진의 예방 뿐 아니라 대상포진 백신접종후 대상포진으로 인한 증상감소, 합병증과 신경통감소, 그리고 대상포진으로 인한 질병부담감소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로타바이러스백신 역시 마찬가지다. 백신접종으로 감염예방의 역할이외에도 증상완화를 통해 로타바이러스로 인한 응급실방문과 입원을 크게 감소시키고 있다. 개발도상국에서는 여기에다가 사망률감소효과가 꼽히고 있다. 우리가 백신에 대해 생각했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으로의 전환이었다.

기우일지는 모르나 이런 생각을 해본다. 가능성이 희박하긴 하지만 만일 국내에서 접종을 한 이후에 감염시의 증상약화, 합병증감소, 입원률감소, 사망자 감소를 목표로 해서 백신개발을 했을 때 우리에게 이를 충분히 가치있는 성과로 인정해 줄만한 문화는 성숙되어 있는가?

백신개발을 포함한 신약개발은 기술적 측면보다 오히려 문화적 측면이나 환경적 측면에 더 크게 영향을 받을지 모른다. 백신개발의 영역에도 기존의 프레임에서 벗어난 상상력이 요구되는 시대가 도래한 듯하다.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 해주세요.
  • 댓글 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운영규칙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첫 댓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