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현대사를 빛낸 명의(名醫) 5인 일대기
- 노병철
- 2018-10-06 06: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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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5] 서재필·김익남·박에스더 등 의술 펼치며 애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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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계 모습을 36.5초에 압축합니다.
따뜻한 체온 36.5도에 맞춘 사람 냄새 나는 영상 스케치를 통해 일상의 시간을 카메라 앵글에 담았습니다.
이번 주 [36.5도]는 우리나라 근현대사(1800~1950)를 빛낸 5명의 의사들의 일대기를 살펴보는 시간으로 준비했습니다.
서재필(1864~1951)하면 독립운동가 혹은 독립신문 발행인으로만 널리 알려진 이름입니다. 1884년 갑신정변에 참여해 불과 20세에 병조참판이 되었다가 거사가 실패로 돌아가자 미국으로 망명했습니다. 1894년 조지워싱턴대학에서 수학하면서 의사 면허를 취득했습니다. 졸업 후 잠시 모교 병리학교실 조교수로서 세균학을 연구하기도 했습니다.
김익남(1870~1937)은 20대에 한의사로 활동했으나, 갑오개혁 이후 정부의 유학시험에 합격해 일본 도쿄 자혜의원 의학교를 졸업하고, 조선에 들어와 의학교 교수로 활동했습니다. 의학교 교장 지석영이 정신적 지주였다면 김익남은 직접 교육을 맡은 핵심적 구실을 했습니다. 그의 노력으로 1902년 역사상 최초로 의학교를 통해 근대식 의사 19명을 배출했습니다.
박에스더(1876~1910)의 출생 당시의 이름은 김정동입니다. 박에스더는 남편 박유산의 성과 세례명을 따른 것입니다. 김점동은 아버지가 아펜젤러의 집에 들어가 일을 하게 되면서 서구문물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보구여관에서 영어를 통역하며 환자들을 간호하다가 로제타홀의 언청이 수술을 보고 감탄해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볼티모어 여자의과대학(현 존스 홉킨스대학교)을 졸업하고, 한국 최초의 여의사가 되었습니다. 귀국 후, 진료뿐 아니라 영어교재를 한글로 번역하고, 성경과 위생교육도 해가며 과중한 업무를 해내던 중 안타깝게도 35세의 이른 나이에 폐결핵과 양양실조로 사망했습니다.
오긍선(1878~1963)은 충남 공주에서 한학을 공부하다 배제학당을 졸업하고 도미했습니다. 켄터키주 센트럴대학에서 물리와 화학을 전공 후 1909년 루이스빌 의과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한국인 최초로 세브란스 의학 전문대학 교수를 거쳐, 1934년 세브란스 의학 전문학교 교장에 취임했고, 에비슨 선교사 은퇴 후 병원장이 되었습니다.
박서양(1887~1940)은 1887년 최하층으로 취급받던 백정 박성춘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박성춘은 1893년 에비슨 선교사가 신분을 차별하지 않고 직접 몇 번에 걸친 왕진을 통해 자신을 성실하게 치료해 준 것에 감명을 받아 개신교인이 되었습니다. 에비슨은 박서양의 사람됨을 알아보기 위해 병원 바닥청소와 침상정리 및 잡무를 시켰습니다. 박서양이 힘든 모든 일을 아무 불평없이 거든히 처리하자 글 공부를 시작하게 하고, 1900년 세브란스 정규 과정으로 입학시켰습니다. 박서양은 1908년 6월 우리나라 최초의 7명의 의사 중 한명으로 세브란스의학교를 졸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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