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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스터디

[전문가 칼럼] 한국의 '데스밸리'를 넘어서려면

  • 데일리팜
  • 2019-02-11 12:17:13
  • 김현철 진흥원 R&D기획단장(산업기술혁신단장)

데스밸리(Death Valley)라는 용어는 벤처업계에서 아이디어가 기술개발을 통해 제품화까지 이어지기 어려운 현실을 의미한다. 데스밸리가 생기는 주된 이유는 실질적으로 시장에서 원하는 제품을 만들지 못했거나 도중에 자금이 고갈되기 때문이다. 바이오헬스 분야는 기초연구단계를 지나 환자에 첫 적용되는 임상에 진입까지의 단계를 데스밸리라고 칭한다.

미국의 경우 기초연구단계는 NIH와 같은 공공기관에서 지원이 많이 이루어지고 임상부터는 빅파마나 벤처투자 등 민간투자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반면 기초와 임상사이의 중개연구(translational research)영역은 미국 NIH도, 민간투자도 저조하기 때문이다.

급기야 2000년대부터 투자는 지속적으로 증가하는데 비해 신약은 나오지 않는 R&D생산성위기(R&D Productivity Crisis)를 초래했다. 미국 NIH는 R&D생산성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선진중개과학센터(National Center for Advanced Translational Science)를 설립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민간투자도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후속 파이프라인이 고갈됨에 따라 조금씩 투자단계를 앞당기고 있는 추세다. 한국의 경우 바이오헬스분야 데스밸리를 2000년대 중후반부터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국 환경은 많이 달랐다. 글로벌제약기업은 없고 국내제약기업이나 벤처기업이나 신약개발경험이 부족했으며 민간투자자금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더구나, 벤처기업의 경우 후보물질에 대한 데이터 신뢰가 부족하고 지식재산권도 취약해 글로벌 라이센싱이 어려웠다.

정부에서는 이러한 데스밸리는 메우기 위해 첨단의료복합단지, 연구중심병원, 병원-기업 상시연계형 R&D 플랫폼 등 각종 인프라와 범부처신약개발사업, 글로벌제약펀드 등 민간전문성을 도입한 투자기전을 마련하여 노력해왔다. 아울러, R&D단계의 글로벌 혁신네트워크도 지속적으로 발달하여 자금만 있으면 웬만한 서비스는 모두 조달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최근 몇 년 동안 그동안 꾸준히 신약개발경험을 축적해온 기업들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2015년 한미제약의 빅딜 이후로 벤처기업에서도 글로벌기업과 일정규모 이상의 라이센싱이 꾸준히 이루어지고 2018년에도 5조원을 돌파하며 일시적 거품이 아님을 보여줬다. 2016년에는 제2의 바이오기업 창업붐이 일어났고 2018년 기업을 제외한 민간투자만 3조원에 달한다. 바이오헬스 R&D도 민간투자가 정부투자를 이미 넘어서 변곡점에 와있다. 국내제약기업이나 바이오벤처기업의 수준은 글로벌 수준을 향해가고 있는데 비해 대학과 기업 사이의 간극은 지금도 별반 차이가 없다. 대학교수가 잘못해서라기보다는 대학교수 인센티브는 다른데 있기 때문이다. 대학교수는 정년보장을 받기 위해 연구비를 받아 실험실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대학원생을 유치해 논문을 생산해야 한다.

논문과 특허 생산주기는 대학원생의 재학기간과 연구과제 수행기간에 맞춰지기 일쑤다. 더구나, 연구과제 수행기간과 교수평가 기간 내 성과를 제출하지 못하면 평가에 불이익이 오기 때문에 설익은 논문과 특허라 할지라도 일단 내야한다. 기업이 설익은 논문과 특허를 이전받아 개발하기에는 데이터는 재현성이 부족하고 특허는 부실하다. 대학교수가 유망한 후보물질을 찾았다 할지라도 더 개발할 이유가 별로 없다. 열악한 대학환경에서 그 이상을 개발하기는 가보지 않는 길이라 힘들고 어렵고 모르기 때문이다.

기업으로 기술이전이 어렵다면 교수창업도 하나의 방안일 수 있다. 그러나, 창업가에게 많은 책임을 지우는 제도 하에서 실패는 무덤과도 같다. 미국과 같이 좋은 기술을 가지고 창업만 하면 민간투자기관이 자본부터 경영까지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환경도 아니다. 그렇다고, 기업만 지원하는 건 혁신의 절반을 버리고 시작하는 것과 같다. 미국 FDA 승인을 받은 신약의 절반은 대학을 비롯한 공공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산학협력정책은 15년이 넘었지만 학생 수가 줄어들고 나서야 대학도 산학협력을 진지하게 바라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약적으로 성장한 산학협력 하드웨어에 비해 소프트웨어는 발전이 더디다. 그동안 대학 산학협력 소프트웨어는 대부분 정부 의존적이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바이오헬스산업 혁신의 열쇠는 ‘연결’에 있다. 인구 800만 중소국가인 스위스의 경쟁력은 내부와 외부의 연결에 있다. 연구자와 연구자, 전문가, 투자자를 연결하고, 대학과 스타트업을 연결하고, 스타트업과 글로벌기업, 대기업을 연결하여 촘촘히 거미줄처럼 연결된 혁신네트워크에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야한다. 민간투자 3조원 시대에는 민간이 주도하고 정부는 연결해야 한다. 과거에 우리나라를 이끌었던 경쟁의 이념으로 21세기에 맞는 가치를 창출하기 어렵다.

억지 춘향식 연결도 곤란하다. 일례로 우리나라는 예전부터 정부사업에 맞춰 연결해오는 그룹이나 양쪽을 연결해주는 주체에게 돈을 주는 식으로 정책을 시행했다. 그러나, 돈을 쫓아 억지로 연결된 네트워크가 지속적으로 유지될 리가 없다. 만나고 협력하는 활동이 신뢰가 쌓이고 서로 이익이 되어야만 네트워크가 지속적으로 유지된다.

정부는 서로 이익이 되고 신뢰할 수 있는 상대를 탐색하는 데 필요한 시간과 기회비용을 줄이기 위한 정책부터 시작해서 투자확대 등 민간의 자율적인 행동변화를 유도할 수 있게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대학교수가 더 이상 단기 성과에 매몰되지 않게 제도를 바꾸고 대학 지원도 연결 가치에 부합하게 지속가능한 소프트웨어를 중심으로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 최근, 장안에 화제가 된 드라마 ‘SKY 캐슬’을 보면서 21세기 협력의 시대에 20세기 경쟁에 매몰된 사회의 단면을 보게 되어 씁슬했다. 협력의 기술도 핀란드처럼 조기 교육과 오랜 경험이 필요한 법인데 어찌보면 한국사회에서 서로 연결이 잘 안되게 당연하다. 획일적인 줄세우기로 사람을 평가하는 교육체계에서는 21세기 부를 향유하기 어렵다. ‘SKY’는 우리 모두 같이 호흡하고 공유하는 공간이라는 ‘하늘’이 본래의 뜻이다. 같이 공유하면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이지만 소수 이익이 지배하면 모두가 숨쉬기 힘들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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