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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사회 현상과 통계 그리고 의료정책

  • 데일리팜
  • 2020-01-06 09:36:10
  • 김대철 동아대학교 의대 병리과 교수

준비가 철저하면 훗날 근심이나 화가 없음을 뜻하는 '유비무환'이란 사자성어는 의사사회에서는 조금 다른 의미로 쓰인다. '비가 오면 환자가 없다'는 우스개가 그것인데, 과거 응급실 인턴 시절 장마철과 비가 오는 날이면 이를 몸소 체험했다.

비가 오는 것과 환자가 아픈 것은 큰 상관이 없어 보이지만, 비는 병·의원 환자 내원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때때로는 비 때문에 발생하는 큰 사고가 있어 의료진은 쉽게 마음을 놓을 수 없다. 특히 빗길 교통사고의는 대형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해당 환자가 응급실에 왔다면, 적절한 처치를 받고 환자가 어느 정도 안정 될 때까지 응급실 당직의는 정신없이 뛰어다니기 바쁘다. 이럴 때 의료진은 '유비중환'이라며 마음을 다스리곤 한다.

지난해 소니 포토그래픽 어워드 올해의 사진은 또다른 이유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포트폴리오 첫번째 사진은 인도의 한 평범한 농부다. 아주 평범해 보이는 인물 사진이 왜 수상작이 되었을까 의문이지만, 사진 촬영의 배경과 인도 타밀 지역을 촬영한 다른 사진들을 함께 보면 왜 수상의 영예를 안았는지 이해가 간다. 이 사진은 과거 우리가 어려웠던 시절에 겪었던 아픔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듯하다. 과거 우리는 장마, 태풍, 가뭄 등의 예상하지 못한 기후 변화로 인해 작황이 좋지 못한 때가 있었고 그로 인해 농부들은 실의에 빠지곤 했었다.

마찬가지로 인도에서도 기후변화로 인한 악천후와 근시안적인 수자원 관리로 인해 타밀 지역은 140년간 가뭄이 이어 지고 있다. 과거 우리와 마찬가지로 인도 농부 대부분이 부채를 내 생산에 투자하고 수확 후 대출을 상환하는데, 일부 이런 고리를 끊지 못한 농부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현실이다.

지난 30년 간 인도의 기후변화로 인한 자살은 약 5만9000명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인도 기온은 2050년까지 화씨 5도, 섭씨로는 약 2도 정도 더 오를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러한 일들은 비단 흐린 날씨일때나, 빚 많은 농부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멀지 않은 과거의 사건만 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2008년부터 2010년 전세계에 불어 닥친 금융위기 상황을 떠올려 보자. 미국의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으로 상징되는 세계금융위기로 인해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4%로 감소했고 실업률은 4.5%에서 10%대로 크게 증가했다. 2016년 랜싯지에 이와 관련한 흥미로운 논문이 실렸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금융위기 당시 실업률이 높아지고 의료복지 지출이 줄면서 암으로 50만명이나 더 사망했다는 결과다. 경제위기가 아니었다면 죽지 않을 사람이 더 사망했다는 통계다.

다소 충격적인 수치지만 저자가 연구 근거로 든 예시를 보면 공감이 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에서 2008년부터 2010년사이 암환자가 26만명 이상 많았다는 것이다. 실업률이 1% 증가할 때마다 암환자 0.37명(10만명당)이 추가로 사망하며, 의료복지 지출을 1% 줄이면 10만 명당 0.053명의 추가 사망자가 나온다는 뜻이다. 실업률과 암사망이 무슨 관계가 있냐고 의문이 들겠지만, 일자리가 없으면 환자진단이 늦어 지게 되고, 치료의 질이 떨어지거나 적절한 시점에 치료를 받지 못하게 되는 게 영향을 미쳤다. 뜬금없이 경제 위기 같은 이야기를 지금 하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앞으로 혹시 모를 경제위기를 대비해 의료복지정책을 잘 마련하자 거나, 경제활성화와 실업률 감소를 위해 정부가 대책을 내어 놔야 한다는 큰 담론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도 IMF와 금융위기때 실업률의 증가와 같은 유사한 상황을 겪었다. 의료현장 속 의사들은 과거 경제위기 때 환자들이 병·의원을 방문했을 당시 상황을 기억하고 있다. 병·의원에 진료받으러 오는 환자들의 상태를 보면서 현재 일어나는 사회 현상을 이해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오늘 갑자기 환자가 줄면 '밖에 비가 오나?', 큰 교통 사고가 났다면 '빗길 교통 사고 인가?', 자살을 시도해 구급차로 실려온 환자를 진료하다보면 실직 상태로 정신적으로 힘든 상황이었다거나 하는 등이다.

의료현장에 직접 일하고 있는 의사들은 방문하는 환자의 상태나 질환의 중증도를 통해 환자와 환자 주변에서 일어나는 것을 이해한다. 물론 그것이 정확한 통계에 기반한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지나 관련 통계나 연구 논문을 보게 된다면 심증은 더욱 굳어 진다.

지난 몇 주 동안 평소에 자주 보기 힘들 정도로 진행이 많이 된 악성종양 결과지에 사인했다. 그것도 여러 건 말이다. 고작 이런 정도의 숫자로 이유를 찾아보자고 말하는 것 또한 성급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급여확대를 통한 의료정책을 펴는 시점에도 이러한 현상이 일어난다면 그 또한 걱정해봐야 할 것이다.

데일리팜(junghwanss@dailyphar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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