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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선] 건정심 넘어간 수가, 새 전략 살필 때

  • 김정주
  • 2023-06-27 06:50:15

[데일리팜=김정주 기자] 약사회가 내년도 약국 유형의 수가 인상률(1.7%)을 수용하지 않고 건보공단과의 협상에서 끝내 결렬을 선택했다. 2008년 유형별 수가협상 이후 여러 번의 고비에도 결렬만은 피해 왔던 약사회의 태도를 볼 때 매우 이례적이다. 적어도 그간의 수가협상 역사를 볼 때 그렇다는 얘기다.

의약분업 이후 요양급여비용의 주도권이 의사의 퍼포먼스와 양으로 넘어가면서, 약국경영 형태는 지난 20여년 간 처방전에 매우 의존적이고 수동적으로 고착화 했다. 평범한 동네약국을 얼핏 보더라도 인근 병의원과 진료과목에 크게 영향을 받는 데다가, 이웃 의료기관에 무슨 이슈라도 생기면 주변 약국들이 그 장대비와 천둥번개를 정통으로 맞았다. 쉽게 말해 약국은 지극히 처방의존적인 경영 형태이기 때문에 스스로 급여비를 늘리려는 어떠한 퍼포먼스도 불가능하다. 이 맥락에서 약국 수가협상에서 결렬을 택한다는 건 더 취할 수 있는 이익이 뚜렷하지 않고, 합리적이지도 않은 게 특징이다.

생각해보면 (의사협회와 함께) 약사회가 이번 수가협상에서 최종 결렬을 선택할 때 큰 내부 갈등이나 이견은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결렬까지 도달하는 과정이 꽤 심플했을 것으로 보인다. 약국의 경우 통상 추가소요재정(밴딩)에서 기본 10~11%를 점유해온 작지 않은 유형이었다. 그런데 이번 협상 과정에서 한의와 치과를 합산하니 무려 20%에 육박하는 포션을 차지하면서 약국 점유율은 절반 수준인 5.6%로 반토막 났다. 퇴로가 막히면 결정은 비교적 홀가분하게 이뤄질 수밖에 없다. 제로섬 게임의 결말인 셈이다.

이번 협상 결과가 어처구니 없기론 의원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1조2000억원에 육박하는 밴딩에서 절반 이상을 가져간 병원(병원은 내부에 여러 유형이 있지만 '병원'으로서 단일 협상을 하고 있다)으로 인해 직격탄을 맞은 의원의 최종 수가 비중은 20% 수준에 불과했다. 앞서 말한 한방과 치과를 합한 수준과 거의 같다.

조금 거슬러 올라가, 약사회의 이번 인상률과 점유율 반토막은 이미 건보공단 수가 연구 중간결과가 나오자마자 예견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공단은 수가협상을 앞두고 항상 외부 연구자에게 의뢰해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중간결과에 반드시 유형별 인상률 순서를 도출하도록 주문한다. 그리고 이 순서는 절대 번복할 수 없도록 돼 있다. 과거 유형별 수가협상 초기에 순서를 번복했다가 국정감사에서 호되게 뭇매를 맞았던 전례가 있기 때문에 그렇다.

즉, 이번에는 한방 1위, 치과 2위, 병원 3위, 약국은 4위, 의원은 5위로 인상률 순위가 이미 정해져 있었고, 약국은 결코 병원의 인상률을 초과할 수 없었던 것이다. 병원이 밴딩 전체에서 50~55%를 차지하기 때문에 병원의 인상률은 1% 후반에서 2% 초반 부근에서 결정 나는 게 자연스럽다. 그렇다면 약국은 그 수치 이하로 결정 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의협은 이 매커니즘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초반부터 '플랜 B' 즉 결렬 전략을 세웠다는 후문이다. 즉, 수가 전략을 타결이나 인상으로 잡지 않고 공단 최종 제안 수치(결렬 수치)를 최대한 끌어올리는 데 역량을 집중했다. 그간 여러 차례 결렬을 경험해 온 의협의 지극히 현실적이고 차가운 전략이라 할 수 있겠다.

터무니없는 수치에도 불구하고 의협이 이렇게 차분하게 대응할 수 있는 건, 결렬 후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의 상정 과정과 그 안에서 해온 보이지 않는 전략적 경험이 축적돼 있기 때문일 것이다.

수가협상의 후반 과정을 보자면, 건보공단 내 재정운영위원회 의결과 공단-의약단체의 정식 계약으로 실무는 마무리된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를 건강보험 최고의결기구인 건정심에 상정, 통과해야 모든 행정절차의 마침표를 찍게 된다. 재정운영위는 협상 결과를 건정심에 상정하면서 결렬 유형의 인상률을 협상 당시 공단이 마지막으로 제시한 수치(최종 결렬 수치) 이상을 넘지 않도록 소견을 낸다. 건정심은 부대조건을 내걸지 않는 한 재정위 의견을 준용하는 게 관례다. 수가 결과를 통과시킬 건정심은 이번주 안에 열린다.

건정심은 이를 최종 통과시키기 전에 각계의 위원들과 더불어 결렬 당사자 의약단체를 불러 최종 발언권을 주고 의견을 공유한다. 즉, 결렬 단체들이 이 발언 시간에 얼마나 의미를 부여하냐에 따라 무게와 활용 가치가 달라지는 것이다. 결렬 단체들의 또 다른 전략이 여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렬 단체들은 제한된 발언 시간을 통해 협상과 관련한 불만만 표출하거나 시위성 퍼포먼스를 강하게 할 수도 있다. 반대로 차분하게 다른 현안까지 덧붙여 추가 어필할 수도 있다. 이는 건정심 위원들이 정부를 비롯해 기관, 시민, 학계, 환자, 소비자, 노동자 단체 등 다양한 계통의 인사로 구성돼 있기에 가능한 기회다.

어설픈 수가인상 수치를 수용하느니, 차라리 건정심행을 위해 결렬을 택한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건정심으로 가서 직능의 여러 현안을 최대한 어필하고 각계의 이목을 집중할 기회로 활용한 사례들이다.

같은 가입자라 하더라도 환자와 소비자, 노동자의 입장이 미묘하게 다르듯이, 약사사회를 둘러싼 첨예한 약무 현안에 대해 수용하는 정도도 각각 다르다. 수가협상에서 쓴 맛을 봤지만 이쪽으론 경험이 전혀 없는 약사회가 이번에 건정심이 부여하는 기회를 제대로 잡을 수 있을지, 또 그 기회와 시간을 응축적이면서도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 지켜볼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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