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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스터디

여론과의 소통(疏通)이 필요하다

  • 데일리팜
  • 2011-08-25 06:34:55
  • 심창구 교수(서울약대)

최근 의약품의 슈퍼 판매를 위한 약사법 개정이 시도되고 있고 약사회는 이를 반대하기 위한 서명을 받았다. 의약품은 오남용 해서는 안 되는 물건인데, 전문가의 한 사람으로서 이 당연한 이야기를 또 해야만 하는 현실이 답답하기만 하다. 이제 와서 다시 "약 좋다고 남용말고 약 모르고 오용말자"라는 해묵은 구호를 외쳐야 한단 말인가?

자료에 의하면 미국의 경우, 응급 입원 환자의 8%는 약물의 부작용 때문에 입원하며, 입원 환자의 7%는 입원 중 먹은 처방약에 의해 심한 부작용을 경험하며, 입원환자 1000명 중 3명이 의약품의 부작용으로 사망한다고 한다. 1998년의 추계에 의하면 미국에서 입원 환자 중 약물 부작용에 의해 사망하는 환자의 수가 매년 무려 1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미국에서 가장 큰 약 문제는 슈퍼 판매 의약품이다. 매년 거의 20만 명이 수퍼 판매약을 잘못 복용해 병원으로 실려 가고 있다"고 한다. 이는 미국 TV 토크쇼에 출연한 미국 의사들이 한 말이다. 의정부에서 개업한 함약사라는 분이 개설한 유튜브 채널에 실린 내용이라고 한국일보 6월 28일자에 실렸다. 약사가 외국 사례 들어 '반격'이라는 제목으로.

미국 의사가 의약품의 슈퍼 판매를 걱정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의약품의 안전성 문제를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의사협회가 수퍼 판매를 앞장 서 주장하고 있다. 소비자 단체라면 모를까 의사가 수퍼 판매에 앞장 서는 것은 적어도 내 상식에는 반(反) 하는 일이다.

국민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한 차원이라는 주장을 하는 모양인데 국민의 건강이 엄청난 위협 하에 놓이게 되는데도 진정 '불편 해소'를 주장할 수 있는가? 국민들이 위협을 무릅쓰고 수퍼에서 약을 사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약을 사기가 그렇게 불편한가? 아무래도 내가 모르는 어떤 다른 이유가 있는 모양이다.

독도는 우리 땅이다. 말할 필요도 없는 진실이다. 그래서 처음에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기 시작할 때 우리 국민들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헛소리라고 콧방귀를 뀌었다. 그런데도 일본은 계속해서 우기고 있다. 그러다 보니 국제 분위기가 어째 심상치 않다. 의약품의 수퍼 판매도 꼭 독도 같은 모양이다.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만 생각했는데 여러 번 떠들다 보니 이제는 말이 되는 소리가 아닐까 생각하는 사람들도 좀 생긴 것 같다. 특히 대통령을 비롯한 높은 사람들 사이에서 말이다. 일본처럼 아무 말이나 반복해서 주장하면 나중에는 나름대로 논리(?)도 개발되고 설득력 (?)도 생기는 모양이다. 독도만큼이나 짜증나는 일이다.

돌아보면 세상에 워낙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빈번히 일어나곤 왔다. 약계만 해도 그렇다. 한약분쟁시 여론인지 정치인지 모르는 무언가의 산물로 '한약사'라는 직종이 탄생되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한약사 제도는 옳은 해결책이 아니었음이 이미 증명되었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 사과하거나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다. 세계적인 대세를 따라 약대 6년제를 추진할 때에도 정부는 소위 통6년제를 주장하는 약학계의 의견을 묵살하고 2+4년제라는 기형적인 제도를 도입하였다. 또 몇 년 전 약대협의회는 6년제를 운영하려면 최소한 60~80명의 정원이 필요하니 기존 약대의 정원을 늘여 달라고 정부에 건의하였다. 그런데 정부는 건의와는 정반대로 정원 20~25명의 초미니 약대를 15개나 신설해 버렸다. "자식이 떡을 달래는데 돌을 줄 부모가 어디 있겠느냐?" 하는 성경 말씀이 무색해 보인다. 또 최근 제약업계는 유례없이 가혹한 약가 인하 정책에 존립 기반이 흔들린다고 울고 있다.

세상이 꼭 합리적으로만 돌아가는 것은 아니라고는 하지만, 왜 약계 입장에서 말도 안 되는 이런 일들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일까? 원인은 외부와 함께 약계 내부에도 있을 것이다. 외부의 원인은 아무래도 거대한 파워 게임에 있는 것 같다. 가진 자, 힘 있는 자의 논리가 여론이 되는 세상에서는 약자는 한없이 움츠러들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약계 내부의 원인은 다시 본질(本質)적인 것과 부수적인 것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본질에는 약사의 직무 수행, 약학 교육, 우수한 신약개발 같은 내용 들이 해당될 것이다. 더 이상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약사의 본질이라는 내공(內攻)부터 충실히 다져야 함은 공자님 말씀처럼 지당한 말씀이라 하겠다. 사람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겠지만, 필자는 '개인맞춤약제학 (Individualized Pharmaceutics)'의 실현이 21세기 약학 본질의 충실화 방안이라고 믿고 있다. 본질에 관한 이야기는 다른 기회로 미루기로 하고, 오늘은 내부에 있는 부수적인, 그러나 매우 중요한 원인에 초점을 맞추기로 한다.

여기서 잠깐 생명의 최소 단위인 세포(細胞)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세포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우선 핵(核)을 갖고 있어야 한다. 생명에 관한 DNA 정보 등이 핵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핵이 핵심적(核心的)인 것은 틀림없지만 핵만 있다고 세포가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세포질(細胞質)도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세포를 둘러싼 세포막 (細胞膜)이 있어야 한다. 세포질의 존재 이유는 핵의 1차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아마도 사회약학 (사회약학)이 약학에 있어서 세포질에 해당되는 학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 다음 세포막의 일차 존재 이유는 핵을 보호해 주는 울타리 역할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유의할 것은 세포막은 울타리 역할 뿐만 아니라 세포로 하여금 외부 세계와 정보를 교환하게 하는 소통자 (疏通者)의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외부와의 소통이 없이는 울타리 역할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약사의 직능(職能)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전문지식이나 성실한 복무 같은, 말하자면 세포핵같은 본질적 (本質的)인 장치 이외에도, 핵의 생존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한 세포질이나 세포막 같은 부수적인 장치가 필요했었다. 그러나 그 동안 약계는 이를 몰랐거나 경황이 없어 이를 경시해 온 것이다.

이제라도 약계에 세포막을 만들어야겠다. 약이라는 본질을 외부로부터 고립시키기 위한 울타리로서만이 아니라, 외부와의 소통(疏通)을 위한 소통자로서의 역할도 하는 세포막을 만들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자는 이야기인가? 다시 세포로 돌아가 보자. 세포막은 기본적으로는 지질(脂質)이지만, 막 중에는 수송체(輸送體)와 수용체(受容體)라고 하는 다양한 단백질이 박혀 있다. 지질은 외부로부터 세포질 및 핵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단백질은 외부 세계와의 정보 소통을 담당한다. 요컨대 약계도 지질과 단백질로 구성된 세포막으로 약이라는 본질을 둘러싸자는 이야기이다.

약계도 이제 세계 최고의 연구 능력(서울약대), 신약개발, 임상약학 같은 본질적인 문제만으로 사회의 공감을 받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나만 잘하면 언젠가 알아주겠지' 같은 생각은 상식이 통하는 합리적인 사회가 이루어진 다음에 기대하기로 하자. 우선은 외부 세계와의 소통에도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가진 자, 힘 있는 자, 권력자 등 소위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약계의 실상을 정확히 이해시키고 그들의 비판도 겸허히 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세포핵 같은 벌거숭이로만 존재하는 약계의 주변에 세포막 같은 장치를 설치하야 하고, 그 막에 뛰어난 소통의 기능을 갖는 단백질 분자 같은 소통자를 심어 두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려면 예컨대 약대에 법을 전공한 약사법규학 (藥事法規學) 교수와 경제를 전공한 약물경제학 교수를 채용하는 것도 좋은 실천 방안의 하나가 될 것이다. 연구해 보면 약사회나 제약협회에도 비슷한 해법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약계(藥界)의 앞날에는 의약품의 슈퍼 판매 시도에 이어 의약품의 재분류, 그리고 '임의분업' 추진을 위한 병원협회의 서명운동 같은 파도가 나타날 것이다. 그 때마다 울보처럼 항의를 하고, 데모를 하고, 서명 운동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고 울보는 국민들도 지겨워한다. 오피니언 리더들은 내막을 잘 알아보지도 않고 자신들의 선입관에 근거하여 어느 한편을 정죄(定罪)한다. 자신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고, 누구에게나 남의 밥그릇은 자기의 반찬그릇만큼도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소통을 강화하여야 하는 것이다.

지금 약계(藥界)에는 매스컴이나 정관계 그리고 기타 오피니언 리더들과 소통할 수 있는 채널이 없다. 다양하고 막강한 언로(言路)를 갖고 있는 의계(醫界)와 비교하면 대포 앞에 고무총을 들고 있는 형국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약계의 최후 보루(堡壘) 역시 여론일 수밖에 없는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자. 그리고 지금이라도 쌍방향 소통에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는 '단백질'같은 소통자 (疏通者)가 박혀 있는 세포막을 설치하자. 세포질도 채워 넣자. 상황이 아무리 급해도 길은 소통 (疏通) 외에 달리 있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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