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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원정 진료비 1조원'과 인천 영리병원

  • 데일리팜
  • 2012-05-08 06:35:44
  • 송상호 실장(건강보험공단 사회보험노동조합)

2004년 참여정부는 의료산업화의 논리로 병원협회의 조사결과라며 '해외원정 진료비 규모 1조원'을 제시했다. 이것은 언론에 연일 대서특필되면서 경제부처를 중심으로 한 '의료 산업화'의 핵심 추진동력이 되었다.

국내에 영리병원을 허용하여 해외원정 진료비 1조원을 국내로 흡수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외국 환자까지 유치하자는 것이었다. 2005년 노무현 대통령 취임 2돌 대국민 연설문에도 1조원이 공식 인용되었다.

그러나 이 1조원은 2002년 S병원의 L병원장이 M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언급한 내용에 불과했다. 물론, 병원협회에서는 이 같은 조사를 한 적도 없었다.

2002년 미국 병원들이 해외환자를 통해 벌어들인 진료비가 1조2천억 원이었으니, 정부 말대로라면 미국 전체 병원에서 진료 받은 외국인 환자 대부분이 한국인이라는 말이 된다.

나중에 보건산업진흥원의 조사로 해외원정 진료비가 최대 1천억 원을 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그때는 이미 참여정부가 '의료산업화'의 이름으로 경제자유구역에서 영리병원 허용 등을 위한 법적 토대를 완료한 후였다. 실체적 진실을 은폐한 허구가 승리한 것이다.

세월이 흐른 후에 거짓은 더 구체적으로 실체를 드러냈다. 2009년5월 한국보건산업진흥원과 한국관광공사가 공동주최한 '한국 의료관광 컨퍼런스 2008'에서 발표된 바에 따르면 2007년 해외 병원에서 진료서비스를 받고 지출한 금액은 1237억 원이었고, 외국인이 국내 의료시설에서 진료 받은 의료비는 572억 원이었다. 의료서비스 적자는 665억 원인 것이다.

그러나 이 665억 원마저도 상당부분은 해외 원정출산이나 장기이식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이렇듯 영리병원의 본격적인 출발은 거짓과 권모술수의 여론조작에 의한 것이었다.

지난 4월30일 보건복지부는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인 영리병원의 설립허가절차를 마련한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2004년 참여정부가 영리병원 허용을 위해 사실을 왜곡하며 과장과 궤변을 총동원한 이래 그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었다. 보건복지부가 6월에 보건복지부령을 시행하면 인천 경제자유구역인 송도에 600병상 규모의 영리병원이 설립될 계획이라고 한다. 건립비용은 약 6,000억 원이며, 투자자는 삼성증권, 삼성물산, 일본의 대표적 증권사의 계역사인 캐피탈 마켓 등이다.

복지부 시행규칙은 한국인 의사비율은 90%까지, 국내자본은 49%까지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 내용적으로 보면 사실상 국내 영리병원의 변형이라 해도 틀린 것 같지 않다.

인천 경제자유구역에 거주하는 외국인 인구는 2011년 10월말 기준 1912명에 불과하며, 국민건강보험에 가입되어 있는 비율도 낮지 않을 것이다. 이들이 건강보험 적용 병의원 대신 의료비의 100%를 본인이 부담하는 영리병원을 이용할 것이란 예측은 ‘상상력의 동원’에 가까울 듯싶다.

정부는 막대한 비용을 들여 설립한 경제자유구역 내 영리병원에 대하여 엄청난 부담을 안게 될 것이다. 결국 이것은 법령개정으로 영리병원이 건강보험 환자를 진료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수익보장을 위한 조치를 취하도록 만들 것이란 지적이 높다.

이렇게 되면 경제자유구역 내 영리병원은 건강보험 적용 환자와 비적용 환자를 동시에 흡수하여 수익의 안정화와 극대화를 꾀할 수 있게 된다. 아무리 잘 못 설계된 법과 제도라 할지라도, 일단 시행되면 자생력을 발휘하게 된다. 하물며, 막강한 자본과 엄청난 이해관계가 걸려있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내국인의 투자로 영리병원을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아직 진행형이다. 시장원리에 의해 요양기관간의 경쟁이 유발되면 의료의 가격이 내려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의료는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시장기능이 작동하지 않는 시장실패 영역이어서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는 대표적인 곳이다. 더욱이 취약한 공공의료와 건강보험의 낮은 보장성으로 대표되는 우리의 열악한 보건의료 현실은 영리병원 허용을 더욱 우려스럽게 만든다.

영리병원을 허용하는 대부분 국가들의 의료제도는 의료서비스의 공급에서 공공부문의 압도적 우위로 의료이용의 형평성을 달성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 정부나 공보험자인 공단은 건강보험 수가 외에 의료공급자를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 전무하다.

그리고 2005년 생명보험사의 실손형 상품 판매 허용으로 민간의료보험 시장은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어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의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여기에 영리병원과 결합된 민간의료보험 상품의 출시는 건강보험의 미래를 더욱 암담하게 할 것이다.

금번 인천에서의 영리병원 허용의 근거와 논리가 과거의 ‘해외원정 진료비 1조원’을 자꾸 떠올리게 하는 것은 거짓이 얼마나 진실을 압도할 수 있는가를 충분히 목도했던 교훈 때문이다.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의료기관은 기본적으로 경제자우구역 거주 외국인들의 의료서비스 이용 환경 조성차원에서 설립되는 것"이라는 당국의 설명은 아무리 둘러보아도 믿기지가 않는다. 또 하나의 허구가 가공할만한 괴력으로 마침내 우리나라 보건의료에서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을 초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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