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기사를 찾으시나요?
닫기
2025-12-22 15:44:40 기준
  • AI
  • 규제
  • #제품
  • 허가
  • 약국 약사
  • #수가
  • 인수
  • GC
  • 글로벌
  • #염

"학생처럼 배우고 익혀…컨설팅 감사 주력"

  • 조광연
  • 2012-05-23 06:44:58
  •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권태정 상임감사

영락없는 직장인의 모습이었다. 컴퓨터 모니터와 자료집이 수북이 놓인 책상은 더할나위 없이 그와 잘 어울렸다. 마치 맹수가 울타리 안에 조신하게 자리잡고 있는 형상 같기도 했다. 순전히 그를 오랫동안 지켜본 사람의 직감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권태정 상임감사(60) 말이다. 동덕약대를 졸업한 이후 10개월 가량 병원에서 근무했던 것 말고, 그는 35년 이상 줄곧 개국약사였다.

물론 특별한 개국 약사였다. 서울시약사회장을 역임했고, 2만여 약사의 수장이 되겠다며 전국을 누볐던 대한약사회장 후보였다. 그는 누구보다 열정적인 인물로 약사사회에는 각인돼 있다.

언뜻 1800명이 종사하는 심평원 상임감사와 개국약사는 거리감이 느껴질 법도 한데, 비서실을 거쳐 집무실에 들어섰을 때 그의 모습은 원래부터 심평원에서 커온 인물처럼 안정적이었다.

사실 그는 늘 그래왔다. 상황에 최단기간, 최적으로 적응하는 인물이었다. 투쟁이 필요할 때 누구보다 앞에 섰고, 논리가 필요할 때 사람을 만나거나 지독하게 공부하며 자신을 무장시켰다. 집무실을 방문한 17일 오후에도 그는 두꺼운 자료집을 보고 있었다.

"2010년 12월6일 취임한 이후 지금까지 학생처럼 공부했고 지금도 하고 있어요. 요즘 감사의 역할은 지적하거나 적발하는 것보다 사전 컨설팅이 중요하기 때문에 깊이 넓게 알아야만 합니다."

그는 1년6개월 새 심평원에 대한 공부가 깊어진 듯 보였다. 임기는 올해 12월 5일 만료된다.

권태정 상임감사는 취임 이후 학생처럼 원없이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곽에서 보니 약사 사회가 더 명료하게 보인다고도 했다.
▶개국약사에서 심평원 상임감사가 됐습니다. 왜죠?

"아시는 것처럼 제가 좀 도전의식이 강한 편이잖아요. 새로운 영역에 대해 도전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무엇이 달라졌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한다는 거죠. 약국할 때도 아침 일찍 일어나 출근했지만 확실히 질적인 차이가 있더군요.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이니까요. 그게 바로 직장인이죠."

▶그것 뿐인가요?

"아침에 이뤄지는 일이 너무 많아 처음엔 적응하기 쉽지 않았죠. 감사협회 조찬회다, 심평원 조찬 토론회다 새벽부터 머리를 쓰는 일이 낯설고 힘들었어요. 이젠 일상이 됐지만요."

▶밖에서 보던 심평원과 안에서 만난 심평원은 어떻게 다르던가요.

"아시다시피 심평원과 약사회는 거리로 한 2킬로미터 될까요? 약국을 하며 약사회를 드나들 때 심평원에 대한 생각은 단순하고 피상적이었어요. 처방과 조제 등에 대해 심사하고 평가하는가 보다 그 정도였죠."

▶엄청난 그 간극, 어떻게 좁혔나요.

"별게 있나요. 그저 하는 겁니다. 업무파악을 위해 실별로 브리핑을 받았는데 하루 4시간 정도였어요. 처음에 귓전을 울릴뿐 제대로 안들어 오잖아요. 브리핑 받으면 개념은 웬만큼 잡히지만 결국 디테일은 개별적인 공부로 채워 넣어야 하거든요. 각실의 보고서를 끼고 살다시피했죠. 배우고 익히며, 생각하고 그게 일이었던 셈이죠. '개국약사가 뭘 알겠어?'하는 시각도 분명히 있을테니 이를 불식시키기 위해 전심전력을 다 한겁니다."

▶약사회에서도 감사를 하셨는데요.

"약사회 감사는 예산과 사업을 살펴보는 정도였죠. 여기는 공공기관 감사에 관한 법부터 시작해 청와대, 국무총리실, 기재부, 감사원 등에서 두루 교육받습니다. 6개월동안 서울대 최고감사인과정도 거쳤어요. 지각, 조퇴가 다 기록되는 거에요. 제대로 학생이었죠."

▶배우고 익힌 결과 어떻게 변했나요, 자신이.

"정말 쉬는 날 없이 배우니까 비로소 할 일이 보이고 손에 잡히더군요. 심평원 내부 감사니까 공익적 관점과 윤리경영, 투명성 등을 잣대로 컨설팅에 주력합니다. 예방적 감사 혹은 예방적 컨설팅인 셈이죠. 올해 전문가들이 감사평가를 할 때 감사실 직원들에게 대신 대답하도록 하지 않았아요. 제가 다 알고 숙지하고 있는 사안이니까요. 사실 감사가 직접 다 대답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칭찬도 받았답니다. 하하하."

▶구체적으로 무슨일을 하세요?

"심사와 평가는 법적 기일이 있는데 이 안에 업무가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알람역할을 하죠. 또 700만원 이상 소요된 예산집행 때 감사가 결제를 해야합니다. 자리를 비울 수 없는 거죠. 직원 대상으로 청렴교육도 합니다. 전반적인 업무를 알아야하니까 각종 토론회 역시 진지하게 참석합니다."

▶개국약사의 눈으로 보던 약사직능과 외부, 특히 심평원 상임감사의 눈으로 보는 약사직능에는 차이가 있나요.

"외곽에서 보니 더 잘보이는 것 같습니다. 강렬하고 집요하게 집착적으로 권익을 주창할 때보다 더 많이 더 넓게 보여요. 예컨대 그동안 약사로서 약사직능의 미래를 바라봤다면 이젠 건강보험의 틀안에서도 살필 수 있는 여유가 더 생겼다고 할까요? 공공의 입장에서, 국민의 눈높이로 접근해 풀 사안은 많습니다. 약사에게도 도움되면서 동시에 국민에게도 충분히 이득이 돌아가는 일 말이죠. 또 감사원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만나 이야기하고 지식을 교류하면서 약사에 대한 사회의 객관적인 시선을 잘 알게됐습니다."

▶가정상비약 편의점 판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아시다시피 이미 결정된 사안입니다. 반면 (약사의) 길은 선명하게 보이지 않죠. 저 스스로도 오류를 범한 속에 있었는데 미래 전략적인 준비가 부족했던 거라고 봅니다."

미래를 예측하고 끊임없이 토론하는 심평원 문화가 존경스럽다는 권 감사는 약사사회에도 이같은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무슨 의미죠?

"미래 가상의 목표를 설정해 두고 끊임없이 토론을 거듭했으면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약사회는 일이 터진후에야 뜨겁게 달궈지잖아요. 심평원에서 근무하면서 배운 부분이에요."

▶무엇을 배웠다는 겁니까?

"심평원은 미래를 예측해 놓고 끝임없이 토론합니다. 1년도 넘게 토론을 하는 거죠. 당연히 여러 변수와 가능성이 다 노출되겠죠. 근거중심에 기반한 심평원의 경우 제도나 정책을 실행한 후 피드백 받고 이를 놓고 다시 토론하면서 나갑니다. 심평원에서 존경스러운 점입니다. 저 역시 토론회에 빠진 적이 없고, 감사로서 의견도 개진합니다."

▶어쨌든 약사들은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있죠.

"약사들은 새로운 정체성을 필요로 하고 있음을 잘 압니다. 경험으로보자면 결국엔 민초들의 생각이 맞더군요. 처방조제가 가치 기준이 되다보니 민초들의 단단한 결의가 약해진 건 사실입니다만."

▶올해 12월 대한약사회장 선거가 있습니다. 직선제 선거에 출마도 하셨던 감사님의 이름도 예비후보로 심심찮게 거명되고 있는데 아십니까.

"선거 때 이름 오르내리는 것에 대해 현재로선 큰 의미를 두고 있지 않습니다."

▶그건 감사님 생각이시고, 고정 지지층이 확실하신데요.

"자주 동료들로부터 전화를 받습니다. 전화를 받기는 했습니다만…. 현재 제 머리의 90% 이상은 심평원 감사업무 수행에 있습니다."

▶심평원 안에서 꽤 인기있는 강사라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만.

"직접 듣지 못했지만 전해들어도 기분은 좋네요. 청렴도 교육인데 상임감사가 그 자리에 서면 당연히 청렴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요, 이 점은 짧고 압축적으로 하고요, 남편 밥상 잘 차려주기 등 실생활과 연관된 이야기를 합니다. 어머니의 입장이 되는 건데, 가정이 평안해야 본연의 일을 잘하게 되는 거니까 저는 중요하다고 보는 거죠."

▶심평원으로 와 달라진 개인 생활이 있나요.

"전엔 힘들면 수영을 했는데 요즘엔 걸어요. 늦은 밤 안양천을 1시간 반정도 걷는 거죠. 신기하게도 걸으면 어려운 문제에 궁리가 나와요. 처음엔 운동으로 시작했는데 이젠 궁리하기 위해 걷기도 한답니다."

▶오래전 일기를 쓰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매일 매일 일기를 씁니다. 아니 거의 씁니다. 단상도 있고, 긴 이야기도 있어요. 손으로 쓰는데 잉크 펜을 고집합니다. 펜촉이 종이를 긁고 지나가는 감촉과 소리가 아주 좋거든요."

3년여 만에 만난 권 감사의 표정은 자신감에 차있었고 목소리는 맑고 힘이 넘쳤다. 심평원 상임감사에 대한 자긍심이 높아 보였으며, 1800여명의 심평원 사람들을 마치 가족처럼 말했다. 약사 사회의 미래 역시 자신의 미래로 받아들이는 듯 아파했고, 걱정했다.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 해주세요.
  • 댓글 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운영규칙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첫 댓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