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손건익 차관, 부동의 신념에 양념을 쳐라
- 조광연
- 2012-06-27 06:4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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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제약산업계에서 보건복지부 손건익 차관은 강성 인물로 꼽힌다. 일괄 약가인하와 관련해 '단계적 조치를 취해 달라'는 제약업계의 염원을 끝내 외면하며 강행했기 때문일 것이다. 데일리팜 창간 13주년 특별대담을 위해 5월 하순 오후 집무실을 방문했을 때 그는 북한산 자락이 훤히 보이는 창가로 안내했다. 그리고는 "풍경이 좋습니다. 헌데 도무지 볼 틈이 없어요"라고 말했다.
'웬 자화자찬?'이란 생각이 스쳤다. 대담을 위해 회의 테이블(평소 같으면 실무 과장들이 않았을 자리)에 앉았을 때 '연필들'이 눈에 띄었다. 얼핏 스무자루쯤 돼 보였는데 한결같이 연필깎이로 말끔하게 깎아 놓아 뾰족했다. 연필들은 줄 맞춰 선 독일 병정모양 견고했고 늠름해 보였다. 손 차관의 철저한 준비성과 자신의 일에 대한 사명감, 열정을 대신 말해주는 듯했다. 연필통 곁에 있는 딱 두알의 가래(가래나무 열매로 호두와 비슷하게 생겼음)도 반질반질 윤이 났다. 그는 아마도 왼손으로 연신 두 알의 가래를 비비면서, 이 연필들을 차례로 들어 제약산업의 과거와 현재의 문제점, 그리고 미래의 청사진을 수도 없이 쓰고 지웠을 터이다.
대담이 시작되자 제약산업에 대한 그의 부동(不動)의 신념들은 열을 맞춰 나열됐다. 그는 "(의약분업 이후) 지난 10년간 약가 정책을 볼 때 (일괄인하 정책을) 단계적으로 갈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고 선을 그었다. 실거래가 상환가격이 기준가의 99.5%에 달했다고 지적하며 2000년 151%였던 제약산업의 평균 부채비율이 2010년 57%까지 낮아졌다고 말했다. 제약사의 현금보유가 그 만큼 많았음을, 그 돈으로 연구개발은 하지 않았음을 강조하기 위한 예시였다. 그러면서 "제약사들은 리베이트 쓰며 약 처방 늘리는 영업 방식에 자족하고… 이런 환경에서 벗어나 세계시장으로 나가겠다는 꿈을 키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 상황에서 1년 혹은 2년 더 시간을 더 준다고 개선되겠냐고 반문도 했다. 200명 가까운 제약업계 인사들을 만났을 때 적지 않은 관계자들이 이왕 가려면 일시에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자문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김연아와 박태환의 성공을 예로들고, 때로 포니와 애니콜을 들이댔다. 그는 진심으로 우리나라의 잠재역량과 국내 제약산업의 능력에 대해 확신했다. "7~8년꾸준히 연구개발에 투자하면 2020년께 국민을 먹여 살리는 신성장 동력으로 우뚝 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수한 기술과 인재, 자본이 갖춰져 있는 만큼 충분히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그는 "우리 제약산업은 이제 중동 남미 미주시장을 뚫고 쭉쭉 뻗어 나가야 한다. 무엇보다 용기와 자신감이 필요하다"며 "정부도 해외시장 진출과 판매망 확보를 위해 최선을 다해 지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규제 만의 정부는 결코 아니라고 강변했다. 그는 제약산업에 대해 진정 '비욘드 코리아(Beyond Korea)'를 확신했다.
그의 확신이 아니더라도 국내 제약산업 영속의 조건으로 우선 꼽히는 것 중 하나는 '연구개발을 통한 신약개발과 외국시장 진출이었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다만, 그의 굳어진 신념은 정책과 직결되고 그로인해 제약산업의 명운도 결정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시행착오의 최소화는 필수다. 하루히코 히라테 글로벌 다케다제약 북아시아 대표는 6월 20일 데일리팜이 주최한 '국내 제약회사 CEO 초청 특별강연회'에서 귀담아 들을 만한 이야기를 했다. 그는 "제약산업은 정부의 지원과 함께 가는 산업"이라고 전제하고 "한 때 돋보였던 스웨덴과 독일의 제약산업이 요즘 눈에 띄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책적 지원을 받지 못한 두 나라의 제약산업이 쇠퇴했음을 지적한 것이다.
스웨덴과 독일의 대척점에는 미국이 있다. 미국은 한미 FTA 협정문에 자국 기업들에게 유리한 조항인 '허가 특허연계' 같은 제도를 관철시킨 나라다. 실제 미국 기업인 화이자나 머크, 그 밖의 벤처기업들이 눈부시게 등극한 것은 정책의 산물이라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장하준 교수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장하준 정승일 이종태의 쾌도난마 한국경제'라는 책에서 "미국은 산업정책 안 편다고 선전하면서 다른 나라를 무장해제시키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특히 "미국 제약산업 연구개발비 중 30%가 정부에서 나온다. 세계 최대규모"라면서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미국 안하니 우리도 하지 말아야 된다는 주장이 나온다"고 지적했다. 정승일씨도 "미국 은 국방부와 보건부가 전략적으로 온갖 신약개발을 지원하면서 제약산업이 발전했다"고 분석한다.
정부는 건강보험제도와 국내 시장에 안주해온 국내 제약산업에게 터닝포인트를 준다는 명목으로 약가를 일괄 인하하는 한편 리베이트 영업관행을 근절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같은 정책의 기조를 떠받치고 있는 중요한 한축이 바로 손건익 차관이다. 앞으로도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단 인물로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모든 정책의 의도가 선하다고해서 그 결과마저 반드시 선하란 법이 없다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의 가설'이 있다. 바로 손 차관이 늘 새기고 있어야 할 가설이다. 일괄약가인하 정책과 혁신형 제약기업 지원이라는 투 트랙을 통해 국내 제약산업의 국제 경쟁력 강화를 달성한다는 것이 정부의 구상이지만 방심하다가는 게도, 구럭도 다 잃을 수 있음을 늘 명심해야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일괄인하 등 여러 정책이 국내 기업을 역차별해 다국적 기업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는지, 혁신형 제약으로 인증받은 기업들에게 정상적인 지원이 이뤄지고 있는지, 히든 챔피언을 꿈꾸는 실력있는 기업들이 혁신형이라는 낱말에 밀려 홀대 받고 있지 않는지 늘 세심하게 살펴야한다. 이건 선처가 아니다. 공무원에게 맡겨진 의무 사항이다. 따라서 문제가 나타나면 곧바로 대응해야한다. 정책 과오의 가능성을 손 차관은 그의 연필과 가래 곁에 두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손 차관의 연필들과 가래는 지금부터 더 필요할지 모른다. "그 때 힘들었지만 참 잘한 일이었어" 같은 평가를 위해서 말이다. 그가 국내 신성장 산업으로 우뚝설 수 있다고 정한 2020년 8만제약인은 물론 손 차관 모두 활짝 웃을 수 있기를 우리 모두는 진심으로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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