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자사는 왜 '표준계약서'에 분노할까?
- 어윤호
- 2013-02-02 06:4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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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정위, 경쟁품목 정의 등 변경…제약사간 거래 유형 변화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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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국적제약사들은 요즘 여간 심기가 불편한게 아닙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9일 발표한 표준계약서 형태의 '제약분야 거래 공정화를 위한 가이드라인' 때문인데요. 이 가이드라인은 계약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공정거래법 위반을 예방하기 위한 것으로 제약사간 특허 라이센스, 코프로모션, 코마케팅 계약 등에 적용되게 됩니다.
공정위의 표준계약서 발표 이틀만에 한국다국적의약산업협회(KRPIA)는 성명을 내고 표준계약서의 철회를 촉구했습니다. 이는 상당히 이례적인 일입니다.
KRPIA는 아주 신중한 단체입니다. 정부의 정책이나 제도에 대해 협회의 입장을 밝히는 경우가 드물죠.
협회 회원사들의 국적이 달라 의견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 힘들기도 하고 '외국자본'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부분도 많기 때문입니다. 실제 복지부가 일괄 약가인하를 들고 나왔을 당시에도 KRPIA는 반대 성명을 내는데까지 제약협회보다 3개월이라는 시간이 더 걸렸습니다.
이런 KRPIA가 공정위 발표 이틀만에 성명서를 채택한 것입니다. 확실히 화가 난거죠. 그럼 협회와 다국적사들이 이토록 표준계약서에 분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한번 예를 들어 살펴 보겠습니다.
그들에게 '독'이되는 세가지 항목
원인은 표준계약서내 포함된 3개 조항입니다. 이는 성명서에서 KRPIA가 직접적으로 언급하기도 했죠.
첫번째는 '공급자인 갑의 동의 없이도 을이 자동적으로 재판매권을 가지도록 한다'입니다.
만약 A라는 오리지널의약품을 개발한 다국적사가 국내 B사와 판매제휴를 통해 의약품을 유통하고 있습니다.(참고로 국내사도 오리지널이 있습니다. 다만 아직까지 오리지널 의약품 시장은 다국적사가 압도적으로 리드하고 있죠.)
그런데 B사가 A사의 약을 갖고 영업활동을 벌이다 보니 잘 안팔리는 겁니다. 따라서 B사는 기존의 다른 품목에 영업력을 집중하고자 해당 약의 판매권을 다른 제약사에 재판매 계약을 통해 넘기고 싶지만 지금까지는 반드시 A사의 '허락'이 필요했습니다. 사실상 못하는 거죠.
하지만 표준계약서가 적용되면 B사는 자유롭게 재판매 계약을 진행할 수 있게 됩니다. A사는 자신의 제품을 팔기에 B사가 적합하다고 판단해 유통권을 준 것이기 때문에 B사가 마음대로 판권을 넘기는 것이 가능해진다니 당연히 싫겠죠?
두번째는 '계약의 존속기간 이후에는 아무런 제한 없이 을이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제품을 판매할 수 있도록 한다' 입니다.
얼핏 보면 '계약이 만료됐는데 경쟁품목을 파는 것이 무슨 상관인가?'라는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만 다국적사 입장에서는 상관이 있습니다.
다시 A사와 B사의 예를 들겠습니다. A사가 B사에게 판매를 위탁한 약물은 당뇨병치료제였고 B사는 계약 기간 동안 이 약을 열심히 팔았습니다.
그럼 해당 기간 동안 B사는 당뇨병치료제 시장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의사들을 관리하게 되고 약의 장점과 단점들을 속속히 알게 됩니다. 즉 해당 의약품 시장에서의 노하우가 쌓이게 되는 것이죠.
B사가 만약 계약만료와 함께 다른 다국적사의 당뇨병약을 가져와 팔게 되면 A사 입장에서는 위협적인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장점뿐 아니라 '단점'도 B사는 잘 알고 있죠. 세상에 완벽한 약은 없습니다.
여기에 공정위의 표준계약서는 '경쟁품목'의 범위도 '적응증'에서 '적응증과 약리성분'으로 축소하고 있습니다. 즉 A사의 당뇨병치료제가 요즘 대세인 DPP-4억제제라면 경쟁품목은 당뇨병치료제가 아닌 DPP-4억제제로 좁혀지게 됩니다.
B사는 앞으로 DPP-4억제제가 아니라면 계약기간 내에도 SU계열, 인슐린제제 등 당뇨병치료제를 도입해 판매할 수 있습니다. 다국적사들이 가장 싫어할 조항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지막 세번째는 '개량기술에 대해서 거래형태나 사실관계와 무관하게 일률적으로 을에게 모든 권리를 부여한다' 입니다.
개량기술은 제약업계에서 곧 '개량신약'이죠. 오리지널 의약품을 도입해 판매하는 B사가 순수하게 판매활동만 하는 것은 아니겠죠.
해당 약을 연구하고 또 연구합니다. 그 과정에서 성분을 추가하거나 변형해 새로운 약효를 발견해 낼 수 있겠죠. A사는 B사가 자사의 약을 개량해 품목개발에 성공한 것을 알고 이를 막으려고 합니다.
A사가 선택하는 방법은 보통 두가지인데, B사가 개량신약 출시를 포기하는 조건으로 경재력 있는 품목의 독점 판매권을 주는 경우와 반대로 해당 자사 제품을 시장에서 철수시키고 B사의 개량신약을 역으로 판매권을 가져오는 경우입니다. 실제 이같은 사례는 몇몇 유명한 사건이 있었죠.
그러나 표준계약서대로라면 B사는 더이상 이같은 관행을 지킬 이유가 없어집니다. 온전히 자사가 개발한 개량신약을 시장에 내놓을 수 있게 되는 셈이죠.
몇가지 사안이 더 있긴 하지만 이정도면 독자분들의 이해를 도울수 있었으리라 판단됩니다. 신중한 KRPIA가 재빠르게 대응할만 한가요? 반면 국내사 중심의 제약협회는 특별히 공식적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그럴 필요도 이유도 없죠.
공정위의 표준계약서는 물론 법적 효력은 없습니다. 그러나 정책연구용역과 지적재산권 전문가의 의견 및 이해관계자의 의견 수렴을 통해 제정된 만큼 공정거래법 위반의 판단기준으로 사용될 것이 분명합니다.
과연 이번 표준계약서가 그대로 적용될지, 또 적용된 이후 제약사간 거래 관행이 어떻게 변화할지는 앞으로 지켜볼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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