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 진료, 일반 환자와 다르지 않아"
- 이혜경
- 2013-06-13 12:2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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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의 취득후 12년간 노숙인 진료해온 최경아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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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사협회 노환규 회장에게 물었다.
'칭찬하고 싶은' 보건의약계 종사자를 한 명만 꼽아달라고. 노 회장은 잠깐의 고민을 한 후 바로 "생각났다"고 말했다.
최근 보건복지부장관상을 받은 최영아(41) 원장이 노 회장이 추천하고 싶은 사람이라고 한다.
노 회장이 말하는 최 씨는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내과 전문의를 취득하자마자 지금까지 12년동안 노숙인 진료를 하고 있는 인물이다.
최근 최 원장을 만났다는 노 회장은 "본인이 노숙인 진료를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 호기심으로 시작한 진료가 이제는 '아무도 따라할 수 없는' 수준의 무료진료를 펼치고 있는 인물"이라고 칭찬했다.
칭찬합시다 인터뷰 [上] 서울역 노숙인다시서기의원 최영아 원장

인터뷰 약속을 잡았지만 최 원장은 녹음기, 카메라, 사진기자 동승 사절을 못박았다. 친한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눌 생각으로 오라는 뜻이었다. 자신은 그냥 이야기만 할 것이고, 기자는 듣기만 하라고 강조했다. 21일 오후 2시 노숙인다시서기의원 근처 마더하우스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12년 노숙인 진료, 나에게 내민 도전장'
1990년. 의예과 2학년이던 최영아 원장은 '밥퍼운동'을 시작하게 된다.
그곳에서 노숙인들에게 밥을 떠주고, 그들이 비운 밥그릇을 씻으면서 뇌리속에 '저 사람들은 얼마나 병이 많을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 생각이 12년 동안 최 원장을 노숙인 곁에 둔 이유다.
최 원장은 현재 서울역 노숙인다시서기의원을 운영하면서 노숙인 무료진료를 맡고 있다.
-그저, 병이 많을 것 같은 노숙인을 위해 이 길로 뛰어든 건가요?
"밥퍼운동이 시작이었지만, 매개체는 한국누가회 활동이었죠. 1990년부터 매주 토요일마다 무료진료 봉사활동을 나갔어요. 그때마다 노숙인들의 몸은 엉망진창이었죠. 저혈당, 고혈압 뿐 아니라 마비, 반신불수, 애꾸눈까지. 특히 노숙인들은 자기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어요. 자기학대를 하기 때문에 작은병도 크게 만들었죠. 만성질환 관리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어요.
그런데, 생각해보세요. 사회적으로, 정신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은 이들이예요.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죠. 의사들이 이들을 치료할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는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었죠. 의사가 되고, 훈련을 받는 이유가 뭐예요? 더욱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서죠. 가난하고, 성격이 더럽다고 의사가 환자를 버리는건 옳지 않아요. 이중적인 생각이죠."
-노숙인을 택한 이유가 그 뿐인가요.
"노숙인을 선택한게 아니예요.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해 병원을 가지 못하는 사람을 돕고자 했어요. 노숙인 뿐 아니라 난민, 불법체류자가 제 환자들이었죠. 이 사람들은 대부분 불행해요. 인생을 실패했다는 생각을 많이 갖고 있죠. 여기에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겪게 되면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없게되요. 병원을 갈 수 없어서 죽음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죠. 아무리 좋은 병원을 운영하면 뭐해요. 이 같은 사람들을 도울 수 없는데. 나라도 이 사람들을 고치고 싶었어요."
-밥퍼운동과 누가회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전문의를 선택하게 됐죠? 내과 전문의를 취득했던데, 노숙인 진료와 관련있나요.
"다른 진료과목은 환자들이 죽고 사는 모습을 제너럴하게 볼 수 있는데 반해, 내과는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환자를 진료하다가 죽음까지 보게되는 역할을 하죠. 노숙인의 경우 병이 진행되면서 혼자 몸을 가누지 못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 사람을 보기 싫어하는 의사들도 있지만, 봐야하는 의사들도 있잖아요. 내과를 선택해 환자를 자꾸 보다보면 그런 환자들이 덜 싫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죽지 못해 살아가는 과정을 보다보면 답이 나오지 않을까라는 생각. 의사가 됐으니, 죽는 사람의 전후를 보자라는 생각으로 내과를 택한거죠."
-마음을 열고 노숙인 진료를 하고 있지만. 힘들때도 있을 것 같아요. 한동안 의료인폭행이 이슈였잖아요.
"처음에는 멱살도 잡히고, 거의 술집 작부 취급을 받았었죠. 노숙인 중에 만성적으로 취해 있는 사람들이 많아요. 간호사들 행동이 마음에 안든다고 갑자기 폭력적으로 변하죠. 부수고, 돈주고, 칭찬하고, 멱살잡고, 하루에도 몇 번씩 경험했었어요. 하지만 생각을 바꿔 생각하니깐 참겠더라고요. 그들이 자신의 분노를 표출할 수 있는 창구가 유일하게 병원이고, 의사가 아니었을까."
-참는것도 한계가 있었을텐데….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선우경식 원장님을 많이 찾아뵈었죠. (고 선우경식 원장은 영등포 쪽방촌 무료진료로 유명하다) 술 먹고, 말 안듣고, 부수는 노숙인 환자를 어떻게 해야하는지 투정을 부린적도 있죠. 그때 선우 원장님께서 '나는 한 사람을 60번 입원 시킨 적도 있었다'고 하셨어요. 60번 입원 시키니깐 결국 술을 끊고 말을 듣게 되더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아직 멀었구나'라는 생각을 하곤 했죠. 전 한 사람을 12번까지 입원 시킨 적 있었는데, 정말 힘든 일이었죠."

2002년 다일천사병원을 운영하다가 문을 닫고 2004년부터 요셉의원에서 일했다. 선우경식 원장이 세상을 떠나면서 요셉의원장을 맡았다가 2009년에서야 서울역으로 들어왔다.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진료를 하던 다일천사병원이 문을 닫은 이유를 물어봤다.
-병원을 여러번 옮겼는데 이유가 있나요?
"다일천사병원을 열고 좌충우돌이 많았어요. 매일 술을 먹고 병원 기물을 파손하는 아저씨가 있었는데. 지금은 의료보호 1종을 만들어서 지방의 정신요양병원에서 지내죠. 아직도 연락하고 있어요. 하지만 그 아저씨가 다일천사병원을 그만 두게 만든 가장 큰 이유죠. 성폭력, 살인 등으로 15년 동안 교도소에 있다가 노숙인이 된 사람이었어요. 분노조절이 잘 안되는 사람이었고, 병원 직원들이 모두 무서워했죠. 하루는 병실에 같이 있던 외국인 노동자를 집어 던질 뻔 했었어요. 그런 사람이 갈비뼈가 부러져서 폐에 물이 찬 상태로 병원에 왔어요. 죽지 않고 살려놨는데, 직원들 사이에서 '입원시키지 말자'는 의견이 팽배했어요. 저는 의사로서 죽음을 방치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고요. 결국 입장차가 벌어지면서 병원을 떠났었죠."
-노숙인 진료를 시작했을 때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요.
"1990년대 길에서 노숙인이 쓰러지면 112나 119에 연락해 의사가 동승해야만 행려자증을 끊어줬어요. 하지만 행려인 진료는 병원에서 처리하기가 복잡해 거부하는 곳이 많았어요. 하지만 2004년부터 법이 바뀌면서 서울시에서 노숙인을 도울 수 있는 예산을 마련했죠. 노숙인에게 임시주거지를 지원하고 의료급여를 만들어줬어요. 그리고 2012년 6월부터 전국적으로 노숙인 의료급여가 생겨서 국공립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줬죠. 지난 몇 년동안 의료급여 1종을 만들어준 노숙인이 1000명이 넘을 정도예요."
그래서일까. 최 원장은 노숙인 진료를 시작할 때보다 요즘 훨씬 수월하게 진료를 하고 있다고 한다.
전국적으로 노숙인이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마련된 의료급여 때문이다.
-이젠 노숙인 진료를 벗어나 개인의원을 운영해도 되지 않을까요.
"당장 개원을 생각하고 있진 않아요. 마리아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은평마을이 있는데 그 안에 도티병원이 있어요. 외국인 노동자, 고아 등을 돌보는 병원인데 50년 정도의 역사를 지니고 있죠. 그곳에서 격일로 진료를 돌봐달라고 해서 고민중이예요. 2012년 노숙인 의료급여가 시행되면서 노숙인 진료에 대한 셋업은 마쳤기 때문에 제가 다른 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고 하고 있죠. 돈을 벌기 위해 개원을 하지 않겠다고 말할 수 없지만, 이젠 아이의 엄마로서 남편의 부인으로서의 역할도 해야하지 않으까라는 고민도 하고 있어요."

"남편 때문에 노숙인 진료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남편이 집안일을 도와주면서 노숙인 진료하는 저의 모습을 같이 기뻐해주고 도와주고 있거든요."
-혹시 남편도 의사인가요?
"(웃음) 네. 누가회 진료 봉사 시절 만났어요. 남편은 외과 전문의예요. 다일천사병원 운영했을 때는 병원에 와서 수술도 많이 해줬고, 지금은 협력병원 중 하나로 노숙인 진료 대장암 수술을 진행해주고 있어요. 남편이 노숙인을 위해서 수술비를 내줄 때도 있을 정도로 저의 협력자이자 조언자 역할을 하고 있죠."
-남편이 조언자였군요. 든든하시겠어요. 12년, 노숙인 진료를 시작할 때 스스로가 배우자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들었는데요. 어떠세요 지금까지 진료를 해본 결과가?
"좋은 훈련이었어요. 노숙인이나 난민은 누구나 될 수 있어요. 의사인 제가 하는 일은 삶을 포기하려고 마음 먹고, 스스로 무기력해지는 그들을 구하는 거예요. 그냥 두면 자살을 생각하는 노숙인을 돌보기 위해 의사들이 필요했다고 봅니다.
결국 의사들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의 옆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어요. 돌보기 힘든 사람들을 돌보면서 훈련이 됐고, 지난 7~8년 외국인 노동자, 노숙인 등을 만나면서, 누구든 환자로 대해야 한다는 점도 또 다시 배웠고요. 어떤 종류의 환자든 일반 환자와 다르지 않고 '환자' 일 뿐이라는 거죠. 그동안 수 많은 사람들을 통해 병의 좋아짐과 나빠짐을 보고, 죽음까지 지킬 수 있었던 '좋은 훈련'을 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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