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제조약사'와 '김 품질약사'…누가 잘못했나
- 조광연
- 2013-06-03 12: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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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이레놀 현탁액 사건으로 들여다 본 제약 공장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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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P 제조소 안으로
여기는 의약품 제조소. 제조소는 상상 이상 특별한 공간입니다. 청정구역이자, 법적 공간입니다. 법적공간이라니 의아해 하실겁니다. 이 구역 안에서 작업자들의 움직임은 자유의지가 아닙니다. 약사법을 모태로 한 GMP 규정에 따라 행동해야 하고, 무엇인가 행위가 있었다면 문서로 기록을 남겨야합니다. 카드결제 뒤 서명처럼 말이죠. 참, 작업실 안은 청정구역이라서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은 자제합니다. 오염의 원인이 되니까요.
제조소 안 운영조직은 어떻게 구성돼 있을까요? 새 GMP 제 3.1항 가목에 근거해 제조부서와 품질(보증)부서가 독립돼 있습니다. 제조소의 양대산맥입니다. 두 부서 책임자는 약사나 한약사며 겸직할 수 없습니다. 건축 현장에서 시공과 감리 책임자를 동일인으로 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죠. 그래서 이 둘은 '견제적 관계'입니다. 인간적으론 몰라도 업무적으론 가까이하기 너무 먼 당신들입니다. 품질이 높은 의약품을 생산한다는 목표는 같을지언정 역할은 천양지차 입니다.
둘은 각자 영역서 GMP(우수의약품제조기준)라는 식약처 고시를 철저히 준수하며 작업자들에게 지시하는 법의 집행자입니다. 달리 표현하면 '제약회사 직원이되 식약처 공무원의 아바타'라 해도 무방합니다. 둘이 겸직할 수 없다는 규정에서 눈치채셨겠지만, 업무와 관련해 '좋은게 좋다는식'으로 담합해서는 절대 안됩니다. 이들은 밖에서도 다른 일에 종사할 수 없습니다. '투잡 원천 불가'인데 그 만큼 이들의 역할이 막중하다는 뜻이겠죠.
박제조 약사와 김품질 약사는 '식약처 공무원의 아바타'
둘의 관계는 미묘합니다. 성경에선 왼손 하는 일, 오른손 모르게 하라지만 둘은 서로 일거수 일투족을 상세하게 알아야 합니다. 의약품 탄생 과정에서 '나홀로 비밀'을 간직해서는 안된다는 뜻입니다. 서로 하는 일을 잘 알아야 하지만 입으로 말하고 귀로 듣는 것에 그쳐선 인됩니다. 꼭 문서를 통해 소통해야만 해요. 다큐멘테이션(documentation)이라 합니다. 소위 5W1H라는 6하원칙보다 더 꼼꼼하게 문서화해야 합니다. 좁쌀을 세는 일처럼 지난합니다.
식약처 발표에 따르면 한국얀센 제조부서는 타이레놀 현탁액 충전 과정에서 99.4%는 자동충전하고, 나머지 0.6%는 수동으로 병에 담았습니다. 통상 현탁액 같은 액제충전 설비는 약액 조제탱크에서 직접 자동충전하거나 서비스 탱크를 둬 이곳에서 충전하게 된다고 합니다. 함량 초과 문제가 생긴 부분이 바로 0.6%를 했다는 수동충전 과정이었습니다.
수동충전은 왜 필요했을까요? 현탁액에서 주성분 등이 밑으로 가라앉지 않도록 휘저어 주는 교반 장치에 문제가 있지 않나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교반과정에서 주약 성분이 섞인 거품이 발생해 수동으로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99.4% 충천 후 남은 게 거품 부분이었을텐데, 거품은 시간이 흐르면 소멸되는 등 이를 수동으로 주입해 정량을 맞추기란 쉽지 않다고 합니다. 맥주잔에 생기는 거품을 상상해 보시면 감이 잡히실 겁니다. 거품이 꺼지면 액체가 되지만 그 양을 맞춰내기는 쉽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현장관계자가 아닌이상 GMP 전문가라해도 외부에서 설비에 대한 추정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이 보다는 약액 조제 후 충전하고 남은 잔량의 물성이 거품(기 알려진 사실임) 등으로 변했다거나 이 변화가 함량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공정 밸리데이션에서 확인 항목으로 포함시켰어야 했는데 놓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일반적 추정이 더 유효하고 안타까운 부분입니다.
단순 무식한 생각이지만 문제가 된 0.6%를 버렸으면 어땠을까요? 아마 수율 문제가 걸림돌로 작용했을지 모릅니다. 172개 로트, 167만병이라고 하니까 로트당 9707병이 나와야 하는데 0.6% 즉 58병 가량 버려지는 건 제조부서나 공장 입장에서 쉬 받아들일수 없는 문제였을 겁니다. 전체적으론 1만병쯤 되니까요. 일괄약가 인하 등으로 너나없이 공장 사이트에서 벌인 생산성 향상 노력이 변수가 되지 않았나 생각도 해보게 합니다.

수동충전이라면 왠지 자동충전에 비해 열등한 느낌이 들지만 수동충전 그 자체엔 사실상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관건은 앞서 이야기 했던 것처럼 문서화돼 제조부서책임자와 품질부서책임자가 소통하며 문제를 공유했느냐 입니다. 식약처는 이와 관련, 제조사는 수동 충전공정을 제품표준서의 제조지시서에 명시되지 않은 방식으로 실시했으며 작업자 성명, 작업연월일 및 작업시간 등을 제조기록서에 기록하지 않고 작업했다고 밝혔습니다. 수동충전했으면 그 행위를 모두 다큐멘테이션해 품질책임자와 공유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죠.
통상 우리나라의 경우 공장장 아래 제조부서 책임자와 품질부서 책임자를 둡니다. 선진국의 경우 품질부서 책임자를 공장장 아래 두지 않고, 본사 기술담당 부사장 아래 두거나 또는 본사 사장과 직접 보고라인의 길을 터 둡니다. 품질문제는 그 만큼 중요하고 그래서 엄격하게 관리해야한다는 뜻이겠지요. 직무속성상 공장장이나 제조책임자는 품질문제가 노출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고 귀찮은 일일 겁니다. 반대로 회사 전체의 안위를 고려해야 하는 본사 경영진이나, 품질을 보증하고 출하 승인을 책임지는 품질책임자의 입장은 다릅니다. 품질에 관해 책임을 모두 져야하니까요.
유럽은 '퀄리파이드 퍼슨(qualified person)'이라는 제도가 있어 사내에서 지명을 해 두어야 하고 이 사람은 법적인 책임도 지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제약회사도 품질(보증)부서를 사장의 직속으로 조직도의 선을 그어두기도 합니다. 이같은 조치가 필요는 하겠지만 제조현장의 작업자들이 SOP를 준수하지 않거나 공정 밸리데이션을 통해 정확한 SOP가 마련되지 않으면 얼마든지 사고는 나타날 수 있습니다. 기준보다 사람이라는 것이죠.
어쨌든 이런 맥락에서 보면 타이레놀 현탁액 함량 초과 문제엔 여러가지 의구심이 듭니다. GMP 기준에 따르면 타이레놀 제조부서책임자는 전량 자동충전이 안되고, 일부 수동 충전했다는 사실을 문서를 통해 품질부서책임자에게 알렸을까요? 품질부서책임자는 약간의 문제가 발생해 수동충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문서로 접하고도 '그 정도 쯤이야'하며 양보해 품질시험을 하지 않았던 걸까요? 공장장은 이와 같은 사실을 알았을까요? 공장안에는 GMP위원회를 두고 이같은 사안을 수시로 논의하도록 되어 있는데 말입니다.
가장 궁금한 점은 본사 사장은 함량이 초과된 이런 사실을 처음부터 정확히 보고 받았을까요? 무엇보다 품질과 윤리경영이라는 원칙을 강조해 온 다국적기업 얀센이라면, 알고도 쉬쉬했을리 만무인데 말이죠. 조직 프로세스로보면 제조부서책임자가 수동충전과정에 원천적인 의문을 품지않았다면, 품질부서책임자나 공장장, 본사 경영진은 알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추정합니다. 식약처 발표대로라면 이같은 프로세스가 원활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고의성은 없어 보인다…문제는 루틴했던 안일함"
얀센은 고의적으로 이번일을 은폐하려 했던 것일까요? 국내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그 정도(0.6%)쯤이야 별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을 한 것으로 보이지 결코 고의는 아닐 것으로 본다"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제조부서가 귀찮아지고, 복잡해지는 것을 우려해 오픈하지 않았을 개연성도 있다고 짐작합니다. 전문가들은 만약, 품질부서가 알았다면 이렇게 넘기지 않았을 것이라는데 입을 모읍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노련한 작업자가 있었다면 물성만 보고도 찜찜하게 여겨 품질부서와 협의했을텐데 그렇게하지 못한것 같다고도 합니다. 실제 콘서타 같은 품목의 경우 설비를 변경하고서도 공정밸리데이션을 하지 않았거나, 제조지시서와 다른 수동충전방식을 한 걸보면 GMP의 중요성이나 제조소내 긴장감이 크지 못한 것만큼은 분명해 보입니다.
세상에 100% 완벽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다시 고칠건 고쳐나가야 겠지요. 타이레놀현탁액 문제를 수면위로 올린 한국얀센은 "겸허한 자세로 사회적 책무를 다하겠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김옥연 사장은 지난 달 27일 공장서 가진 30주년 기념식에서 '혁신경영, 책임경영, 품질경영'을 천명했습니다.
얀센은 이번 사건의 후속 조치로 식약처의 지시사항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과 함께 5가지 중점 사항을 별도로 진행한다고 합니다. 목표점은 향남 공장을 얀센 아태지역의 거점으로 재정비해 고객 신뢰를 학보하는데 맞춰져 있습니다. 이를 위해 우선 글로벌 품질팀, 향남공장 품질팀과 태스크포스팀을 꾸려 전반적인 GMP 및 품질관리를 검토 개선하고, 얀센 본사의 지원을 받아 전 제품의 공정을 재평가해 제품의 품질을 보증할 수 있는 생산공정을 확립한다는 것이죠. 여기에 인재개발 프로그램을 강화해 공장 직원들의 전문성과 역량을 향상시키고, 생산시설을 개선하고 장비에 대한 투자도 늘리기로 했습니다. 수출국의 요구를 보다 충실히 만족시키는 GMP시스템을 구축한다고 합니다.
혹시 무엇이 문제인지조차 모르는 제조소는 없을까?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이 지점에서 이런 생각이 떠나질 않습니다. "국내 제약업계는 모든 기준을 과연 100% 지키고 있을까?"라는 의문과 걱정말입니다. 혹시 이런 회사들은 없을까요? 문제가 수면위로 올라오지 않았을 뿐이지 가슴 졸이는 회사 말입니다. 수 많은 제품을 생산하는 회사가 공정 밸리데이션을 형식적으로 해 어떤 리스크가 존재하는지 조차 파악이 안돼 오히려 천하태평인 곳은 과연 없을까요? 실제 일본 등 해외 GMP실사에서 지적을 받고 수출길이 막힌 국내회사들도 있거든요. 외국서 승인 받은 내용은 소위 미담처럼 기사화 되지만, 탈락되는 사실들은 알려지지 않으니까요.
타이레놀현탁액 문제를 살펴보면 얀센은 제조소내 문제를 인지하고 난 후 이를 식약처에 자율보고 했으며, 자발적 회수조치 등 GMP를 규정대로 해결하려 노력했던 것은 사실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앞서 지적한 다큐멘테이션 미흡 등 잘못은 잘못대로, 긍정적 요소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관용도 필요해 보입니다. 만약 얀센이 숨기려고만 했다면 이 문제는 이처럼 수면위로 올라오지는 않았을테니까요. 예전 화이자가 비아그라를 출시하고 규정에 따라 열심히 이상반응을 보고한 내용을 '부작용 많은 비아그라'로만 몰아가는 우를 또 범하지 않도록 말입니다.
국내제약 장비중심 GMP서 사람 중심 GMP 이행해야
1977년 우리나라 GMP가 공고된 후 36년이 지난 지금, 제약사들은 너나없이 미국 cGMP를 운운하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들도 잘 아시는 것처럼 건물과 시설이 첨단이라고 스스로 뭘 해내지는 못합니다. 결국 이를 움직여 보배로 만드는 건 사람아닌가요? 약사법과 GMP가 세세하게 규정되어 있고 엄격하게 감시를 한다 해도, 또 모든 행위를 문서화한다고 해도 결국엔 사람이고, 그 사람의 양심일 겁니다.
가령 작업 중에 작업조건을 벗어났을 경우(이것을 '일탈'이라고 합니다) 실무자가 양심에 따라 사실 그대로 제조기록서에 기록하지 않는다면 알아낼 방법은 없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의 생명과 관련되는 의약품을 만드는 사람들이 늘 GMP Mind를 지니고 작업에 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박 제조 약사'와 '김 품질 약사'가 깨어 있어 오늘도 국민건강을 먼저 생각해 의약품의 안전성면에서 건설적으로 견제하고 협력하는 풍토가 만들어지기를 진심으로 기대해 봅니다. 제약사 경영진들도 연구개발과 마케팅, 영업에만 몰두하지 말고 공장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겁니다.
'박 제조 약사와 김 품질 약사'는 높은 품질의약품 생산을 위해 제조소 안에선 치열하게 책임감으로 견제하며 협력하되 출근길에 만날 때 만큼은 인간적으로 가볍게 인사하는 겁니다.
"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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