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나는 도둑놈이 아닙니다"…어느 약사의 절규
- 조광연
- 2013-06-21 06: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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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실게임된 심평원 청구불일치 서면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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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고속도로 CC-TV 녹화 화면을 되돌려보니, 귀하 소유의 65오 64XX 차량이 여러차례 과속을 한 정황을 포착했습니다. 2009년 7월3일과 8월5일, 귀하가 과속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해 주시기 바랍니다. 과속을 인정하신다면, 범칙금을 납부하겠다는 내용을 적어 동봉한 확인서에 서명 날인하여 30일 이내 회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첨부자료: 안내문, 확인서 각 1부, 어슴푸레 흐릿한 CC-TV 사진 2장."
만일 독자 여러분이 경찰 당국에서 이같은 통보를 받았다면? 약사들이 요즘 이와 유사한 일로 난리법석이다. 이유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감사원의 지적사항을 이행하기 위해 일로매진 중인 '의약품 공급·청구불일치 내역 확인 요청' 때문이다. 데이터 마이닝(data mining) 기반의 일명 청구불일치 서면조사다. '의약품 도매상 등 공급업체가 신고한 의약품공급 내역과 약국의 약제비 청구(사용) 내역'을 대조해 그 차이를 밝혀내는 방식이다. 약사들은 그 차이를 해명하려 먼지 쌓인 서류 더미를 2~3일씩 시간을 쪼개 뒤지고 있다. 약사회가 있다고는 하나 무력하기는 마찬가지로 결국 십자가는 약사 개인의 몫이다.
"우리는 의심한다...죄없음을 스스로 입증해 보이라"
심평원의 청구불일치 서면조사는 '공급내역과 청구내역'을 견줘서 나타난 차이를 '의심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이 의심은 구체적으로 약국이 저가의약품으로 조제하고, 고가의약품으로 청구함으로써 부당하게 이익을 얻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심평원의 서면조사는 "우리는 당신의 행위를 의심한다, 고로 약국이 스스로 죄없음을 입증하든가, 부당 이익을 토해내라"는 말과 같다. 사극의 흔한 장면 "네 죄를 네가 알렷다"와도 중첩되는데, 추상같은 호령앞에 떨고 있는 약국이 무려 1만곳이다.
"난, 도둑놈이 아닙니다." 모 약사는 데일리팜 기자를 만나자 마자 이렇게 말했다. 그는 "한달에 겨우 2224원을 편취하려고 ml당 10원인 의약품을, ml당 14원인 약으로 허위 청구했겠습니까? 이게 뭐하자는 겁니까" 라고 반문했다. 물론 그의 항변이 서면조사 대상 1만 약국에 대한 의심을 다 설명해 주지는 못할 것이다. 1만 중엔 진실로 억울한 곳도 있을 터이고, 경미하지만 급한 김에 행한 의도적 사례도 있을 것이며, 뭐가 뭔지도 모르는 가운데 이뤄진 경우도 섞여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억울함을 호소하는 약사들의 구구절절한 사연들은 대부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그렇다고 한다면 '입구와 출구의 의약품 종목과 수량을 대조'하는 방식으로 1만 약국을 의심하는 것은 과연 타당한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약사들이 입증한 구구한 사연들 구조적 문제로 귀착
약사들이 토해낸 사연들은 한결같이 보건의약계의 구조적 문제로 귀착된다. 1만종이 넘는 보험약품과 약국 수용의 문제를 비롯해 ▶지역의사회의 처방의약품 목록 미제출 ▶사후통보 같은 대체조제 걸림돌의 존재 ▶잦은 처방변경이 빚어내는 반품 연례 행사 ▶분업초창기 원활한 조제를 위해 권장됐던 약국간 교품 혹은 빌려오기 ▶약국간 불용재고 교품 권장 관행 혹은 문화 등이 난마처럼 얽혀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단순히 공급과 약제비 청구(사용)를 비교해 위법의 가능성만 크게 보는 행정은 과연 올바른 것일까? 특히 데이터 마이닝의 출발점인 제약회사, 도매업체 등 공급자의 거래내역 보고의 오류 가능성은 감안하지 않은 채 수치상 차이를 유통의 마지막 단계인 약국에게만 입증하라는 명령은 행정권력의 오용내지 남용이다.
물론 심평원이 현지조사하고 있는 1000여개 약국은 별건이다. 심평원이 데이터 마이닝을 통해 차이나는 금액이 상식 밖이어서 누가 봐도 행위에 고의성이 짙은 것으로 추정했기 때문이다. 이 들에 대해선 서면조사를 받고 있는 약사들 조차도 일벌백계 해야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실제 서면조사를 받는 약사들은 수시로 데일리팜에 전화를 걸어 억울하다고 하소연하거나, 문제를 지적하는 반면 현지조사를 받았다는 약사들은 누구도 연락하지 않았다. 주변에선 경영잘하는 모 약국이 현지조사 때문에 폐업했다는 등의 흉흉한 이야기만 나돌 뿐이다. 이들 약국을 어떻게 해야할까? 감사원 지적대로 환수조치 등 사법적, 행정적 조치를 내려야 한다. 이들은 환자를 속였고, 국고에 준하는 건보재정을 축냈기 때문이다.
서면조사 약국과 현지조사 약국은 질이 다르다
그렇다면 '약 4년간 거래 금액 8억원 중 8만원의 차이를 낸 약국은 어떻게 볼것인가. 이들은 고의성을 입증하기도 힘든데다, 오히려 구조적 문제의 희생자들이다. 그런데도 이곳에 자료를 입증하라 하고, 잘못을 인정한다는 확약서를 쓰게 하며, 그 금액을 환수해야 옳은 일일까? 그게 추상같은 정의의 실현일까? 감사원은 본연의 직무 실현을 위해 환수하라고 지시할 수 있다. 피감기관은 당연히 그 지적을 개선하고 이행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지적을 액면 그대로 이행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보건의약계의 문제를 모르는 곳이라면 몰라도 전후 사정을 꿰고 있는 심평원이라면 고의성 짙은 약국을 면밀하게 밝혀 다수의 약국에게 경계로 삼겠다고 왜 당당하게 감사원에 소명하지 않았는지 납득할 수 없다.
서면조사는 참 고약하다. 4년이라는 기간 중 어느 날 이뤄진 거래내역서나, 혹은 급한 환자 때문에 이웃약국에서 약한통 빌려와 조제한 후 밥한끼 산 사연을 입증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더 고약한 함정은 귀찮아서 그깟 8만원 포기하고 싶은 유혹 뒤에 숨어있다. 해당 약사야 8만원 없는셈 칠 수 있겠지만 '없는 셈 치는 순간' 이건 스스로 유죄를 인정하는 꼴이된다. 통계는 과학의 영역이지만, 때때로 진실을 왜곡하는 악마로 돌변한다. 일단 전국 약국을 2만곳으로 칠 때 만약 1만곳이 확인서를 쓰고 입증을 포기했다면 심각한 상황이 전개될 것이다. '약국 절반이 싼약으로 조제하고 비싼 약으로 속여 돈을 타냈다.' 어디서 봄직한 텍스트 아닌가? 다행스럽게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다쳐도 약사 집단의 덜미는 이미 남의 손에 내 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행정의 원칙은 새 사회질서 구축...진실게임은 안돼
심평원의 서면조사는 지금처럼 진실게임이 되어선 안된다. 기존 질서의 과오를 수정하며 새 질서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행정의 목표이자 원칙이라고 한다면 '다수를 아마도 도둑일거야'라는 추정으로 거의 모든 약국을 이잡듯 조사하는 것은 옳은 방법이 아니다. 확실히 문제가 있는 곳을 정밀타격해 감시의 눈이 살아있고, 법이 엄중 집행된다는 것을 다수에게 보여줘 추후 같은 문제가 재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별도의 팀을 만든 심평원도 힘에 겹고, 늦은 밤 셔터를 내리고 서류를 뒤적거리는 약국들도 고통스러운 소모전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감사원인가? 아니다. 바로 새 질서다. 새 질서를 통해 얻게될 공익이다.
약사들에게 그래도 믿을 구석은 대한약사회 뿐이다. 따라서 약사회는 이 문제를 매우 심각하게 인식해야 한다. '이럴 땐 이렇게 소명하고, 저럴 땐 또 저렇게 소명하라'는 식의 내비게이션 역할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논리의 문제를 넘어 정치력의 공간으로 접어든 사안이란 말이다. 고의성 짙은 약국 1000여곳을 몽땅 들어다 받치고서라도 고의성이 없거나 경미한 대다수 구조적 문제의 피해 약사들과 약사 직능을 구해야 내야 한다. 현장약사들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지만 그 보다는 미래 약사 직능 보전이라는 측면에서 다급하고 위중한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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