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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갑 노릇 좀 해 봤어, 하하하"

  • 조광연
  • 2013-09-11 06:34:58
  • 글로벌 신약 카나브 전도사 김승호 보령제약그룹 회장

올해 여든 둘의 김승호 보령제약 그룹 회장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접견실로 들어섰다. 자신의 집무실과 연결된 짧은 거리였지만, 발걸음은 빠르고 가벼웠다.

"아이고, 오랫만이유. 어쩐일로 오셨어? 나한테 뭘 들을 게 있다고. 새벽에 데일리팜 잘 보고 있어요. 더 좋은 내용, 제약산업 발전에 보탬이 되는 기사 부탁해요." 그간 몇 차례 공식 석상에서 했던 인사말을 멀찌 감치서 들어본 적은 있지만, 가까이 마주한 일은 처음이었다. 목소리는 카랑했고, 얼굴 표정은 온화했다. 김 회장은 우선 최신형 스마트폰을 탁자 위에 내려 놓았다.

주황색 계열의 넥타이에 영향받은 김 회장의 얼굴은 한층 화사하고 투명해 보였다. 회사 출입 카드를 목에 걸고 있었다.

"그거 사원증인것 같은데 그러면 회장님이 1번인가요?"라고 묻자 눈 가까이 사원증을 가져간 김 회장은 "002번이야. 우리 제약회장(김은선 회장)이 1번인가봐"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탁자에 놓인 다과를 가리키며 "어서 드셔"라고 권했다.

4~5년 전 보령제약 대강당에서 행사가 열려 갔던 때가 오버랩됐다. 어느 중년의 아주머니가 강당 주변을 기웃거리자 김 회장은 다가가 "어디 찾으셔?"라고 묻고는 친절하게도 안내했다. 그 따뜻했던 기억이 "드셔"라는 말 한마디에 뜬금없이 되살아났다.

짧은 인사가 끝나고 살짝 침묵의 분위기로 넘어갈 즈음 비장의 무기 '카나브 이야기'를 꺼냈다. 지난 7월 중남미 수출을 위해 편도로만 스물 다섯 시간의 비행을 마다하지 않았던 김 회장의 눈 빛은 순간 강렬해졌다.

9월6일 오후 2시 서울 원남동 집무실에서 김 회장을 만났다. 한시간 가량이었지만, 김 회장은 유쾌한 태도로 일관했다. 카나브는 김 회장에게 어떤 의미인지, 카나브를 통한 보령의 비전은 무엇인지를 이야기했다. 카나브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목소리의 톤은 높아졌다. 김 회장은 카나브에 대해 깊은 자긍심을 보였다.

김승호 보령제약그룹회장은 ARB계 고혈압치료제 카나브의 글로벌 진출을 위해 멕시코로 직접 날아갔다.[사진=보령제약 제공]
▶멕시코, 그 먼거리를 직접 가셨어요.

"중남미 13개국과 연관된 카나브 발매식이 멕시코에서 있었어요. 그간 국내 의약품의 해외진출 계약은 적지 않았지만, 현지서 발매하고 실제로 마케팅까지 한 성공 모델은 드물었잖아요. 그 역사적인 현장을 지켜보고 싶었습니다."

▶보시고 느끼기에 행사는 어땠나요.

"흡족했고 감격스러웠어요. 박인석 복지부 보건산업정책 국장, 음양으로 도움을 준 진흥원 관계자, 코트라 관계자 등 정부가 전면에서 개척단을 꾸려 지원해 주고, 멕시코에서 4~5위 권인 파트너 스텐달이 깜짝 놀랄 만큼 행사를 잘해 줬어요. 우리나라 제약의 역사가 그렇지만 지금까지는 외국에서 신약을 도입만 했는데 이날 행사는 돈(수출금액)도 받고, 갑노릇도 좀 해보고 한 자리였어요. 가슴이 벅찼지요. 제약회사를 일군이래…좀 속된 표현으로 거지생활만 해오다 모처럼 주는 입장이 됐다는 거지요."

▶카나브, 회장님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카나브는 한 두마디로 줄여서 말할 수 있는 단순한 약이 아니에요. 보령인의 의지와 땀이 스며있고, 글로벌을 향한 보령인 모두의 비전이 담겨 있고…. 각별하죠, 아주 각별하죠. 정말 어렵게 신약을 개발했고, 세계시장으로 뻗어나가고 있으니까요. 어느 정도 반석에 올랐지만 더 반듯한 반석을 꿈꾸고 있습니다. 카나브는 명실상부한 글로벌 신약입니다."

▶왜죠?

"아시다시피 고혈압치료제 시장은 세계적으로 가장 큰 시장이고, 이중에서 ARB계 약이 절반을 차지해요. 그런데 우리가 세계 8번째로 ARB계 신약을 개발했어요. 잘 아시겠지만 우리보다 앞선 곳이 죄다 내로라하는 다국적 기업 아닌가요. 그 대열에 같이 섰다는 의미가 남다르고, 글로벌 시장에서 판매할 수 있는 품목이라는 게 자랑스러워요. 올해 1월에 1만4000여명의 한국인을 대상으로 임상4상을 완료했는데요, 글로벌 메이저 고혈약과 비교해 혈압강하 효과가 우수하고 안전했어요. 자부심을 느낍니다."

▶카나브와 관련한 에피소드, 소개해 주세요.

"2010년 고혈압 학회 때가 생각나는데요, 전 세계에서 1만여명이 모이는 큰 학회에요. 카나브 임상결과를 발표하는 날 저는 당연히 감격스러웠지만, 함께 간 국내 임상 선생들도 들떠 있더라구요. 자신들이 주도한 우리 약에 대한 연구를 발표하는 것에 자부심이 드셨던 거죠. 2014년 한국에서 이 학회가 열리는데 이 때가 우리에겐 좋은 기회가 될 것 같고요. 무엇보다 우리가 차린 찬치상에 내놓을 게 있어서 기대됩니다." ▶카나브로 국내서도 재미 좀 보셨나요.

"2011년 3월 국내서 발매했는데 첫해에 100억원, 작년에 205억원어치를 판매했어요. 제 기대치엔 못미치만 현실적으로 보면 괜찮은 실적이에요. 앞으로 더 잘 될겁니다."

▶그러면 외국에선 어떤가요.

"지금까지 계약한 금액을 모두 합치면 1억1460만 달러 정도 됩니다. 중미의 멕시코를 비롯한 13개국과 브라질을 필두로 한 남미 국가가 포함돼 있고요, 러시아에도 성과를 냈어요. 지금은 중국과 동남아, 미국 및 유럽 등에서 수출 협상을 진행하고 있어요. 2023년까지 물질특허가 있는 약이라서 지금보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신약입니다. 복합제 개발도 계속하며 품목을 확장하고 있으까 무기가 많아지는 셈이죠."

멕시코에서 진행된 카나브 현지 발매식 장면. 김승호 회장(왼쪽 사진 가운데)이 본격 발매식에 앞서 최태홍 사장(왼쪽사진 두번째)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김 회장이 현장에서 전용관 부사장과 행사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보령제약 제공]
▶카나브외에 기대를 걸고 있는 사업분야는 뭐에요.

"바이오 백신에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1등으로 올라설 겁니다. 지금 5년 계획을 세워 실행하고 있어요. 처음에 백신 사업한다니까 '그거 돈 많이 들고, 골치 아프다고 주변에서 말리더군요. 여러 어려움을 뚫고 세포배양 성공 등 기술적, 사업적으로 발전을 거둬며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신약개발이 다 그렇지만 기업주의 의지가 없으면 힘들지 않나 이런 생각 드는데요.

"저는 의사도, 약사도 아니에요. 그렇다고 생물학 같은 걸 공부하지도 않았고요. 제가 뭘 했겠어요. 스탭들이 꼼꼼히 판단하면 그것을 믿고 지지하는 거죠. 관심을 갖고 어깨 너머로 공부를 좀 했을 뿐이에요."

김 회장은 이렇게 말했지만 임상시험 참가자 숫자까지 정확하게 기억했다. 2000년대 초반 일본 출장만 다녀오면 시니어 기저귀 등 임직원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아이템들을 들고 오셨다고 이 회사 고위관계자 출신은 귀띔해 줬다. 이미 고령사회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요즘에도 회사를 창립하셨던 원로분들의 모임에 나가시죠? 카나브 때문에 좀 으쓱해 지지 않으셨나요?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던 걸. 하하하."

김 회장은 사내에서 따뜻한 시골아버지 같은 정(情)의 리더십을 펼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임직원 생일상 차려주기. 한 달에 한 번 하는데 케익에 초를 꽂고 축하노래 해피 버스데이 투유로 끝을 맺는 여느 직장과 다르다. 미역국이 있는 상차림이다. 그야말로 한상이라고 한다. 오전 7시 출근해 통상 오후 8시께 퇴근하는 김 회장은 회사 돌아가는 '대소 사항'을 모두 꿰고 있었다. '일이 보약'이라는 김 회장의 말이 허언은 아닌 셈이다. "얼마전 직원들이 합창단을 만들었는데…."

▶직원 합창단이라면 사소할 수 있는데 회장님이 그런것까지 아시나요?

"그럼 알지요. 여직원 30명으로 합창단을 발족했는데 이번 달부터 지휘자를 외부에서 초청해 배워요. 10월 창립기념일에 뭔가 부른다는 것 같던데."

▶왜 작은 일까지 챙기세요.

"맘이지 뭐. 별거있나요." 탁상에 놓였던 김 회장의 스마트 폰이 번쩍거렸고, 물 오르던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났다. 여든 둘의 김 회장은 스마트 폰으로 문자를 보내고, 이메일을 체크하고 발송한다. 옆에 있던 비서는 "회장님께서 아이패드를 요청하셨어요"라고 귀띔했다.

김 회장은 "괜찮습니다"라고 하는데도 엘리베이트까지 배웅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순간에도 손을 저으며 "어여가셔. 조심히 가셔"라고 말했다.

마치 아들 떠나가는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보시던 아버지 때문에 룸미러에서 눈을 떼지 못했던 그 어느 날의 고향 방문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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