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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저가구매 인센티브 반대해서 죄송합니까?

  • 조광연
  • 2013-12-19 06:04:56

국내 제약산업은 보건복지부 앞에서 늘 송구(悚懼)한 존재다. 사전의 뜻 풀이대로 '두려워서 마음이 거북스럽다'는 말이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16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 한국제약협회를 방문했을 때 이경호 제약협회장은 입김이 번지는 영하의 날씨에도 주차장까지 마중 나와 "이렇게 뵙게 돼 죄송합니다"라고 인사했다. 4층 강당으로 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한 인사가 "복지부 현안이 산적한데요…"라고 말하는 가운데 이 회장은 "제약계까지 같이 끼어들어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복지부 장관의 방문에 대한 '이 회장의 겸손한 수사(修辭)'가 상징하듯 규제기관인 복지부와 제약산업계 사이의 관계는 일방적이다. 거버넌스(governance)라는 말은 행정학 교과서에나 있는 말일 뿐, 대부분 '해야한다'거나 '하면 안된다' 같은 '정책 하명의 관계'만 성립될 따름이다. 뭐든 일방적이다. 산업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제시돼야 할 마땅한 정책을 요구하는데,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간청해야 되는 상황이 빚어지고 있다. 왕조시대의 대전처럼 연신 통촉(洞燭)하고 가납(嘉納)해 달라는 제약업계의 목소리가 2013년에도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계동 복지부 사옥에 닿지 못하고 있다. 세종으로 이사가면 더 큰 목소리로 울부짖어야 할지도 모른다.

시장형실거래가제도를 도입하려했을 때, 약가일괄인하를 단행하려했을 때 제약업계 관계자들은 대신들이 조당에 머리를 찧으며 통촉과 가납을 번갈아 외치듯 했으나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달라진 건 없었다. 왜 약가가 일괄인하돼야 하는지, 그 인하폭은 무엇을 근거로 나왔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약가일괄인하에 제약업계가 반발했을 때 복지부는 대토론을 해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제안했고, 제약업계는 전기가 마련될 것이라고 기대에 차있었다. 바뀐 건 없었고 당했다는 이야기만 난무했다. 16일 문형표 장관이 협회를 방문했을 때도 제약업계는 뭔가 전환점이 될 것으로 일말의 기대감을 가졌으나 돌아온 대답은 내년 2월 저가구매 인센티브제 재시행이었다. 그 유명한 원점 논란이다.

원점은 동상이몽...'2년 유예'가 바로 저가구매인센티브의 하자

'원점.' 식자층 표현으로 제로 베이스 되겠다. 동상이몽이었을까? 제약업계는 원점을 '유예후 새제도 모색'으로 해석해 보도자료를 내고 난리법석을 피웠으나 복지부가 생각하는 원점은 '선시행 후보완'이었다. 애초부터 갈길이 달랐다. 원점이라고 써 놓고 서로 다르게 읽은 셈이다. 문 장관은 1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에 출석해 '시장형 실거래가제는 충분히 고쳐쓸만한 제도'라고 주장했다. 참으로 흥미로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왜 2년 동안이나 이 제도를 유예했는지 설명이 되지 않는 탓이다. 문제가 있었으니 유예했던 것일텐데, 선시행 후보완하자니 억지일 수 밖에 없다. 이게 아니라면, 정부 입장에서도 약가일괄인하가 지나치다 싶어 잠시 시장형 실거래가 제도를 눈감았다는 말 밖에 되지 않는다. 복지부가 이같은 억지를 부릴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제약업계 관계자들은 '규제기관의 위세'에 기반한 두 사례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하나는 식약처의 탤크파동(한 제약사 만이 끝까진 간 최종심에서 식약처 패소)과 관련한 소송이며 두번째는 약가일괄인하 관련 소송이다. 두 사건에 대해 제약회사들은 도발 했으나 모두 미수에 그쳤다. 꽤 많은 제약회사들이 소송에 참여했다가도 공교로운 일(?)이 생기면 추풍낙엽이 되곤했다. 탤크 소송 때는 갑작스레 식약처 조사팀이 제약회사 공장 선진화를 기치로 실사에 나섰고, 약가일괄인하 소송 때는 복지부 고위인사가 제약회사 고위 임원들에게 전화를 걸어와 제약산업의 앞날을 함께 걱정했다. 규제기관 입장에서 제약업계의 반발은 그야말로 찻잔 안이다. 의사협회나 약사회 쯤 돼야 귀를 세우는 정도일 뿐이다.

지금껏 복지부가 시행한 정책 중에 수치적으로 가장 확실하게 실패한 정책을 꼽으라면 단언컨대 시장형 실거래가제, 다시말해 저가구매 인센티브제다. 복지부가 병원을 대동하고 함께 의약품 가격 사냥에 나섰는데, 나중에 정산해 본 결과 병원인건비가 더 나가 빈지갑이 됐기 때문이다. 실적이 변변하지 않은 상황에서 제약회사들의 약값만 깎은 꼴이 된 것이다. 이미 약가일괄인하로 내상을 입은 가운데 저가구매 인센티브가 재시행, 반복되면 제약회사 약들은 가격이 높은 순서대로 가격 사냥을 당하게 된다. 이도 모자라 해마다 병원에서 쓰는 약이 바뀔 수 밖에 없다. 제약사 입장에서는 약값도 깎이고, 코드도 빠지는 형국이다. 복지부는 제약산업계가 이처럼 골병이 드는데도 혁신형제약이다, 세계 7대제약강국이다, 콜럼버스를 태운다 등등 실효성 낮은 산업 육성이라는 붕대만 휘감을 뿐 상처 치료는 외면하고 있다. 어디가 아프냐고 묻고 무조건 붕대만두르는 격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제약업계는 저가구매 인센티브를 반대해서 죄송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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