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기사를 찾으시나요?
닫기
2025-12-22 06:01:01 기준
  • #제품
  • 허가
  • 약국 약사
  • #제약
  • 글로벌
  • 의약품
  • #염
  • GC
  • 유통
  • AI

"비뇨기과 교수의 시가 가곡이 된 순간…"

  • 이혜경
  • 2014-03-03 06:14:02
  • 가곡집 내놓은 경희대병원 장성구 교수

"인터뷰 전 가곡부터 들어보는게 좋겠죠." 경희대병원 13층 장성구(60) 비뇨기과 교수 연구실에 故 김동진 작곡가의 유작이 잔잔히 울려 퍼졌다.

글 쓰는 전문의 장 교수의 자작시에 가곡 '봄이 오면', '수선화', '산유화', '못 잊어', '목련화' 등 주옥같은 작품을 남기고 2009년 세상을 떠난 김동진 선생의 곡이 붙여져 앨범 '초심'이 발표된 순간이다.

"자네 시가 노래가 될 수 있느냐, 없느냐는 내가 판단하겠네. 시를 내놓기나 하게."

2000년 초. 작곡가 김 씨는 경희대 교수들 모임에서 비뇨기과 장성구 교수가 시를 쓴다는 이야기를 접했다.

정기적으로 장 교수에게 비뇨기과 진료를 받던 김 씨는 대뜸 진료실을 찾아와 시를 달라했다. 곡을 붙여주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장 교수는 선뜻 자신의 시를 내놓을 수 없었다. 가곡의 '대가(大家)'인 김동진 선생의 곡이라니. 장 교수는 "제가 무슨 시를 씁니까"라며, 김 씨 앞에 시를 내놓는 것을 미루고 미뤘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을까. 진료실을 찾은 김 씨가 하루는 장 교수를 향해 버럭 화를 냈다.

"시를 달라고 한지가 언젠데, 왜 주질 않느냐." 결국 장 교수는 "선생님이 곡을 달아줄 정도의 시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라며 죄송한 마음에 고개를 숙였다.

김 씨는 물러서지 않았다. 시가 곡이 될 수 있는지는 자신이 판단하겠다고 했다. 장 교수는 "곡이 되지 않으면 버리셔도 됩니다"라는 말을 붙여 3개의 자작시를 건넸다.

김 교수는 3개의 자작시에 모두 곡을 붙여 가져왔다. 그리곤 또 다시 장 교수에게 시를 받아갔다. 그렇게 5년 동안 12곡이 만들어졌다.

완성된 곡은 정해진 기한 없이, 갑자기 받는 선물처럼 장 교수에게 오선지로 전달됐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의 4강 진출이 확정되던 그 날. 이른 새벽부터 김 씨는 경희대병원 비뇨기과 연구실에서 장 교수를 기다렸다.

장 교수를 만나자 마자 김 씨는 자신의 양복 안쪽 주머니에서 오선지를 꺼냈다. 한민족의 탄생, 번영, 미래를 담은 자작시 '북소리'에 곡이 붙여진 것이다.

4강 진출이 확정된 경기를 보다가, 장 교수의 시가 생각난 김 씨가 '영감'을 받고 밤을 꼬박새면서 곡을 만들었다. 그리곤 함께 기쁨을 나누기 위해 김 씨는 잠 한숨 자지 않고, 한달음에 장 교수의 연구실을 찾았다.

어느 때는 약을 타러 병원에 들르면서, 또 다른 때는 친구를 만나러 오던 길에, 김 씨는 장 교수의 손에 오선지를 쥐어주고 갔다.

"세상에 태어난 아기는 출생신고를 해야 비로소 주민등록번호를 받은 자연인으로서 살아간다네. 곡 또한 세상에 발표를 해야 알려진다는 것을 명심하게."

2005년 작업을 마치고, 2007년 김 씨의 건강이 악화됐다. 그리고 2009년 여름 김 씨는 세상을 떠났다.

김 씨가 떠나고, 한참이 지났지만 장 교수는 자신의 자작시에 붙여진 곡을 들어보진 못했다. 그가 손수 그려 넣은 음표와 써넣은 시가 담긴 오선지 12장을 간직해오기만 했다.

그러던 중 신문에서 2013년도가 김 씨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라는 사실을 알게됐다. 장 교수는 '아차' 싶었다.

과거 김 씨가 장 교수를 향해 내 뱉었던 말이 생각 났다. 세상에 발표돼야 비로소 곡이 알려진다는 것을.

오선지에 담긴 곡을 디지털 작업할 수 있도록 바꾸고, 컴퓨터에 다시 그려진 곡에 피아노 연주와 성악가들의 목소리가 담기는 작업을 지난해 10월부터 진행했다.

올해 2월 12곡이 완전한 가곡형태로 다시 태어났다.

앨범 '초심'은 부제로 '한국의 작곡가 김동진이 남긴 노래Ⅰ'이 달렸다. 'Ⅰ'을 붙인 이유가 있었다.

"저는 12곡이 김동진 선생님 인생의 마지막 작품이라 생각해요. 하지만 또 다른 곳에 유작이 있을 수 있잖아요. 유작으로 발표되는 첫 번째 앨범이라는 뜻에서'Ⅰ'을 붙이게 됐어요. 선생님이 그리워지네요."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 해주세요.
  • 댓글 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운영규칙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첫 댓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