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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녀석, 의약분업을 만났지만…"

  • 김지은
  • 2014-03-10 06:14:52
  • 한 자리서 30년 약국 운영한 강봉주 약사

처음 내 약국을 갖고 이름을 고민하던 30년 전 이 날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새강M약국 강봉주 약사(54).
24살 꽃다운 나이, 운동권에 빠져있던 딸을 약국에 붙박이라도 시켜놓자는 심정이었을까. 내 어머니는 약사국시 합격자 발표 전 덜컥 약국부터 계약했다.

뭣모르던 시절 약국장이라는 이름을 갖고 가장 먼저 한 것이 약국 이름 공모였다.

선후배들은 누가 운동권 아니랄까봐 '녹두, 민중', 줄줄이 운동권 냄새가 물씬 나는 이름을 대느라 바쁘더라.

단순하게 가보자라는 생각에 내 성 '강'에 새로움의 '새'를 붙여 '새강약국'이라 짓기로 결심했다.

그때는 미쳐 알지 못했다. 그 이름의 약국과 30년을 한 자리서 인생을 함께 할 것이라고는.

"부족한 나를 달래며, 공부 또 공부"

"약사 아가씨. 나 호수에 구멍이 났는데 어째야 하누."

중년 남성이 약국에 들어와 건넨 말을 그당시는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성병을 앓던 그가 20대 젊은 여약사에게 농담삼아 건넨 말이라는 것을. 경기도 성남. 내 약국이 있는 지역은 70년대 청계천 철거민이 대거 이주해 온 동네이기도 하다.

우범지역인지라 20대 초반 젊은 내가 상대하기에는 주민들이 거친 면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그만큼 내 관심과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다는 점은 나를 서서히 움직이게 했다.

사실 대학시절 약대 공부에 몰두하지 못했다. 사회를 더 걱정했고 힘들게 살아가는 노동자들에 더 관심이 갔으니까.

약국을 열고 부족한 점들을 느끼고 나서야 비로소 진짜 약사가 되기 위한 공부를 시작했다.

하루 12시간을 꼬박 일하고 밤에는 임상약학부터 한방, 건기식 강의를 닥치느대로 듣고 공부했다. 다른 뜻은 없었다. 그저 내 약국을 찾는 동네 주민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 뿐.

그렇게 16년을 강 약사라는 이름으로 동네 주민들과 울고 웃으며 내 자신도 성장해 가는 듯 했다.

의약분업, 강력한 녀석을 맞딱뜨리고

"강 선배, 이제 슬슬 하산하셔야죠."

의약분업. 이 녀석은 기대 이상으로 강력하더라. 후배들은 언덕을 오르고 올라야 하는 달동네에서 내려와 병원 옆 대로변 약국으로 옮겨야 하지 않겠냐고 농담삼아 묻곤했다.

고민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당장 처방전을 구경하기 힘들게 되더니 매약 환자들의 발길도 눈에 띄게 줄더라.

몇해 지나지 않아 함께 일하던 전산직원 자리를 비울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때도 난 지금의 상황이 힘들다거나 부족하다고 느끼지 않았던 것 같다.

먼 병원서 처방전을 들고와 "우리 강약사한테 맡겨야지"하는 환자가 있었고 자신의 집 밥숟가락 개수까지 속속들이 이야기하는 주민들이 있었으니까. 틈틈이 공부한 임상약학과 한방, 건기식에 대한 지식은 단순 처방전 건수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약사로 사는 30여년 주민들의 건강을 관리하며 그 속에서 의미를 찾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약국의 수입만이 내 삶의 의미는 아니였다. 대학때부터 가져왔던 내 신념과 활동은 약사로서의 삶을 더 행복하고 풍성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약국 개국과 동시에 알고 지내던 선후배들과 시작한 무료진료소,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서 진행하는 철거민 통합의료보험 활동 등은 약사인 나에게 늘 행운과도 같은 일이라 생각한다.

새강약국 변화의 물결에 동참하며

새강M약국. 2년 전 30년 동안 고수한 '새강'이란 이름 옆에 새로운 글자 하나가 붙었다.

나를 위해서, 그리고 주민들을 위해서라도 약국을 새롭게 변화해보자 결심했다.

마침 그동안 추구해 온 상담 위주의 동네 단골약국 취지에 걸맞는 업체를 발견해 체인에 가입했다.

무엇보다 고령 어르신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요소들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 흡족해 결심했다.

결과는 만족스럽다. 심신을 달래며 휴식하기 위해 우리 약국을 찾는 어르신들이 부쩍 더 늘었기 때문이다.

3월 22일. 인생의 절반 이상을 함께한 내 약국이 30주년 생일을 맞는 날이다.

고마운 주민들에게 떡이나 돌리며 조용히 보낼까 했더니 주변 선후배들이 오히려 펄쩍 뛰더라. 어디 30년 한 자리서 약국을 운영하는 것이 흔한 일이냐며.

동네 주민들에 보답이라도 하자는 마음에 내 약국, 약사로서의 나를 돌아보는 자리를 마련하기로 했다. 주민과 더불어 숨쉬어온 우리 약국의 30주년 생일을 축하해 주고 싶다.

향후 10년 이상은 이 곳에서 약국을 더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후에는 한적한 지방으로 가 공동체 생활을 하며 봉사하며 살고 싶은 희망도 있다.

오늘도 강 약사를 찾는 어르신들로 잠시도 쉴 틈이 없다. 살아 있는 오늘이 행복한 나는 약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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