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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만에 남은건 빚" 어느 도매 영업사원의 비애

  • 김지은
  • 2014-03-20 06:15:00
  • [내러티브] "죽어라 뛰어 기대감으로 펼쳐본 통장은 늘 80만원"

[A도매 영업사원 김은숙(가명) 씨의 사연]

"엄마 나 합격했어. 이번 주 안에 교복 맞춰야 할 것 같아요."

흥분한 딸의 전화를 받고 두개의 마음이 교차한다. 그토록 바라던 미용 고등학교에 합격했다니, 대견함이 앞선다. 하지만 이내 또 다른 생각이 나를 괴롭힌다. 교복 살 돈은 당장 어디서 융통한담.

아이 셋을 홀로 키우는 싱글맘. 팍팍한 생활 속에서도 남 부끄러울 것 없이 일하고 나름의 꿈도 키웠었다.

하지만 소박하지만 빛나던 내 꿈은 3년 만에 늘어난 빚더미 앞에 산산 조각났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꿈많던 시절, 나를 좌절시킨 건..."

꼬이기 시작한 것은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3년 넘게 약국에서 실장으로 일하며 전반을 책임지다 보니 스스로 반 약사가 다 됐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던 중 약국에 자주 찾아오던 A도매 영업사원과 친분을 쌓게 됐고, 그녀의 모습을 보며 가슴 깊은 곳에서 새로운 꿈이 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그래. 약국 경험에 활동적 성격을 접목해 의약품 유통업계 여성 영업사원으로 우뚝 서 보자. 사상 첫 도매업체 여자 영업팀장, 본부장 되지 말란 법 있겠나.

안정된 일자리를 포기하고 A도매 영업사원으로 입사했다. 첫 근무지는 경기도 소도시. 이 지역은 거래처가 잘 닦여있지 않아 처음부터 난관의 연속이었다.

'시작이 반'이란 생각으로 바닥 다지기부터 제대로 해보자 결심했다. "억척 좀 그만 부리라"는 말도 수차례 들었다. 그도 그럴것이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않고 일했다. 그 덕분이었을까. 월 거래금액이 4000만원이 채 안되던 지역을 2억 턱 밑까지 끌어올렸다. 점점 자신감도 붙었다.

하지만 내 희망은 몇개월이 채 안 돼 무너져내렸다.

"온통 빨간 마이너스 표시 뿐인 내 월급 내역서를 보며"

80만원. 내가 이 회사에서 일하며 고정적으로 받을 수 있는 기본급이다. 이외 시상금이 더해져 월급이 책정된다.

영업 사원으로 일하는 내내 2억이라는 월 목표액은 끈질기게 나를 괴롭혔다. A, B, C, D 등급표 역시 신경쓰이기는 마찬가지. 이름 한번 들어보기 힘든 고마진 제품을 약국에 떠 안겨야 그나마 A등급을 받고 내가 살 수 있다.

목표액을 달성하지 못하면 시상금 내역에는 여지없이 빨간 '마이너스' 표시가 떴다. 그래. 이 정도는 영업사원의 숙명이려니 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이것만은 정말 받아들이기 힘들다. PB제품 영업이 그것이다.

인당 월 200만원 목표 매출을 맞추지 못하면 페널티로 월급에서 50만원을 깎는다. 금액을 채우지 못한 달은 자비로 제품을 사 약사에게 떠 안기고 지인들에 선물도 한다. 한달 100만원이 채 안되는 월급에서 50만원이 깎인다는 건 생각도 하기 힘든 일이니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전체 거래 약국 회전일의 평균이 100일이 되지 않으면 이 역시 전체 시상금에서 제외한다. 부실거래처 에 따른 손해 역시 담당 영업사원의 책임으로 전가된다.

약국의 반품약도 담당 영업사원의 몫. 월 시상금표에는 반품약에 대한 공제도 부과됐다.

이 모든 것이 깎이고 제외되면 통장에 월 80~100만원 찍히는 것은 예삿일이다. 흡족했다 싶었던 달, 내 통장에 찍혀 있었던 140만원. 3년여 뼈빠지게 일하고 받은 최고 금액 월급이다. 대체 내가 짊어진 우리 가족의 최저 생계비는 누구에게 보장받아야 한단 말인가.

"꿈많던 시절, 나를 아끼던 선배의 죽음을 지켜보며"

그래도 참아보자 했다. 영업이라는 것이 원래 바닥쌓기 아니겠는가. 쌓고 또 쌓다 보면 언제가는 좋은 날이 오겠지라는 생각으로 참고 또 참았다.

하지만 세달 전 나를 끔찍이 아껴주던 선배의 죽음은 나를 또 한번 무너뜨렸다. 지방에서 영업을 해 왔던 회사 선배가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한 뇌경색으로 운명을 달리했다.

50대 중반인 선배는 업무 중간에 점심식사를 하다 급사했다고 한다. 많은 도움을 줬던 선배의 죽음을 지켜보며 안타까운 마음에 선배 거래처를 맡아 관리해보자는 생각에 선배가 일했던 곳으로 내려갔다.

거래 상황을 확인하고서야 선배의 죽음이 단순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됐다. 거래액을 해결하지 않고 폐업한 약국들의 회전 금액은 매달 선배의 실적을 갉아먹고 있었다. 이것들이 그동안 선배의 머리와 가슴을 옥죄었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먹먹해졌다.

연고 하나 없는 동네에서 뛰고 또 뛰었다. 어려운 형편에 구입한 중고차로 하루 2배송까지 직접했다. 하지만 여전히 내 월급 통장에는 고작 80만원이 찍혔고 마이너스 통장의 금액은 불어만 갔다.

결심했다. 더는 이 곳에서 숨 쉴 수 없다. 더러운 늪에서 빠져나가자.

"동료들만이라도 사람다운 대우 받을 수 있길"

회사에 사표를 내기로 결심하고 당장 휴대폰 매장에 취업했다. 나는 하루도 게을리 보낼 수 없는 세 아이의 엄마이니까.

내 앞으로도 3명의 동료가 차례로 더는 살 수 없다며 회사를 박차고 나가더니 2명의 동료가 내 뒤로 더 나갈 예정이라고 한다.

영업사원을 '봉'으로 아는 회사를 원망도 했다. 약업계 상황이 워낙 어려워 업체도 고육지책으로 영업사원들을 옥죄고 있다고 치부하기에는 그 정도가 너무 지나치지 않은가.

많은 것을 바란 것도 아니다. 일한 만큼 보상 받으며 당장 큰 금액이 아니더라도 내 꿈이 언젠가 실현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의 끈이라도 보이길 바랬을 뿐이다.

나는 결국 늪에서 벗어났지만 내 동료들만은 그야말로 사람다운 대접이라도 받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더 이상은 부당한 영업 정책에, 실적 압박에 시달리다 죽음을 맞는 내 선배와 같은 사례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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