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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스터디

홈쇼핑·대형마트의 인큐베이터가 된 약국

  • 조광연
  • 2014-04-11 12:24:57

새들은 때가 되면 둥지를 떠난다. 짝짓기 철의 아비새와 어미새는 부리가 터져라 나뭇가지와 덤불 조각을 물어다 견고한 둥지를 틀고, 알을 낳는다. 미래의 2세를 기다리며 어미새와 아비새는 알을 품는다. 마늘과 쑥으로 견디며 사람을 꿈꾸는 곰처럼 이들은 놀라운 인내를 발휘한다. 이게 끝이 아니다. 알에서 깨어 새끼들이 삐약거리면 어미새와 아비새는 역할을 나눠 밤낮없이 육아를 한다. 새끼들이 자라 몸집이 커지면, 어미와 새끼들은 미련없이 둥지를 버리고 떠난다. 해가 바뀌어도 웬만해선 떠난 새들은 제 둥지로 돌아오지 않는다. 복잡한 생태계에는 위탁모를 두는 새도 있는데, 바로 뻐구기다. 모성의 관점에서 보면 '너도 어미냐'고 비난할 수 있겠지만, 효율성 관점서 보면 뻐꾸기는 가장 '경제적인 동물'임에 틀림없다. 뻐구기 어미가 하는 일이라곤 뱁새가 억척스럽고 눈물나게 키워 성장한 새끼를 밖에서 불러내 함께 떠나는 일이 다이기 때문이다. '진자리 마른 자리 갈아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셨네' 같은헌정의 노래 한자락도 없이 말이다.

요사이 논란이 되고 있는 대형 마트의 반값 비타민 논란을 지켜보노라면 뱁새와 뻐꾸기가 생각난다. 약국이 뻐구기의 둥지가 되었다가 시간이 흐른 후 빈둥지를 부여안고 허탈해 하는 약사들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탓이다. 솔직히 말해 건강관련 상품을 판매하는 기업들 입장에서 약국만큼 매력적이고 견고한 둥지는 찾아보기 힘들다. 전국적으로 2만개의 매장이 포진해 있는데다, 약사라는 건강전문가가 온종일 상주함으로써 소비자들에게 각인되는 전문성까지 더해지면 약국 유통망은 꿀단치처럼 달콤한 게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건강관련 상품을 가지고 사업을 해보려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약국 시장 진출을 모색한다. 그리고 처음에는 약국에서 발생하게 될 이윤에 몰두하며 소박한 꿈을 꾼다. 역시나 관건은 욕망의 통제다. 성공의 기미가 보이면 기업들은 그들의 몸속에 내재된 이윤의 확대재생산이라는 DNA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내겐 더 큰 둥지가 필요해"라는 스스로의 지령이 떨어지면 기존의 둥지는 온갖 불만의 온상으로 바뀌고 만다.

과거의 사례들이 그랬다. 모든 약국을 비타민 열풍으로 들뜨게 했던 기업들도, 약용의 콘셉트가 필요했던 약국 화장품 기업들도, 약사 전문가의 건강 코멘트를 덧입히고 싶어했던 건강기능식품 회사들도 된다 싶으면 백화점으로, 홈쇼핑으로, 인터넷 쇼핑몰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이들 기업의 행태보다 뻐구기가 더 아쌀하다는 점일 것이다. 그들은 미련없이 아예 둥지를 떠나니까, 둥지를 내어주었던 새들의 아픔도 강렬하지만 짧게 끝이 난다. 그러나 기업의 욕망은 좀더 질척대며 서성댄다. 자전거를 타고가면서도 성공적으로 저글링을 할 수 있다는 미련은 둥지를 내어주었던 약국들을 이중삼중 씁쓸하고 아프게 한다. 최소한의 현상 유지를 위해 '여전히 약국을 사랑합니다'라고 제스처를 하면서도 한켠에서는 여전히 '약국에서 파는 제품을 더 싸게 판다는 이미지'를 이윤을 부풀리는데 최대한 활용하려 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건강관련 상품에 관한한 약국은 영락없는 인큐베이터가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생태계나 건강관련 시장에서 인큐베이터의 역할은 부정할래야 부정할 수 없다. 자연생태계에선 둥지를 제공하는자의 미욱함도, 둥지를 떠난 뻐구기를 미워하는 것도 죄다 허망한 일일 뿐이다. 그러나 신뢰를 기반으로 삼아야 한다는 시장이라면 끊임없이 협력의 고리를 찾아야 하고, 상호이익의 교집합을 넓혀 나가야 할 것이다. 약국들은 국민 건강 증진에 보탬이되는 상품이라면 전문가의 입장에서, 양심적으로 인큐베이터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뒷 일을 두려워하거나 배신감에 젖어 건강전문가에게 부여된 사회적 역할을 포기할 필요가 없다. 기업들도 마땅히 가져야할 자세가 있다. 파트너와 함께 성장, 발전해 나가겠다는 신의와 신념이다. '모든 게 상거래 아니냐' '약국도 나름 재미를 보지 않았느냐' 같은 입장을 넘어 인큐베이터도 잘살고, 기업도 잘 사는 방법을 늘 염두에 두고 새 사업을 모색해야 한다. 당연히 새 사업의 모델은 약국과 그 외 시장의 경쟁자들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합리적 툴을 제시하는 것이다. 새 사업을 강조하기 위해 약국을 희생양으로 소비자들에게 던져 버려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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