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기사를 찾으시나요?
닫기
2025-12-22 04:30:56 기준
  • #제품
  • 허가
  • #제약
  • 의약품
  • 글로벌
  • #염
  • GC
  • 유통
  • AI
  • #평가

"싸우자, 난 약사잖아, 임진형이잖아"

  • 김지은
  • 2014-04-25 06:14:55
  • [내러티브] 매일 욕먹으며 홀로 싸우는 약사 임진형

"약사님, 전화받으세요."

아침부터 수화기를 건네는 직원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불법으로 동물약 팔아재끼는 놈, 너 이 자식 나한테 걸리기만해봐!"

다짜고짜 소리부터 지르고 욕설이 난무한 전화가 벌써 며칠째인가. 마음을 다 잡아도 사람인지라 일주일 사이 4kg이나 빠졌다.

평범하지만 정도를 가겠다는 생각으로 약국을 운영하던 내 삶이 최근 1년 새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왜지?

숫기 없던 시골 약사, '동물약국 약사'로 불려지기까지

태생적으로 남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는 나다. 주목받는 것을 꺼리던 내가 책을 내고 강의를 하고 협회장까지 맡게 된 지금의 상황은 나 조차도 놀라울 때가 있다.

임진형 약사가 운영 중인 경북 김천 건강한마을약국.
동물약국 약사. 1년 전부터 수식어처럼 붙어 다니는 새 이름이다.

나를 바꾼 건 순전히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이었다. 동네 주민이 '부르는 게 값'인 동물약값을 감당하지 못해 8년 넘게 키우던 애완견을 내다 버릴까 고민한다는 이야기가 마음을 움직였다.

다른 것도 아닌 약 값 때문에 가족과도 같은 동물을 떠나보내야 한다니, 가슴 깊은 곳에서 의무감이 샘솟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난 약대 시절 성분명을 기본으로 약의 흡수와 분포, 대사, 배설기전을 익힌 약사이지 않았나. 그런 면에서 약의 전문가인 약사가 동물약 투약을 담당하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이치이지 않나.

그렇게 동물약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동물약국을 개설한 것이 내 이름으로 서적까지 출간하고 동물약국협회장이라는 믿지못할 자리까지 오게했다.

단지 남보다 조금 더 동물을 사랑했고 약사로서 그런 동물들에게 의약품이 올바르게 투약되기를 바랬던 마음이 평범했던 내 삶을 결코 평범하지 않게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동물약 팔아재끼려는 도둑놈? 약사 책무 하고자 할 뿐"

얼마 전 평소 존경하던 최복자 약사님이 곤경에 처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화가 치밀었다.

포항에서 직접 약국과 함께 무료 유기견 보호소를 운영 중인 최 약사님의 열정은 나를 감동시켰었다. 힘든 여건 속에서도 봉사하는 마음 하나로 수백마리 유기견의 생명을 책임지고 동물 구조를 위해 발벗고 뛰셨던 약사님이지 않았나.

그런 약사님의 열정이 직능 이기주의에 가려져 한 순간 꺾여버릴 처지에 놓였다는 사실에 같은 전문직 타이틀을 갖고 있는 나로서 부끄러운 마음도 앞섰다.

손 놓고 지켜볼 수 만은 없었다. 약사들이 모인 SNS는 물론 다음 아고라 청원글에 최 약사님의 사연을 게재했다.

임진형 약사.
예상 외로 반응은 뜨거웠다. 불과 4일 만에 1만여명이 넘는 네티즌들이 서명에 동참해줬다.

하지만 그만큼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은 적지 않았다. 글을 게재한 이후 1주일 내내 우리 약국 전화는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덕분에 나와 직원도 종일 수화기만 붙들고 있어야 했다.

전화를 받자 마자 욕부터 시작하는 수의사부터 상생할 수 있는 방향을 찾아보자며 대화를 이끌어 가더니 통화 내용을 녹취해 자신들의 커뮤니티에서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날 몰아세우던 사람까지.

1년 전 서적 출간과 강의를 진행하고 이름이 알려지면서 수의사들 사이에서는 돈만 밝히는 약사라는 비난이 적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감당해야 할 몫이려니 생각하고 받아들이려 하다가도 가끔씩은 화가 치민다.

동물약국을 운영하고 협회 활동까지 하면서 내 삶의 가장 큰 변화는 목이 자주 쉰다는 것이다.

나홀로약국인 만큼 하루 3~4시간 이상 상담 전화를 하고 가끔 걸려오는 비난 전화도 받아내다 보면 정작 대기 중이던 환자들에 사과를 하고 조제실과 복약상담대를 뛰어다녀야 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가끔은 목이 부어 내 본연의 책무인 복약상담이 힘들 때도 있다. 그럴 때면 가끔 내가 왜 이러고 있나하는 생각이 나를 괴롭힌다. "외로운 싸움 포기하지 않아. 왜? 약사니까"

맞다. 이것은 분명 외롭고 고독한 싸움이다. 동물약을 모르는 무식한 직능이 나선다는 말부터 불법진료를 일삼는다는 누명까지. 동물약국을 운영하고 협회까지 맡으면서 약사가, 그리고 내가 짊어지고 있는 짐이자 숙제이다.

하지만 전국에는 벌써 2000여개 동물약국이 개설돼 있지 않은가. 아이러니하게도 최복자 약사님의 상황이 알려지면서 동물약국 개설과 관련한 문의를 해 오는 동료 약사들의 연락이 늘었다.

동물약국협회에 가입한 400여명 회원들과 힘들고 외롭지만 함께해주는 협회 이사님들은 나를 다시 일어서게 하는 든든한 버팀목이 돼주고 있다.

소망한다. 동물의약품을 사이에 둔 약사와 수의사가 각자의 직능 이기주의를 벗어던지고 선진화된 동물의료시스템과 약물 오남용 방지 시스템을 구축해 나갈 수 있도록 머리를 맞댔으면 한다.

이를 위해 빠른 시일 내 약사회가 수의사회 간 상생을 위한 대화 채널이 마련되기를 바라본다.

난 지금의 외로운 싸움을 계속해 나갈 생각이다. 나는 임진형이니까. 그리고 나에게 붙여진 또 하나의 이름, 나는 약사이니까.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 해주세요.
  • 댓글 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운영규칙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첫 댓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