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기사를 찾으시나요?
닫기
2026-05-19 15:40:24 기준
  • 점안제
  • 인터뷰
  • 건보공단 약무직
  • #총회
  • 동국제약
  • 약가
  • 삼아제
  • 특허
  • HK이노엔
  • 순위
팜스터디

수줍은 소년 숨어버리고…"총각, 청소 너무 잘한다"

  • 김민건
  • 2016-12-23 12:15:00
  • 아동복지센터의 오래된 친구 조아제약 직원 80명

동명아동복지센터에서 진행된 봉사활동 교육
하필 이렇게 추운 날 봉사활동이라니...

봉사활동을 간 날은 영하 8도, 최근들어 가장 추운 날이었다. 거위털 패딩을 챙겨 입었건만 바지 밑단으로 스며드는 한기는 막을 길이 없었다.

하필이면 오늘 같은 날 청소 봉사활동이라니, 살짝 후회가 밀려들었다. 선배들은 실내에서 목도리를 만들었는데 말이다.

체험 취재를 요청했을 때 조아제약은 복지센터 아이들이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우려해 정중히 거절했다. 몇몇 제약사에게도 연락을 했지만 봉사활동이 끝났거나 이런 저런 이유로 일정을 잡기가 어려웠다.

그러다 조아제약으로부터 연락을 받게 됐다. "아이들이 노출되지 않는 조건입니다. 오전엔 놀이동산 가서 같이 놀아주는 건데, 김 기자는 청소활동입니다. 페인트칠 마치고 저녁 식사준비까지 마치는 일정입니다."

옥상 정원을 정리하는 활동을 처음으로 시작했다. 날씨가 예상보다 춥지 않아 괜찮았다.
지난 16일 조아제약 및 자회사 메디팜 직원 80명이 관악구 동명아동복지센터에서 진행한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조아제약과 동명아동복지센터는 2009년부터 연을 맺고 있다. 조성환 사장과 서희동 인사총무팀장이 우연찮게 센터를 찾게 된 후 동호회로 활동을 시작했다. 2011년부터 전사적 활동으로 커졌다. 이날은 금요일이었지만 본사 직원들은 점심을 먹고 봉사센터로 발길을 옮겼다.

조아제약 봉사활동엔 대표가 직접 나선다. 막상 참여해 보니 아이들에 대한 애정과 배려가 느껴졌다.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없었지만 일상처럼 소소해 더 특별했다.

동명아동복지센터엔 84명의 아이들이 살고 있다. 지금은 영유아부터 만18세 고등학생까지 73명이 생활하고 있다.

관악구 베이비박스를 통해 복지센터에 온 아이들이 23명이나 된다. 73명 중 절반은 연고가 없으며, 이중 15명만 부모와 연락이 닿는다고 한다.

베이비박스를 통해 오거나 중간에 부모와 떨어지게 된 아이들은 알게 모르게 마음에 상처를 갖게 된다. 예전 보육원에서 먹이고 생활하는 게 중심이었다면 최근들어서는 미술치료 등 다양한 방법으로 심리·정서치료를 병행한다.

정원 정비, 페인트칠, 화장실 청소, 저녁 준비하기

센터에 도착하자 황언정 복지개발부장(사회복지사) 주도로 영아들과 같이 있을 때 주의해야 할 사항과 청소구역 분담이 이뤄졌다.

한 팔로 들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아이들을 맡은 직원들에겐 세세한 주의사항이 전달됐다. 놀이동산 팀이 출발하고 내부 시설을 정리하고 청소를 담당하는 팀의 차례가 왔다.

페인트칠에도 나름 요령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먼저 맡게 된 일은 옥상 정원 정리. 잎이 말라 붙어 죽은 나무 뿌리를 뽑아 자루에 쓸어담으니 먼지 투성이가 됐다. 몸을 써서 그런지 생각보다 춥지 않았다. 다행스러웠다.

한 아이가 옥상과 연결된 문을 밀치고 빼꼼히 쳐다봤다. 같이 하자는 센터 직원의 말에 수줍은 소년은 숨어버렸다. 깨끗해진 옥상정원은 내년 봄 다시 아이들을 반갑게 맞을 것이다. 옥상정원은 체험학습 공간으로 활용된다.

다음 차례는 페인트칠. 그 방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는 모르겠다. 이거하라면 이거하고, 저거하라면 저거할 밖에 없었다. 언뜻 아르바이트 시절이 떠올랐다. 황언정 복지개발부장은 "이거 다 끝내면 다시 오세요. 할일 또 있어요"라며 웃으며 사라졌다. 또?

페인트를 벽지 위에 쓱쓱 바르는 작업. 비닐 우의를 입고 말없이, 묵묵히, 바르기 시작했다. 반복 작업이 주는 무념무상에 빠져 들었다. 일을 마치니 아이들의 뽀송뽀송한 엉덩이를 지켜줄 화장실 청소라는 일감이 기다렸다.

화장실 청소야말로 내 전매특허!
화장실 청소는 자신 있었다. 양말을 벗으니 하얀 발이 드러났다. 어이없게도 1998년 US오픈에서 보여준 박세리 선수의 맨발투혼이 생각났다.

여기저기 닦아내자 찌든 때가 올라왔다. 몇몇 군데는 잘 지워지지 않았다. 이런 경우 노하우는 락스 범벅에 철수세미로 흔적이 사라질 때까지 인정사정 두지 않고 문지르는 것이다. 또 군 추억이 아른 거린다. ㅠㅠ.

다른 사회복지사가 곁에 오더니 "총각, 청소 너무 잘하시네요"라고 칭찬했다. 으쓱해진 이 느낌이란. 이마에도 송글송글 땀이 맺혔다.

봉사센터가 순전히 '노가다'만 시킨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뜨끈한 어묵과 국물을 준비했고 음료수와 커피, 간식도 제때 먹여줬다.

쉬는 시간 복지센터 군데군데를 들여다봤다. 대부분 아이가 학교에 있어 조용했다.아이들이 기거하는 방은 가정집과 다르지 않았다.

우리의 형, 누나, 오빠, 언니

아이들과 센터 직원들이 먹을 130인분의 저녁을 준비했다. 맛잇게 먹었겠지?
저녁식사 준비가 남았다. 이미 조아제약 직원들은 자리를 잡고 전을 굽고, 주먹밥을 만드는 중이었다.

아이들이 먹기 좋은 크기로 만들어야 하는데 쉽지 않았다. 적당히 단단하게가 미션이다. 조물조물 돌리다보면 어느 새 동글동글한 주먹밥이 만들어졌다.

식사 준비하며 웃음소리 가득한 수다가 이어졌다. 한 직원은 기자라는 것을 알고는 "회사 영업사원인줄 알았다"며 놀랐다. 전직 영업사원인 것을 어찌 알았을까? 얼굴에 나타나 있나? 왠지 들킨듯한 기분이었다. "미혼이죠? 유부남들은 이렇게 말 많이 안하는데." 여성의 직감은 예리했다.

쉬는 시간 어묵과 함께 따뜻한 국물을 먹을 수 있도록 배려해줬다.
갑자기 "OO이가 중앙대 붙었데" 하며 웅성거렸다. 조아제약이 봉사활동 시작 무렵 초등학생이던 아이들 10명이 올해를 마지막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됐는데, 그 중 한명이 대학에 붙은 것이다. 주인공이 식당에 나타나자 축하 인사가 쏟아졌다.

이 곳 직원들은 아이들과 개인적으로 만나 식사도 하며 어울린다고 한다. 내년 초에 있을 졸업식 참석 이야기를 벌써부터 꺼냈다.

황언정 복지개발부장은 "조아제약은 센터에서 오랜동안 봉사하는 기업 중 하나예요. 회사 송년모임에 센터 전 식구들을 초대하기도 했죠"라며 고마워했다.

봉사활동은 해가 져 찬바람이 몰려올 즈음 끝이났다. 걱정했던 것처럼 힘들지 않았고, 가슴이 훈훈해 졌다. 밤늦은 시간 도서관을 나서는 기분이 들었다.

크리스마스에 아이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개별 선물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내일 모레가 크리스마스다.

  • 익명 댓글
  • 실명 댓글
0/500
등록
  • 댓글 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운영규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