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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선] 국민청원, 무엇이 환자를 분노케하나

  • 최은택
  • 2018-03-15 06:25:50

얼마 전 외출 중인 아내가 돌연 '카톡'을 보내왔다. 지인에게 전달받은 것이라며, '우리 세계' 말로 '약밥'을 먹고 사니 참고하라는 메시지였다.

ULR(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149399)을 클릭했더니 이런 게 나왔다. '신약의 빠른 급여화를 촉구합니다.' 한 환자가 올린 국민청원이었는데, 원망섞인 외침이 가득했다. 인용하면 이렇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약들이 쏟아져 나온다는 뉴스 소식이 들립니다. 그러나 암환우인 우리에겐 그저 그림의 떡이지요."

"신약이 있어도 오프라벨(허가된 병이 아닌 다른 병에도 해당약을 사용하는 것)이 막혀 있어 돈을 주고도 약을 처방받을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마지막 희망을 꺾지 마세요."

"지금 식약처는 제약사가 약을 보험에 넣어달라고 신청하면 심사만 하니 개개인보고 제약사에 전화해서 식약처에 급여화 신청하라고 민원을 넣으라고 합니다. 국가기관이 나서서 제약사와 담판을 지어도 쉽지 않은 일을 일개 개개인에게 떠넘기다니요."

"심평원의 허망한 대답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습니다. 노력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이 또한 구태의연한 적폐가 아닌가요?"

이 청원은 3월26일까지 계속된다. 정부의 답을 들으려면 20만명이 공감해야 하는데, 14일 현재 아직 4000명을 넘지 못했다. 아마도 이 청원이 목표인원을 채우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보험의약품 정책을 10년 가까이 지켜봐 온 기자는 이 청원을 응원한다. 또 청원에 동참했다. 그러면서도 갑자기 명치 아래가 뻐근해지는 통증을 느꼈다. 안타깝다. 청원이 불발될 가능성이 커 보여서? 아니다.

이 환자의 원망과 분노를 불러온 게 대체 무엇인지, 그걸 생각하면서 나타난 생리적 반응이었다.

고가신약 신속 등재 논란은 보험분야에서는 오래된, 또 뜨거운 이슈다. 지난 정부에서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수밖에 없다. 한정된 재원(건강보험재정)과 비싼 약값의 동화되지 않는 상관관계가 근본적인 이유다. 또 한꺼풀 더 들어가보면 해당 고가신약이 그만한 지불(보상) 가치가 있느냐는 ‘가치의 문제’가 나온다. 우리사회는 이 가치를 평가하기 위해 이미 보험에 등재돼 있는 약제나 다른 치료법과 비교해 경제성이 있는지(경제성평가나 비용효과성 평가 등)를 평가하고 있다.

또 더 깊이 들어가면 한정된 재원이라는 조건 아래 '우선순위'를 정하는 문제로 이어진다. 우리사회는 이렇게 전국민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건강보험 적용약제를 선택할 때 많은 것들을 고려하고 있고, 그런 절차와 방법 등을 법령이나 행정규칙으로 정해 놨다.

신약의 급여등재는 최종 보건복지부장관이 결정한다. 또 이 결정이 있기까지 사전 평가와 협상 등의 절차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건강보험공단이 각자 주어진 대로 역할을 수행한다.

이런 종합적인 프로세스에 비춰볼 때 기자는 청원내용에 공감하지만 이견도 있다. 가령 표현상의 '오기' 부분이다. 보험등재 과정에서 의약품 시판허가를 담당하는 식약처는 역할이 거의 없다. 따라서 청원내용 중 '식약처'로 돼 있는 주어에는 심사평가원이나 건보공단이 들어가는 게 맞다. 이는 단순 '오기'로 보인다.

'오프라벨에 막혀 돈을 주고도 약을 처방받을 수 없다'는 지적은 안전성과 유효성이 확립되지 않은 치료영역(적응증)에 해당 의약품을 무분별하게 사용하도록 허용해 주는 게 맞는 지 거꾸로 되물어야 할 사안이다.

'오프라벨'은 이런 측면에서 치료대안이 없을 때 선택되는 매우 예외적인 경우가 돼야 한다. 더구나 건강보험은 합리적인 의약품 사용을 위해 '비용효과적'인 개입을 전제로 한다. 이미 등재돼 있는 약제보다 '비용효과적'이지 않은 약제를 비싼 가격에 등재시킬 수 없다는 게 현 보험의약품 정책의 대전제이자 원칙인 점을 고려하면 '오프라벨'은 더 엄격히 관리될 필요가 있다.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유는 지금부터다. 청원인은 왜 이런 지적을 내놨을까. 무엇보다 정부와 보험자는 '제약사에 전화해서 급여화 신청하라고 민원을 넣으라고...국가기관이 나서서 제약사와 담판을 지어도 쉽지 않은 일을 일개 개개인에게 떠넘기다니요'라는 원망을 환자들이 갖게 만들었을까.

왜 '심평원의 허망한 대답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습니다'라는 환자들의 외침은 계속될까.

건강보험정책, 그중에서도 보험의약품제도는 복잡하고 난해해서 이해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십 수년을 해당 업무에 종사해온 사람들도 헛갈려하는 경우가 많고, 불합리를 얘기하기도 한다.

그러니 어느 날 갑자기 몹쓸 병이 찾아와 '환자'가 돼 버린 사람들에게 이렇게 난해한 보험의약품제도를 들이밀며 기다리라고만 말하는 건 무책임한 일이다. 또 전 국민에게 적용되고 있는 제도가 너무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걸 새삼 일깨워준다.

결국 청원인에 대한 정부의 회신은 고가신약에 대한 전향적인, 더 빠른 등재방안을 신속히 마련하고 '오프라벨' 사용을 확대할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하던지, 이것이 여의치 않으면 서둘러 충분히 설명하고 설득해서 국민들의 공감을 얻는 방식으로 가는 게 최선의 해법이다.

20만명의 동참자가 없더라도 이 내용이 정식 청원으로 다뤄져야 할 이유다. :"더 쉽게, 더 투명하게, 더 열린 자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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