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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적이 아니고 사실은 친구라면 놀랄텐가

  • 데일리팜
  • 2018-11-12 11:07:58
  • 권혜옥(건강보험심사평가원 촉탁변호사)

올해로 심평원에서 근무한 지 7년이 되었다. 7년 전에는 새내기 변호사였는데, 어찌어찌한 사정으로 지금은 수석변호사가 되었고, 그 동안 어느 새 나도 모르게 꼰대 마인드가 생겨 난 것 같기도 하다. 오늘은 그 꼰대마인드를 조금 공유했으면 하는 생각으로 몇 자 적어보고자 한다.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고자 결심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은 바로 비급여대상의 범위와 관련하여서다.

건강보험의 급여체계는(행위에 대하여만 설명하겠다) 네거티브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비급여대상으로 지정되지 않은 것은 모두 요양급여대상에 해당한다. 그런데, 비급여대상에 속하는 것이라면 급여목록표에 열거된 행위·약제 및 치료재료에 해당하더라도 이는 요양급여대상이 아니라고 본다(대법원 2012. 10. 11. 선고 2008두19345 판결 참조).

가령, 시력교정술을 한다고 했을 때 시력교정술을 위해서 행해지는 진찰·검사 및 수술 후 행해지는 처치는 요양급여목록에 버젓이 올라와 있지만 비급여대상인 시력교정술을 위한 것이기에 그 비용 모두 비급여대상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즉, 환자에게 시력교정술을 시행하기로 하고 돈 200만원을 지급받기로 했다면 해당비용 안에 진찰·검사·처치의 비용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고 보고 그 외로 공단에 별도의 급여비용을 청구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위 사례는 비급여대상 범위를 확정하는데 커다란 어려움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고, 비급여대상 범위를 판가름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경우도 있다.

한의사가 비만에 관한 치료를 하면서 비만의 원인을 제거하기 위한 목적으로 식울, 식비 등 소화기 관련 질환을 동시에 치료한 경우가 그렇다. 한의사가 환자의 소화기 관련 질환이 비만의 원인이 아니라는 전제하에 단순 질환진료에 불과한 것으로 생각하며 치료를 했다면 소화기 관련 질환에 대한 비용은 당연히 급여로 청구가 가능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한의사는 '비만의 치료를 위해서' 소화기 질환의 치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이를 행했기 때문에 위의 소화기 관련 치료 또한 비급여대상에 포함되는 것이다(대법원 2012. 8. 30. 선고 2012두133 판결).

법원도 비급여대상을 정함에 있어 '내원동기, 객관적인 상태 등을 고려하여 합리적으로 판단한 진료의 목적, 진료의 내용, 임상의학 분야에서 실천되고 있는 의료행위의 수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12. 10. 11. 선고 2008두19345 판결 참조)'고 했다.

필자가 의료인들을 대상으로 이러한 판례 내용을 설명하면 보통 나오는 말이 '억울하지 않냐'는 소리다. 그냥 와서 소화기질환에 대하여만 치료를 받았으면 당연히 요양급여대상으로 인정받았을 텐데 비급여인 비만이 하나 끼어드는 바람에 해당 비용을 지급받지 못하니 억울하다는 것이다. 나아가 오히려 진료기록부를 꼼꼼하게 기재해서 소화기질환이 비만치료를 위한 것으로 드러났으니 오히려 진료기록부에 해당내용을 기재하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니냐의 항의 아닌 항의까지 나오기도 한다.

급여목록에 있으니 당연히 지급받을 수 있다는 전제에서 접근하면 억울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비급여대상에 포함된 것은 비급여로 비용을 받음(급여일때보다 훨씬 더 많은 비용을 받기도 하니까)으로써 그와 관련된 진료비용을 전부 다 받았다고 보이고, 여기에 급여비용까지 더 받는 것은 오히려 이미 받은 것에 대하여 재차 받는 것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하면 현 수가체계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나아가 소위 그 몇 푼 위해 우리의 의료인들이 환자들의 진료기록부를 허술하게 작성할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필자가 대학을 진학할 때 우리나라 어느 지역의 어느 의대라 하더라도 수능점수 상위 1% 안에 들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런 사람들이 의사들이고 심지어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 자들이기에 그렇게 행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건강보험재정은 요양급여비용을 받아가는 의료인들을 포함하여 전 국민이 내는 건강보험료로 이루어지고 있는 비용이다. 요양급여원칙에 반하는 비용을 받아갈수록 본인이 내야 하는 보험료도 올라가고 무엇보다 향후 본인의 자손들이 내야 하는 보험료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할 수 있고 재정이 고갈되어 버리면 결국 받아갈 돈이 없어지게 되고 이는 다 같이 파탄으로 치닫게 된다. 우리의 의료인들도 너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렇기에 재정의 건전성을 위해 우리와 그 어깨를 함께 할 거라고 믿는다.

처음 심평원으로 이직했다는 얘기를 치과의사 친구에게 했을 때 친구의 첫 마디가 '넌 우리의 적이다'였다. 그 때는 심평원이 삭감처분을 행하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며 웃어 넘겼는데, 이제는 그게 아니고 우리는 절친이라고 말하고 싶다. 건강보험재정의 건전성을 위해 함께 뛰는 친구라고.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며 수긍하지 못할 분들이 많을 거라 예상하지만, 심평원의 정확한 역할은 삭감이 아니고 심사다. 정해진 요건에 부합하는 의료행위에 대하여 건강보험재정을 지급하는 것이다. 그 요건이 임상에 부합하지 않는다거나 심사를 함에 있어 의학적 타당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분이 분명 있을 것이다. 득달같이 달려와 항의하고, 소송도 불사하기를 바란다. 건강보험재정의 건전성을 도모하는 것은 무조건적으로 돈을 아끼는 것이 아니다. 정당한 진료행위에 대하여 정해진 수가를 지급하되, 그렇지 않은 경우에 한하여 그 지급을 하지 말라는 의미이다.

진정한 친구는 친구가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을 막는 친구라고 하지 않았던가. 나는 심평원과 의료인들이 그런 관계였으면 좋겠다. 심평원이 심사를 함에 있어 잘못을 하고 있다거나 정책적으로 기준을 잘못 정하려 한다는 생각이 들면 주저하지 말고 꾸짖어 주길 바란다.

또, 심평원은 기준을 잘 몰라 비용청구를 잘못하는 경우에는 그 기준을 알려주고, 고의적으로 허위청구를 행하는 자는 따끔하게 혼내주길 바란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결코 서로를 적으로서 여기는 것이 아니고 친구가 잘못된 길을 가지 않게 하면서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소중한 자산인 건강보험재정을 지키는 것이고 그 길을 함께 걸어가는 친구라는 훈훈한 마무리가 되길 바란다. 딱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자의 이상적인 얘기라며 손가락질 한다해도 이러한 얘기가 현실화 된다면 그 손가락질을 흐뭇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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