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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시선] 자영업의 눈물과 제약사의 아우성

  • 천승현
  • 2019-07-29 06:15:58

‘자영업의 눈물’

최근 들어 언론에서 많이 언급되는 기사 제목 중 하나다. 직장인들이 회사를 그만두고 퇴직금으로 자영업을 시작했지만 성공보다 실패가 많은 현상을 보며 느끼는 안타까움이다.

홍대입구나 마포역 등 다양한 자영업이 몰려있는 거리를 다니다보면 최소 1주일에 1곳 이상의 간판이 내려가고 새로운 가게가 문을 여는 것 같다.

자영업의 도전이 쉽지 않은 배경으로 비싼 임대료, 최저임금의 급상승 등 다양한 요인이 거론된다. 사례마다 다르겠지만 분명한 이유는 ‘과당경쟁’일 것이다. 굳이 통계를 살펴보지 않아도 우리나라에는 한정된 공간에 유사한 업종의 자영업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체감할 수 있다. 같은 골목에서도 수많은 커피숍과 치킨집이 몰려있고, 특정 아이템이 인기가 있다 싶으면 너도나도 앞다퉈 뛰어든다.

국내 제약산업도 마치 전쟁터와 같은 자영업을 투영하는 듯 하다. 열악한 신약개발 역량 탓에 너도나도 유사한 제네릭 시장에 뛰어들며 무차별적인 경쟁이 펼쳐지는 형국이다. 시장이 크지도 않은데도 동일한 제네릭 영역에 100개 이상의 제약사가 진출하는 현상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세부 통계를 들여다보면 제약사들이 소규모 매출의 다양한 제품을 취급하는 '백화점식 경영'이 만연한 것으로 나타난다. 대형제약사의 증가세는 주춤한 반면 생산실적이 작은 소규모 업체가 크게 늘었다. 식약처에 따르면 2017년 완제의약품 생산실적 5000억원 이상인 업체는 5곳으로 2014년 이후 제자리다. 2010년에도 5000억원 이상 업체는 5곳 뿐이었다.

2017년 생산실적 10억원 미만 업체는 108곳으로 전년보다 2010년 57곳에 비해 2배 가량 많아졌다. 2017년 완제의약품 생산 업체 수 357곳이다. 제약사 10곳 중 3곳은 연간 완제의약품 생산량이 10억원에도 못 미친다는 얘기다.

생산실적 100억원 미만, 100억~1000억원, 1000억원 이상으로 구분하면, 2010년 이후 100억원 미만 업체가 134곳에서 187곳으로 39.6% 늘었다. 100억~1000억원 업체는 98곳에서 124곳으로 26.5% 증가했고, 1000억원 이상 업체는 38곳에서 46곳으로 21.1% 늘었다. 상대적으로 영세제약사의 증가세가 뚜렷했다.

자영업과 마찬가지로 장점이 뚜렷한 특정 분야를 집중적으로 두드리는 것보다는 제네릭 시장에서 다수 시장에 동시다발로 뛰어들어 시장을 나눠갖는 현상이 확연해지고 있다는 얘기다.

제약산업에서의 과당경쟁은 업체간 희비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시장에서 도태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자영업도 그렇듯이.

과당경쟁은 불법 리베이트와 같은 부작용을 양산할 가능성이 있지만 그 자체만으로 나쁘다고 단정짓는 것은 위험한 견해다. 경쟁 가열은 소비자들에게 더 나은 서비스와 가격경쟁력을 제공할 수 있어서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제약사의 과당경쟁 현상을 두고 정부의 부정적인 시각이 엿보인다. 마치 공무원들 사이에 ‘제약사들은 품질 낮은 약을 공급하는 나쁜 기업’이라는 인식이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듯 하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결정한 불순물 발사르탄 손해배상 청구를 두고 하는 말이다.

복지부는 최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부의안건으로 제약사 69곳에 21억원 규모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내용의 안건을 보고했다.

복지부는 지난해 불순물 발사르탄 파동이 발생하자 문제의 의약품을 복용한 환자들에 기존 처방 중 남아있는 기간에 대해 교환 조치를 해줬다. 이때 25만1150명에 대한 재처방 및 재조제로 투입된 21억1100만원을 제약사들에 청구하겠다는 의미다. 복지부는 제약사별로 구상금 결정을 고지할 방침이다. 만약 제약사들이 구상금을 내지 않으면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진행할 계획이다.

이 결정을 두고 제약사들이 극도로 반발하는 이유는 “규정을 위반한 적이 없고, 환자들에게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는 억울함에서다.

정확히 1년 전으로 기억을 되돌려보자. 발사르탄 파동에서 검출된 발암가능물질 'N-니트로소디메틸아민(NDMA)'은 애초에 발사르탄 원료에서 규격기준이 없는 유해물질이다. 정부와 제약업체 모두 발사르탄 원료에서 NDMA 검출 위험성을 인지할 수 없었다. 굳이 이 사건의 책임 여부를 따지자면 해당 의약품을 생산한 제약사와 허가와 판매를 승인해준 정부의 공동 책임인 셈이다.

더욱이 불순물 발사르탄 의약품은 최종적으로 유해성이 확인되지 않았다. 식약처는 지난해 말 NDMA가 검출된 화하이 발사르탄 사용 완제의약품을 실제로 복용한 환자의 개인별 복용량과 복용기간을 토대로 조사한 결과 추가로 암이 발생할 가능성은 무시할 만한 정도의 매우 낮은 수준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이번에 복지부 손해배상 청구는 발사르탄 의약품 교환에 따른 재처방·재조제가 발단이 됐다. 당시 복지부는 "국민 불편 감소를 위해 재처방 등 조치방안을 마련했다"고 했다. 유해성 여부가 재처방의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라는 의미다.

똑같은 불순물 발사르탄 파동을 겪은 미국과 유럽에서는 의약품 교환 자체가 없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문제의 의약품을 복용하는 환자는 전문가와 상의해서 처방을 다른 약으로 바꿀지 여부를 결정하라고 했다.

국내에서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문제의 발사르탄 의약품을 다른 약으로 교환해줬고, 교환한 약에서 또 다시 불순물 원료를 사용한 것으로 드러나자 “제네릭이 너무 많다”라는 결론으로 귀결됐다.

우리나라는 발사르탄 의약품의 회수도 강력하게 이뤄졌다. 식약처는 2015년 1월부터 불순물 함유 발사르탄 원료를 한번이라도 사용한 완제의약품을 대상으로 판매를 중단했다. 이어 직간접적으로 해당 제품 전체에 대해 회수와 폐기를 유도했다. 미국에서는 제조단위별로 구분해 제지앙화하이 원료를 사용한 제품에 대해서만 회수가 진행됐다.

결과적으로 같은 사안을 두고 우리나라는 미국과 유럽보다 더 강력한 조치를 취한 셈이 됐다. 그러면서 마치 “제약사가 불량약을 유통했으니 책임도 져야한다”라는 인식에 손해배상 청구도 하는 논리다.

다시 말하자면 발사르탄 파동의 책임은 정부와 제약사 모두에게 있다. 만약 정부가 제네릭 난립이 불편하면 시장 진입을 억제할만한 효과적인 정책을 꺼내들면 된다. 정부의 정책으로 더욱 국민들의 불안감과 혼선이 확산된 측면도 있는데도 무조건 제약사 탓으로 여기는 것은 무책임하다.

수많은 자영업자들이 힘들다고 하소연 하더라도 누구도 해당 자영업이 나쁘다고 손가락질을 하지는 않는다. 그들도 나름대로 생계를 유지하지 위한 도구로 자영업을 선택했을 뿐이다. 제약산업도 마찬가지다. 제약사들은 정부가 제시한 적법한 규정에 따라 시장에 진입했다. 기업들의 우선 목표는 이윤 창출이다. 규정내에서 조금이라도 이익을 더 낼 수 있는 시장에 적법한 절차를 거쳐 뛰어든 것 뿐이다.

제네릭 과당경쟁이 치명적인 문제라고 판단된다면 그 현상을 유발하고 방치한 정부도 책임이 있다. 현상만 보고 기업들에 대한 나쁜 편견을 갖고 있다면 위험하다. 어떤 정책도 편견이 개입돼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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