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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의약사 협력, 지불제도 개혁 뒷받침돼야

  • 데일리팜
  • 2019-10-14 19:15:35
  • 유창식 새물결약사회장

어느덧 가을이다. 올해는 방문약료에 대한 약사회의 홍보 노력이 두드러진 한 해였다. 약사 직능 확대의 좋은 기회라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약사사회가 직능 확대를 시도할 때마다 어김없이 겪게 되는 일이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9월부터 의사가 주도하는 약물사용 검토 사업이 서울시에서 시작된다고 한다. 우려스러운 것은 이 사업에서 의사의 파트너는 건강보험공단 근무 약사이며 지역약국 약사는 철저히 배제된다는 점이다.

방문약료에 대해 줄곧 비판적 입장을 보여온 의사회가 이렇듯 태도를 바꾼 데는, 마냥 거부만 해서는 방문약료 사업 확대를 저지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정책적 대항마(가급적 의사가 주도하고 통제할 수 있는)를 내세워 원안인 약사 주도 방문약료의 입지를 축소시키려는 시도가 아닌가 한다.

의사와 약사가 역할을 나눠 서로 견제와 협력을 다하는 것이 의약분업의 본질임에도, 대한민국에서는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작동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오로지 약사에 대한 의사의 견제 뿐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의사가 약사를 경쟁상대로 인식하게끔 만드는 지불제도 탓이 크다.

공급된 의료서비스에 대해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그 방식을 지불제도라 한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행위별 수가제를 채택하고 있다. 의사가 의료행위를 할 때마다 돈을 받는다. 행위를 할수록 돈을 버니 중복과잉진료의 가능성도 크다.

영국은 인두제를 시행하는 대표적 국가인데, 정부가 해마다 의사와 계약을 맺어 환자를 할당해주고 환자 수에 비례해 통으로 비용을 지불한다. 의사는 자신이 맡은 환자들을 책임지고 돌봐야 하며 당국은 다양한 지표를 통해 환자들의 건강상태를 평가하고, 의사가 관리를 잘 했다고 판단된 경우 더 많은 환자를 맡기거나 인센티브를 지급해 보상한다.

인두제에서는 행위를 얼마나 많이 하는 지가 아닌 건강 관리 실적을 기반으로 보상이 주어지므로 의사는 아예 처음부터 환자가 생기지 않거나 환자의 기존 질환이 악화되지 않는 방향으로 노력하게 된다. 즉 만성질환 관리나 질병예방에 유리한 지불제도다. 행위를 많이 한다고 보상이 늘어나지 않으므로 불필요한 진료행위는 스스로 줄이게 된다.

행위별 수가제에서는 더 많은 환자를 진료하고 더 많은 행위를 할수록 보상이 커지므로 환자를 놓고 직능간 경쟁이 첨예하게 벌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 의사집단이 약사집단을 과도하게 견제하는 데는 행위별 수가제라는 틀이 끼친 영향이 크다.

반면 의사가 할당 받은 환자 수에 따라 통으로 보상받는 인두제에서는 이런 경향이 감소할 여지가 많다. 의사가 받는 보상은 정해져 있으므로 환자를 놓고 직접 경쟁하지 않게 될 뿐더러 약사가 환자에게 건강정보를 제공하거나 약물치료에 조언하는 행위가 환자의 건강을 증진시켜 의사의 실적 개선으로 이어지므로 오히려 약사와 협력관계를 맺는 것이 이익이 될 소지도 크다.

인두제는 우리 상황에서 국민에게도 득이 많은 제도다. 인구 고령화가 심화됨에 따라 경제의 활력은 떨어져가는데 의료비 지출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인두제는 불필요한 진료를 줄여 의료비를 절감하는 효과가 우수하다. 고령화 시대에 중요한 만성질환관리와 질병예방에도 매우 적합한 지불제도이다.

최근 복지부는 일차의료기관이 만성질환관리를 시행하면 수가를 지급하는 방안을 자주 언급하고 있다. 일부 언론은 이것을 ‘주치의제도’로 소개하며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지불제도라는 근본적인 틀을 그대로 둔다면 만성질환관리에 대한 수가만 신설해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점점 과도해지는 종합병원의 환자 독식으로 극에 달한 일차의료기관의 불만을 달래려는 선심성 미봉책의 성격이 짙다. 지금처럼 일차의료기관과 종합병원이 동일선상에서 경쟁하게 된 배경에도 행위별수가제가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인두제가 통합의료를 지향하는데 반해 행위별수가제는 의료의 분절화를 조장한다. 파편화된 의료환경에서 환자를 놓고 의료기관들이 경쟁하면 더 크고 유명한 종합병원이 작고 이름없는 동네의원보다 우위에 설 것은 자명하다.

또한 아쉬운 것은 대한약사회의 자세다. 언제부턴가 큰 그림을 제시하는 모습을 보기 어려워진 느낌이다. 새로 꾸려진 집행부가 밀고 있는 ‘전문약은 공공재’라는 아젠다를 보자. 대한약사회가 최우선 화두로 삼기에는 무게감이 떨어진다. 원희목 집행부가 제시했던 '약의 전문가'나 '셀프메디케이션과 약사의 역할'과 비교해봐도 그렇다.

현재 우리 여건이 어렵고 전체 의료환경에서 약사가 차지하는 역할이 의사보다 적은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원하는 바람직한 미래상을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지불제도처럼 보건의료의 틀을 좌우하는 화두 또한 마찬가지다. 크게 멀리 보고 담대하게 실천해가는 대한약사회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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