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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시원섭섭한 공적마스크, 이제 추억속으로"

  • 원주헌 약사
  • 2020-07-12 19:44:36
  • 원주헌 약사(평택 봄봄온누리약국)

[데일리팜=원주헌 약사 기자] ‘COVID-19‘는 2019년 중국 우한시에서 시작되어 둑 터진 강물처럼 순식간에 한국으로 밀려들어왔다. 2020년 1월 반복되는 일상 속 단비와 같은 설날 연휴가 다가오고 있었다. 고대하고 고대하던 설날이 오기 며칠 전, 세상 돌아가는 조짐이 심상치 않았다. 2019년이 끝나가고 새로운 2020년이 다가오던 그 설레던 때, 중국 우한시에서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유행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리고 겉잡을 수 없이 주변 국가로 퍼져나가고 있단 소식까지 함께.

설날이 오기 전까지는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국내 확진자는 없었고, 그저 외국에서 바이러스가 창궐 했을뿐이었으니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쌩뚱맞았을 뿐이다. 그러나 이상한 촉이 등줄기를 오싹하게 만들었다. 육감이라고 했던가. 몇 년 전 메르스 사태를 겪어 본 약사님들 모두 느꼈을 것이다. 일부 발 빠른 약사님들은 마스크와 손 소독제를 비축하기 시작했다.

아뿔싸! 설날 연휴 동안 우한에서 상하이를 거쳐 한국으로 입국한 국내 첫 COVID-19환자가 발생하였다. 명절이 끝나자마자 국내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바이러스는 가뭄 속 들불처럼 순식간에 번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마스크 대란이 시작되엇다. 마찬가지로 도매상에서의 전화도 빗발쳤다. 약국에서 설 전에 발 빠르게 도매상에서 주문했던 마스크와 손 소독제는 대부분이 출하되지 않고 일방적으로 취소되었다. 대다수 온라인 도매상들은 마스크 실물을 보유한 게 아니란 걸 이 때 처음 알았다.

돈 냄새를 맡은 사람들의 매점매석과 중국 보따리상의 수출로 인해 마스크 가격은 천정부지로 뛰기 시작했다. 약국을 10군데를 넘게 돌아도 마스크 한 장 구하기도 힘든 상황이 벌어졌다. 심지어 약국 내에서 직원이 써아 할 물량도 부족했다. 이제 마스크는 금보다 귀하게 되었다.

마스크 유통을 자유시장에 맞길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정부는 직접적으로 개입을 시작했다. 공적 마스크 제도를 통한 수출금지와 매점매석 금지를 법으로 지정하였고, 조달청의 일괄 구입 후 약국 DUR시스템을 이용해 배급제를 시작했다. 아주 똑똑한 생각이었다. 한국 약국에는 DUR이라는 주민번호 조회 시스템이 기존에 있었기에, 빠른 속도로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었다. 또한 빨리빨리의 민족답게 똑똑하고 유능하고 애국심 가득 한 사람들이 밤을 새워 프로그램의 부족한 점을 수정해주었다. 지금도 감사를 드린다.

그러나 이때부터 약국은 마스크와 애환이 시작되었다. 동네 할머니들은 새벽부터 돗자리나 신문지를 깔고 약국 문 앞에서 몇 시간을 기다려 마스크 한 장을 사가기도 했다. 성치도 않으신 몸으로 얼마나 힘들고 고된 일인가. 그마저도 사간 마스크는 자식과 손주들에게 그 몫이 돌아가듯 했다. 한참을 그렇게 힘들게 기다려 손에 잡은 마스크 한 장.. 당연히 불만이 봇물터지듯 밀려들어왔다. 1장만 더 달라.. 집에 아픈 사람이 있다.. 직장 나간 며느리, 자식들 것도 달라.. 온갖 불만과 애로사항이 접수되었다.

약사와 약국직원은 앵무새가 되었다. "언제들어오는지 몰라요. 어떤 제품이 들어오는지 몰라요. 진짜 없어요. 정말없어요. 숨겨둔거 없어요. 거짓말 아니예요!" 국가적 패닉 상태의 상황에서 사람들은 겁에 질려 잔뜩 예민해지고, 민감해졌다.

쉬고 싶은 일요일! 평소와는 달리 약국을 나갔다. 약국이 문도 열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벌써 쭈욱 줄 지어서 내가 문 여는거를 쳐다본다. 줄을 일렬로 세우고, 서로간의 일정 거리를 유지시켰다. 안에서는 바쁘게 컴퓨터를 키고 주민번호를 입력하고 마스크를 2장씩 정신없이 팔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면 마스크가 금새 동이나버린다. 충분하지 못해 한참을 기다린 손님들께 미안하다.

국가 재난 상황에 준하여 봉사하는 마음으로, 힘들고 욕먹어도 책임감 있게 그 역할을 이행하였다. 뿌듯함과 보람이 있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 수고로움을 인정하였고, 마스크를 사가시며 젊은 분들은 진심이 가득 담긴 감사를 표하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집에서 가져 온 정성과 마음이 담긴 간식들을 주신다. 됐다고 한사코 거절하고 마음은 받는다 극구 사양을 하여도, 내던지듯 올려놓고 홀랑 도망가버리신다. 수줍은 그 마음과 감사함을 어찌 다 갚으리. 돕고 사는 훈훈한 세상이다. 약사는 국민들을 위해 봉사하고, 국민들은 수줍으면서도 대담하고 감사를 표시한다.

마스크를 공평하게 분배하는 과정에서 약사들은 때론 욕받이가 되기도 했다. 불안함에 조급해진 마음에 때로는 약국을 비방하고 시기하시는 분들도 계셨다. ’마스크 팔아 때 돈을 번다.‘ ’도둑놈들.‘ ’지네 가족, 친척들 줄라고 잔뜩 빼돌린다.‘ ’단골만 따로 챙겨준다‘는 등등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불만과 질시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실제로 마스크 문제로 약국과 손님 사이에 충돌이 발생하여 경찰이 출동 한 경우도 심심치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며 코로나의 직접적인 위험에 노출 된 직원과 약사들은 이러한 감정싸움에 점점 지쳐갔다.

지자체가 게시한 약국 격려 플래카드
이 때 마스크로 치이고 지치고 힘든 상황에서 평택 시청의 공무원분들이 많은 도움을 주셨다. 인력을 지원해주기도 하고, 재난문자를 통해 공적마스크제도를 헷갈려 하시는 분들에게 올바른 길을 안내해주셨다. 길 건널목마다 '약사님 고맙습니다' 라는 플랜카드가 걸렸고, 파릇파릇 생명력이 넘치는 화분도 약국마다 배달해 주시며 감사함을 표했다. 그동안의 지치고 힘든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리 보람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5월이 넘어가자 마스크는 이제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고, 약국에서 꼭 공적마스크를 취급해야하냐는 회의론이 나오기 시작했다. 마스크는 이윤이 거의 남지 않았고, 약국 상황에 따라서는 업무에 지장을 주는 경우도 많았다. 사실상 마스크를 판매하느라 일반 보건 업무는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처방과 매약 손님만으로도 정신없이 바쁘고 빠듯한 약국들은 사실상 더 이상 공적마스크를 이어나가기 어렵다는 의견도 나왔다. 마스크 매출 증가에 따른 다음 해의 종합소득세 증가분에 대한 우려도 나오기 시작했다.

여름이 다가오자 이제 마스크의 공급이 충분히 늘어나고, 저렴한 비말 마스크가 나오기 시작하자하며 수요가 크게 줄자 약국에서는 공적마스크를 지속할 명분이 없어졌다. 7월12일부로 장장 5개월간의 우여곡절 많았던 공적마스크의 끝이 다가온 것이다. 시원섭섭한 이 기분을 뭘까. 정신없이 바쁘고 긴급하게 돌아갔던 수 많은 일들도 이제 추억이 되었구나.

코로나가 현재진행형이고 장기전으로 갈 가능성도 충분하다. 치료제와 백신은 확실하지않고, 올 가을 대유행할 가능성 또한 높다. 뉴스에서는 대규모 감염에 따라 변종바이러스와 외국에서 더더욱 지독한 바이러스가 나타났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그러나 예전 1월보다 안심인 것은 든든한 마스크가 예전보다 안정적으로 있는 까닭이다.

이제 약국은 공적마스크의 역할을 뒤로하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공포의 상황에서 마스크와 소독제가 여유롭게 넘쳐나는 지금의 상황까지 이끌어낸 것이 뿌듯하다. 긴 여정을 끝내며 그동안 수고해주신 모든 분들과 약사님들께 감사함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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