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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스타트

[기자의 눈] 무색해진 판결…실리마린에 꽂힌 정부의 집요함

  • 김진구 기자
  • 2026-04-17 06:00:40

[데일리팜=김진구 기자] 정부가 기어코 실리마린 성분의 급여 재평가에 다시 나선다. 정부는 실리마린을 은행엽엑스, 도베실산과 함께 재평가하는 방안을 확정, 이달 중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상정할 계획이다. 

장기 소송전 끝에 제약사가 승소하며 급여 잔류가 확정되는 듯했으나, 정부는 판결 직후 기다렸다는 듯 재평가 카드를 다시 꺼내 들었다.

이번 재평가 재추진을 보면서 정부가 이미 ‘급여 삭제’라는 결론을 정해두고, 움직인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정부는 ‘재판부가 임상적 유용성 자체에 대해선 판단하지 않은 만큼 재평가 필요성을 다시 검토해 대상에 포함시켰다’는 입장이지만, 제약업계에선 이를 판결의 취지를 교묘하게 비껴간 자의적 해석이라고 보고 있다. 사실상 ‘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재평가만 받으라’는 식의 ‘답정너’ 행정이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급여 삭제를 위법하다고 판결한 본질은 정부가 유리한 문헌만 선택해 임상적 유용성을 부정적으로 판단했다는 데 있다. 그러나 정부는 이를 정책적 판단의 오류로 인정하기보다, 단순히 ‘절차적 하자의 보완’ 기회로만 활용하는 모습이다. 잘못된 결론을 바로잡으라는 사법부의 판단을, 풀이 과정만 다시 써서 같은 답(급여 삭제)을 내겠다는 집요함으로 응수한 셈이다. 이러한 행정적 고집은 정책에 대한 신뢰를 갉아먹고 제약업계의 피로감만 가중시킬 뿐이다.

더 큰 문제는 행정의 과오를 기업이 오롯이 짊어져야 하는 제도적 모순과 형평성 상실에 있다. 실리마린 소송에 참여한 업체의 경우 어렵게 승소해 급여를 유지하고 있음에도, ‘임상적 유용성 없음’이라는 꼬리표을 떼지 못한 채 시장에서 신뢰가 추락했다. 지난 4년간 처방액은 30% 이상 증발했고, 막대한 소송비용만 추가로 부담하며 이중‧삼중의 고통이 누적되고 있다.

소송 미참여 업체들은 정부의 결정을 믿고 급여 삭제를 수용했기에 허탈감이 더욱 크다. 한미약품‧대원제약 등은 수백억원에 달하는 매출이 그대로 증발했다. 향후 재평가에서 다시 한 번 임상적 유용성이 입증된다면, 정부 행정을 신뢰하고 순응한 기업이 오히려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착한 기업이 손해를 보는 구조에서 정부가 강조하는 ‘공정’은 설 자리가 없다.

이들에 대한 합리적 보상 시스템이 없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지난 2023년 11월 도입된 ‘약제비 환수‧환급법’에 따라 제약사는 소송 패소 시 집행정지 기간의 이익을 물어내야 하지만, 정부의 위법한 처분으로 발생한 기업의 매출 손실에 대해선 그 어디에도 보상 기전이 없다.

법원이 정부 처분의 위법성을 명확히 했음에도 이를 단순한 ‘오답 노트’ 정도로 취급하며 재평가를 서두르는 모습은 사법부의 견제 기능을 무색하게 만든다. 정책적 일관성을 넘어선 이러한 행정적 집요함은 감정적으로 비치기까지 한다. 사법부의 판단조차 행정적 집념 앞에 무용지물이 되는 양상이 반복된다면, 결국 행정의 신뢰도는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 정부가 건보재정 절감이라는 실익에만 매몰돼 행정의 신뢰를 스스로 저버리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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