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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스터디

[데스크 시선] 명분 없는 행정과 갑질

  • 천승현
  • 2022-12-20 06:15:19

[데일리팜=천승현 기자] 제약업계에서 보건당국의 제네릭 약가 등재 절차를 두고 뒷말이 계속 나오고 있다. 약가등재 과정에서 불필요한 생산실적 자료를 요구하면서 제약사들의 힘을 빼고 있다는 불만이 끊이지 않는다.

2020년 10월 ‘국민건강보험 요양급여의 기준에 관한 규칙’ 개정으로 제네릭과 같은 산정 대상 의약품도 약가 등재 시 건보공단과 협상 절차를 거쳐야 약가를 등재할 수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신규 등재 제네릭은 생산·수입실적 자료를 제출해야만 약가 등재를 허용해주겠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건보공단은 제네릭 제품의 즉시 공급 가능 여부를 따져서 등재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취지다. 안정적으로 공급할 능력을 갖춘 의약품에 한해 급여목록 등재를 허용하겠다는 의도다.

문제는 건보공단이 제약사들에 요구하는 생산 내역 자료가 지나치게 많다는 점이다. 제약사들은 생산한 제네릭 의약품의 제조번호, 제조수량, 제조단위, 일련번호, 제조연월일, 사용기한, 제조지시기록서, 완제품시험승인성적서, 입고확인증 등을 제출해야 한다. 생산물량의 등재일 또는 허가변경일에 판매 가능한 재고 수량도 정확히 기재해야 한다. 생산 사실을 증명할 제품 사진도 제출 대상이다. 제품사진은 모든 제조번호, 대포장 상자 제조번호 확인이 가능한 사진, 제조번호 및 제품명 확인이 가능한 개별 제품 사진이 포함된다.

생산한 재고가 사용기한이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등재가 거부되기도 한다. 기존에 생산한 물량의 잔여 사용기한이 넉넉하지 않아 신속한 공급이 힘들다는 판단에 등재조차 허용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제약사들은 보건당국이 근거도 부족하고 명분도 불분명한 규제로 사업 예측성을 떨어뜨린다는 불만을 내놓는다. 약가 등재와 공급능력을 연계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불만이다.

사실 의약품 허가와 약가를 받고 난 이후 원활한 공급 여부는 시장에 맡기면 된다. 제약사 입장에선 “발매할 계획이 있어서 허가 받고 약가를 등재하는 게 당연한데, 약가등재를 위해 별도의 자료를 마련하면서 불필요한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발생하게 된다”며 불만을 호소한다.

현실적으로 사용기한이 만료됐거나 만료가 임박한 제품은 요양기관에 공급 자체가 불가능한데 약가등재 시점에 보유한 재고의 사용기한을 문제 삼아 등재를 보류하는 것은 불필요한 행정이다. 제약사 입장에선 시장의 수요에 맞춰 생산량을 조절하면 되는데 약가등재를 위해 추가로 생산하는 것은 사회적 비용 낭비를 초래한다. 제네릭의 경우 대체약물이 많기 때문에 특정 제품의 재고가 충분하지 않더라도 시장에선 혼란이 거의 없다. 수요가 쏟아지는데 재고물량의 사용기한이 얼마 안 남았으면 추가 생산에 돌입하면 된다.

제약사들은 약가등재를 위해 추가 안정성 시험을 통해 이미 허가 받은 의약품의 사용기한을 연장해야 하는 상황도 고민해야 하는 실정이다.

보건당국의 제네릭 약가 등재 원칙을 적용하면 시중에 잘 팔리다가도 원료나 원가 문제로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 약가등재를 취소해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최근 코로나19 대유행의 장기화로 해열진통제 아세트아미노펜의 수급에 차질이 빚어지자 보건당국은 오히려 약가를 인상시켰다. 제약사들은 아세트아미노펜 단일제의 보험상한가가 최대 70원에 불과할 정도로 원가구조가 열악하다는 이유로 생산 증대에 난색을 보였고 정부는 이례적인 인상에 합의했다.

퇴장방지의약품의 경우 제약사가 열악한 원가구조를 호소하면 약가를 올려주기도 한다. 퇴장방지의약품 관리제도는 환자들에게 꼭 필요한 의약품이 시장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정부가 제약사의 생산·공급에 개입하는 정책이다. 다른 약물에 비해 가격이 낮아 품절이 빈번하게 발생하거나 원가 압박으로 제약사가 생산·수입을 기피해 임상진료에 지장을 초래하는 의약품은 퇴장방지의약품으로 지정될 수 있다.

약가등재 이후 판매하지 않은 제품은 자동으로 시장에서 퇴출되는 제도가 있다. 보건당국은 지난 2007년부터, 최근 3년 간 보험급여 청구 실적이 없거나 생산실적 또는 수입실적이 2년 간 보고되지 않은 의약품을 보험급여 목록에서 삭제하고 있다. 2년 이상 판매실적이 없는 의약품은 사실상 더 이상 팔 의도가 없다고 판단, 건강보험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는 제도다.

보건당국이 제네릭 약가 등재 시 생산물량의 꼼꼼한 점검은 왜 하는지 모르겠다. 모든 규제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명분과 이유가 부족한 행정이 반복될수록 기업들로부터 ‘갑질하는 기관'이라는 오명이 축적될 수밖에 없다. 안 해도 되는 일을 왜 굳이 만들어서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거 말고도 시급한 일이 더 많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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