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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10분의 1만이라도...완화의료 가치 인정해주길"

  • 정새임
  • 2023-06-24 06:15:09
  • 김범석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
  • 신체적·심리사회적 돌봄이 환자 삶의 질·생존에 영향
  • "4인 가족 해체로 돌봄 공백 더 커질 것…진지한 고민 필요"

[데일리팜=정새임 기자] "신약이 나오는 건 정말 박수 칠 일이죠. 하지만 암 환자에게 약이 전부일까요? 환자의 삶의 질을 높이고 생명을 연장하는 데에는 돌봄도 큰 역할을 합니다. 우리는 개인에게 이 역할을 떠넘기고 가치를 생각하고 싶어하지 않죠. 환자 한 명에게 신약 치료 비용 수 억원을 쓰는 건 당연하게 여기지만, 똑같이 생존기간을 석 달 늘릴 수 있는 '완화의료'에는 10분의 1도 아까워 합니다. 분명한 점은 빠르게 가족의 개념이 해체되면서 돌봄의 공백이 점점 커지게 될 겁니다. 완화의료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지원해야 할 시점입니다."

항암 신약 데이터가 쏟아지는 미국임상종양학회(ASCO) 연례학술대회장 한 켠에서 김범석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완화의료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폐암 전문의인 김 교수가 신약의 가치를 모를 리 없다. 동시에 그는 암 환자들이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지도 생생히 보았다.

김범석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
진단 초기 환자들은 급여를 받고 저렴한 가격에 좋은 신약을 쓸 수 있지만, '완치'가 없는 말기 암 환자들은 결국 죽음을 준비해야 할 순간을 맞는다. 가장 몸이 아프고 케어가 필요한 시기에 건강보험은 아무 도움을 주지 못한다. 운이 좋다면 가족의 세심한 케어를 받고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지만, 운이 나쁘면 기댈 가족이 없어 급격히 삶의 질이 떨어진 채로 죽음의 문턱에 선다. 아무도 묻지 않았던 연명의료를 임종기에 들어서서야 듣는다. 충분히 고민할 여유도 기력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에서 10명 중 6명은 자신의 연명의료를 자신이 결정하지 못한다. 김 교수가 우리 사회에 완화의료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 이유다.

"환자들이 가장 도움이 필요할 때는 스스로 케어가 되지 않고 자리에 몸져 누웠을 때죠. 정작 이 시기로 갈 수록 환자들은 홀대를 받습니다. 이미 앞에서 쓴 돈이 몇 억씩 돼 재정이 남아있지 않거든요. 이 분들의 케어는 가족에게 떠넘겨지죠. 돌봄을 봉사하거나 싸게 부려 먹는 노동력 쯤으로 취급합니다. 정부가 매년 항암제에 투입하는 보험 재정만 2조원 정도 됩니다. 말기 폐암 환자 한 명에게 들어가는 면역항암제 비용이 1억5000만원이에요. 그런데 1년 간병비는 3600만원에 불과하죠. 간병비가 결코 항암제 한 개보다 못한 비용인가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김 교수가 강조하는 완화의료는 환자의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고 증상을 완화하는 신체적·심리사회적·영적인 돌봄 등을 통칭하는 것으로, 모든 환자에게 기본적으로 제공되어야 하는 의료행위다. 약으로써 완화의료를 실현할 수도 있지만 주로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다. 그가 이끄는 서울대병원 완화의료·임상윤리센터는 의사와 간호사, 사회복지사, 약사 등이 팀을 꾸려 환자의 신체적·심리사회적·영적 상태를 파악하고 돌봄 계획을 세운다.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돌봄과 미술치료, 마음의 인터뷰 등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완화의료로 환자들의 심신이 안정되면 예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실제 10년 전 국제학술지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NEJM)'에 실린 완화의료 무작위 대조 연구 결과에 따르면, 폐암 진단 조기부터 완화의료를 받았던 환자군은 그렇지 않은 환자군보다 전체생존기간이 약 3달 더 길었다. 환자의 삶의 질이 오를 뿐 아니라 생존기간도 개선할 수 있음을 보여준 대표적인 연구다. 무의미한 치료를 줄임으로써 재정 절감에도 도움을 준다. 하지만 여전히 완화의료는 '돈 안 되는 사업'으로 취급받으며 소외받고 있다고 김 교수는 안타까워했다.

서울대병원 완화의료·임상윤리센터는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로 이뤄진 자문형팀이 환자돌봄계획을 세우고 환자에 맞춰 신체돌봄과 미술치료, 영적돌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사진 서울대병원).
"실제 진료 현장에 있다 보면 딸 둘 있는 환자가 확실히 오래 사세요. 케어를 세심하게 받으니까 고열 등 소소한 이벤트에 빨리 대처가 되죠. 영양에도 많은 신경을 쓰고요. 그런 것 하나하나가 생존기간 연장으로 이어져요. 약으로만 생존기간이 연장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죠. 하지만 정부는 생존기간을 세 달 늘리는 완화의료에 돈을 쓰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가족에게 맡기고 '그게 효도야'라고 하면 되거든요. 완화의료 시범사업에 책정된 금액이 고작 9억원 입니다. 수가도 제대로 매겨지지 않고 있고요. 돈이 안 되니 병원에서도 굳이 완화의료를 열심히 하려 하지 않죠."

김 교수는 전통적인 가족이 해체되고 1인 가구가 급증하는 현재 완화의료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가족 구성원에게 맡겨두었던 돌봄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사회가 다가오고 있다는 점에서다. 이미 지난해 기준 4인 가구는 15%에 불과한 반면 1·2인 가구가 62%로 절반을 넘었다.

"30년 뒤 우리의 가족 문화는 4인 가족이 비정상으로 보일 거예요. 지금은 가족구성원이 완화의료의 역할을 대신해주는데 점점 그 공백이 커지겠죠. 달라지는 사회 모습을 고민하면서 완화의료에 투자하고 가치를 인정해 줘야 합니다. 신약에 부여하는 가치의 10분의 1만이라도 인정을 해준다면, 환자들의 만족도는 훨씬 더 높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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