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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별등재 차라리 유보하라

  • 데일리팜
  • 2008-11-20 06:45:40

태풍이 몰아칠 듯 한 기세로 강력하게 밀어붙인 정부의 #기등재약 목록정비 사업이 시작부터 삐꺼덕 거리는 모양새는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선별등재제도’라는 깃발을 내걸고 보무도 당당하게 발을 뗀 시범사업이 얼룩졌기 때문이다. 그 첫걸음이 어정쩡한 게걸음으로 바뀐 것을 보면 앞으로 있을 본 평가가 얼마나 어렵게 진행될 일인가를 예의 짐작케 한다. 물론 시범사업은 말 그대로 시행착오를 각오한 사전 준비의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게걸음을 치든 뒷걸음질을 하던 잘못이 인정되는 합리적 판단이 내려지면 불가피하게 일부 궤도수정이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근본이 흔들이면 안 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성분별 동일 인하율에서 품목별로 바뀐 것과 존재하지도 않는 약물을 기준으로 삼은 것 등은 기등재약 목록정비 사업의 근간 자체를 흔들었다. 다시 말해 본 평가 사업이 과연 엄정하고 객관적으로 추진될 수 있을지 심히 의아심이 든다.

고지혈증치료제 시범사업은 원론적인 부문에서부터 헷갈리는 문제였다. 지표 자체가 왔다갔다 했다. 고지혈증약 시범사업은 ‘사망률(Mortality Data) 감소’라는 지표가 간판이다. 하지만 이 지표는 최근 출시된 약물의 경우는 해당 자료가 있을 수 없어 자연스럽게 보조지표인 ‘LDL-C’(저밀도콜레스테롤)가 중요한 잣대가 되지 않을 수 없게 했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LDL-C만으로는 절대지표가 되기가 곤란하다. 지질강하 효과가 있으면 생존율이 높아지는 것은 맞지만 검증된 수치를 바탕으로 해야 할 과학적 유추와 결론은 아니다. 고지혈증치료제는 지질강하 효과에서 나아가 심혈관질환 발생률 저하 등의 실질적 질병예방 효과가 당연히 객관적 수치로 검증돼야 한다. 그렇다고 출시한지 3~4년 지나야 확인할 수 있는 사망률 감소 지표를 적용하면 최근 출시 약물은 상대비교가 불가능한 문제가 또 있다. 이로 인해 시작부터 비과학적이라는 비판이 나온 것이 근본 문제라는 점이다. 지표문제는 향후 다른 약물에서도 나올 수 있는 본 평가의 최대 걸림돌이다.

시범사업은 그래서 사실상 실패작이라는 것을 정부는 인정해야 한다. ‘예상된 시행착오’는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는 완성과정이 되기 힘들다는 뜻이다. 학술적·임상적으로 보면 이른바 ‘아웃컴 데이터’(Outcome Data)가 중시돼야 하는 일임에도 그것을 절대기준으로 하기 힘든 상황이었기에 시작부터 이미 인지된 엉뚱한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이다. 재론하지만 절대적 잣대 위에 치밀한 진행이라는 ‘과학적 베이스’가 받쳐줘야 하는 사업이 기등재약 목록정비 사업이다. 일부라도 비과학적이거나 정치적 판단이 개입된다면 그 결과로 인해 치명적 손실을 받을 제약사들은 받아들일 리 만무하다.

물론 정부가 제약업계의 사정을 감안해 일종의 봐주기 수위조절을 한 것으로 보인다. 제약업계 입장에서는 환영할 일이다. 당초 750억원대의 매출손실이 예상됐던 스타틴제제가 100억원 가량의 손실규모를 줄이게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업체별로 희비가 엇갈리는데서 엄밀히 봐주기는 아니다. 부담이 없어지거나 줄어든 업체가 있는 반면 부담이 가중된 업체들이 동시에 생겨난 것은 간과하기 힘든 사안이다. 그럴수록 기준은 더 엄격하고 과학적이어야 상대적으로 손실을 본 업체들이 이를 받아들인다. 따라서 아트로바스타틴10mg의 LDL-C 강하효과가 심바스타틴 20~40mg 사이에 위치한다는 이유나 항변은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다. 메타분석 결과가 실제 그렇게 나왔다고는 하지만 그 폭의 차이가 20mg이라는 것이 지나치기 힘든 수치다. 그것을 대충 금 긋기 하듯 중간인 30mg으로 정한 것은 속된말로 ‘에라 모르겠다’는 식과 무엇이 다른가.

우리가 기등재약 목록정비 사업에 또 하나 의문을 갖는 것은 목표가 무엇이냐 하는데 있다. 이 사업은 말 그대로 ‘가지치기’다. 2만여 등재품목을 5천~1만 품목 이내로 줄이기 위한 대규모 보험약 퇴출작업이다. 그런데 막상 시범사업을 보니 약가인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앞으로도 이런 식이라면 목록정비 사업은 타이틀을 ‘약가인하 경제성 평가 작업’으로 바꿔 달아야 한다. 그래서 퇴출을 시키기에는 엄격한 지표를 들이대기가 아직 어렵다면 선별등재제도 본 평가는 차라리 유보돼야 한다. 선별등재제도가 약가인하 정책으로 변형된다면 ‘선별약가제도’가 아닌가. 이는 제대로 쳐낼 것을 자르지 못하고 살려야 것은 반대로 죽이는 결과를 초래할 여지를 남긴다. 약가작업으로 인한 제품의 운명은 시장에서 판결나기 때문이다. 엄정한 과학의 판단으로 진행되는 가지치기가 아닌 시장에 내모는 형식이라면 선별등재제도는 이미 절반의 실패다.

#선별등재제도는 명분상 가야할 제도라는 것을 원칙적으로 수긍하고 인정한다. 품질이 우수하면서 가격은 저렴한 알짜약만 보험재정에서 운용하고자 하는 목표는 틀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 과정이 얼룩지면 그 결과는 뻔하다. 우리 같은 단일보험 체계에서는 처음부터 알짜약이 아닌 약을 등재 거절하는 절대지표를 만드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단일보험체계에서는 품목별로 사생결단 목을 메는 경우의 수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것을 교통정리 하기에는 경험마저 일천하다. 그래서 단일보험 체계에서는 어떻게 보면 선별등재제도는 이상이다. 반면 다보험체계 국가에서 운용중인 선별등재제도는 오히려 현실적인 시스템이 되고 있다. 정부는 이를 벤치마킹하고 제3의 '한국식 선별등재제도‘를 새롭게 강구해야 한다. 현행 로드맵과 그 시범평가 자체가 시행착오라는 것을 음미해 보자는 것이다. 본 평가에 들어가기에 앞서 시행일정을 전향적으로 유보하고 선별적 등재와 포괄적 등재를 혼용하는 것까지도 대안에 넣는 제3의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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