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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예술인마을 제가 만들었죠"

  • 박동준
  • 2009-09-17 06:45:49
  • 권창호 약사(파주 정도약국)

권창호 약사
경기도 파주시 조리읍 봉일천 5리 62-233번지에는 문화예술인들이 각자 독립적인 공간을 가지고 창작의 꿈을 실현하고 있는 공동체가 있다.

'하제마을'로 불리는 이 곳은 우리나라 최초의 예술인 마을이자 창작 스튜디오로 최근에서야 민간 차원이나 지자체 등에서 관심을 높이고 있는 예술인의 창작공간 형성 및 지역 문화 활성화의 시발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제마을은 지난 1995년 한 독지자가 순수 자선사업의 의미로 사재를 털어 작가들에게 창작 공간을 제공하면서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문화예술에 대한 척박한 인식이 여전하던 90년대 중반 자비로 작가들에게 창작공간을 마련해 준다는 시대를 앞서 간 발상을 한 독지가가 바로 파주시에서 정도약국을 운영 중인 권창호 약사(56. 중앙대약대)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설치 미술가와의 만남'…하제마을의 시작

하제마을을 있게 한 장본인이자 든든한 후원자인 권 약사의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지원은 그 스스로 말하듯이 아주 우연한 기회에 시작됐다.

현재의 하제마을 부지에 공장 운영을 위해 건물을 지었던 권 약사는 지난 1995년 설치 미술가인 김승영 작가를 만나 공장 건물 하나를 비워 작업공간을 내주면서 예술인 마을의 첫 걸음을 내딛었다.

예술활동은 돈이 되지 않지만 그 활동을 위해서는 돈이 든다는 사실에 권 약사는 예술인들에게 작업공간 등을 지원해 주자는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하제마을 전경. 현재 6동의 공간에 9명의 미술작가들이 독립적 공간을 확보하고 창작활동에 열중하고 있다.
"어떻게 그 시절에 예술가들을 지원할 생각을 했냐는 질문을 가끔 받지만 정말 우연히 그렇게 됐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습니다. 우연히 작가를 만나 예술가들의 삶에 관심을 가져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예상 외의 사건이 발생하면서 방향이 바뀌게 된 것이죠. 현실의 삶은 고려하지 않고 예술가들에게 창작을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닙니까?"

그 사이 '돈이 되는' 공장들은 하나씩 자리를 뜨고 '돈 안되는' 예술가들이 모이면서 14년 동안 26명의 작가들이 하제마을을 거쳐갔으며 현재는 9명의 미술가들이 여섯 동의 독립적 공간에서 창작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권 약사의 지원으로 시작된 하제마을이 이제는 전문 예술인들의 창작활동 및 세미나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문화예술교육, 체험프로그램도 운영할 수 있는 복합 문화공간으로 성장한 것이다.

1998년 쌈지 창작스튜디오, 2000년 경안 창작스튜디오, 2002년 가나아뜰리에 등 우리나라 사립창작 스튜디오을 출현을 이끈 하제마을은 이렇게 우연히 시작됐다.

"작가들을 지원하지만 간섭은 하지 않는다"

권 약사는 작가들이 주도하는 세미나에도 함께 참석하는 등 작가들과의 호흡을 함께하고 있다.
하제마을에 상주하는 작가들은 작업공간을 무료로 제공 받는다. 다만 작업실 운영을 위한 전기세, 수도세 등의 실비와 공동 세미나 경비를 포함해 10만원 내외의 회비를 형편에 맞게 낸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작가들이 함께 생활하면서 만든 일종의 규칙으로 권 약사는 10년 이상 작가들과 구축한 신뢰를 바탕으로 하제마을의 규칙이 지켜지도록 조율하는 선에서 작가들을 지원하고 있다.

매일 같이 약국 출퇴근 시간을 이용해 하제마을을 들러 작가들과 교류를 하면서도 창작활동에 불편을 끼칠 수 있는 어떠한 간섭도 하지 않는 것이다.

"하제마을은 수익을 얻고자 하는 구조가 아닙니다. 수익이 발생하면 그것을 다시 투자하고 일체의 영리 목적을 배제하고 하고 기존 페이스를 유지하려고 합니다. 하루 이틀에 끝날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작가들의 창작활동에 방해가 될 수 있는 요란스러운 홍보도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사설 창작 스튜디오의 출발을 이끈 권 약사가 약사 사회에서 크게 드러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 인터뷰에 대해서도 권 약사는 상당히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으며 파주시약사회의 추천으로 경기도에서 수여하는 문화예술 관련 분야 표창도 거절한 상태였다.)

"나는 작가 설치 예술가"…사회적 활동과 개인적 만족의 조화

사방이 약으로 진열된 여느 약국과 달리 권 약사의 약국에는 미술작품이 한 면을 차지하고 있다.
그는 스스로를 작가 설치 예술가라고 표현했다. 독립적 공간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이 하제마을 내에서 조화를 이룰 수 지원한다는 의미의 농담이지만 하제마을은 곧 권 약사에게도 또 다른 삶의 공간이자 깨달음의 장소였다.

권 약사에게 하제마을은 문화예술의 발전에 기여한다는 사회적 영역의 성과와 작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약국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가치관을 키워간다는 개인적 만족이 조화를 이루는 공간이었다.

"결과적으로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하는 측면이 됐지만 스스로도 얻는 것이 상당합니다 약국에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가치관과 시야, 경험들이 쌓이면서 상대방을 이해하는 폭이 늘어나는 것이죠. 그것에 바로 전체 삶을 윤택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때문에 권 약사는 다른 약사, 특히 젊은 약사들에게 작은 공간인 약국에서 벗어나 자신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새로운 영역을 찾아 볼 것을 조심스럽게 주문했다.

"불우이웃 돕기를 예로 들자면서 그것도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을 하는 것이지 생활이 넉넉해지면 하겠다는 생각으로는 절대 할 수 없습니다. 약사들도 이제는 사회적 영역과 개인적 만족을 연결시킬 수 있는 고민을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제마을의 시작과 성장을 알게 돼 혹시 관심있는 젊은 약사들이 한 명이라도 용기를 낸다면 그것으로 또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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