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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경대어린이병원 류 선생과의 만남

  • 데일리팜
  • 2010-06-09 16:27:45
  • 김정은(신천연합병원 소아청소년과 의사)

소아과는 1,2,3과를 마련하였으나, 개원이 늦어진 관계로 아직 한 분만 배정이 되었다고 한다. 동그란 얼굴에 동그란 눈동자가 반짝이는 젊은 선생이다. 류 선생이라 한다.

많이 반가왔지만, 첫 인사는 절제되어 나온다. 선생은 우선 우리가 기증한 여러 기기들의 사용법에 관심이 많았다. 기관지 확장제 흡입을 위한 기계, 산소농도, 혈압, 맥박, 심전도 모니터링 기계, 산소발생기, 검이경, 검안경, 후두경 등이다.

주로 소아 구급환자들을 맡게 되실 거라 한다. 전원을 연결했는데, 작동을 안 한다. 혹시? 전기가 들어오지 않나요? 했더니 역시 그 문제다. 전기가 안 들어오고 있었다.

각종 기기 운용의 가장 큰 장애물인 전기 문제는 남측 실무진의 가장 큰 숙제였다. 다행히 바로 해결되어 기계 작동에 대한 설명을 드렸다. 보낼 때는 잘 몰랐는데, 막상 와서 보니, 세세한 부분이 미흡했다. 작은 연결관, 후두경의 영아용 블레이드 등 빠진 물품을 확인하고, 다음 물자반출 시 보충하겠노라 했다.

선생은 작년 가을 의대를 졸업하고 올 해 이 곳으로 발령받았다고 한다. 의사가 되어 첫 직장인 셈이다. 처음엔 사실 한숨이 조금 나왔다. 그래도 2차 병원급이고 중환도 올 수 있는데, 이제 막 졸업한 선생이 할 수 있을까? 라는 염려를 안 할 수가 없었다.

좀 더 특화되어 수련을 받을 사람들은 의대에 남아 남쪽과 같은 전문의 수련과정을 받지만, 대부분, 이렇게 바로 배치된다고 한다. 의대 4, 5학년 때 과가 정해져서 해당 과 스승님 아래서 참관하다가, 6학년 때 임상실습을 돌고, 졸업하는 것이다.

첫 날이고, 서툴고, 나의 주안점은 기계보다 실제적인 치료방침들을 점검하는 것이었기에 욕심을 내었었다. 준비했던 수액요법과 영양평가 등, 급한 맘에 많은 양을 전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일방적인 교육이 되어버렸다. 아직 추운 진료실에서 장시간 이야기 듣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틈틈이 이 곳 환아들의 질병분포 및 특정 질환의 치료법 등에 대해 물어보았을 때 아직 시작을 안 하여 잘 모르겠다는 대답만을 들었다. 처음엔 대답하기 난감해서인가 싶었는데, 추 후 선생입장을 생각하니 그럴 만도 했다.

기계들의 작동법을 설명하는 중에, 참사들과 관련된 위원들의 참여가 훌륭했다. 혈액채취, 심전도, 각종 모니터링, 안이비과(안과, 이비인후과) 기기측정, 치과치료, 복부 초음파 검사 등에 적극적으로 임하며 도와주셨다. 좀 쑥스럽거나 거북할 수도 있었을 텐데 아무 거리낌이 없었다. 다들 열심히 듣고 질문하며 익혀가는 동안 어느새 어둑해졌다.

처음 만남의 흥분과 긴장이 다소 풀린 늦은 밤. 숙소 베란다 밖을 본다. 빗 속에 번져가는 나트륨 불빛이 곱다. 저 너머 무수한 창마다 잠들어 있을 사람들을 생각한다. 조금만 더, 안으로, 살아있는 피부로 닿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낮에 잡았던 선생의 손바닥 만큼의 온기로나마 계속 만나졌으면 생각한다.

셋째 날 아침, 벌써 마지막 만남이다. 류 선생도 첫 날의 긴장을 다소 풀고 인사한다. 어제 나누었던 이야기 중 미진했던 부분을 보완하고 재점검하고, 남은 시간 궁금한 것들을 이야기해 보라 하니, 남에서는 고려의학(한의학)을 어떻게 접목시키는가 한다. 솔직히, 나는 잘 모른다.

더구나 협진의 경험도 없고, 다소 배타적인 것이 사실이다 했더니, 류 선생은, 치료의 어려운 부분에서는 항상 고려의학 선생들과 함께 한다고 한다. 자신은 겹쳐지고 보완되는 부분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반가운 이야기다. 다음에 만날 때는 류 선생이 익힌 부분을 나에게 알려주기로 했다.

특정 질환의 방사선학적 진단을 두고 ‘기능의학과’ 선생과 이야기를 나눴다. 북은 영상의학과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뢴트겐만 다루는 분이 있고, 초음파, 심전도, 내시경 등을 ‘기능의학과’ 선생이 모두 함께 다룬다고 한다. 류 선생의 4년 선배라는 선생 역시 젊고 예리한 눈을 가졌다. 꼼꼼히 듣고 묻는 선생은 이미 각 기기의 매뉴얼을 모두 외운 상태이다.

산부인과, 안이비과, 검사실, 고려의학, 구강과 선생들을 두루 뵈었다. 약사이신 부원장님의 흐믓해 하는 모습을 뵈며 우리 또한 좋았다. 09년 8월 15일 준공하고도 물자반출이 늦어 이제야 세팅이 되었다. 그 동안 애태우며 병원 개원을 기다리던 주민들과 관계자들께 미안하고, 이제라도 되어 맘의 짐이 다소 놓였다. 물론, 각 수액들과 세세한 물품들의 도움은 여전히 필요하다. 무난히 전달되기를 바라는 맘 간절하다.

필자약력

-의학 석사

-전 서울대학교 어린이병원 소아과 소화기영양분과 전임의

-전 건국대학교 충주병원 소아과 전임강사, 조교수

-현 신천연합병원 소아청소년과 과장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 실무기획의원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류 선생과 ‘화이팅’을 나눈다. 의대에서 간접적으로 접하던 환자들이나, 직원들과 많이 다를 것이다. 첨으로 독립되어 진료를 하다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의사자신의 점검이 필요할 것이다라고 남에서와 다름없는 선배의 잔소리가 이어진다. 더불어 나의 처음을 생각하였다.

체제를 떠나, 누구에게나 자신의 길에 선 첫 걸음을 두고 느끼는 불안과 설레임은 비슷할 것이다. 류 선생과 나눈 응원과 감사의 눈빛을 맘에 담고 작별인사를 나눈다. 또, 빠른 시간 내에 볼 것 같다. 아무렇지 않게 자주 볼 수 있을 것 같고, 6월 중순 개원하여 7월 중순경 방북하면, 그네의 한 달이 어찌 흘렀는지 나 역시 떨린 맘으로 귀 기울일 것 같다.

첫 방북이었던 08년 11월은 추웠다. 그 때는 체할 만큼의 ‘추위’를 만나고, 그 속에서도 견뎌내며 그 불씨를 살리려는 몸짓을 보았다. 2010년 봄에는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만났다. 어느 정도 안정된 교육과 삶을 보장받은 사람들일 것이다.

다음에 만나질 때는 아이들을 보고 싶다. 그 어머니들을 보고 싶다. 가능하다면, 류 선생의 진료실에 참관이라도 하고 싶다. 입원 환아들이 있다면 그 아이들의 가슴소리를 직접 들어보고 싶고, 수액을 놓아주고 싶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천안함 관련 정부발표 및 북의 답변 등으로 갈등은 더욱 첨예해 지고 있다. WHO 나 유니세프가 정부를 통해 지원하던 백신들의 반출도 일체 금지되었다고 한다. 6월의 추가지원 및 7월의 방북은 많이 어려울 지도 모른다. 우리가 미처 보내지 못한 수액들 없이, 그저 경구약 만으로 우선 치료하게 될 지 모른다.

인간은 참 슬픈 동물이다. 누구도 가질 수 없고 주어지지도 않은 권력을 행사하여 타인을 낙인찍고 정죄하려 한다. 우리는 남과 북이라는 지역과 체제만의 분리가 아니라, 이미 마음으로 크게 갈라져 있다. 우주적 시간으로 보자면 우리의 생은 서로서로에게 연결되어 수 천 년을 흐른다.

지금 내 몸이 속한 곳과 마음의 밭이 어디에 있든, 보다 자연스럽게 땅으로 닿았으면 좋겠다. 꽃들이 새들이 땅을 가려 피고 울지 않듯이, 우리의 맘도 그렇게 자랐으면 좋겠다. 북의 아이들, 남의 아이들이 어른들이 못 만난 세상을 만날 수 있으리라 희망을 가져본다. 그 희망은 누구도 꺾을 수 없다.

이번에 찍은 사진들 중 가장 아끼는 장면이다. 세 사람의 평양시민들과 함께 간 산부인과 선생님이 함께 걷고 있다. 곁에 선 나무들처럼 자연스럽다. 너무 늦지 않은 시간에 이렇게 걷는 이들이 많아지기를, 더 이상 특별한 사진이 아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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