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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는 모텔급…공장은 별다섯 호텔급"

  • 조광연
  • 2011-03-23 06:49:41
  • 대한약품 이윤우 회장 "한 눈 팔지않고 일했다"

대한약품 본사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 건물에 있다. 사무실 인테리어는 소박하다. 창립 66주년을 맞는 코스닥 상장기업으로 우리나라 수액제의 역사라는 점을 떠올려보면 의아한 생각이들 정도다.

"누추한 곳에 오셨다"고 인사한 이윤우 회장(66)은 기자의 표정을 읽었는지 작년 탄생 100주년이었던 선친 이인실 선생과 얽힌 이야기를 풀어 놓으며 자신은 내실을 중시한다고 말했다.

"제가 약대에 입학한지 한달 만에 아버님이 돌아가셨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ROTC 군복무까지 7년의 세월을 보내고 돌아왔을 때 회사는 이름 뿐이고 남아있는 건 사채 밖에 없더라구요. 사채를 갚으려고 정말 죽어라 일만 했어요. 내실 경영이 몸에 스스로 붙은 거지요. 사무실은 모텔급, 공장은 별 다섯 호텔급을 지향합니다."

"구두 한켤레를 밑창을 갈아가며 10년은 너끈히 싣는다"는 이 회장은 공장 투자 만큼은 아끼지 않는다. 실제 2만5000평 규모의 안산공장은 독일 프레지니우스가 설계를 맡아 2005년 cGMP급으로 지었으며 올해도 70억원 정도를 들여 시설 개선에 나선다.

그는 공장에 왜 이토록 애착을 보이는 것일까? "참 희한하게도 제가 1년에 10번 정도는 아버님 꿈을 꾸는데 늘 아버님을 모시고 공장을 구경시켜드립니다."

작년 '창업자 이인실과 대한약품'이라는 사사를 발간한 그에게 있어 '일과 삶'은 아버지의 유업을 계승, 발전시키는 것이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친께서는 평소 말씀이 없으셨는데, 저를 바라보던 그 따뜻한 눈길과 미소를 잊을 수 없어요. 늘 과로로 부르텄던 아버님의 입술도 클로즈업 돼 가슴에 새겨져 있었죠. 더구나 제가 한 살 때 조선약품공업사를 설립하셨던 것도 각별한 의미였습니다. 아버님 돌아가시고 현실적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 7년간 아버지의 공백을 절감하며 유업을 성공적으로 이끌겠다고 다짐했었죠."

그도 아버지고 그 아버지의 아들도 대한약품에서 경영수업을 받으며 3대 경영을 준비하고 있다.

"아들(37)은 기획학술부 이사로 있는데 지금은 미국에 갔어요. 의약품 수출업무를 보기 위해 갔는데 모든 부서를 경험하도록 교육시키고 있습니다.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많이 들려줍니다."

-수액 외길을 고집한 이유는 뭔가요.

"아버님은 경성약전을 졸업하신 후 경성제대 부속병원과 금강제약소 등에서 원료합성과 제제연구에 주력하다 서울 명동 2가 97번지에서 조선약품화학공업사를 설립해 앰플 주사제를 생산하셨죠. 한국전쟁 당시 피난지였던 군산에서 주사제와 우리나라 최초로 수액제를 만드셨어요. 당시 주사제는 첨단의 상징이었고 그 만큼 선친의 자긍심도 대단하셨을 겁니다. 주사제와 수액제를 통해 보여주려하셨던 국민보건향상이라는 숭고한 뜻을 지키고 싶었습니다. 전 아버지의 아들이니까요."

-대한약품 비전엔 변화가 없나요.

"2005년 창립 60주년을 맞아 cGMP개념의 신공장을 지었고 수액제, 주사제 등 주력제품을 계속 발전시켜 나갈 겁니다. 물론 우리도 세계를 향한 경영목표를 세우고 치료용 의약품 종합 생산업체로 거듭날 것입니다. 건강기능식품과 치료용 의료기기 등 종합의료산업 회사로 발전을 꿈꾸고 있습니다."

-회장님께 아버지는 어떤 존재이십니까.

"서울 유학중이라 대화할 시간은 많지 않았죠. 대부분 과묵하셨는데 입을 여시면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신용을 지키라'고 말씀하셨어요. 아버님을 그리워하는 가운데 들어서 그런지 그 말씀들이 평생 마음에 살아 움직입니다."

-따뜻했던 아버님에 대한 추억은.

"모처럼 서울에 오신 아버지가 서대문 작은 중국음식점에서 탕수육을 시켜주셨죠. 당신은 식사를 하셨다며 맛있게 먹던 제 모습을 흐믓하게 지켜보셨어요. 지금도 그 장면이 어젯일처럼 선합니다. 그런데 다 먹고 나니 아버님이 수저를 달라하셔서 국물을 떠 드셨어요. 이제와 생각하니…그건. 사학과를 가려던 제가 아버님 말씀 따라 성균관 약대에 입학했을 때 저 모르게 학교를 구경하셨다는 사실을 나중에 듣고 아버님의 사랑을 진하게 느꼈습니다. 그런데 입학 한달 만에 그렇게 돌아가셨던 거죠."

-제약회사를 통해 얻은 보람은.

"여러해 전 여섯 차례에 걸쳐 평양을 방문해 수액제 생산공장 건설을 위해 설계부터 공사 진행까지 기술지도를 했던 일이 기억에 남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입원 치료를 받았던 친구들이 '친구가 만든 수액제 맞고 나았다'고 했을 때 자긍심을 느꼈죠."

-그럼 언제 취미생활을 하시나요.

"취미없는게 취미라고 할까요. 제가 친구들을 워낙 좋아해요. ROTC 전국 5기 회장을 맡고 있는데 이들과 식사하며 담소를 나누는 것을 기다려 가면서까지 좋아합니다. 산행과 산책도 빼놓을 수 없죠."

-지금껏 어떻게 일을 해 오셨나요.

"선친의 유지를 받들어 성장 발전시켜야 한다는 생각, 그래서 영원히 존속하는 기업으로 남기를 염원하는 마음으로 한눈 팔지않고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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