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봉 시달린 약사들, 파업하다
- 정웅종
- 2011-10-08 06:4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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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약사 16명이 월급 인상을 요구하며 4시간 동안 조제 거부에 나선 것입니다. 그들이 파업까지 한데에는 '박봉'이라는 불만이 자리잡고 있었죠. 지금이야 최고의 직업으로 불리는 약사.
옛날, 약사들의 월급수준과 처우는 어떠 했을까요?

처우 불만에 따른 병원약사의 집단 행동이 당시에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1978년 9월 세브란스병원 약사 16명이 집단사표를 낸 사건도 있죠.
봉급을 최저 50%이상 인상해달라고 요구했지만 병원측이 거부하자 하루 1명의 약사만 근무하는 태업으로 대응했습니다.
과거로 조금 더 달려가 보겠습니다.
지금은 제약회사를 선호하지만 예전에는 약사 구인난이 심각했나 봅니다. 1960년대 제약회사에 근무하는 약사 처우가 지금같이 좋지는 않았습니다. 오죽하면 신문에서도 '박봉에 시달린다'고 표현 했을까요.

1969년 매일경제에 실린 '입사가이드 제약회사편'을 보면 당시 상황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동아제약은 약사 신입사원의 대우가 초봉 1만8천원에 불과했습니다. 한독약품은 약대 졸업생이 입사 후 3개월동안 초봉 1만6천원을 받고 수습기간이 끝나면 1만9천원 정도로 매우 박봉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자장면 가격이 100원 남짓이었으니까 어느정도 급여 수준인지 가늠이 되실 겁니다.
임금과 처우에 대한 약사들의 불만으로 제약회사를 떠나 개업 열풍으로 이어졌습니다. 동네약국을 차리면 회사나 병원에서 근무해 받는 봉급보다 괜찮았습니다.
80년대 들어서면서 약사들은 제약회사 연구직이나 영업직 근무보다는 점차 약국 근무약사를 선호하게 됩니다. 개업을 대비해 일선 약국에서 일을 배웠던 거죠.

1990년대 임금근로자 평균 기사가 신문에 실렸는데요. 약사의 급여수준은 그리 높아지지 않았습니다.
1991년 10월15일자 경향신문을 보면 항공기 조종사(149만1686원), 대학교수(132만8162원), 의사 (118만8416원)가 상위 임금을 받은 반면 한의사(68만4750원), 약사(58만6861원), 간호사(49만2461원)는 중위권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당시 미장공은 66만3802원을, 외판원은 53만7040원을 받았습니다.
돈 이야기는 재미도 있지만 좀 씁쓸하기도 합니다. 많이 벌고 적게 벌고는 같은 직종이라도 개인차가 존재하니까요.
그럼 저는 다음 토요일에 재미있는 소재로 찾아 오겠습니다.
*뉴스검색은 네이버의 [뉴스라이브러리]를 활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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